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줄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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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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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10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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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24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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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원 지대로 (6)

DUMMY

234화


“적당히 좀 챙기지. 어휴, 이 벼메뚜기 같은 새끼.”

“아, 뭘? 고작 반밖에 안 챙겼잖아.”

“걔들 머릿수는 생각 안 하냐? 그냥 한 그릇만 떠 오지. 그 큰 항아리 세 개를 꽉꽉 다 채우고. 그리고 이 한심한 새끼야, 혈당 스파이크 걱정은 안 하냐?”

“뭐래? 하루에 한 숟갈씩만 먹을 거야. 아이씨, 걔들 머릿수 맞춰 주게, 아예 몇 놈 죽여 줄 걸 그랬나?”

“이 새끼 말하는 것 좀 보소. 걔들이 뭘 잘못했는데 죽여? 생긴 것도 귀엽던데. 이 새끼 이거 완전 인면수심이네.”

“그러니까. 아까 그 거인 새끼들이야 직업이 직업이니 뭐 그렇다 쳐도. 걔들은 그냥 동굴 속에 얌전히 처박혀 사는 순박한 애들이던데.”

“아, 그래서! 기절만 시키고 말았잖아. 안 죽였는데도 잔소리야!”

“남의 비축 식량을 반이나 갈취해 놓고 한다는 소리가. 걔들 굶어 죽으면, 네가 책임질 거야?”

“내가 왜 그런 것까지 책임져? 나 용사 아냐. 폭력배야.”

“허이구... 자랑이다, 이 새끼야!”


복제 인간들의 타박이 잠잠해지자, 이번에는 엘프녀의 바가지가 시작됐다.


“넌 참 대단해. 상대의 직업에 상관없이, 모두를 안쓰럽게 만드는 재주가 있어. 어쩜 누구를 만나든, 어떻게 그렇게 한결같이 비참하게 만들 수가 있니?”

“그건 내가 누구를 만나든 항상 진심을 다해서 폭력을 휘두르기 때문이지.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해, 나태해지지 않기 위해 항상 최선을 다하는 날 칭찬해 줘.”

“바른말이 나올 때까지, 네 아가리를 때수건으로 박박 밀어 주고 싶다.”

“불륜은 개짓거리야. 난 그저 폭력배일 뿐, 네발짐승이 아니야! 어디 외간 여자가 내 얼굴을 씻겨 주나!! 네가 내 간병인이야?”

“... 말이나 못하면... 진짜 네놈 뚝배기를 한달음에 깨 버리고 싶다.”

“흥, 세상에 하고 싶은 걸 다 이루고 사는 놈은 없어. 넌 그 나이에 아직도 그걸 몰라? 그냥 꾹 참고 살아!”


두뇌 용량에 비해 말주변이 부족한 엘프녀가 오만상을 찌푸리며 입을 닫아 버렸다.

잠시 휴식을 취한 복제 인간들이 금세 바통을 이어 받았다.


“근데 그거 안 벗을 거야? 도대체 언제까지 껴입고 있으려고?”

“그러게. 대가리만 꺼내 놓고, 벗을 생각을 안 하네. 그런데 본체야, 그거 우주복 맞아?”

“응.”

“왜 우주복이야? 아직 시월인데 벌써 추워?”

“아니. 그리고 우주복에 방한 기능이 있기는 하지만, 추워서 입을 거면 롱 패딩이 낫지.”

“그러니까 왜?”

“껴입고 싸우는 것에 익숙해지려고. 아까 거인 새끼들이랑 싸우는 도중에, 살짝살짝 거슬리는 느낌을 받았거든. 안경 오래 쓴 애들은, 이미 안경을 쓴 채로, 안경을 어디다 뒀는지 찾는다잖아.”

“아아...”

“나도 갑옷을 입었는지조차 인식 못할 정도로 익숙해져야 할 거 같아서 말야.”

“그래서 제일 거추장스러워 보이는 걸로 고른 거야? 그래도 다행히 신상으로 맞췄네.”

“당연하지. 구형은 너무 둔해 보이잖아. 무슨 타이어 회사 마스코트도 아니고.”

“근데 본체야, 쟤들은 어떡할 거냐? 죽일 건 아니지?”

“왜 죽여? 죽여 봤자 강탈할 권능도 없어 보이는데. 아니, 뭐 있다 해도, 끽해야 이빨에 독성이 생기는 정도? 밥 먹다가 혀 깨물고 뒈질 일 있냐?”

“그렇긴 하네.”


부엉이 대가리를 단 곰들처럼, 시뻘건 껍질에 황금빛 줄무늬를 지닌, 독사들도 그 크기와 지닌 기운이 흉포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니 산적 연합회 놈들이, 막상 덤비지는 못하고, 멀리서 하염없이 바라만 보며 군침을 흘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하지운은, 키만 크고 인지도만 높은, 헤이디스 산지의 토종 스토커들과는 근본적으로 궤를 달리하는 놈이다.

살기를 내뿜는 게 주특기인 독사들 앞에서, 진정한 패악질이 뭔지를 보여 주는 순수한 독극물 그 자체인 하지운이었다.


살기에 민감한 독사들이 기겁을 하고는 도주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온몸을 바쳐서 지켜 내겠노라고 수없이 다짐했던, 꽃들을 헌신짝처럼 내팽개치고 달아나는 독사들이었다.

아나콘다 뺨치는 몸뚱어리로, 미친 듯이 꿈틀거리면서, 도주하는 그들의 뒷모습이 그렇게 쓸쓸해 보일 수가 없었다.


“아오, 메슥거려. 이게 다 몇 마리야. 씨발... 오늘 저녁도 굶어야겠네... 빌어먹을!”


살기가 한층 더 짙어졌다.

뱀들의 꿈틀거림도 한층 더 격렬해져, 하지운의 위장도 더욱 격하게 뒤집어지고 말았다.

악순환이 끊이지를 않았던 것이다.


“우욱! 아오, 씨발! 뱀 새끼들 그냥 확 다 죽여 버릴걸!”

“잘 참았다, 본체야.”

“그래그래, 안 그래도 저승에서 널 벼르고 있는 모양이던데. 이렇게라도 점수 따야지. 네 여친을 생각해라.”


승아를 떠올리며 헛구역질을 억누르는 기특한 하지운이었다.


“이야... 이건 누가 봐도... 본체야, 네가 옛날에 무식하게 처먹었던 독버섯 기억나냐? 그거하고 때깔이 흡사한데.”

“그러네. 색깔 화려한 거 봐라.”

“몇 개나 챙기지...”

“이 미친 새끼가 뭘 고민하고 앉았어. 그냥 하나만 따. 이게 간식거리로 보이냐?”


답답하다는 듯 인상을 구긴 하지운이 호통을 쳤다.


“나만 입이냐? 따서 수납장에 보관하다가, 브리갠트에 있는 애들한테 먹일 수도 있는 거고! 남으면 지구에 가져가서 고가에 팔아먹을 수도 있는 거잖아!”

“어이구, 이 새끼 봐라. 진짜 친혈육도 아닌데 엄청 챙기네. 그리고 지구에 항독 능력이 필요한 연놈들이 몇이나 있겠냐? 땅꾼이라면 모를까.”

“아, 뭐 어쨌든.”


짜증을 내며 꽃 한 송이를 따서 한입에 삼킨 하지운이 갑자기 고개를 홱 돌렸다.

복제 인간들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정색을 하는 꼴이 뭔가 심상치 않아 보이는 것이었다.


“본체야, 왜 그러는 거냐?”

“너희들 잠깐 들어가 있어.”


소환수들을 전부 돌려보낸 하지운이, 참을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진 나무숲으로 뛰어들었다.

한참을 뿡뿡거리면서 오물을 뿜어 대던 하지운이, 핼쑥해진 낯짝을 하고서는, 꽃밭 앞으로 돌아갔다.

다시 소환된 복제 인간들과 언데드 커플이, 기함을 하고서는, 하지운의 면상을 닳아 없어지도록 관찰하는 것이었다.


“너... 진짜 설사한 거야?”

“어...”

“네, 네가? 네가 설사를 했다고?”

“그렇다니까... 힘없어... 말 시키지 마...”

“미친... 이건 애들이 먹을 수 있는 게 아니잖아! 지금의 본체가 설사를 할 정도면... 브리갠트에 있는 애들은 냄새만 맡아도 뒈지는 거 아냐?”

“냄새는 무슨. 주변에 날아다니는 꽃가루만 살짝 흡입해도 바로 즉사하겠다.”

“돈 받고 팔기는. 옘병, 저걸 서울 가서 팔았다가는, 판매 당일에 바로 일급 테러범으로 지목되겠다.”

“백신 같은 개념인가 본데, 뭔 독성이 이렇게 강해?”

“이 미친놈한테 맞춰서 난이도 조정을 했다더니, 이런 것까지 강화시켰나 봐.”

“미쳤네, 미쳤어.”


서 있을 힘도 없어서 꽃밭 앞에 퍼질러 있던 하지운이, 통나무 같은 팔을 힘겹게 들어 올려, 시뻘건 꽃을 하나하나 뿌리째 뽑기 시작했다.

열아홉 송이가 남은 꽃들 중 아홉 송이를 따서 수납장에 집어넣는 하지운을 보고, 복제 인간들이 한숨을 내쉬고야 말았다.


“야, 이 탐욕스러운 새끼야. 그걸 얻다가 써먹게?”

“살다 보면 다 쓸 데가 생길 거야.”

“어련하시겠냐?”


복제 인간들과 한 삼십 분쯤 노가리를 까 대던 하지운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이제 좀 살 만하냐?”

“어, 방귀가 다 멎었어.”

“더러운 새끼...”


마지막으로, 푸른빛의 돌덩어리들이 굴러다닌다는, 첫 번째 봉우리 뒤편으로 돌아갔다.


“허, 이 오우거 새끼가... 그래도 주제에 족장이라고 머리를 썼는데.”

“대가리가 두 개잖아. 두 배로 똑똑한가 보지 뭐. 아무리 오우거라도 지능이 배로 뻥튀기됐는데, 이 정도 생각도 못하겠어?”

“둥지 크기를 봐서... 그리핀 아니면 와이번 같은데.”

“그리핀이겠지. 보석을 똥처럼 싸지른다는 전설도 있고, 반짝이는 걸 귀신같이 찾아낸다는 얘기도 있으니까.”

“그리핀 맞네.”


멍하니 서 있던 하지운이 한마디 하자, 복제 인간들과 언데드 커플이 모두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보여?”

“응, 존나게 날아오는데. 나 때문에 개빡쳤나 봐. 근데 우리 귀여운 병아리들 채용하길 정말 잘한 거 같아. 엄청 유용하잖아.”

“몇 마리야?”

“열댓 마리 정도 되는 거 같은데.”

“어떻게 할 거야?”

“싹 다 잡아야지.”

“타고 다니려고?”

“그건 딱히.”

“그럼?”

“네가 그랬잖아, 반짝이는 걸 귀신같이 찾아낸다고.”

“어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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