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줄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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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작품등록일 :
2023.06.10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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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3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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깽판 (10)

DUMMY

247화


고혹적인 중동 미녀가 오른손을 부드럽게 들어 올리더니, 하지운의 면상 앞으로 천천히 내밀었다.

코앞으로 서서히 다가오는 그녀의 섬섬옥수를 응시하며, 바짝 얼어붙은 겁 많은 하가 놈이 꿈쩍도 하지 못 하고 앓는 소리만 연거푸 뱉어 댔다.

주둥이를 쩍 벌린 채로 눈알만 정신 사납게 뒤룩거리는 모습이, 육 미터 구십에 달하는 몸뚱어리와 어우러져, 독특한 매력을 발산하고 있었다.


그런 하지운의 얼빠진 모습을 보며 피식피식 웃던 중동 미녀가 엄지와 검지를 쫙 벌리더니, 겁에 질린 제부 놈의 위아래 입술에 가져다 대고는 살짝 힘을 주는 것이었다.

그러고는 주둥이가 꽉 다물어진 하지운을 향해 세상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어휴, 이런 귀여운 놈. 이게 왜 이렇게 말을 안 듣지? 너 진짜 혼 좀 나 볼래?”

“우으으웁!”

“비행 능력이나 장거리 공간 이동 능력은 보상으로 줄 수 없다고, 분명히 말해 줬던 거 같은데. 기억 안 나? 두 주도 안 지났어. 너같이 영악한 놈이 왜 안 주는지 이해 못했을 리도 없고. 그런데 대체 왜 이러는 거니? 꼭 간을 봐야지 직성이 풀리겠어?”

“우우으으읍!”


귀하신 분의 옥체에 감히 손을 댈 용기는 없어서, 주둥이만 미친 듯이 꿈틀거리는 하지운이었다.

그 꼴을 보고 결국 빵 터진 중동 미녀가 하지운의 주둥이를 놓아 주었다.


“입을 잡고 계시면 어떻게 대답을 해요!”

“내가 분명히 시끄럽다고 조용히 좀 하라고 했잖아. 왜 말을 안 듣니?”

“왜 직접 오셨어요? 너무 놀라는 바람에 비명이 절로 나왔잖아요!”


살짝 미간을 찌푸린 중동 미녀가 이번에는 하지운의 왼쪽 귀를 잡고, 앞뒤로 흔들면서, 다시 훈계를 이어 갔다.


“내가 심심해서 너랑 놀다 가려고 여기까지 내려왔겠니? 내가 왜 왔는지 모르겠어?”

“아니요, 알긴 알겠는데... 그래도 직접 오실 줄은 몰랐죠.”

“왜 몰랐을까? 첫 기수의 기대주가 탈영을 시도하는 비상 상황인데, 내가 직접 신경 쓰지 않을 줄 알았니? 이거보다 심각한 문제가 뭐가 있다고.”

“네에? 탈영이라고요? 누가요? 설마... 제가요?”

“응, 네가요. 지금 네가 얠 타고 탈영하고 있었잖아요.”

“우와!! 이게 왜 탈영이에요? 훈련소로 치면, 그냥 옆에 있는 다른 생활관에 놀러 가는 거잖아요! 아니, 아예 대륙 밖으로 나가야 탈영이죠!”

“푸흡, 네가 뭔데 네 입맛대로 탈영을 정의해 주는 거니? 그 정도는 우리가 알아서 정할 거야.”

“탈영이라고 하지 마세요! 탈영이면... 전 소멸돼야 하는 거잖아요...”

“응, 안 그래도 속으로 쭉 고민 중이었어. 널 어떻게 소멸시킬까 하고.”

“왜 이러세요? 모르고 그랬어요! 잠깐 짬이 나서 관광차 다녀오려.”

“그만. 내가 네 같잖은 거짓말에 속는 시늉이라도 해 줘야 하니?”


방금 전 하지운은, 자신의 몸뚱어리 한 뼘 정도 뒤에, 웬 이국적인 미녀가 다리를 꼬고 앉아 있는 걸 발견했었다.

한창 비명을 지르던 도중임에도, 그 즉시 와이번에게 속도를 줄인 후 안전 비행 할 것을 지시해 놨었다.

존귀하신 미녀 분의 쾌적한 비행을 위해 취했던 조치였다.


한데 막상 하지운 본인이 득을 보게 된 것이다.

큰 흔들림 없이 안정적으로 날아가는 와이번의 널따란 등판 위에서, 비장한 표정을 한 하지운이 날다람쥐처럼 가뿐하고 날렵하게 몸을 뒤집었다.

그러고서는, 잽싸게 자세를 잡음과 동시에, 일성을 내지르는 하지운을 보고 또다시 빵 터지고 만 중동 미녀였다.


“한 번만 봐줘요, 처형!! 이렇게 엄중한 사항을 사전에 공지 안 한 저승의 책임도 있잖아요! 절대로 해선 안 될 행동을 하나하나 나열해 놓은 경고문이라도 상태창에 띄워 놓지 그랬어요! 그랬으면 제가 절대 이런 실수를 안 했을. 우읍! 우우으읍!”

“요놈 새끼가 진짜... 입만 살아 가지고. 이걸 진짜 어떡하지?”


공손하게 무릎을 꿇은 채 입술만 꿈지럭거리는 하지운을 보며, 고민에 빠져 드는 아시리아 언니 이르니나였다.


“진짜 이번 한 번만 봐주는 거야. 뻔히 안 되는 걸 알면서, 우리를 떠보려고 하지 마. 우리가 별말 안 하면, 이 동네 저 동네 다 들쑤시고 다닐 생각이었잖아. 잠재적인 경쟁자들 다 죽이고 오려고.”

“......”

“우리가 왜 너를 맘에 들어 하는 거 같니? 왜 너를 키워 주고 있을까?”

“......”

“대답해 봐. 짐작하고 있잖니.”

“눈치가 빠르고 말귀를 잘 알아먹어서요. 그리고 다른 무엇보다 겁이 많아서요. 그래서 저승의 의도를 미리 파악하려 들고, 웬만하면 개기지 않고 빠르게 수긍하려 해서요.”

“아니, 이렇게 잘 아는 애가... 그렇게 불안했니? 너보다 더 센 놈이 있을까 봐.”

“......”

“정 불안하면, 그 엘프 아이 말대로 수련이나 열심히 해. 승아랑 놀게 해 달라고 자꾸 징징거리지나 말고.”

“아니! 수련은 수련이고, 승아는 승...아... 죄송합니다...”


순식간에 무표정해진 고위급 저승사자를 목도한 하지운이 몸을 움츠리며 고개를 푹 숙였다.

잠시 반성하는 모습을 연출하던 탈영 미수범이,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어, 이국적인 저승사자의 눈치를 살살 살폈다.


“왜? 또 뭐가 궁금한데?”

“저기... 혹시 키 제한이 있나요?”

“푸흡! 그런 거 없다, 꼬맹아.”

“그래도 혹시 제가 너무 커지면 저승에서 언짢아하시지.”

“프하하하하!”

“......”

“네가 커져 봤자, 그냥 키 큰 인간일 뿐이야. 인간이 키 좀 커졌다고, 우리가 호들갑을 떠는 게 말이 되니? 솔직히 네 키가 백 킬로 정도 되면, 그때는 우리도 많이 언짢아하겠지. 왜냐하면 귀찮으니까. 네 정수리가 대기권 밖으로 나가게 생겼는데, 우리가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는 없잖니. 네가 생각 없이 점프했는데 머리통이 우주 공간으로 나가기라도 하면? 그래서 호흡 곤란으로 죽기라도 하면, 지켜보는 우리 입장에서 얼마나 어이가 없겠니? 그 전에 너를 손보든, 지구의 크기를 손보든 뭐라도 해야 할 텐데... 하아... 상상만 했는데도 너무 지친다.”

“......”

“왜? 백 킬로까지 커지려고? 꿈이 참 야무지기도 하다.”

“아니요, 그렇게까지는...”

“쓸데없이 고민하지 마. 남자애가 크면 클수록 좋은 거지 뭐. 방금 경비 서던 애 봤지? 너한테 보여 주려고, 일부러 애비랑 할애비를 건너뛰고 증조할애비를 데려왔어.”

“아아... 어쩐지 많이 크시더라. 증조할아버님이셨군요.”

“그 정도 되는 애도 그냥 이런 한가한 데서 경비나 서고 있잖아. 산 사람의 기준을 가지고 너무 빡빡하게 굴지 마. 네가 아무리 커져 봤자, 넌 그냥 귀여운 아이야.”

“아, 네.”

“자, 이제 돌아가거든 활기차게 수련에 임하는 거다. 다시는 이런 일로 날 짜증 나게 하면 안 돼. 진짜 딱 한 번만 봐주는 거야. 또다시 이런 일로 날 거슬리게 만들면, 그때는 오늘 일까지 합쳐서 호되게 혼내 줄 거야. 승아가 울고불고해도 절대 안 봐줄 거니까, 명심하도록 해.”

“네...”


옆에서 느껴지던 히말라야산맥 같은 웅장한 위압감이 거짓말처럼 사라져 버렸다.

겨우 숨을 쉴 것 같아진 하지운이 한참 동안이나, 입을 처벌리고는, 찬 공기를 벌컥거리며 들이마시는 것이었다.

그러고 나서는 무릎 사이에 대가리를 파묻고 소리 없이 고독을 즐겼다.

그냥 무서운 게 아니라, 정말 더럽게 무서웠던 것이다.


한참을 와이번의 등 위에서 웅크리고 있던 덩치 큰 울보가, 겨우 진정을 하고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

서서히 솟아오르는 그의 두 눈구녕에서, 맺혀 있던, 살기가 흘러넘치더니 안개처럼 부옇게 피어오르는 것이었다.


“넌 씨발... 진짜 가만 안 둬.”


다소곳하게 쭈그리고 있던 하가 놈이 금세 거칠게 자세를 잡더니, 다시 와이번의 기수를 급격하게 틀어 버렸다.

그러더니 또다시 태라 쪽을 향해 와이번을 돌진시키기 시작했다.

눈알이 뒤집힐 정도로 흥분한 하지운이 괴성을 질러 버림과 동시에 와이번이 음속을 돌파하였다.


순식간에 계곡 근처까지 들이닥친 하지운 앞에, ‘케런 증조할애비’가 오만 짜증을 다 내며 신경질적으로 솟구쳐 오르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길이가 오 킬로미터에 달하는 오른팔을 있는 힘껏 들어 올려서는, 하지운의 몸뚱어리를 향해 스파이크를 후리려 하였다.


‘케런 증조할애비’의 손바닥과 충돌 직전 삽시간에 동체를 틀어 버린 와이번이 지표면을 향해 곤두박질쳐 버리고 말았다.

땅바닥에 처박힐 것처럼 내리꽂히던 와이번이 십 미터 상공에서 급상승을 하는 순간, 어느새 바닥에는 소리 없이 착지한 하지운이 고개를 쳐들고 있었다.


그 후 하지운과 ‘케런 증조할애비’의 어색한 대치는 꽤 오랫동안이나 지속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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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2 깽판 (4) 24.08.08 21 1 9쪽
241 깽판 (3) 24.08.06 22 1 10쪽
240 깽판 (2) 24.08.03 18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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