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줄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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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작품등록일 :
2023.06.10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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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24 2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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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타테스터 (7)

DUMMY

219화


“쟤는 그새 표정이 왜 저렇게 됐어?”


순은으로 만든 갑옷들을 수납장에 집어넣던 하지운이, 옆에서 수행 중인, 일 호에게 물었다.


“몰라서 물어? 현타 올 때 됐잖아. 그동안 잘 참았던 거지.”

“아이씨, 그러지 말라고 금 부장... 아니 이제는 실장이지. 금 실장하고 소개팅 분위기를 만들어 줬던 건데.”


갑옷을 남김없이 다 챙긴 하지운이 엘프녀를 향해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그녀를 달래 주고 있던 금 실장까지 세트로 따라오려 하자, 거만하게 고개를 젓는 악덕 사업주 하가 놈이었다.


“왜? 얘들 뒈지는 거 보니까, 남 일 같지 않아서 그래?”

“......”

“아니면 너나 너희 종족의 존재의 이유에 대한 의구심 때문인가?”

“......”

“너, 나 따라다닌 지 이제... 육 일째네. 솔직히 네 머리면 벌써 눈치챘을 거 아냐? 막상 내 언데드가 되고 나서는, 오히려 나에 대한 적개심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 것 같던데. 아니야? 정신이 연결된 상태에서, 찔끔찔끔 새어 나오는, 내 기억의 파편들을 들여다봤을 거 아냐?”

“나, 난... 도대체 뭐니? 우리 동족들은... 왜 존재해 왔던 거지? 방금 네 손에 죽은 이들은?”

“그냥 받아들여라. 지금 우리가 있는 이 대륙 전체가 그저 하나의 거대한 훈련장일 뿐이야. 나 같은 놈들을 키우기 위한. 뭐, 그렇다고 해서 굳이 우울해할 필요가 있어? 난 진짜 잘 모르겠는데.”

“... 뭐?”

“생각해 봐. 내가 살다 온 곳이라고 뭐가 달랐겠어? 내가 생전에 몰랐다 뿐이지, 내가 모르는 이면이 존재했을 수도 있는 거잖아. 어차피 너나 나나 다 한낱 피조물들일 뿐이야. 너무 깊이 생각하면, 남는 건 우울증밖에 더 있겠어?”

“......”

“그냥 바보처럼 즐겨. 어차피 우리는 이미 뒈져 버린 망자들이잖아. 벌써 소멸됐어야 할 것들이 생명체들이랑 섞여 살게 됐는데, 감사하는 마음으로 즐겨야지. 그리고 이 우주 전체에 목적 없이 만들어진 피조물들이 얼마나 될 것 같아? 솔직히 말해서, 이 동네가 다른 곳에 비해 상대적으로 목적이 너무 뚜렷해 보이는 게 문제일 뿐이잖아. 안 그래?”

“어렴풋이라도 이해가 가려고 한다. 왜 저승에서 네놈을 키워 주고 있는지.”


피식 웃은 하지운이 금 실장을 가리키며 헛소리를 마무리 지었다.


“괜히 고차원적인 고민하면서 망가지지 말고 쟤랑 신혼 생활이나 즐겨. 저 새끼도, 나랑 내 미친 영혼의 파편들 사이에서, 안 미치고 버티느라 고생 중이야. 원체 강인한 놈이라 망정이지. 네가 망가져서 폐기 처분 해야 하는 상황이 오면, 저 새끼도 오래 못 버텨. 서로 의지하면서 적응해.”

“네, 사장님.”


그새 눈빛이 차분해진 엘프녀가 고개를 숙여 보인 후 금 실장에게로 돌아갔다.

그녀의 뒷모습을 지켜보던 하지운이 고개를 돌리며 한마디 하였다.


“십 분간 휴식.”

“뭘 했다고?”

“들어온 지 몇 분 됐다고, 무려 십 분이나 쉬고 지랄이야?”

“본체야, 자정 넘겼다고 벌써 졸려? 아예 한숨 잘래?”


대꾸도 하지 않고, 양학에 재미 들려 정신 못 차리는, 복제 인간들을 순식간에 소환 해제시켜 버렸다.

그런 후 사려 깊은 하 대표는 일, 이 호만 따로 불러서 노가리를 까기 시작했다.

엘프녀에게 잠시라도 추스를 시간을 주려던 것이다.


“아니, 내가 홍길동이야? 내가 의적이냐고? 난 자타 공인 그냥 좆같은 도적놈이야. 근데 이게 뭐야? 내가 얼마나 열심히 죽이고 다니면서, 얼마나 힘겹게 백 레벨을 찍은 건데. 아니, 부가 능력이 이게 뭐냐고?”

“그러니까. 능력들 중에서도 가장 악랄한 능력들이, 백 레벨을 찍는 순간, 갑자기 존나 착해져 버렸어. 와, 진짜 웃기긴 하더라.”

“강탈한 능력 중에 흡수하지 않고 보관 중인 능력을 타인에게 양도할 수 있습니다. 타인에게 남아도는 기력을 나눠 줄 수 있습니다. 아니, 씨발! 이게 말이야? 방구야? 어떻게 빨아먹은 건데, 남을 줘! 내가 산타야?”

“왜? ‘방귀 배출’ 있잖아. 나중에 맘에 안 드는 연놈이 있으면 줘 버려, 강제로.”

“어... 이 호야... 너... 천잰데!”

“푸하하하하! 크헉! 으흐흐흑!”


이 호의 아이디어에 잠시 상상을 하던 일 호가 결국 자지러져 버렸다.

일 호의 등을 두드려 주며, 악마의 화신 하지운은 자신이 보관 중인 능력들을 하나씩 떠올려 보는 것이었다.


“더 웃기는 게 뭐가 있지...”

“아직은 딱히 없어. 웃긴 걸로는 방귀 배출이 최고야.”

“안타깝다... 지금부터라도 뭔가 웃길 거 같은 놈들은 부지런히 죽여 봐야겠어.”


금세 재미 요소를 찾아내는 활달하고 긍정적인 하지운과 참모들이다.

남친의 도움으로 어느 정도 마음을 추스른 엘프녀가 혀를 차며 다가왔다.


“미쳐도 단단히 미친것들! 네놈들의 고향으로 돌아가거든, 인재들에게 능력을 부여해, 군세를 일으키라는 뜻으로 부여하신 능력일 게 뻔하지 않느냐? 그런데! 하아... 누군가를 스컹크로 만들 생각부터 하다니...”

“... 너무 그러지 마... 난 애초부터 글러 먹은 상태로 태어난 놈이야. 그래서 널 보좌관으로 임명한 거잖아. 어때, 정상적인 의견을 수시로 경청하겠다는 내 의지가 느껴지지 않아?”


엘프녀가 같잖다는 듯 코웃음을 치는 와중에도, 무던한 하지운은 복제 인간들을 다시 불러내는 일에만 전념하였다.

갑자기 소환 해제당해서 언짢아하는 복제 인간들에게 마늘빵을 한 쪽씩 나눠 준 하지운이 다음 문짝을 부숴 버렸다.

복제 인간들이 빵을 뜯어 먹으며 한마디씩 악담을 하였다.


“이 새끼들 보기보다 가진 게 얼마 없는 것들인가 봐.”

“그러게. 어디 듣보잡이가 그린 것 같은 그림 쪼가리 몇 점에, 고작 은으로 만든 갑옷 쪼가리 몇 벌이 다였어. 개거지들이야.”

“쳇, 은이 뭐냐? 화이트 골드나 백금도 아니고. 은 요즘 킬로당 얼마나 하지?”

“모르지. 금도 아니고 은을 어떻게 알아.”

“거기다 이미 본체 새끼 수납장 속에 은괴가 잔뜩 있잖아. 쓸데없이 무게만 나가는 걸 굳이 다 챙길 필요가 있나?”

“그래도 감염자의 피를 섞어서 제련한 갑옷인데, 혹시 모르잖아. 나중에 필요할지. 그때 돼서 감염자를 만들겠다고, 지랄할 걸 생각해 봐라. 그냥 지금 챙겨 놓는 게 낫지.”

“근데 여기는 그나마도 없어. 복도가 완전히 텅 비었는데. 건물만 으리으리하게 지으면 뭐 해? 인테리어 할 돈도 없는 것들이.”

“그러니까. 완전 상거지들이야. 혹시 이 건물도 대출 낀 건 아니겠지?”

“와, 그건 진짜 최악이다. 잠깐! 그럼 이 건물 잘못 부수면, 본체한테 구상권 청구 들어오는 거 아냐?”

“뭐, 그럴지도. 민사가 들어올지도 모르는 거지.”


복제 인간들의 개소리를 멍하니 듣고 있던 하지운이 염동력으로, 흡혈귀들의, 머리 없는 시신을 날라 왔다.

그러고는 세 번째 복도의 삼분의 일 지점쯤에, 시신 한 구를 대충 집어 던져 보았다.

송장이 아직 바닥에 닿지도 않았는데, 좌우 양쪽 벽에서 수십 자루의 쇠꼬챙이가 튀어나오는 것이었다.

걸레짝이 된 몸뚱어리가 바닥에 닿자마자, 이번에는 바닥이 좌우로 활짝 열려 버렸다.


밑에서 대기 중이던 흡혈귀들에게 쇠꼬챙이를 가득 품은 동료의 사체가 떨어져 내렸다.

처참하게 망가진 동료의 시신을 목도하고서, 당연히 열과 성을 다해 분노를 표출하는 흡혈귀들이었다.

잠시 동안 못마땅한 심정을 실컷 쏟아 낸 흡혈귀들이 이윽고 함정 밖으로 뛰쳐나오려 하였다.

그렇게까지 그들에게 수고를 끼칠 수 없었던 하지운이, 미안한 마음을 가득 담아, 한발 먼저 골렘을 함정 속으로 내려보냈다.


주인의 마음을 헤아린 골렘이 최선을 다해 주먹질을 해 댔다.

함정 속이 금세 도살장이 돼 버리고 말았다.


흐뭇해진 하지운이 열 구의 시신을 복도 끝까지 마구잡이로 집어 던져 버렸다.

그 즉시 모든 함정이 일사불란하게 정상 작동하는 것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현역 시절 분대 지원 화기를 다뤄 본 경험이 있는, 하지운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뻑하면 탄 걸리던 그 개거지 같은 총보다 훨 낫다. 씨발, 중세 시대 함정이 신뢰성이 더 높다니.”


하지운이 함정에 설치된 기관들을 격찬할 동안, 골렘은 곳곳에 숨어 있던 흡혈귀들을 찾아다니며 주먹질을 아끼지 않았다.

간간이 피 안개로 변하는 친구들에겐 복제 인간들의 마력을 담은 손찌검이 작렬하는 것도 물론이었다.


“하다 보니 이 짓도 재밌다. 소소한 즐거움이 있어. 근데 좀 아쉽다.”

“뭐가?”

“이쯤 되면, 상위 일 퍼센트 모지리가 아닌 이상, 복도마다 함정이 깔려 있을 거란 걸 예상 못할 병신은 없어. 이런 상황일수록 인간의 탐욕을 자극하기 위해, 금은보화 같은 걸 벽에 박아 놨어야지. 순간적으로 탐욕이 이성을 억누를 수 있게.”


복제 인간들과 사내 커플이, 모두 오만상을 찌푸리며, 하지운의 더러운 속셈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지랄하네. 이 탐욕스러운 새끼가 또 꼴같잖은 빌드 업을 하고 자빠졌네.”

“그럴 거면, 그냥 네 여친더러 혼수로 보석 광산 하나 해 오라고 해라.”

“수납장에 수조 원어치 금은보화를 챙겨 놓고, 아직도 만족이 안 되냐? 이 정신병자야.”


민망해진 하지운이 찍소리도 못하고, 애꿎은 다음 문짝만 걷어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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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9 도강 (5) 24.06.02 23 1 9쪽
208 도강 (4) 24.06.01 23 1 10쪽
207 도강 (3) 24.05.29 25 1 10쪽
206 도강 (2) 24.05.27 25 1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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