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룡검 시간을 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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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3.06.06 22:54
최근연재일 :
2023.11.01 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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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6.18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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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제27화, 처절한 절규

DUMMY

호화로운 마차는 어둠과 빗속을 뚫고 한 시진을 달려서야 간신히 도시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비가 줄기차게 내려서 시장의 웬만한 점포는 모두 서둘러 문을 닫고 술집들만 취객들을 상대로 불을 밝히고 있었다.


마차의 마부는 이곳의 지리를 잘 아는지 능숙한 솜씨로 말을 몰아 제일 큰 약방 앞에 말을 멈췄다.


백성들을 구제한다는 거창한 현판을 내걸은 제민원이란 약방은 이미 문을 걸어 잠가 캄캄하였다. 마부가 문을 한참 두들기자 점원이 귀찮다는 듯 짜증스런 목소리로 말했다.


“장사가 다 끝났으니 귀찮게 하지 말고 돌아가슈.”


마차 안의 여인이 취영이를 안고 내려와 차갑게 말했다.


“문을 빨리 열지 않으면 불을 질러버리겠다.”


점원은 여인의 차가운 말소리에 주눅이 들었는지 가게 문을 열었다. 여인은 안으로 들어서며 점원에게 명령조로 말했다.


“주인은 어디에 있느냐? 꾸물대지 말고 빨리 나오라고 해라.”


여인의 날카로운 눈빛에 오금이 저린 점원이 부리나케 안으로 들어가더니 잠시 후에 뚱뚱한 사람이 신발을 끌며 나왔다.


“밤늦게 미안하지만 이 아이를 진료하고 약을 달여 주시오. 돈은 아끼지 않을 테니 제일 좋은 약재를 쓰고.”


화려한 옷을 입은 아름다운 여인이 재촉하자 주인은 아무소리 않고 취영이를 받아 안고 진료실로 들어갔다.


눈치가 빠른 점원은 화로에 숯을 더 집어넣어 불을 붙이고 약탕기에 물을 부어 올려놨다.


주인은 취영이의 맥을 짚더니 약방문을 적기 시작했다. 약방문을 점원에게 넘겨준 주인이 여인을 보고 말했다.


“아이가 원래 몸이 부실한데다가 비를 맞고 떨어서 한기가 몸속 깊이 침입하였군요.


늦었으면 큰 병이 될 번 하였으나 우선 약을 한 첩 먹으면 괜찮을 것입니다. 앞으로 보약을 먹여야 할 것 같은데......”


“보약도 한 제 지어주시고. 자..., 이거면 되겠소?”


여인은 허리에 찬 비단 주머니에서 작은 금덩이를 꺼내 책상위에 놓았다. 주인은 금덩이를 보더니 얼굴 가득 웃음꽃을 피우며 보약을 직접 짓기 시작했다.


약을 다 지은 주인이 여인을 보고 너스레를 떨었다.


“장백산의 인삼, 천산의 영지, 태산의 구기자 등 저희 가게에서 제일 좋은 약재로만 약을 지었으니 이 약만 먹이면 애가 몰라보게 예뻐지고 튼튼해 질 것입니다.”


"수고하셨소.”


여인은 짤막하게 대답하고 누워있는 취영이를 쳐다봤다. 점원이 금방 짜서 김이 무럭무럭 나는 약을 가지고 오자 여인은 취영이를 깨워 억지로 약을 떠먹였다.


얼떨결에 약을 먹은 취영이가 써서 입맛을 다시며 진저리를 치자 주인이 사탕을 하나 주었다. 사탕을 입에 문 취영이가 그때서야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오빠를 찾았다.


“오빠, 오빠는 어딨어?”


여인이 취영이를 안으며 물었다.


오빠라니, 너밖에 아무도 없었는데..., 너의 집이 어디니?”

“우리 집? 저기......”


아직 잠에서 덜 깬 취영이는 막연히 천장을 가리켰다.


“일단 오늘은 늦었으니 우리와 같이 가자.”


여인은 취영이를 안고 다시 마차에 탔다. 비는 아직도 그치지 않고 내렸다.


취영이는 사탕을 물고 다시 잠이 들었다. 호화로운 마차는 이곳에서 제일 이름이 있는 흥복객잔(興福客棧)에 멈췄다.


비가 와서 손님이 뜸한지 문 입구에서 졸고 있던 점소이가 호화로운 마차를 보고 얼른 뛰어나왔다.


눈치로 먹고 사는 점소이는 호화로운 마차에서 내리는 아름다운 여인을 보더니 신분이 고귀한 사람이라 여기고 연신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어서 오십시오. 방이 넓은 별채로 모실까요?”

“그래, 좀 조용한 곳이면 좋지.”


점소이는 굽실거리며 안쪽에 있는 별채로 안내하였다. 별채와 바깥채는 나지막한 담으로 구분되어 있었다. 무지개 모양의 홍예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자 잘 가꾼 꽃밭이 사람들을 반겼다.


꽃밭 너머 아담한 기와집으로 안내한 점원이 연신 굽실대며 너스레를 떨었다.


“이곳은 고관대작이나 유명한 사람들만 묵었던 곳입니다요. 틀림없이 맘에 드실 겁니다요, 헤헤헤.”


안으로 들어가자 차나 음식을 먹을 넓은 거실과 두 칸의 방이 있었다. 안을 둘러본 여인이 그중 큰 방에 취영이를 눕히고 나서 점원에게 짧게 말했다.


“목욕물과 식사를 준비해라.”

"예, 예.”


이때 마부가 들어와 인사를 하였다.


“아씨, 마차는 비를 맞지 않는 곳에 두었습니다. 그럼 안녕히 주무십시오.”

“수고했네, 비를 많이 맞았으니 따끈하게 식사를 하게.”


마부가 나가자 여인은 옆에 있는 소녀에게 말했다.


"목욕물을 갖고 오거든 어린애를 깨워 목욕을 시켜라.”


“네, 아씨.”


취영이를 구해준 이 여인은 혜 포두가 도둑으로 지목하고 뒤를 추적하는 여인이었다. 나이는 이십대 후반으로 보였고 날씬한 자태에 아름다운 용모를 지녔다.


행동거지에는 품위가 있었고 얼굴빛은 항상 냉엄하여 남들이 감히 함부로 대하지 못할 위엄이 서려있었다. 또한 말소리도 얼음과 같이 차가웠고 좀처럼 웃지 않았다.


이름은 냉여빙(冷如氷)인데, 세간에 떠도는 그림자 없는 대도(無影大盜)였다. 워낙 신출귀몰하여 어떤 곳이든 가지 못하는 곳이 없다고 하여 무소부지(無所不之)라는 별명까지 붙었다.


냉여빙 아니, 무소부지 무영대도는 지금까지 수많은 보물을 훔쳤어도 들키거나 꼬리를 밟혀본 적이 없었다.


방방곡곡의 이름난 포두가 무영대도를 잡으려고 혈안이 되어 뒤를 쫓았지만 결국 그림자도 보지 못했다.


늙었는지 젊었는지 나이는 물론 심지어 여자인지 남자인지도 알려지지 않았다.


별채의 거실에선 소녀가 취영이를 깨워 울고 보채는 아이를 달래가며 더운 물에 목욕을 시키고 있었다. 냉여빙은 한쪽 의자에 앉아 조용히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약을 먹고 난후 취영이의 열은 내렸으나 잠을 억지로 깬 탓이지 투정이 심했다.


그러나 더운 물에 목욕을 하자 기분이 좋아졌는지 까르르 웃으며 물을 텀벙거리며 좋아했다.


여자애는 취영이를 목욕시킨 후 넓은 수건으로 온몸을 감싸고 머리를 빗겨주었다. 밝은 불빛에 드러난 취영이의 얼굴은 매우 예쁘고 귀여웠다.


여자애도 취영이가 보면 볼수록 예쁘고 귀여워 친 동생처럼 살갑게 대해주자 취영이도 잘 따랐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저녁식사가 차려지자 여자애가 취영이를 옆에 앉히고 이것저것 맛있는 음식을 떠먹여주었다. 취영이는 음식을 오물오물 씹어 먹으며 연신 떠들었다.


“야, 맛있다. 맛있다!”


냉여빙은 천천히 식사를 하며 취영이의 조그만 입으로 오물오물 먹는 모습을 보다가 자신도 모르게 빙긋이 미소를 지었다.


여자애가 그 모습을 보고 소리쳤다.


“어머나! 아씨가 웃으셨어요!”


여자애가 큰소리로 말하자 냉여빙의 표정이 순식간에 싸늘하게 바뀌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호들갑떨지 말고 애 밥이나 잘 먹여라.”

“네, 네......”


여자애는 냉여빙이 차갑게 말하자 기겁을 하고 놀라서 고개를 숙인 채 취영이의 입에 밥을 떠 넣었다.


이 여자애의 이름은 배옥란으로 나이는 십육 세였다.


열 살 때 전염병으로 부모가 돌아가시고 혈혈단신 외톨이가 된 것을 불쌍히 여긴 냉여빙이 거두어 무공도 가르쳐주며 곁에 두었다.


원래 명랑한 성격이었으나 성격이 냉정한 편인 냉여빙을 오래 모시다보니 말 수가 적어졌고 성격도 변해갔다.


그러나 어린 취영이를 보자 조그만 게 매우 귀엽고 예뻐서 점점 마음이 쏠렸다. 밥을 다 먹은 취영이가 주위를 둘러보고 오빠를 찾으며 보채더니 제풀에 쓰러져 잠이 들었다.


냉여빙이 취영이를 보며 배옥란에게 말했다.


“네 방에서 재우도록 해라.”

“네, 아씨.”


배옥란은 그렇잖아도 취영이를 데리고 자고 싶었는데, 냉여빙의 말이 떨어지자 얼른 안고 작은 방으로 들어가 애를 침대에 눕혔다.


약도 먹고, 밥도 배불리 먹은 취영이는 아침까지 보채지 않고 잘 잤다.




한편, 두 거지에게 끌려간 두성이는 어린 동생의 안위가 걱정이 되어 도망을 치려했지만 그때마다 얻어맞아 꼼짝 할 수가 없었다.


두 거지는 두성이를 거의 질질 끌다시피 하여 다리 아래로 돌아왔다.


거지들이 동냥해온 밥과 반찬들을 한꺼번에 솥에다 넣고 끓여서 맛있게 먹은 두목 모지리는 세 명이 그냥 돌아오자 화를 내었다.


“왜 애는 어쩌고 빈손으로 돌아온 게냐!”


두 명이 두성이를 발로 차면서 볼멘소리를 하였다.


“이 빌어먹을 놈 때문에 헛걸음을 하였어요. 애는커녕 애새끼도 보이지 않았어요. 이놈 때문에 배만 고파 죽겠네, 씨!”


그러자 두성이가 다급하게 말했다.


“그게 아니야. 동생이 깨서 나를 찾느라 그 근처에 있을 텐데 찾지도 못하게 때리고 강제로 끌고 왔잖아. 날 보내줘요, 아픈 동생을 찾아야 해요.”


두성이가 통사정을 했지만 모지리는 들은 체도 하지 않고 눈알만 데룩데룩 굴리고 있었다.


(조그만 애를 데리고 오면 귀찮기만 한데 잘 되었어. 저놈은 생긴 걸보니 쓸 만한 것 같으니 놈만 부려먹으면 그만이지.)


“일단 찾으러 갔는데 애가 없어졌으니 우린 책임을 다한 거야. 우선 밥이나 처먹고 내일 일은 내일 생각하자.”


그러자 두성이가 울면서 말했다.


“비가 이렇게 오는데 아픈 동생을 모른 체할 수 없어요. 꼭 찾아야 돼요. 나라도 혼자 가서 찾을 테니 날 보내줘요.”


“시끄럽다, 이놈아! 한번만 더 주둥이를 놀리면 때려죽일 테다. 배가 고프면 밥을 처먹고 먹기 싫으면 자빠져 자거라.”


두성이는 배가 몹시 고팠지만 어린 동생을 생각하니 불안해서 먹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자는 척하다 놈들이 잠들면 슬그머니 빠져나가야겠다고 생각하고 모닥불 옆에 가서 쪼그리고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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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제44화, 길이 나오면 돌아가라 23.07.10 551 8 10쪽
43 제43화, 의적 공수불거(空手不去) 사마통 23.07.07 576 10 10쪽
42 제42화, 마침내 기연 奇緣 23.07.06 583 11 10쪽
41 제41화, 산적두목 홍미미 23.07.05 584 7 10쪽
40 제40화, 어마어마한 대물 大物 23.07.03 589 9 10쪽
39 제39화, 첫 무공수련 武功修鍊 23.07.01 582 8 10쪽
38 제38화, 각자의 길 (各自圖生 각자도생) 23.06.30 549 8 10쪽
37 제37화, 거지 신세를 면하다. (금선탈각 金蟬脫殼) 23.06.28 561 7 10쪽
36 제36화, 실마리 +1 23.06.27 574 9 10쪽
35 제35화, 누란지위 累卵之危 +1 23.06.26 584 8 10쪽
34 제34화, 창룡검법 蒼龍劍法 23.06.23 602 9 10쪽
33 제33화, 임설매와의 조우 23.06.21 603 10 10쪽
32 제32화, 호가호위 狐假虎威 23.06.19 582 10 10쪽
31 제31화, 애들을 찾아서 23.06.18 601 9 10쪽
30 제30화, 귀환 23.06.18 612 9 10쪽
29 제29화, 모성애 23.06.18 593 8 10쪽
28 제28화, 충 忠, 의 義, 신 信 23.06.18 603 8 10쪽
» 제27화, 처절한 절규 23.06.18 629 7 10쪽
26 제26화, 빗속의 마차 +2 23.06.18 658 10 10쪽
25 제25화, 방황 23.06.17 675 10 10쪽
24 제24화, 억장이 무너지다 23.06.17 689 9 10쪽
23 제23화, 추적자 23.06.16 707 10 9쪽
22 제22화, 두 아이의 운명 23.06.16 743 11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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