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룡검 시간을 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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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3.06.06 22:54
최근연재일 :
2023.11.01 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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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7.17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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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8화, 왕파리

DUMMY

마침내 동굴을 빠져나와 주위를 살펴보니 산 중턱이었는데 숲이 울창하고 인적이 없는 곳이었다.


깔끔이가 동굴 입구를 향해 앞발을 흔들자 옆에 서있던 나무들이 기울어지며 동굴 입구를 가려주었다. 천면노와 두성이는 밑으로 내려가느라 깔끔이의 행동을 보지 못했다.


천면노와 두성이는 그동안 맡아보지 못했던 상쾌하고 싱그러운 공기를 깊숙이 들이마셨다. 심장이 고동을 치며 힘차게 움직였다.


두성이가 황산에 왔을 때도 초여름이었는데, 풀과 나뭇잎 그리고 하늘을 쳐다보니 지금도 초여름인 것 같았다.


(그렇다면 그사이 일 년이 지난 건가? 아니면 이 년이?)


모르긴 스승도 마찬가지다. 스승과 제자는 똑같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길이 없는 험한 산을 내려왔다.


전 같으면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지만, 두성이는 스승의 뒤를 따라 날렵한 동작으로 바위를 건너뛰고 계곡을 건넜다. 혹시나 해서 뒤돌아보니 깔끔이는 힘도 들이지 않고 나무 위로 뛰어왔다.


멀리서 사람들이 두런두런 이야기하는 소리를 따라 오다보니 유람객들이 다니는 길을 찾을 수 있었다.


해는 어느덧 뉘엿뉘엿 서산에 걸려있고 땅거미가 내려앉기 시작했다. 황산 초입에 있는 객잔에 도착한 스승과 제자는 오늘은 이곳에서 묵고 내일 떠나기로 했다.


천면노는 객점에 도착하자마자 뭐니 뭐니 해도 목을 시원하게 넘어가는 황주와 맛있는 안주 생각에 침을 꿀꺽 삼켰다.


식당에 들어가자마자 고소하고 구수한 냄새가 코를 자극했고, 기름이 자글자글한 요리가 눈앞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이백처럼 술을 좋아했던 천면노가 그동안 먹고 싶어도 억지로 참을 수밖에 없었으니 지금의 심경을 어찌 한마디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천면노는 마음에 맞는 친구들과의 술자리도 좋아했지만, 혼자서 먹는 술맛을 음미할 줄 아는 애주가였다.


그가 혼자 술 마시면 항상 읊는 시가 있었다.


꽃 사이에 놓인 술 한 단지,

아는 사람 없이 홀로 마신다.

잔을 들어 달을 청하니,

그림자까지 세 사람이 되었네.

달은 마실 줄 모르고,

그림자는 부질없이 나를 따르네.

............


‘달 아래 홀로 술잔을 기울이며(月下獨酌)’라는 이백의 시이다.


천면노는 점원에게 오늘 날짜를 묻고, 동굴에서 갇혀 지낸 게 어연 일 년이나 되었음을 알았다. 비록 갇혀 있었지만 부질없는 시간은 아니었다.


팔십이 넘어도 애들한테 배울 게 있다고 두성이를 제자로 받고 가르치면서 배운 것도 많았다.


생각지도 않게 내공과 무공이 함께 증진되었고, 신체와 정신이 강화되었다.


한참 과거를 회상하고 있었는데 주문한 요리와 술이 나왔다. 천면노는 한잔을 따라 코에 대고 술의 향기를 즐기고 있었다.


지금만큼은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었다.


두성이도 김이 무럭무럭 나는 소고기면을 앞에 두고 스승이 먼저 잡수시길 기다리고 있었다. 천면노가 술을 들이켜고 안주를 집어먹자 기다리던 두성이가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몸이 성장한 만큼 식욕도 대단했다. 두성이는 눈 깜짝할 사이에 한 그릇을 뚝딱 해치우고 벌써 세 그릇째이다.


그런데 깔끔이는 음식엔 전혀 관심이 없는지 의자에 배를 깔고 쳐다보지도 않았다. 정말 비밀에 싸인 고양이였다.


그때 입구에 화려한 비단 옷을 입은 소년이 아름다운 소녀와 함께 들어왔고, 그들 뒤를 청색 경장차림의 장한 둘이 따라 들어왔다.


저녁시간이라 식당은 손님들로 꽉 차 무척이나 시끄럽고 혼잡했다.


십오륙 세의 소년은 얼굴이 희고 코도 오뚝했으며 칼날 같은 눈썹이 위로 뻗었고 눈 꼬리도 올라가 매우 용맹한 인상을 풍겼다.


이 소년의 이름은 남궁악으로 남궁세가의 공자였다.


남궁악은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식당 안을 둘러보다가 구석진 모퉁이에 빈자리를 하나 발견했다.


그러나 남궁악은 평소에 남의 관심을 받는 것을 좋아해서 사람이 모인 곳에 가면 항상 가운데에 앉는 버릇이 있었다.


가운데 좌석에는 모두들 네 명씩 앉아있었는데 두성이와 천면노의 자리만 두 사람이었다. 이때 점원이 뛰어오며 인사를 했다.


“공자님, 이쪽으로 오십시오.”


점원이 구석진 자리로 안내하자 남궁악은 인상을 잔뜩 쓰며 쏘아봤다.


“나보고 저 구석에서 밥이나 먹으라는 건가?”

“헤헤, 빈자리가 거기밖에 없습니다.”


이때 같이 온 소녀가 웃으며 남궁악한테 말했다.


“남 공자, 자리가 없으니 저리로 가시죠?”

“난 구석은 답답해서 질색이요.”


남궁악이 점원에게 신경질을 부리는 사이에 다른 일행이 그 구석진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그러자 남궁악은 손가락으로 두성이를 가리키며 뒤에 있는 장한에게 눈짓을 했다.


장한이 두성이 자리로 가서 거만하게 천면노를 지그시 노려보았다.


“우리 공자께서 기다리시니 빨리 식사를 마치고 나가시오.”


목소리에 일부러 힘을 주었는지 쩌렁쩌렁 울렸다. 술맛을 음미하면서 천천히 술잔을 들고 있던 천면노가 갑자기 귀를 후볐다.


“갑자기 귀에 모기가 들어갔는지 앵앵거리며 극성을 부리네. 내가 술에 취한 건가?”


두성이가 국수를 먹다가 킥!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보잘 것 없는 늙은이가 망령이 났는지 헛소리를 하자, 장한은 얼굴을 잔뜩 일그러뜨렸다.


“모기가 앵앵거린다고? 늙은이가 죽고 싶은 모양이지? 빨리 일어서지 못해?”


지금까지 어딜 가나 장한이 한마딜 하면 설설 기며 조용히 물러갔는데, 볼품없는 늙은이와 어린놈은 장작을 처먹다가 목에 걸렸는지 목을 뻣뻣하게 쳐들고 웃고 있었다.


이런 것들은 꼭 관을 봐야 눈물을 흘리는 족속이었다.


장한은 앞에 있는 두성이의 목덜미를 거머쥐고 밖으로 끌어내려고 강철처럼 단단한 다섯 손가락을 구부리고 손을 뻗었다.


두성이는 몸을 돌리지도 않고 왼손을 살짝 어깨위로 들며 엄지로 장한의 손바닥을 찍었다. 장한은 손바닥을 통해 전해지는 짜릿한 느낌이 심장을 쿡 찌르는 바람에 사색이 되어 얼른 뒤로 한 발작 물러섰다.


찌릿찌릿한 통증이 가시지 않자 장한은 직감적으로 뭔가 잘못되었음을 느끼고 남궁악의 눈치를 살폈다.


두성이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위험을 느끼고 음식을 놔둔 채 허겁지겁 그 자리를 피했다.


어떤 자는 남은 국수가 아까웠는지 그릇을 들고 후루룩! 후루룩! 국물을 마시며 입구로 도망쳤다.


뒤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남궁악과 소녀 그리고 다른 장한이 얼굴색을 굳히고 두성이 쪽으로 왔다.


남궁악은 분위기가 어수선한데도 꾀죄죄한 노인과 소년이 태연하게 술을 마시고 국수를 먹자 문득 의심이 들었다.


(저들의 태도로 봐서는 틀림없이 무림의 고수일 것이다. 어디 좀 알아봐야 겠다.)


영악한 남궁악은 짐짓 노기를 띠우고 엉거주춤 서 있는 장한을 나무랬다.


“석 호위, 넌 왜 시키지도 않는 일을 해서 매를 벌고 그러나? 앞으로 각별히 조심하도록 해!”


뻘쭘하게 서있는 호위를 노려보던 남궁악이 미소를 띠우며 다가왔다.


“본의 아니게 정말 죄송하게 됐습니다. 전 남궁가의 셋째 남궁악이라 합니다. 대협의 존성대명은 어떻게 되십니까?”


남궁가는 무림의 명문이라 할 수 있다. 놈은 집안을 빌려 자신의 위상을 높이려고 목에다 힘을 주며 말했다.


천문노는 시답잖은 표정으로 힐끗 남궁악을 쳐다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하하하! 남궁명이 자신을 빼다 박은 새끼를 낳았구나. 남궁명이는 잘 있지?”


시골 촌부처럼 생긴 노인네가 아버지의 이름을 들먹이며 말을 함부로 내뱉자 남궁악은 배알이 꼴려 눈은 어느새 독사눈깔이 되었다.


“입을 함부로 놀리지 마시오! 당신은 뭐가 잘났다고 아버지의 이름을 마구 부르는 거요? 에이, 즈발....”


그러나 천면노는 입 꼬리를 올리며 파리를 쫒아내듯 손을 휘휘 저었다.


“밥을 먹으러 왔으면 소란피우지 말고 빨리 먹고 가라. 네가 앞에 버티고 있으니 술맛이 떨어지는구나.”


남궁악이 화를 못 이겨 부르르 떨자 옆에 있던 소녀가 잡아끌었다.


“남궁 공자, 저기 자리가 비었으니 가요. 배고파 죽겠어요.”


점원들은 손님이 떠난 자리를 말끔히 치워놓았다. 남궁악은 아버지를 잘 아는 노인 같아서 더 대들지는 못했다. 그러나 체면이 잔뜩 구겨지자 분해서 씩씩거리며 빈자리로 가서 앉았다.


그때 입구에 흰 장삼을 입은 비쩍 마른 노인과 작달막한 노인 둘이 들어오더니 남궁악을 보고 손을 들었다.


“남궁 공자, 식사를 하러 왔군.”

“왕 대협, 이리로 앉으시지요.”


비쩍 마른 노인은 비선검 왕파리(王派里)로 무당의 속가제자이고, 작달막한 노인은 숭산일검 장작(長斫)으로 숭산파의 고수이다.


이들은 현재 남궁세가의 식객으로 남궁악과 함께 황산 구경을 온 것이다.


“왕 대협, 저 노인의 정체를 아십니까?”


왕파리와 장작이 천면노를 힐끗 보더니 안색이 변했다.


“저 자는 무림십대검객인 천면노인이요. 성격이 괴팍하고 행적이 일정치 않아 만나기 쉽지 않은데 어쩐 일로....”


남궁악도 당황해서 입가가 파르르 떨렸다. 십대검객중의 하나라면 어마어마한 고수인데 함부로 대들었으니 일이 크게 잘못되었다.


“무슨 일이 있었소?”


왕파리의 물음에 남궁악은 자신의 잘못은 말하지 않고 천면노가 아버지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고 자신을 핍박했다고 고자질했다.


왕파리와 장작의 무공도 상승의 경지에 있었기에 평소에 천면노인을 두렵게 생각하지 않았다.


왕파리는 성격이 급하고 깊게 생각하지 않는 유형이었고 장작은 좀 신중한 편이었다. 그러나 둘 다 밴댕이 소갈머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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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제51화, 불새단 23.07.21 491 8 12쪽
50 제50화, 일수불퇴 진용추 대협 23.07.19 515 8 10쪽
49 제49화, 방귀 뽕! 왕王자 23.07.18 521 7 11쪽
» 제48화, 왕파리 23.07.17 523 9 10쪽
47 제47화, 검은 고양이 묵묘 23.07.15 516 10 10쪽
46 제46화, 못난 사부 23.07.14 533 11 10쪽
45 제45화, 하늘이 무너져도 23.07.12 540 8 10쪽
44 제44화, 길이 나오면 돌아가라 23.07.10 551 8 10쪽
43 제43화, 의적 공수불거(空手不去) 사마통 23.07.07 577 10 10쪽
42 제42화, 마침내 기연 奇緣 23.07.06 584 11 10쪽
41 제41화, 산적두목 홍미미 23.07.05 585 7 10쪽
40 제40화, 어마어마한 대물 大物 23.07.03 589 9 10쪽
39 제39화, 첫 무공수련 武功修鍊 23.07.01 584 8 10쪽
38 제38화, 각자의 길 (各自圖生 각자도생) 23.06.30 550 8 10쪽
37 제37화, 거지 신세를 면하다. (금선탈각 金蟬脫殼) 23.06.28 561 7 10쪽
36 제36화, 실마리 +1 23.06.27 575 9 10쪽
35 제35화, 누란지위 累卵之危 +1 23.06.26 584 8 10쪽
34 제34화, 창룡검법 蒼龍劍法 23.06.23 602 9 10쪽
33 제33화, 임설매와의 조우 23.06.21 603 10 10쪽
32 제32화, 호가호위 狐假虎威 23.06.19 583 10 10쪽
31 제31화, 애들을 찾아서 23.06.18 603 9 10쪽
30 제30화, 귀환 23.06.18 613 9 10쪽
29 제29화, 모성애 23.06.18 593 8 10쪽
28 제28화, 충 忠, 의 義, 신 信 23.06.18 604 8 10쪽
27 제27화, 처절한 절규 23.06.18 630 7 10쪽
26 제26화, 빗속의 마차 +2 23.06.18 658 10 10쪽
25 제25화, 방황 23.06.17 675 10 10쪽
24 제24화, 억장이 무너지다 23.06.17 689 9 10쪽
23 제23화, 추적자 23.06.16 707 10 9쪽
22 제22화, 두 아이의 운명 23.06.16 745 11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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