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의 편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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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라프
작품등록일 :
2023.05.12 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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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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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4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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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룡지기 (1)

DUMMY

사락.


가루가 반죽이 되듯 미세한 입자가 모여 이찬을 이루었다.

북적북적한 거리와 번쩍번쩍한 길가. 금빛으로 덮인 세상에서 이찬은 이곳이 누구의 행성인지 단번에 알아챌 수 있었다.

바스락거리며 길가를 거니는 이찬이 사람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았다. 물론 좋은 의미의 관심은 아니었다.

얼마전 도시가 초토화되었다. 유력한 왕 후보이자 왕을 대리하던 4왕자는 실종되었고, 줄곧 내리쬐던 신의 가호도 소멸했다.

1왕자와 2왕자는 사망했고, 3왕자는 여전히 술에 찌들어 여색을 드러내며 살았다. 그뿐이랴. 그곳에 있던 대부분의 성민(星民)은 사인도 알아내지 못 했다.

이 모든 사태가 단 두 신에게서 기인했다는 것이 이곳의 성민들을 분노하게 했다.


“묘하게 불편한데.”


그런 의미에서 이찬의 등장은 그들에게 불신과 불안을 심어 주었다. 이러나저러나 이찬은 아랑곳하지 않고 헤랴-D의, 헤랴 행성의 수도에 위치한 가장 가운데를 향했다.

중앙 중 중앙.

그곳에는 왕의 상징이자 지배자의 위치를 과시하는 거대한 왕궁이 위치해 있었다.


“정지!”


왕궁의 두 경비병이 이찬을 경계했다. 날카로운 창을 쥔 경비병의 앞으로 이찬이 성큼 다가섰다.


“이곳은 왕궁입니다. 함부로 출입이 불가능하십니다.”


이찬은 고개를 올려 가스페르가 있을 법한 곳에 시선을 두었다. 그 모습에 경비병은 이찬의 시선을 억제하기 위해 재차 외쳤다.


“왕궁에 출입하실 수 없습니다.”


그러자 이찬이 그들을 마주하고 시익 웃었다.


“그거라면 괜찮습니다.”


이찬이 살짝 무릎을 굽혀 튀어 오르려는 자세를 취했다.


“입(入)만 할 거라서.”


타앗!


그렇게 많은 추진력을 부여한 것이 아님에도 이찬은 누구보다 높이 뛰었다.

두 경비병은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둘 중 한 명이 놓은 정신줄을 바로잡아 말했다.


“내부에 알려야 해!”


일 년 전의 그 일로 하여금 왕궁의 경비가 삼엄해진 것은 말하지 않아도 될 만큼 자명했다. 그렇게 강화된 경비가 시행된 지 이 개월도 되지 않아 무너진 것이 외부로 누설되기라도 한다면 그것은 적게는 직업을 잃는 것부터 많게는 목숨까지도 잃을 염려가 있었다.

결과를 절실히 알고 있는 두 경비병은 상관에게 보고했고, 상관도 그들과 크게 상황이 다르지 않았기에 황급히 모두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경비가 뚫렸다! 전 병사는 침입자를 색출하라!”


상관의 한 마디에 외부를 지키던 이들, 순찰을 나갔던 이들, 심지어는 비번인 군인들 전원이 동원되어 건물 내부를 뒤졌다.


“1중대와 2중대는 각각 왕과 4왕자께 향하라!”


상관의 명령에 누군가 질문했다.


“3왕자는 어떡합니까?”


그 질문에 상관은 잠시 고민하더니 다음과 같이 말했다.


“3왕자께는 누구도 가지 않는다. 방금 명을 이행하고 나머지 중대는 왕궁을 샅샅이 파헤쳐라.”

“예!”


그 시각 가스페르는 집무실에 앉아 자신의 아버지이자 현 국왕인 제퍼의 업무를 도왔다.

말이 돕는다는 것이지 사실 본인이 다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아버지. 너무 힘든데요.”


방 안에 있는 것은 본인뿐인데도 가스페르는 중얼중얼 독백을 지껄였다.

그런 가스페르의 곁으로 누군가 나타났다.


[일하라니까 또 별 딴짓하고 있지.]


지구에서 중상을 입고 헤랴로 복귀해 요양 중이었던 허완이었다.


“도와줄 거 아니면 가세요라.”


그의 감각에 특별한 현상이 잡힌 건 한창 둘이 대화를 나눌 때였다. 성주와 주민으로 묶여 있는 두 존재답게 둘은 동시에 그 기감을 잡아냈다.


“이거··· ···.”


익숙함과 낯섦.

이 두 감각은 극과 극에 위치한 감각들이다. 따뜻함과 차가움이 공존할 수 있는가? 흰색과 검은색이 섞이지 않고 위치할 수 있는가? 그럴 수 없으리라 자부한다.

그렇기에 두 감각을 동시에 느낀다는 건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그들은 감각하고 있었다. 정확히 같은 감각이었다.


[이찬이다.]


먼저 화두를 꺼낸 것은 허완이었다. 그는 성주들이 가지고 있는 공간에 대한 장악력을 활용해 행성의 그 어느 곳이든 꿰뚫어 볼 수 있었다.


[보이지 않아.]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행성 내부에 있는 존재라면 허완의 눈에 보이지 않을 수 없었다.

존재를 감춰도, 급하게 행성을 떠도, 허완의 눈은 헤랴의 모든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에게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애초에 행성 내부에 들어온 적이 없거나.


[나보다 강한 존재다.]


자신의 행성에서 원동력을 얻는 허완조차 속일 수 있는 강한 존재라는 것.


“아무래도 나가 봐야겠어요.”


자신의 코트를 옷걸이에서 집어 어깨에 걸친 가스페르가 문을 열어 바깥을 나가려는 순간 중대가 가스페르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그리곤 가스페르의 앞에 멈춰 단체로 거수경례를 했다.


“뭐하는··· ···.”


가스페르가 궁금증을 내비쳤다.

가스페르의 말에 모두가 너 나 할 것 없이 가스페르를 다시 집무실로 보내고는 다섯 명은 문 앞에, 나머지는 가스페르의 곁에서 집중 호위를 시작했다.

가스페르가 싫증을 내며 벗어나려 했지만 중대장이 나서 그를 설득했다.


“왕성에 누군가 침략을 감행했습니다. 저희는 성심성의껏 왕자님을 보호할 것입니다.”


가스페르가 인상을 찌푸렸다.


“자네들은 내가 자네들의 보호를 받아야 될 정도로 나약한 사람처럼 보이나?”


그 말에 중대장이 부정했다.


“아닙니다. 4왕자님은 저희 행성 전체를 통틀어도 가장 강하신 분이라 자부합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불필요한 병력이 내게 집중되는가.”


가스페르가 일그러진 얼굴로 호통을 쳤다.

비단 중대의 일만이 아니다. 이찬의 기운이 느껴지긴 하나 그 겉에는 이질적인 힘조차 함께 작용하고 있었다.

이질적인 것엔 진절머리가 나 있던 가스페르는 자신을 제거하려는 누군가가 이찬의 기운을 일부 가지고 이곳에 침공했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들이 보호해야 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전 병력. 아버지를 보호하기 위해 움직여라.”


중대장이 번뜩 놀라며 반문했다.


“그곳엔 이미 1중대가 호위 중입니다.”


허나 가스페르는 명령을 철회하지 않았다.


“내 보호는 필요 없다. 어서 아버지를 보좌하라.”


결국 완강한 가스페르의 태도에 그들은 제퍼에게 향했다. 2중대가 제퍼에게 향하기 전, 가스페르가 중대장을 불러 세웠다.


“자네는 내가 자네에게 명령한 것을 상관에게 보고하지 말게. 후에 들켜도 상관하지 말게. 내가 변호할 테니. 자네는 그저 지금 이 순간에 내가 얌전히 보호받고 있다는 것만 위증하게.”


중대장이 알겠다는 표를 하자 가스페르는 그들을 제퍼에게 보냈다.


“저희는 움직이죠.”


[근엄한 척 오지네.]


“크흠!”


경비를 물린 것이 단순히 아버지가 걱정되기 때문은 아니었다. 물론 그 연유가 상당수를 차지하긴 했지만 그의 핵심 목적은 자유로운 이동에 있었다.


“진짜 이찬인지. 가짜 이찬인지 확인하러 가자고요.”


[그전에, 이노는 어떻게 할 것이지?]


이노는 일전에 이찬, 아윤과 세 갈래로 찢어질 때 이노를 이곳으로 데려왔었다.


“이노는 어디 있죠?”


[1층 언저리에 있는 것으로 보이는군.]


“저희가 가려는 목적지랑 비슷하네요. 가는 길에 데려가죠.”


창문을 활짝 열고는 가스페르가 추락했다.


“추락이 아니라.”


후웅!


“비행이지.”


가스페르의 뒤로 허완의 금빛 날개가 치장되었다. 가스페르는 지체하지 않고 본인만이 알고 있는 목적지를 향해 활공했다.


***


한편 이찬은 왕궁의 지하로 향했다. 왕조차 함부로 다가가지 못 하는 곳으로 이찬이 향했다.


“경비가 없네.”


본디 중요시설이라 함은 경비의 중요성이 대두되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무리한 병력을 운용하여 보초를 세우는 경우도 허다하나 이곳의 지하는 허무할 만큼 경비가 허술했다.

간단한 보호 마법만이 문에 걸려 있을 뿐이었다.


철커덕!


이찬은 손쉽게 마법을 해체했고, 문을 열어 지하로 향했다.


“윽!”


뜨거운 연기가 부풀어 올랐다. 이찬은 연기를 손으로 걷으며 내부로 몸을 움직였다. 천천히 몸을 움직였고, 얼마 가지 않아 세 인간의 형체가 드러났다.


“누구냐?”


그중 가운데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찬이 가볍게 손을 헤쳐 연기를 걷자 중앙에는 펑퍼짐하게 맨몸으로 늘어진 남자와 그 남자의 양 팔을 각각 베고 누워 있는 두 여자가 있었다.


“벌써 식사시간인가?”


남자가 여자를 팽개치고 일어서 이찬의 앞으로 다가왔다. 이찬의 모습을 본 남자는 실망했다.


“뭐야? 여자도 아니고, 술도, 밥도 없어? 뭐하자는 거냐?”


남자의 손이 올라가 이찬의 뺨을 후려쳤다. 물론 저 느린 휘두름에 맞을 생각이 없던 이찬은 상체를 뒤로 기울여 가볍게 피해냈다.

그 모습에 남자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이 새끼가 근데··· ···.”


남자가 머리를 뒤로 쓸어 넘겼다. 길쭉하고 산발인 장발이 머리 뒤로 넘어갔다.


“왕자를 보고 경례 한 번을 안 해?”


이번엔 주먹을 쥐어 복부를 가격하려 했다. 역시나 이번에도 이찬은 맞대응했다. 이번엔 피하는 것 대신 막는 것을 택했다.

복부로 향하던 팔이 멈칫했다. 이찬의 저지에 순응한 남자의 팔이 팔딱팔딱 움직였다.


“이 씨발. 이거 놔. 이거 놓으라고!”


남자는 호통을 쳤지만 이찬은 쥔 손을 놓치지 않았다.


“식욕, 술, 여색에 찌들어 허송세월 시간을 보내기만 할 겁니까?”


이찬이 남자에게 말을 걸자 남자는 기가 차다는 헛웃음을 뿜었다.


“하, 건방지게 대드냐? 니 위에 누구야. 데려와.”


이찬은 남자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았다. 대신 쥔 손을 더욱 세게 쥐었다.


“아악! 아아아아악!”


고통을 이기지 못 하고 흘러나온 남자의 신음이 온 지하에 울려 퍼졌다.

주저앉은 남자에게 이찬은 몸을 숙이며 말했다.


“누구는 뼈빠지게 일하면서 나라를 돌보는데, 누구는 이런 곳에서 욕구 충족에만 눈이 돌아가선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네요. 안 그렇습니까? 3왕자님?”


남자, 아니, 3왕자의 눈빛이 이찬의 얼굴에 작렬했다. 3왕자는 죽일 듯한 얼굴로 이찬을 노려보고 있었다.


“일단, 좀 주무시죠.”


빠각!


이찬이 발로 3왕자를 차 벽에 처박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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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 도룡지기 (2) 24.08.07 8 0 10쪽
» 도룡지기 (1) 24.08.04 8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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