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줄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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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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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10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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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1 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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깽판 (5)

DUMMY

242화


은신 능력을 발동한 채로 두 번째 ‘바위 숲’ 둘레를 염탐하던 하지운이, 입꼬리를 비틀어 올리며, 눈웃음을 살살 쳐 댔다.

그러더니 도둑고양이라도 빙의한 듯 조심스럽게 숲속으로 걸어 들어가서는, 수납장 안에 미리 준비해 놓았던 작업 도구들을 하나씩 끄집어냈다.


먼저, 신장 사 미터 이십의 5.0버전 상태에서 사용하기 위해 준비해 두었던, 더럽게 두꺼운 가죽 장갑을 꺼내서는 양손에 끼었다.

그러고는 오만상을 찌푸리며 핏물이 뚝뚝 떨어지는 염통 두 덩어리를 집어 드는 것이었다.

양손 엄지와 검지만으로 순록의 염통을 들어 올린 죽음의 낚시꾼이, 들어왔던 코스를 그대로 밟으며, 최대한 정숙한 걸음으로 숲 밖으로 빠져나왔다.


고양이 걸음으로 숲에서 벗어나자, 온갖 야생화들이 무성하게 우거진, 광활한 들판이 하지운의 눈앞에 펼쳐졌다.

거기서부터는 정말 미친놈처럼 내달리기 시작했다.

이 킬로 거리 밖에 소개팅할 공간을 잘 꾸며 놓았기 때문에, 스윗한 소개남인 하지운으로서는 서두르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눈 깜짝할 사이에 데이트 장소로 날아든 하지운이 그대로 몸을 던졌다.

쓸데없이 손이 큰 소개남이, 오십 미터 깊이에 지름이 일 킬로에 달하는, 원형 구덩이를 미리 마련해 두었던 것이다.


그렇게 정신없이 서둘렀음에도, 이삼 분도 채 지나지 않아, 잔뜩 신경이 곤두선 두 마리의 바실리스크가 구덩이 안으로 고개를 빼꼼히 들이밀었다.

방금 전에 도착한 하지운이 겨우 숨 좀 돌리기가 무섭게, 피 냄새에 자극을 받은 추격자들이 금세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경계를 늦추지 않은 채 조심스럽게 구덩이 속을 살피던 바실리스크들이 이내 안심을 한 듯 경사면을 타고 천천히 기어 내려왔다.

저 멀리 구덩이 속 한가운데에,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온기가 그대로 남아 있는, 순록 두 마리가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맛있는 냄새를 풀풀 풍기는 간식거리 외에는 딱히 감지되는 것이 없어, 마음을 놓고 달려드는 바실리스크들이었다.


순식간에 구덩이 안으로 미끄러져 내려와, 오백 미터나 되는 거리를, 광풍을 일으키며 달려온 거대 도마뱀들이 있는 힘껏 주둥이를 벌렸다.

군침을 질질 흘리며 고원 지대의 대표 별미를 한 입에 집어삼키려는 순간, 흙바닥이 난데없이 솟구쳐 오르며 흙더미와 돌덩이들을 사방으로 흩뿌리는 것이었다.

물론 범인은 하지운이었다.

흩날리는 흙덩이들 사이로, 신장 육 미터 구십의, 백발 요괴가 암녹색의 양 눈깔을 희번덕대며 튀어 올랐다.


혼비백산한 바실리스크들이 채 입을 다 다물기도 전에, 눈알을 부릅뜬 하지운이 두 괴수의 벌어진 아가리를 성의 있게 지켜봐 주었다.

세심하게 조절을 하며 쐈기에, 주둥이 부위만 굳어 버려 당장 목숨에는 지장이 없는 듯해 보였다.

특히 배려심 넘치는 하가 놈이 괴수 놈들의 콧구멍이 막히지 않도록, 사전에 예행연습을 충실히 해 두었던 게 주효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토록 고강한 초대형 괴수들이 고작 주둥이가 굳어 버렸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전의를 상실할 리가 없었다.

물론 하지운도 그걸 모를 리가 없고 말이다.

강인한 괴수들이 하지운을 향해 반격을 하려는 순간, 어디선가 날아온 화살들이 바실리스크 두 마리의 눈알 네 개 모두를 빠짐없이 꿰뚫어 버리고 말았다.

좌우에 둘씩 매복해 있던 복제 인간 일, 이, 삼, 사 호의 왼손엔 엘프의 활이 쥐어져 있는 것이었다.


주둥이가 돌이 된 마당에 눈까지 멀어 버린 괴수들이 그제야 공포에 질려서는 독침이 달린 꼬리를 마구잡이로 휘둘러 대며 발광을 해 대기 시작했다.

두 괴수의 지랄 발광을 무심한 눈으로 감상하던 하지운이 손부채질을 하며 마력을 일으켰다.


한창 지랄에 전념 중이던 바실리스크들이, 갑자기 바닥이 쑥 꺼지면서, 몸뚱어리가 뒤집어지는 걸 뒤늦게야 깨달아 버리고 말았다.

평상시 같았으면 하지운의 마력이 자신들의 발밑으로 침투하기도 전에, 코끼리머리들이 했던 것처럼, 마력을 땅속으로 침투시켜 흙 마법 발동을 수월하게 차단했을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눈알이 박살 나고 주둥이가 굳어 버린 상황에서는, 아무리 대괴수라도 별수가 없었던 모양이었다.


고작 기초적인 흙 마법에 어이없게 당해 버린 고위급 괴수들이, 미친 듯이 사지를 버둥거리며, 뒤집어진 몸뚱어리를 바로 세우려 안간힘을 써 댔다.

놈들의 간절한 몸부림을 안쓰럽다는 시선으로 바라보던 하지운이 눈부신 편곤을 꺼내서는 인정사정없이 내려쳐 댔다.

삽시간에 괴수들의 네다리와 꼬리가 완전히 으깨어져 살점 덩어리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

도저히 살아남을 길이 없다는 걸 실감해 버린 바실리스크들의 눈구멍에서 피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드 소장, 자네가 보기에 어때? 얘들 뱃가죽 말야. 내가 혹시나 해서 얘들 뱃가죽은 일부러 건들지 않았거든.”

“전하, 참으로 탁월한 안목이십니다! 견줄 만한 것을 찾기 힘든 최상급의 가죽이옵니다. 제가 제 입으로 아뢰옵기 민망하오나, 가죽을 다루는 솜씨 또한 저희가 최고이옵니다. 저희에게 맡겨 주소서!”

“오오, 정말 믿음직스럽구나! 내 이곳을 떠나기 전, 무슨 일이 있어도, 자네들의 재혼 문제까지 다 해결하고 떠날 것이니라. 그리 알라!”

“황공무지로소이다!! 전하!”


주변에 있던 복제 인간들과 언데드 커플이 헛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젓고 말았다.


“가죽은 또 왜? 어차피 우리 유니폼까지 싹 다 맞췄잖아. 그걸로 또 뭐 하려고?”

“명품 브랜드를 하나 론칭할까 고민 중이야. 브랜드명은 ‘로열 드워프(Loyal Dwarf)’로 하고, 바실리스크 가죽으로 제작한 패션 제품과 보석 세공품 위주로 사업을 해 보려고.”

“돈독이 올랐냐?”

“아니, 그런 게 아니라. 나도 돌아가서 뭔가 일을 해야 할 거 아냐? 수납장에 돈 좀 있다고 그냥 막 놀아? 이제는 족히 삼사천 년은 더 살 팔잔데, 지금부터라도 뭔가 그럴듯한 인생 계획을 미리 설계해 놓는 게 맞지 않아?”

“듣고 보니 그건 그러네.”

“맞아. 맞아.”


복제 인간들의 공감을 이끌어 낸 하지운이 편곤을 군용 대검 형태로 변형시켰다.

키가 십팔 미터 삼십에 달하다 보니, 무기를 단검 크기로 줄였음에도 날 길이만 이 미터가 넘는 것이었다.

그 거대한 흉기를 이용해 아직 살아 있는 바실리스크의 뱃가죽을 도려내기 시작했다.


“잘 좀 잡아라. 삑사리 나겠다. 가죽에 흠집 나면 단체 기합이야.”

“아오, 이 새끼가! 곧 뒈질 거 같더니, 왜 이리 팔팔해?”

“야! 아직 숨이 붙어 있는 놈의 가죽을 생으로 벗기고 있는데, 이 정도도 안 할 줄 알았냐? 그냥 닥치고 눌러!”


스물일곱 개체의 복제 인간들이 전부 달려들어 염동력으로 바실리스크들의 몸뚱어리를 내리누르는 동안, 세상 느긋한 소시오패스가 세심한 정성을 기울여 가며 놈들의 뱃가죽을 깔끔하게 다 벗겨 냈다.

그러고는 끔찍한 고통에 시달리고 있는 괴수 놈들의 속살에 주삿바늘을 꽂아 놓고는 기력까지 쪽쪽 빨아먹는 것이었다.

그러다 숨이 넘어가기 직전에 바늘을 뽑아내서는, 놈들의 전신을 돌로 만들어 골로 보내 주는 것으로 작업을 마무리 지었다.


“철저하다, 철저해. 아주 뽕을 뽑는구나. 가죽 벗기고, 기력 빨아먹고. 거기다가 경험치까지 뽑아내고.”

“석화 능력은 어떠냐? 쓸 만하냐?”

“잠깐만 있어 봐.”


드워프들과 함께 가죽에 붙은 이물질만 간단하게 제거한 하지운이, 바실리스크들의 원피를 수납장에 집어넣은 후, 물 마법을 발동해 손까지 박박 닦았다.

그러고 난 후에야 복제 인간들의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


“어, 쓸 만하네. 익숙해지고 나니까, 무엇보다 발사 속도와 명중률이 장난이 아닌데.”

“본체야, 우리도 좀 써 보면 안 되냐?”

“일단 그냥 나무 같은 데다 쏘면서 연습이나 하라고. 이거 약간만 조절 못해도, 바로 심장까지 굳어 버리게 만들 수가 있어. 그러면 내가 경험치를 먹을 수가 없잖아.”

“쳇!”


복제 인간들이 구시렁대든 말든 쥐똥만큼도 신경 쓰지 않는 하지운이, 고개를 홱 돌려서는, 언데드 커플에게 손짓을 하였다.


“왜?”

“불여시야, 방금까지 내가 쓰던 능력 말야. 정체가 뭔지 알겠냐?”

“어, 저주잖아.”

“역시, 저주 전문가답다. 넌 눈치채고 있을 줄 알았어. 이거 파훼법이 따로 있을까?”

“파훼법이라... 정신적인 역량 차이가 압도적이면, 침투 자체를 튕겨 내 버릴 수 있을 텐데. 큰 차이가 안 나면 힘들지. 네가 내 저주를 다 막아 내지 못했던 것처럼. 뭐, 술사를 죽이는 방법밖에는 없을 거야.”

“딱히 뭐 없다는 얘기네.”

“응.”

“이야... 이거 쓸 때마다 엄청 신경 써야겠네. 아니, 내가 술산데. 저주를 풀어 주겠다고, 내가 죽어 줄 수는 없는 거잖아.”

“뭐, 꼭 안 된다는 법이 있는 건 아니지.”

“닥쳐.”

“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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