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의 편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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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라프
작품등록일 :
2023.05.12 23:43
최근연재일 :
2024.09.1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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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5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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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멸종 (18)

DUMMY

이찬이 무언(無言)의 신호를 보내자 모두가 일제히 그의 신호를 받들었다.

선봉은 늘 그랬듯 아윤이었다.


“저랑 3미터 이상으로 멀어지세요!”


벨리알의 고유격 「무가치한 존재」를 가감없이 발현하더니 그 길로 다가오는 적 진영의 주민들을 일도양단했다. 적지 않은 주민들이 비명조차 내지르지 못하고 절명했다.


“후우.”


짧게 숨을 내쉰 아윤은 이번엔 하늘로 높게 뛰어올라 코셰흐샤비브를 들고는 적 진영의 중앙으로 침입해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들을 전부 배척했다. 하지만 쌓인 피로감이 그녀의 발목을 잡았다. 연속으로 부딪혀 온 존재들의 격이 절대 약하지 않았기에 아윤으로써도 어찌할 도리 없이 상상력을 소모했고, 그 여파가 점점 불어나 아윤을 위협하고 있었다.


카가강!


첨예한 금속음과 신언이 아윤의 곁에 들려온 건 그때였다.


[그렇게 나대면 진짜 죽을걸?]


하늘에서 운사의 구름을 타고 비로 만든 칼날을 분사하는 우사였다. 그 또한 온전한 상태가 아니었기에 직접적인 전투는 피하되 원거리에서 지원 사격을 하는 정도로 타협했다.


[고유격 발현. 「질풍대우(疾風大雨)」.]


우사의 고유격이자 지원 사격이라는 면모에서 최적화된 격이 아윤과 최전방에서 혈전을 벌이는 이들을 보좌했다.

갑자기. 아윤의 옆에서 대응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주먹이 날아들었다. 성단 <이매망량>의 주민들이 괴이할 정도로 빠른 회복력을 무기로 하여금 아윤을 제압하려 들었다.

주민의 주먹이 아윤의 복부에 닿으려는 순간이었다.


픽!


짧고 얇은 실 튕기는 소리가 아윤의 귀에 적막하게 들려왔다. 이어 복부에 꽂히려는 주먹이 어지러이 뒤틀리더니 분명 정면에서 아윤을 향해 살기를 드러내고 있던 주민이 사라져 버렸다.

아윤이 고개를 살짝 돌려 그 튕기는 소리를 발한 주체를 응시했다.


“목숨 하나 빚지신 겁니다.”


가스페르가 통신망을 통해 아윤에게 으스댔다.


“예, 예.”


건성으로 대답한 아윤이 창을 한 손으로 빙글빙글 돌리더니 바닥에 꽂고는 출처를 알 수 없는 괴한 충격파를 발산했다. 발산된 충격파는 사방으로 퍼져 주민들의 발목을 붙잡았다.

이는 「무가치한 존재」와 아윤의 창의성이 합쳐진 작품으로 「무가치한 존재」의 구속력을 배로 만들어 주는 창의적인 기술이었다.


“지금!”


아윤이 쏘아 올린 신호탄에 맞춰 누군가 발목이 붙들린 주민들을 향해 자신들의 격을 쏟아 부었다. 전장의 적막에서 끌어올린 것 같은 기운이 주민들에게 가해졌다.


퍼벅!


격을 피할 저항력을 갖추지 못한 주민들은 그것을 맞자마자 폭발해 시신도 남지 않았다.


“좋은 연계였군.”


강환중이 아윤과 조우했다. 아윤은 그들과 만나본 적은 없지만 가스페르와 이찬의 이야기로 어렴풋이, 그리고 적잖게 들어 보았다.

한반도의 최강을 다투는 위인 중 한 명으로서 이미 무신(武神)의 경지에 오른 인물. 그 인물의 주민인 두 영혼에게 아윤이 인사를 건넸다.


“도와주러 오셔서 감사합니다··· ···.”


아윤이 인사하자 강환중이 과할 정도로 손사래를 쳤다.


“선의를 베푼 것이 아니네. 그저 해야 할 일이었을 뿐이지.”


강환중은 자신을 살려준 이찬에게 은혜를 갚기 위해 이 지구로 향했다. 흥무대왕은 처음에 지구로의 파병을 반대했으나 강환중의 확고한 의지로 인해 그것을 승인했다.

흥무대왕 김유신의 입장에서는 단연코 지구로 그를 보내지 말았어야 했다. 그는 강환중에게 자신의 상상력 일부와 거의 모든 격을 전수했다. 사실상 그가 흥무대왕의 분신(分身)이나 다름없는 셈이었다. 하지만 성인(成人)의 아량을 가진 흥무대왕은 기꺼이 그를 지구로 보내는 것에 동의했다. 물론 적지 않은 상상력을 《관념》에 헌납해야 하는 것 또한 흥무대왕이 감당할 일이었다.


“거기 둘! 지금 그렇게 여유로워?”


유수가 작은 파도를 휘적거리며 주민들을 소탕하던 도중 잡담을 나누는 둘을 보곤 일침을 가했다.


“강환중, 너는 옆에 있는 니 조수는 뼈가 빠져라 살이 깎여라 일하고 있는데 너는 뭐하냐? 빨리 움직여!”


유수의 호통에 강환중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액면가는 나보다 어린 게 나이만 드럽게 많아 가지고.”

“뭐라고?”

“열심히 하겠습니다!”


강환중이 아윤에게 한 번 끄덕이고는 승현을 향해 도약했다. 아윤도 다시 전투에 돌입했다.

한편.

이노는 또 다시 여러 공룡을 조종하느라 진이 빠지게 집중하고 있었다. 그런 이노를 아윤이 불렀다.


“이노야.”

“말. 걸지 마. 바빠.”

“제어 해제해.”


이노가 화들짝 놀라며 굳게 닫힌 자신의 눈을 띄웠다. 이내 눈을 찌푸리더니 입을 열었다.


“너. 누구야.”


응?


이찬은 이노의 예상치 못한 반응에 잠깐 당황하여 멍해졌다. 다시 두둥실 떠오른 멘탈을 붙잡은 이찬이 이었다. 설마 정체를 묻는 질문까지 나올 줄은 몰랐던 모양새였다.


“그렇게 막대할 필요는 없지 않아?”

“그럴. 리가 없어. 나. 부려먹을 생각밖에 없잖아.”


그러고보니 이찬은 이노에게 늘 떠넘기기만 했다.

다대다로 맞서는 싸움에선 늘 이노의 컨트롤이 따라줘야만 공룡이 완전히 자신들의 편에 서 줬고, 늘 해결책을 강구하거나 소위 팩트 체크의 용도로 이노를 사용(?)했다.

이찬은 그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맞아. 이젠 너 힘들게 안 하려고, 넌 이제 키마이라만 타고 다녀. 하나만 해도 충분할 것 같아.”


이노는 물량이 부족한 이찬의 편 입장에서 절대 놓쳐서는 안되는 요소였다. 아무리 약해 빠진 놈들이라도 《관념》의 주민이나 성주가 되려면 너무도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한다.

성주는 <관리성>으로부터, 주민은 성주로부터 말이다. 그런 이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어 소모전을 펼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쉽사리 그것을 헤쳐 나가지 못할 게 자명했다.

그렇기에 이노도 그 점에 의문을 가졌다. 하지만 이찬은 확고했다.


“이제 내가 알아서 할게.”


결국 이노 또한 이찬을 신뢰했기에 전장에 나서 있던 대부분의 공룡을 회수했다. 조류 주민과 싸우던 익룡을 회수하고, 육지에서 처절하게 싸움을 벌이던 육지 공룡들을 회수했다. 그러자 전황이 확연하게 적들의 편으로 기울었다.


[으하하! 빌어먹을 파충류가 없으니 편하구만!]


성주와 주민들이 미쳐 날뛰기 시작하자 그들은 자연스레 궁지로 몰렸다. 몰려드는 주민들을 보며 이찬이 누군가에게 말했다.


“지금입니다.”


그러자 신호를 받은 누군가는 느긋하게 위에서 아래로 그들을 오시했다. 이어 그 누군가의 앞에 메시지 박스가 띄워졌다.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씨익 웃은 메시지의 주인은 자신의 고유격을 맘껏 드러냈다.


[고유격 발현. 「신도울루(神茶鬱壘)」.]


그 누군가의 이름은 처용. 세간에서 문전신으로 이름을 널리 떨친 인물이자 지금은 성주였다. 순식간에 그들을 둘러싼 두 영체(靈體)가 등장했다.

신도와 울루.

일전에 괴이한 마인(魔人)과의 싸움에서 상당수 타격을 입긴 했지만 일명 ‘지키는 싸움’에서는 주신급 성주 하나 부럽지 않은 위치에 있는 것이 바로 문전신 처용이었다.


[고유격 발현. 「탐라문전제(耽羅門前祭)」.]


<태극본성>에서도 발현되어 많은 이들에게 감탄을 선사한 그 격이 지구에서 다시 한번 나타나고 있었다.

탐라(耽羅). 현재는 제주도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지역의 무속신앙인 문전제가 자신의 여력을 드러내며 신도와 울루를 움직였다. 신도와 울루의 두 팔, 그러니까 총 네 개의 팔이 주먹이 쥐어진 채 지각을 향했다.


[씨발··· ···.]


방금 공룡이 사라지며 좋아했던 성주와 일대의 주민이 드리우는 그림자의 주인을 허망하게 바라봤다.


쿠우우웅!


가히 상상조차 힘든 굉음이 이 일대에 울렸고, 그 여파로 사방에 흩어진 주민들이 이곳으로 몰려들었다. 문전신의 큰 힘으로 많은 주민들을 몰사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주민의 수는 더욱 늘어났다.

이찬의 통신망으로 문전신의 지친 기색이 역력한 목소리가 들렸다.


[방금 보인 게 끝입니다. 이제는 신도울루를 유지할 여력밖에 남아 있지 않습니다.]


문전신의 이야기가 통신을 통해 이찬의 귀에 들어왔고, 이찬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가스페르.”


이찬이 가스페르를 부르자 가스페르가 이찬의 곁으로 당도했다. 그리곤 이찬을 흘기며 물었다.


“이제 내 차례인 겁니까?”


이찬이 피식 웃으며 부정했다.


“아뇨. 당신 형 차례입니다.”


가스페르의 얼굴에 만연하던 웃음기가 싹 사라지고 그의 뒤로 그의 형인 구스타보 반 아이데가 등장했다. 타지에서 동향 사람. 그것도 자신의 형제를 만났다는 것에 감동도 잠시 가스페르는 화들짝 놀랐다.


“형? 형이 어떻게··· ···아니, 왜 온 거야?”


구스타보가 마법을 자신의 몸에 둘렀다.


“아무래도 평생 그렇게 사는 건 너한테나 나한테나 아버지한테도 그렇게 좋은 방향이 아닌 거 같아서.”


구스타보의 시선이 순간 가스페르를 넘어 있는 이찬에게로 향했다. 그리곤 재차 고개를 정면을 향하도록 돌렸다.


“너 왕 안 하고 싶다고 했지?”


구스타보는 자신의 모든 마법을 이 지구에서 발현했다.


“그럼 왕 내 거 한다?”

“해 보던가.”


구스타보의 진짜 마법이, 완벽한 형태로 이곳 지구에 구현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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