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룡검 시간을 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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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3.06.06 22:54
최근연재일 :
2023.11.01 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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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6.18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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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제28화, 충 忠, 의 義, 신 信

DUMMY

모지리는 두성이를 쳐다보더니 옆에 있는 소계자(小鷄子)에게 명령했다.


“네가 저놈이 도망가지 못하도록 단단히 감시해야 한다. 만약 저놈이 도망친다면 네놈 눈깔을 빼버릴 거야. 알겠지?”

“네, 네, 네. 아 알았어요, 두목”


덩치는 컸어도 좀 미련하게 생긴 소계자가 두성이 옆에 가서 앉으며 두성이를 노려보았다. 두성이는 두 팔로 다리를 끌어 모아 무릎에 얼굴을 묻고 잠을 자는척했다.


놈들이 모두 잠이 들면 살그머니 도망을 칠 생각이었다.


비는 여전히 주룩주룩 내리고 있었지만 다리 밑에는 탁탁! 불똥을 튀기며 모닥불이 타고 있었다.


모닥불 주위에 드러누운 거지들은 소계자를 빼곤 모두 잠이 들었다. 흙탕물에 흠뻑 젖은 두성이의 옷은 모닥불에 마르느라 허연 김을 내뿜고 있었다.


정신없이 뛰어다녀서 지친 몸이 모닥불에 따듯해지자 슬슬 졸음이 오기 시작했다.


두성이는 억지로 잠을 참고 있었지만 저도 모르게 무너지듯 스르르 옆으로 쓰러져 코까지 골며 깊은 잠의 수렁 속으로 빠져들었다.



밤사이 비는 그치고 아침이 되자 밝은 해가 온 누리를 비춰주었다.


나무와 꽃들은 단비를 맞아 한층 더 싱싱한 푸르름으로 자태를 뽐냈고 물기를 머금은 공기는 사람들의 마음을 싱그럽게 하였다.


냉여빙이 화원에 나와 먼 산에 휘감아드는 운무를 보고 있는데 마부가 다가와 인사를 하였다.


“아씨,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어제 밤에 흑선풍(黑颴風)과 무흔개(無痕丐)가 다녀갔습니다. 혜 포두가 우리의 뒤를 추적한다는 정보를 입수했는데 어떻게 할까요?”


냉여빙은 먼 산을 바라보며 한동안 생각에 잠겨 있다가 나직이 말했다.


“우선 관제묘로 다시 가서 어린애에 대해 알아봐야 겠네. 그런 다음에 앞으로의 일을 결정하지. 두 사람에게도 그렇게 전하게.”


“알겠습니다. 그럼 아침 식사를 하고 바로 떠나도록 준비하겠습니다.”


냉여빙은 방으로 돌아와 취영이와 자고 있는 옥란이를 깨웠다.


“가서 아이의 옷을 한 벌 사오너라. 부모를 찾아주더라도 옷을 깨끗이 입혀서 보내야지.”


그러자 옥란이는 취영이와 떨어지기 싫어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억지소릴 하였다.


“아씨, 애를 보내려 구요? 얜 부모가 버린 앤데 우리가 데려가 키우지요?”


냉여빙은 고개를 저으며 차갑게 말했다.


“내가 곰곰이 생각해 보니 아이 부모가 애를 비 맞히지 않으려고 관제묘에 놔두고 약을 사러 갔을 거야.


돌아와서 애가 없어진 걸 알면 얼마나 당황 하겠느냐, 관제묘로 가서 자세한 걸 알아봐야겠다. 빨리 옷부터 사오너라.”


옥란이는 내키지 않았지만 명을 거역할 수 없어 구시렁거리며 옷을 사러갔다. 잠시 후 화려한 비단 옷을 사와서 입히자 취영이는 매우 귀한집의 아이처럼 부(富)티가 났다.


사람은 옷이 날개라고 하더니 취영이는 허름한 싸구려 옷을 입었을 때도 귀엽고 예뻤는데, 화려한 비단옷을 입히자 몰라보게 아름다웠고 귀(貴)티가 났다.


옥란은 몰라보게 변한 취영이를 이리 돌리고 저리 돌려보며 감탄사를 연발하고 있었다.


“어머머, 어쩜 이렇게 예쁘담. 꼭 공주님 같네, 공주님!”


냉여빙도 호들갑을 떠는 옥란이 곁에서 취영이를 보고 빙그레 웃고 있었다. 취영이도 생전 처음 입어보는 비단옷이 마음에 드는지 깡충깡충 뛰며 좋아하였다.


어린 취영이는 꼬까옷에 맛있는 음식을 보자 엄마와 두성이는 생각도 나지 않는지 연신 깔깔거리며 즐거워하였다.


아침을 먹은 후, 취영이를 태운 호화로운 마차는 객점을 빠져나와 관제묘로 향했다.




다리 밑에선 먼저 일어난 거지가 동냥 바가지를 요란하게 두드리며 자는 애들을 깨웠다. 그러나 어느 놈 하나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러자 고래고래 악을 썼다.


“빨리 일어나라! 빨리! 이 빌어먹을 거지새끼들아!”


시끄럽게 바가지를 두드리고 악을 쓰며 욕을 퍼부어도 거지들은 쇠귀에 경 읽기(牛耳讀經 우이독경)였다. 들은 체도 않고 꿈쩍도 안했다.


결국 두목 모충이 시끄러운 소리에 잠이 깨서 인상을 쓰며 일어나더니 누워있는 놈들을 사정없이 걷어차고 욕을 퍼부었다.


“이놈의 새끼들, 빨리 일어나지 못해!”


모지리가 머리통이며, 배때기며, 닥치는 대로 걷어차자 하나둘 꼼지락거리며 일어나 벅벅! 머리를 긁으면서 하품을 하였다.


밤새 곯아떨어진 두성이도 부스스한 얼굴로 간신히 일어났다. 얼마나 피곤했는지 정신이 나지 않았다.


다리 밑으로 흐르는 개울로 가서 세수를 하려고 하는데 소계자가 따라와 엉덩이를 걷어차며 말했다.


“야, 이 새끼야. 뭐 하는 거야?”

“세수를 하려 구.”


“이런 멍청한 자식 봤나? 거지새끼가 무슨 놈의 세수야, 거지의 본분은 더러워야 하는 거야. 우린 절대로 거지의 품위를 잃으면 안 된단 말씀이야. 이 빌어먹을 새끼야!”


소계자가 발로 걷어차며 욕을 하자 두성이는 세수도 하지 못했다.


어젯밤에 진흙탕에 넘어지고, 흙탕물을 뒤집어써서 머리며 얼굴은 물론 옷도 흙이 엉겨 붙어 꼴이 말이 아니었다.


부모가 봐도 못 알아볼 정도로 거지 중에도 상거지였다.


모지리가 꼼질거리는 애들을 흘겨보면서 큰소리로 말했다.


“일과를 시작하기 전에 정신교육이 있으니 빨리 모여라!”


매일 아침 반복되는 일이라 애들이 눈곱을 떼면서 한군데로 모이자 앞에선 모충이 거들먹거리며 입을 열었다.


“우리는 비록 거지노릇을 하고 있지만, 충(忠)과 의(義)와 신(信), 세 글자를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된다. 글자를 모르는 놈들을 위해 내가 한 자 한 자 그 뜻을 가르쳐주겠다. 어흠!”


모지리는 제대로 배우지 않았으나 주워들은 것이 있어서 으스대며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충이란 무엇이냐? 혹시 아는 놈이 있으면 손을 들고 말해봐라, 오늘 하루 쉬게 해 주겠다. 아는 놈은?”


모지리는 매일 아침 떠들어도 애들은 모두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선심을 쓰듯이 말한 것이다.


거지들은 모두 서로의 얼굴만 쳐다보고 있었는데 두성이가 손을 들었다.


“좋아, 신입 말해봐라.”

“충이란 자기의 마음을 다해서 임금에게 충성을 바치는 것을 말합니다!”


공부를 많이 한 두성이가 자신 있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러자 모지리는 사팔눈으로 비웃는 듯이 쳐다보며 말했다.


“네놈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구나, 충성한다는 것은 맞는 말이나 너희들의 두목인 나에게 충성해야 한다는 말이다. 모두 알아들었느냐?”


“넷! 우리는 두목에게 충성합니다.”


거지들은 매일 아침 하는 얘기라 모두 입을 모아 큰소리로 대답했다. 모지리는 흐뭇한 표정으로 애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의(義)란 거지들끼리 의리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남이 한 숟갈 먹을 때 혼자서만 두 숟갈을 퍼먹으면 의리가 있다고 할 수가 있느냐?”


“없습니다. 그런 배신자는 밥을 굶겨야 합니다!”


“그럼, 다른 애들은 밥을 한 바가지나 얻어왔는데 빈 쪽박을 들고 오는 놈을 의리의 거지라고 할 수 있겠느냐, 엉?”


“없습니다. 그런 놈은 개새끼만도 못합니다!”


애들이 입을 모아 큰소리로 대답하자 모지리는 기분이 좋아져서 낄낄대고 웃으며 말했다.


“좋아, 좋아. 그 다음 믿을 신(信)은 서로 믿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시장바닥에 앉아 구걸을 하는데, 사람들이 진실로 불쌍하다고 믿도록 해야 한 푼이라도 더 얻을 수가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만약 네 푼을 벌었다고 하자, 내가 일일이 보지 않았다고 한 푼은 숨겨놓고 세 푼만 갖다 바친다면 내가 믿겠느냐?”


“똑똑하고 눈치가 빠른 두목이 절대로 안 믿습니다. 두목을 속이는 놈이 있다면 천벌을 받아, 죽어서도 구더기가 됩니다!”


매일 아침이면 듣고 하는 말이라 애들은 한 글자도 틀리지 않고 말했지만 처음인 두성이는 따라서 말하느라 우물거렸다.


“좋아, 좋아! 오늘은 신입이 들어왔으니 너희들에게 가장 필요한 무공을 특별히 가르쳐주겠다. 모두 귀를 후비고 잘 들어야 한다. 알겠느냐? 어흠!”


“와! 신난다. 두목 최고!”


애들은 모지리가 특별히 무공을 가르쳐 준다고 하자 방방 뛰며 좋아하였다. 두성이도 솔깃해서 귀를 기우렸다.


“우리 구역에 다른 거지새끼들이 들어왔을 때, 우린 그 놈들을 흠씬 두들겨 패서 다시는 얼씬도 못하게 해야 한다. 그럼 일대일로 싸움이 붙었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는 놈은 말해봐라!”


모지리가 사팔눈으로 애들을 둘러보자 덩치가 제일 큰 대흑(大黑)이 우쭐대며 말했다.


“주먹으로 냅다 대갈통을 후려 갈겨야죠. 헤헤헤!”


그러자 모지리가 대흑을 가리키며 말했다.


“앞으로 나와서 날 때려봐라. 인정사정 볼 것 없이 네 힘을 다 발휘해봐라.”

“그래도 어떻게 두목을 팰 수 있어요, 난 못해요.”


흑이 난처한 듯 우물쭈물하자 모지리가 눈을 부라렸다.


“네깐 놈이 아무리 용을 써도 내가 얻어맞겠냐? 안심하고 때려봐라.”


모지리의 말에 대흑이 앞으로 나갔다. 나이는 어리지만 덩치는 모충보다 훨씬 큰 대흑이 주먹으로 모충의 대가릴 후려갈겼다.


모지리는 대흑의 주먹이 가까이 오자 두 손을 앞으로 내밀며 말했다.


“잠깐! 잠깐!”


대흑이 무슨 일인가 싶어 휘두르던 주먹을 내리고 멀뚱히 쳐다봤다. 그러자 모지리가 갑자기 대흑의 사타구니를 걷어찼다.


대흑은 불알을 잡으며 앞으로 고꾸라져서 비명을 꽥꽥 질렀다. 모지리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애들을 보며 말했다.


“자, 모두들 잘 봤지? 아무리 덩치가 큰 놈이라도 나자빠져서 돼지 목 따는 소릴 지르게 돼 있단 말씀이야.”


거지들은 모두 감탄의 눈초리로 고개를 끄덕이며 모지리를 우러러보았다. 대흑이 눈물을 찔끔거리며 간신히 일어나자 모지리가 다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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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제50화, 일수불퇴 진용추 대협 23.07.19 515 8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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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제46화, 못난 사부 23.07.14 532 11 10쪽
45 제45화, 하늘이 무너져도 23.07.12 540 8 10쪽
44 제44화, 길이 나오면 돌아가라 23.07.10 551 8 10쪽
43 제43화, 의적 공수불거(空手不去) 사마통 23.07.07 576 10 10쪽
42 제42화, 마침내 기연 奇緣 23.07.06 583 11 10쪽
41 제41화, 산적두목 홍미미 23.07.05 585 7 10쪽
40 제40화, 어마어마한 대물 大物 23.07.03 589 9 10쪽
39 제39화, 첫 무공수련 武功修鍊 23.07.01 583 8 10쪽
38 제38화, 각자의 길 (各自圖生 각자도생) 23.06.30 550 8 10쪽
37 제37화, 거지 신세를 면하다. (금선탈각 金蟬脫殼) 23.06.28 561 7 10쪽
36 제36화, 실마리 +1 23.06.27 575 9 10쪽
35 제35화, 누란지위 累卵之危 +1 23.06.26 584 8 10쪽
34 제34화, 창룡검법 蒼龍劍法 23.06.23 602 9 10쪽
33 제33화, 임설매와의 조우 23.06.21 603 10 10쪽
32 제32화, 호가호위 狐假虎威 23.06.19 583 10 10쪽
31 제31화, 애들을 찾아서 23.06.18 602 9 10쪽
30 제30화, 귀환 23.06.18 613 9 10쪽
29 제29화, 모성애 23.06.18 593 8 10쪽
» 제28화, 충 忠, 의 義, 신 信 23.06.18 604 8 10쪽
27 제27화, 처절한 절규 23.06.18 629 7 10쪽
26 제26화, 빗속의 마차 +2 23.06.18 658 10 10쪽
25 제25화, 방황 23.06.17 675 10 10쪽
24 제24화, 억장이 무너지다 23.06.17 689 9 10쪽
23 제23화, 추적자 23.06.16 707 10 9쪽
22 제22화, 두 아이의 운명 23.06.16 744 11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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