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줄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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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작품등록일 :
2023.06.10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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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10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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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타테스터 (15)

DUMMY

227화


흡 사원의 안내를 받은 일행이, 칠 번 홀과 삼 번 홀 사이에 있는, 나무들이 우거진 경계 지점으로 들어섰다.

과연 아름드리나무 옆에, 골프장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거대한 바위가 하나 덩그러니 놓여 있는 것이었다.

흡 사원이 종종걸음으로 앞서가, 바위 옆에 있는 작은 돌 조각을 지그시 밟아 버렸다.

무게가 족히 이삼십 톤은 나갈 법한 바위가 뒤쪽으로 부드럽게 미끄러지면서,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 바위 문짝도 드워프가 만든 거냐?”


폐허가 된 십팔 번 홀 앞에서 청승을 떨고 있는 하지운을 대신해, 일 호가 일행을 이끌고 있었다.


“네, 이사님.”

“어휴, 저 탐욕스러운 새끼가... 당장 제 놈이 뒈질 상황인데도, 죽자 사자 밖으로 빤스런한 이유를 알 거 같네.”

“저 새끼가 고작 이것 하나 때문에 강 근처까지 가서 그 지랄을 했겠냐?”

“크큭, 그러니까. 미친놈이 그 지경이 돼서도 케런 놈의 마력을 뺏어 먹겠다고.”

“저 새끼는... 진짜 미친놈이야. 저 새끼 솔직히 맨드레이크 뿌리가 다 안 떨어진 거 알고 처먹은 거잖아. 그래 놓고 아프다고 울고불고하는 건 대체 뭔 개지랄이야?”

“저 철딱서니 없는 또라이가 병신처럼 구는 거 처음 봐? 원래 천성이야. 굳이 이해해서 뭐 하게?”

“저 병신이 그렇게까지 아플 줄은 몰랐나 보지. 단숨에 폭풍 성장을 하려다, 기대 이상의 폭풍 고문을 당한 거지 뭐. 그야말로 참교육이야, 참교육.”

“그러게, 존나 쌤통이다.”

“근데 여기 왤케 깊어? 지하철역이냐?”

“옆에서 그 지랄을 했는데도 무너지질 않았네. 설마 이것도 다 드워프들이 지은 거야?”

“아니요, 건축물은 원래부터... 그러니까 수백 년 전부터 이 자리에 이 상태로 존재해 왔다고... 저도 정확하게 아는 건 아니라서... 죄송합니다.”

“그럼 방금 그 입구를 막고 있던 바위는?”

“아, 그 바위도 원래부터 그 자리에 있던 건데, 저희가 매번 힘으로 밀어서 열었거든요. 여럿이 달라붙어서... 그게... 드워프들이 매번 끌려 나올 때마다, 옆에서 한참 기다리면서, 한심하게 쳐다보더라고요. 그러더니 자기들이 자진해서 만들겠다고 하던데요.”

“아아... 어지간히도 병신 같아 보였나 보네. 포로가 감방의 출입구 공사를 자처하다니, 쯧쯧.”

“......”


삼십 미터 넘게 내려왔더니 드디어 계단이 끝이 났다.

지하에는 널따란 원형 공간이 조성돼 있는데, 중앙에는 금속 제련을 위한 갖가지 장비가 설치돼 있어, 굉장히 고풍스러운 대장간을 연상시키는 광경이었다.

그리고 그 공간을 둘러싼 암석 벽에는, 창살로 막혀진, 십여 개의 공간이 감옥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각 석실마다 서너 개체의 드워프들이 쭈그리고 앉아 있었는데, 절망감이란 무엇인지 혼신의 힘을 다해 구현해 내고 있는 중이었다.


“어서 이분들을 풀어 주세요.”


미리 약속한 대로 엘프녀가 앞으로 나서 리더 역할을 연기하였다.

고개를 숙여 보인 흡혈귀들이 잽싸게 모든 감방의 문을 열어젖혔다.

어리둥절한 표정의 드워프들이 무슨 상황인지 갈피를 잡을 수 없어, 일어서지도 않고 그저 문 밖으로 고개만 내민 채 멀뚱거릴 뿐이었다.

그러더니, 눈앞에 서 있는, 흡 사원을 바라보며 질문을 건네는 것이었다.


“뭐 하는 수작이냐, 역겨운 잡귀야.”

“저... 밖으로 나오시면 되는데요.”

“또 피 뽑으려고? 그냥 죽이지 그러냐. 더 뽑으면 어차피 죽을 거 같은데. 꼭 마지막까지 거머리처럼 역겹게 굴어야 하는 건가? 너희 진짜 메스꺼운 거 알지?”

“하아... 그냥 나오시라고요. 석방되신 거예요.”

“허허허, 지랄하네. 머저리 같은 잡귀들이 미개한 주제에 되지도 않는 수작을.”


일족을 대변해 가증스러운 흡혈귀에게 쌍욕을 박아 대고 있던 중년의 드워프 앞으로, 엘프녀가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우리와 함께 엘프의 이름을 부여받은 땅의 요정 다크 엘프여. ‘그분’으로부터, 감히 그 어떤 종족도 넘볼 수 없는, 신기에 가까운 손재주를 선물 받은 축복받은 종족이여.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엘프 아침 이슬을... 아니... 셀런이라고 합니다.”

“엘프... 정말로 엘프로군. 그런데 왜? 왜 그런 기운이... 설마... 당신 언데드인가? 이, 이 역겨운 흉물들이 당신에게 그런 끔찍한 짓까지 저지른 것이오?”

“하아... 웬 흉물 같은 놈이 한 짓은 맞는데... 이쪽 분들이 아니고... 그러니까 저 위에서... 일단 밖으로 나가실까요. 그놈이 울면서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거든요. 놈은 참을성이 없는 종자이니, 어서 나가는 게 좋을 거 같아요.”

“이게 대체 뭔 소리야?”

“아, 그리고 흡혈귀들은 그놈이 모조리 다 정리했어요. 그러니 안심하고 나가셔도 돼요. 여기 이들을 보시면 알겠지만, 그놈이 흡혈귀들마저 언데드로 만들었어요. 놈은 고위급 사령술사이기도 하거든요.”

“이보시오, 숲의 종족이여. 말을 좀 알아듣게 해 주시오. 대체 누가 우리를 기다린다는 거요? 아니, 일단 밖에는 수만 마리의 흡혈귀들이 득시글대고 있는데, 도대체 누가 뭘 정리했다는 거요? 그리고 당신 뒤에 서 있는 그 요상한 것들은 또 뭐요?”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는 이제 함부로 밖에 나가서는 아니 되오. 감염된 지 오래라 언제 괴물로 변이될지 알 수가 없단 말이오. 까딱 잘못하면 괴물로 변이한 우리가, 이 저주받을 성 밖으로 뛰쳐나가, 무분별한 살생을 저지를 수도 있다는 거요.”


조용히 지켜보고 있던 다른 드워프들도 한마디씩 거들었다.

상식적인 걱정을 하고 있는 드워프들을 바라보며, 뭣 같은 미션을 수행해야 하는, 엘프녀의 시름이 깊어져만 갔다.


“일단 밖으로 나가 보시면, 이 모든 걱정이 다 부질없는 기우였다고 생각되실 거예요. 그리고 제 뒤에 서 있는 이들은 그놈의 마력으로 만들어진 분신들이에요. 절 보호하기 위해 따라온 것뿐이니,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놈이... 대체 뭐 하는 종자인데, 사령술에 조예가 깊으면서 동시에 마력으로 분신까지 만들어 낸다는 말이오? 그것도 무려 일곱씩이나.”

“그리고 우리는 왜 기다리고 있는 것이오? 우리에게 대체 원하는 게 뭐요?”

“하아... 놈은, 아마 믿기지 않으시겠지만, 인간이에요. 그리고 놈이 여러분을 기다리는 이유는... 여러분들을 저처럼 언데드로 만들어서, 자신의 부하로 삼기 위해... 미안해요, 이런 끔찍한 말을 전해야 해서.”

“허, 어이가 없군. 흡혈귀 놈들에게 납치된 걸로 부족해서, 이제는 인간 따위에게 이런 같잖은...”

“차라리 죽고 말지! 절대로 그럴 수 없다!”

“그대야말로 숲의 종족으로서 긍지를 잃은 것인가? 어찌 인간 따위의 주구가 되어 그런 망발을 내뱉을 수가 있다는 말인가?”

“하아...”

“그것 봐라, 말로 해서 안 된다니까. 쓸데없는 고집은.”

“그냥 들고 나갈까?”

“그러자.”

“근데 서른네 마리야. 내가 네 마리 들 테니, 너희들이 다섯씩 들어.”

“좆 까네. 네가 뭔데? 그냥 가위바위보로 정해.”

“그래, 안 내면 진 거.”


일 호부터 칠 호까지 일곱 복제 인간들이, 잡소리를 늘어놓고는, 히죽거리며 앞으로 나섰다.

체념한 엘프녀가 한숨을 내쉬며 순순히 뒤로 물러서고 말았다.


버둥대는 드워프들을 염동력으로 대충 들어 올린 복제 인간들이, 계단을 오르려다, 갑자기 멈춰 서는 것이었다.


“얘들 연장은 어떡하지?”

“뭘 어떡해. 저걸 우리가 왜 다 옮겨? 본체 새끼 다 처울고 나면, 직접 내려와서 수납장에 처넣으라고 해.”

“근데 흡혈귀야. 저기에 문짝은 왜 달아 놨냐? 안에 뭐 있냐?”


흡 사원이 지체 없이 곁으로 다가와 공손하게 아뢰었다.


“이들이 사용할 각종 재료들을 모아 놓은 창고이옵니다. 사장님께서 좋아하실 만한... 재료들이 가득 들어 있사옵니다.”

“아, 그래. 근데 너 눈치가 빠르구나. 너희 동기들 중에서는 네가 승진이 젤 빠르겠어. 애가 맹한 줄 알았더니, 아주 여우네.”


흡 사원을 치하하고는 바로 계단을 올랐다.

울보 놈을 더 이상 기다리게 해서는 안 될 거 같았던 것이다.


밖으로 나가자마자 드워프들을 잔디밭에 던져 버리는 복제 인간들이었다.

볼 일 다 봤다는 듯 멀어져 가는 그들 뒤로 흡혈귀들이 종종걸음으로 따라붙었다.

결과적으로, 어두운 곳에 웅크리고 있다가 갑자기 밝은 데로 나와, 눈을 뜨지 못하고 있는 드워프들을 엘프녀가 혼자 남아 보살피고 있는 꼴이었다.

하지만 사실 엘프녀는 혼자가 아니었다.


겨우 햇빛에 적응한 드워프들이 입구 옆에 뜬금없이 솟아나 있는 민둥산을 올려다보았다.

그건 산이 아니었다.

하지운이었다.


“미안... 씨발, 나 따위가 위대한 드워프님들을 부려 먹으려고 해서... 내가 씨발... 고작 나 같은 병신이... 흐윽... 난 뒈져야 해... 살 가치가 없어... 어흑... 씨발!!”


하지운이 홧김에 휘두른 주먹에, 저 멀리 보이는, 외성벽의 일부가 가루로 변해 흩날려 버렸다.

마력이 잔뜩 서린 채로 생명체의 출입을 엄금해 왔던 거대한 성벽이 흡사 과자 쪼가리처럼 부스러지는 것이었다.

그와 동시에, 용맹하고 긍지 높은, 드워프들의 눈가에 눈물이 방울방울 맺히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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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8 도강 (4) 24.06.01 23 1 10쪽
207 도강 (3) 24.05.29 25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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