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줄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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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작품등록일 :
2023.06.10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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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6 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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깽판 (3)

DUMMY

240화


반나절 안에 십 킬로 상공에서 봐도 꺼림칙해 보이는, 거무스름한 침엽수림, ‘어둠의 숲’ 네 곳을 더 방문했다.

그럼으로써 총 천 마리의 도플갱어를 골로 보내 버린 하지운이, 헤이디스산맥으로 돌아와,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었다.

이틀 밤을 꼬박 지새워서 그런지, 한 개 종족을 멸종시켜 놓고도, 두 다리를 죽 뻗고 꿀잠을 자는 무적의 소시오패스 하지운이었다.


하지운의 예상대로, 그가 깊은 잠에 빠져들기가 무섭게, 심화 훈련장 내에 긴급 업데이트가 시작되었다.

노가다를 진행하는 저승사자들의 표정엔 분노와 서글픔의 감정이 공존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심화 훈련장에 입소한 훈련병에게는 필수적으로 거쳐야 할 의무 교육 과정이 존재한다.

하지운은, 여기까지 오는 길에 이미, 그 교육 과정 중 두 단계를 끝마치고 온 상태다.

아름다운 이성의 유혹을 견뎌 내는 훈련들과, 사칭범의 교묘함과 위험성을 실감케 하는 훈련 말이다.

아주 당당하고 험악하게 극복해 내고는 보상까지 싹 다 받아 냈던 것이다.

그런 하지운을 세 번째 과정을 준비해 놓은 저승사자들이, 벼르고 있기라도 하듯, 눈이 빠지도록 기다리고 있었다.


자기 자신과의 처절한 싸움을 통해 스스로를 극복해 내는 ‘극기’ 훈련이 바로 세 번째 과정이다.

이 과정을 통해 훈련생들은 자신의 본모습을 진솔하게 마주하고, 반성과 개선의 시간을 갖게 되는 것이다.

즉 하지운을 위한 거울 치료의 시간이 강제로 배정되어 있었다는 얘기이다.


하지만 제대로 시작도 해 보기 전에 시험이 다 끝나 버리고 말았다.

간교한 수험생 놈이 미리 눈치를 채고는, 시험 출제자들을 한 마리도 남김없이 몰살시켜 버렸기 때문이다.

시험 완료 조건을 지나칠 정도로 완벽하게 달성했기에, 보상도 벌써 자동으로 지급돼 버렸다.

굳이 거울 치료를 받지 않아도, 자기 자신이 얼마나 엉망인지 하지운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어떻게든 이 과정만은 피해 가려고 안간힘을 써 댔으니 말이다.


미치광이 같은 청개구리의 심신을 단련시켜야 하는, 브리갠트 담당, 사자들이 깊디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미꾸라지 같은 놈이 입소한 지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그새 저승의 훈련 과정을 미루어 짐작해 버리는 경지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다른 부서의 사자들은 모른다.

아니, 오히려 부러워하고 있는 상황이다.

관리 감독해야 하는 참가자의 수가 단기간에 급속도로 감소해 버렸기 때문이다.

전체 참가자 수가 꼴랑 셋밖에 안 남은 데다, 그중 둘은 얌전히 후학 양성에 힘쓰고 있는 중이다.

사실상의 관리 대상자가 한 놈밖에 안 남은 상태였던 것이다.

그 한 놈이 얼마나 진상인지 아무리 설명을 해 줘도, 타 부서 사자들의 공감을 이끌어 내지 못한 서글픈 브리갠트 담당 사자들이다.


브리갠트를 떠나기 전 하지운은 남은 참가자 둘을 불러 살벌한 충고를 아끼지 않았었다.

충분히 겁을 주고 나서는 과제를 하나씩 던져 줬었는데, 마법 교육을 전문으로 하는 대학을 설립하라는 미션이었다.


---


딱 이십 일 전에 콘체스터 성에서 있었던 일이다.


“거버스 이 병신 새끼 말야. 이 병신이 조금이라도 대가리가 돌아가는 놈이었으면, 고작 그 잘난 불 마법 하나를 믿고, 그런 병신 지랄을 떨어 대지는 않았을 거야. 내가 이 병신을 괜히 병신이라고 하는 게 아니라니까. 내가 만약 그런 상황을 마주했다면, 난 아마 마법 대학을 짓고 초대 총장 자리를 차지했을 거야. 베이퍼드 대학 틸리얼 칼리지 같은 거 말이야. 모든 원소 마법사들의 스승이자 시조가 되는 거지.”

“옥스퍼드 대학의 베일리얼 칼리지를 흉내 낸 건가요?”

“응.”

“사이코패스 살인마 주제에 주워들은 것도 참 많으시네요.”

“어, 고마워! 칭찬해 줘서...”

“죽어! 이 살인마야! 어흐윽... 너, 이 빌어먹을 정신병자야! 너... 울 엄마 건들면... 진짜 내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반드시 널 죽여 버릴 거야!!”


하지운을 떠나보내고, 차츰 제정신이 돌아온, 두 마법사 남녀가 하지운이 남긴 말을 차분하게 곱씹어 보았다.

정신병자가 아무렇지도 않게 던진 말 치고는, 도저히 한 귀로 흘리기 힘들 정도로, 그럴듯해 보이는 아이디어였다.


교활한 하지운이 두 마법사가 본거지를 비우기 힘들도록 이미 상황을 다 만들어 놓았다.

그런 판국에 둘에게 전념할 거리를 하나씩 던져 주었던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둘은 현재, 콘체스터와 왕성 웬도버 주변에 부지를 마련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상황이기도 하였다.

이미 서로가 마법 교육 사업에 뛰어들었다는 걸 알아챈 터라, 양쪽 다 ‘최초’라는 타이틀을 놓치지 않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고 있는 것이었다.


---


저녁도 안 먹고 늦은 오후에 잠이 들었던 하지운이 이튿날 정오가 다 되어서야 겨우 눈을 떴다.

열아홉 시간에 가까운 꿀잠을 통해 몸과 마음이 개운해진 잠꾸러기가 샤워를 마친 후, 늦은 아침 식사를 시작했다.


“이것들을 아예 씨를 말려 버렸더라?”

“응, 나처럼 생긴 놈들이 내 목을 노리는 건 너희들만으로도 충분해. 너희는 소환 해제라도 가능하지. 이것들은 죽을 때까지 싸워야 되는데, 내가 그런 상황을 미련하게 기다리고만 있겠냐? 할 수만 있으면 냉큼 가서 다 죽여 버리지.”

“잘했다, 인간 놈아.”

“그런데 왜 얘들까지 언데드로 만든 거야? 아니, 그보다 얘들도 언데드로 만드는 게 되네.”

“그러게.”

“얘들이 생긴 게 좀 특이하긴 해도, 어쨌든 생명체의 일종이잖아. 언데드로 만들지 못할 이유가 뭐가 있겠어. 그리고 얘들한테 첩보 임무를 전담시키려고.”

“야, 어차피 킬러 짓 할 놈들은 네 밑에 차고 넘치잖아. 변신이야 우리도 할 줄 아는 거고.”

“나중에 브리갠트로 돌아가면, 정보 길드 영감들도 데려가야 하잖아. 그 영감들 적성을 살리려면, 이런 놈들을 붙여 줘야지. 설마 너희가 그 영감들 수발들려고?”

“아아... 본체야, 넌 역시 계획이 다 있구나. 그래, 기왕 소시오패스로 살려면, 너처럼 매사에 계획적으로 살아야지. 참으로 보기 좋다.”

“개뿔!”


근처 나무 밑에서 남자 친구와, 제철 과일인, 무화과를 오물거리고 있던 엘프녀가 가증스럽다는 듯 한마디 끼어들었다.


“아이씨, 저 연약한 식물 박사님을 한 대 칠 수도 없고.”


엘프녀 덕에 식탁에 먹을 수 있는 채소와 과일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갈수록 존재 가치를 더해 가는 보좌관을 두고, 쌍소리밖에 할 수 없는 죽음의 CEO 하지운이다.


식사를 마친 하지운이 언데드가 된 도플갱어 서른 마리와 밉살스러운 커플을 소환 해제시켰다.

그러고는 복제 인간들도 돌려보내다가 갑자기 멈칫하더니 일, 이 호를 남겨 두고는 와이번 세 마리를 불러냈다.


“일 호가 앞에 얘를 타고, 이 호가 젤 뒤에 쟤를 타.”

“우리가? 굳이 왜? 뭐 하러 셋이 다 탄 채로 가자는 거야? 필요하면, 도착해서 불러.”

“이런 무식한 새끼들... 너흰 마린 원도 못 들어 봤냐?”

“... 쌀나라 대통령이 타는 헬기 얘기하는 거야? 그 존나 큰 그거?”

“어, 아네.”

“그게 뭐?”

“그거 한 번에 똑같은 게 세 대씩이나 아니면 다섯 대씩 움직인다잖아.”

“......”

“나랑 똑같이 생긴 너희가 내 전용기랑 비스무리한 놈들을 타고 다니면.”

“하아... 지랄이 점점 느네.”

“아, 우리더러 앞뒤에서 미끼 역할을 하라는 거구나? 맞지, 이 잡놈의 새끼야?”

“응...”

“와... 네 머가리 진짜 한번 깨 보고 싶다. 그래, 네 소원대로 그러고 가 보자.”

“본체야, 나 벌써 탔어. 너도 얼른 타, 이 씹덕 새끼야.”


머쓱해진 하지운이 조용히 와이번의 목덜미 위로 올라섰다.


“누구부터 조질 거냐?”

“물론 바실리스크지. 도플갱어들만 아니었으면, 걔들을 먼저 골로 보냈을 거야.”

“아까 그 정면에 있던 큰 숲?”

“어, 거기.”


목표물을 확인한 복제 인간들이 먼저 와이번을 이륙시켰다.

그사이에, 고고도 정찰 드론인, 매들을 날려 보낸 하지운이 금세 그 뒤를 따랐다.

순식간에 분지 안으로 진입한 하지운 편대의 정면으로, 바실리스크들의 서식지인, ‘바위 숲’이 저 멀리에 점처럼 모습을 드러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바위 숲의 가장자리에 다다른 편대가, 숲의 경계 지점을 선회해 가며, 착륙할 장소를 물색하였다.

걸어서 산맥을 넘고 들판을 가로질렀으면, 족히 며칠은 걸렸을 거리를 단 몇 분 만에 돌파해 버린 것이다.


“야, 얘들 타고 장애물 없이 음속으로 움직이니까 진짜 빠르긴 빠르.”

“피해!!”


일 호의 감탄이 채 끝나기도 전에 하지운의 호통이 이어졌다.

근데 굳이 경고까지 할 필요는 없었던 것 같다. 이미 일 호가 타고 있던 와이번이, 반쯤 뒤집혀서는, 좌측으로 멀어지고 있던 것이었다.


“허, 이런 미친 저승의 웬수들이!! 팔만 뻗으면 성층권인데, 여기까지 빔이 날아온다고! 이게 무슨 업데이트야? 날 죽이려고 작정한 건가?”


작가의말

 날짜를 잘못 계산한 걸 수정했습니다.

 출발한 지 오십 일이 아니라 이십 일입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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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7 깽판 (9) 24.08.21 13 1 9쪽
246 깽판 (8) 24.08.19 15 1 10쪽
245 깽판 (7) 24.08.15 15 2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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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3 깽판 (5) 24.08.11 17 1 9쪽
242 깽판 (4) 24.08.08 21 1 9쪽
» 깽판 (3) 24.08.06 23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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