미지의 편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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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라프
작품등록일 :
2023.05.12 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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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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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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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멸종 (13)

DUMMY

아슬아슬하게 피해내는 자신의 마기를 보며 아윤은 생각에 잠겼다.


‘창은 이미 전투불능. 현재까지 죽은 공룡만 일곱에, 마기는 튕겨져 나에게 되돌아온다.’


전황을 진중한 눈으로 훑은 그녀는 안타깝지만 최악의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상성이 좋지 않아.’


아윤의 머릿속엔 저 성주를 누가 상대할 수 있는지에 관한 생각으로 가득 들어찼다.


[한눈을 팔아? 감히 날 앞에 두고?]


아윤이 인지하지 못한 사이 판도라는 어느덧 그녀의 지척에 달했다.

아윤이 온몸을 비틀 듯 판도라와의 거리를 벌렸다.


‘자체적인 공세를 갖추는 데 특화되어 있지 않아. 반환하고 되돌리는 것에 최적화되어 있어.’


아윤은 오른 귀에 끼워진 통신망을 활성화했다.


-아니 가스페르! 거기 아니고 반대라고요! 답답하네 증말.

-아니 지명으로 말하면 내가 어떻게 알아듣습니까! 안 그래도 주변에 산뿐이라 자리도 못 잡겠는데!

[여긴 굉장히 순조롭—]

[야 이 미친 운중군(雲中君) 새끼야! 입 좀 다물어 너 때문에 잘되는 일이 없어!]


단 십 초 사이에 벌어진 기막히는 대화에 순간 아윤은 다시 통신망을 꺼뜨릴 뻔했다.


“거기 여러분?”


아윤이 모두를 호명했으나 누구도 듣지 않았다. 듣지 못 했다고 하는 편이 적절했다.


“야아아아!”


소리를 버럭 지르자 일순 통신망이 잠잠해졌다.


-아윤이십니까?


가스페르가 수화기 너머로 말했다. 더 이상 이 대화가 길어지면 참사가 일어나리라 예상한 아윤이 거두절미하고 본론으로 향했다.


“혹시 판도라 약점 아시는 분?”


그러자 통신망의 너머로 해결책이 무수히 쏟아졌다.


[그거 판도라의 상자 그거 아니냐? 걔가 거기 있어?]

[그게 뭔데.]

[넌 닥쳐. 덜떨어진 새끼야.]

-판도라가 뭡니까. 처음 듣는데요.


[누구랑 그렇게 얘기해?]


다시 한번 아윤을 포위한 판도라가 그녀에게 마수를 뻗쳤다.


“큭!”


아윤이 굵은 소리를 내며 또 한번 멀어졌다.


‘언제고 도망만 다닐 수는 없어.’


아윤이 이번엔 공간 장악형 격을 발현했다.


“고유격 발현. 「무가치한 존재」.”


아윤의, 벨리알의 상징적인 격임과 동시에 벨리알을 최상의 마신 반열에 오르게 했던 그 격. 그 격이 지금 지구에 재현되고 있었다.


스멀스멀 지각에서부터 상승하는 격의 파장이 판도라의 움직임을 한층 느리게 만들었다.

상대의 피로를 증가하는 것이 뭐 대단한 것이냐고 말하는 《관념》의 격제작자가 존재했다. 하지만 그건 벨리알에 대해 무지한 채로 말한 망언에 가까웠다.

벨리알의 격은 대부분 상대를 제압하여 난타를 가한 후 상대의 체력을 소진시키는 데 최적화되어 있다. 허나 대상의 속도가 벨리알이 볼 수 없을 정도로 빠르거나 아무리 때려도 체력의 소모를 일으킬 수 없다고 한다면, 그것은 벨리알에게 치명적인 약점이 될 것이매 틀림없었다.


[잔재주인가?]


그런 점에 있어 고유격 「무가치한 존재」는 그런 약점을 상쇄해 주는 격이었다. 하지만 아윤이 현재 발현한 용도는 그것이 아니었다.


‘마기도, 창도 통하지 않아. 직접적인 신체로 위해를 가하는 것은 이미 많은 공룡의 희생으로 체감한 상태. 전혀 타격을 줄 수 없어.’


단순한 시간 지체.

벨리알의 대표적인 격이라는 위상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었다.

그때, 통신망에서 신뢰가 가득한 목소리가 들렸다.


-아윤아.


이찬이었다.

아윤은 상념을 멈추고 이찬에게 답신했다.


“어?”


날아드는 판도라의 손날을 피하며, 달려드는 그녀의 주민을 파괴하며 점점 궁지에 몰리고 있었다.


-판도라에 숨겨진 이야기 알아?


난데없이 퀴즈는 무슨 퀴즈인가. 황당한 상황에 아윤이 반박하려는 순간.


-판도라는 제우스가 결혼 선물로 선사한 피토스(고대 그리스의 토기)를 열어 버려. 그곳엔 인간 세상에 악의 역할을 하는 질병, 범죄, 분노, 질투 등의 요소가 가득했고, 피토스를 연 판도라는 만악의 근원이 인간 세상으로 나오는 것을 보고 황급히 피토스를 닫아.

[스토리텔링 보소.]


우사의 첨언을 받아 이찬이 말을 이었다.


-그런데 피토스에서 나오지 않은 단 하나의 요소가 있었는데, 그게 희망이야. 결국 희망은 바깥으로 나오지 못 했고, 판도라는 그 일을 두고두고 후회하게 돼.


“그래서?”


-판도라의 피토스를 찾아.


치직.


그 말을 끝으로 이찬과의 통신이 끊어졌다.


‘피토스?’


[피하지 말고 싸우라고!]


판도라가 역정을 내며 아윤에게 주먹을 휘둘렀지만 아윤은 가까스로 피하기만 할 뿐 결코 맞상대하지 않았다.

그렇게 공격을 피해내기만 하던 아윤의 어깨에 판도라의 주먹이 살짝 스쳤다.


파스스 ··· ···.


아윤의 얼굴이 불안으로 일그러졌다.


***


많은 음성이 혼재되어 있는 통신망 속에서 가스페르는 차분한 눈으로 모든 전황을 훑었다.


[저쪽은 압도적인데.]


가스페르의 옆에서 시야를 넓혀 주고 있는 허완이 세 농업신이 있는 곳을 가리켰다.


“압도적이지 않는 게 이상하죠. 저 정도면 주(主)나 창세(創世)급이 행차해도 무혈입성하지는 못 할 겁니다.”


가스페르의 말마따나 세 농업신은 앞에 무엇이 있든 상대가 누구든지 간에 무작정 파괴했다.


“아무튼 이쪽은 계획대로 잘해 주고 있고.”


[음.]


“왜요?”


허완이 의문을 가질 때 내는 소리를 알아챈 가스페르가 허완에게 질문을 건넸다.


[강한 격이 느껴진다. 두 군데나.]


“변수?”


가스페르가 황급히 뛰쳐나가려는 순간 허완이 그를 붙잡았다.


[근데 뭔가 이상하다.]


“뭐가요?”


[그 두 놈 옆에 있는 주민들의 기척이 사라지고 있어. 하나둘.]


그것은 저 미지의 격이 우리편에 있음을 방증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허완의 예상에 확신을 준 것은 혼잡한 통신망 속 이찬이었다.


-가스페르! 아마 이상한 격을 두 가지 감지하셨을 겁니다. 그쪽은 배제하셔도 됩니다. 제가 섭외한 사람들이거든요.


가스페르는 이찬의 말이 뇌로 흐름과 동시에 계획을 재정립했다.


‘뒤는 배제한다. 둘을 믿는 게 아니야. 이찬을 믿는 거다.’


가스페르의 눈이 찬란한 황금빛으로 빛났다.


“계획을 재정립하겠습니다. 우사, 운사, 풍백 세 분은 정체되어 계시면 안 됩니다. 서쪽으로 운신해 아윤, 이노에게 합류해 주십시오.”


[안 된다!]


운사의 다급한 반박이 이어졌다. 전황 중에도 답신을 할 정도로 급박한 연유였다.


[우리가 움직이면 놈들이 목적지를 잃고 갈팡질팡할 것이다. 놈들이 흩어져 인명피해를 유발하는 것보다 우리에게 병력이 집중되도록 하는 것이 더 낫다!]


가스페르는 이찬과 운사의 선택을 따르기로 했다.


“제가 여러분 쪽으로 주민들을 몰겠습니다.”


파앗!


「광휘의 발걸음」의 찬란한 광채가 검붉게 드리운 하늘을 비췄다. 이어진 허완의 흰 날개가 가스페르를 장식했다.


“고유격 발현. 「총격포화」.”


단 한 발이 순식간에 분화하여 주민들의 사이로 낙하했다.


퍼어어엉!


압도적인 폭발음과 함께 주민들이 우왕좌왕했다. 가스페르는 그 장소에 다시 한번 「총격포화」를 발현해 주민들을 폭발과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게끔 했다.


“운사! 그쪽으로 주민들 옮겼습니다.”


[잘했다.]


통신망 너머로 운사의 칭찬이 들렸다. 아마 당분간은 세 성주가 버텨줄 것이다.


***


지금 거리를 거닐며 주민들을 처치하고 있는 남자는 ‘흥무대왕’의 주민 정지현, ‘태백산 호랑이’의 주민 황승환과 같은 시일에 성주의 간택을 받아 각성한 주민이었다.

이자의 이름은 김준경. 평범한 건달 조직의 막내였던 그는 자신을 하대하는 이들을 전부 죽이고 성주 ‘사이를 가르는 질투심’의 주민이 되었다.

사실 그가 이토록 괴물을 패 죽이는 것에는 딱히 이유가 없다. 굳이 찾자면 유희. 김준경은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괴물을 죽이고 다니는 것이었다.


그때, 그의 기감이 경고했다.

상상을 초월하는 강한 경호성에 김준경은 물론 그의 성주인 ‘사이를 가르는 질투심’도 긴장을 금치 못 했다.


“뭐야?


김준경이 그 어떤 것보다도 빠르게 경고를 향해 달렸다.


카각!


땅을 거칠게 긁는 소리와 함께 김준경이 경고의 주체가 되는 대상을 바라보았다.


“이놈이야?”


그들이 도착한 곳에는 그의 주먹 한 번에 정리될 누군가의 주민과 어린 아이뿐이었다.

아이는 앞에 놓인 주민의 압도에 벌벌 떨고 있었다.

김준경은 강력한 그의 주먹을 뻗어 가뿐히 주민의 머리를 뚫어 버리고 아이를 향해 다가갔다.


“일어나.”


그 순간.


[야! 피■.]


상상력의 제약 때문에 직접 말을 꺼내지 않는 그의 성주가 어설픈 목소리를 내며 그를 향해 경고했다.


“예? 무슨 소립니까?”


[그 ■이 아■야.]


“잠깐··· ···.”


김준경이 기겁하며 아이의 손을 놓으려는 순간.


“이런 씨발.”


아이의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악력이 김준경의 팔에 작용했다. 그는 안간힘을 써 아이를 떼어내려 했지만 김준경의 힘보다 아이의 힘이 더 강하다는 것을 입증하듯 김준경의 팔이 서서히 구부려지고 있었다.


“으아아아!”


[■ 감아!]


그때, 성주가 경고했지만 그것은 김준경에게 닿지 않았다. 영문 모를 경고에 김준경이 제대로 대처하지 못 한 순간.

아이의 진초록 머리칼이 일제히 뱀의 형상을 띠기 시작하더니 모든 뱀과 아이의 눈이 그를 향했다.

김준경은 그들의 눈을 마주했고, 그 순간 시야가 좁아졌다.


쿠우우웅.


돌처럼 변한, 아니, 돌이 되어 버린 김준경이 땅에 쓰러지며 그의 성주도 함께 사라졌다.

손을 털고 일어난 진초록 머리의 아이가 김준경을 슬쩍 일별하더니 맨발로 어딘가를 향해 걸어갔다.

돌이 된 김준경은 그 자리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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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 범 (6) 24.09.01 6 0 10쪽
150 범 (5) 24.08.30 8 0 10쪽
149 범 (4) 24.08.28 9 0 10쪽
148 범 (3) 24.08.25 8 0 10쪽
147 범 (2) 24.08.23 8 0 10쪽
146 범 (1) 24.08.21 9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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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 대멸종 (10) 24.08.11 9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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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 도룡지기 (2) 24.08.07 8 0 10쪽
139 도룡지기 (1) 24.08.04 8 0 10쪽
138 대멸종 (9) 24.08.02 9 0 10쪽
137 대멸종 (8) 24.07.31 8 0 9쪽
136 대멸종 (7) 24.07.28 10 0 10쪽
135 대멸종 (6) 24.07.26 12 0 11쪽
134 대멸종 (5) 24.07.24 8 0 10쪽
133 대멸종 (4) 24.07.21 7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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