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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om
작품등록일 :
2023.07.10 21:13
최근연재일 :
2024.01.07 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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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1.02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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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퀴엠(112)

DUMMY

Episode 111 - Remember me



"그래서, 내 도움 받을 거야, 말 거야?"

"잠시만, 지금 누군데 여기서 갑자기!"

형호가 진명의 복부에 손을 올렸다.

"잠깐, 전대장님. 적인 것 같습니다."

"적이라고??"


진명의 눈빛이 순간 변했다.

그는 곧바로 제인을 향해 돌진해 오른팔에 계수를 응축했다.

진명은 관물대에 처박힌 그녀를 향해 이글거리는 눈빛을 들이밀었다.

"넌 뭐냐, 어떻게 이곳에 들어온 거지? 목적이 뭐야?"


"아이고, 나 죽네, 나 죽어."

뒤에서 들려오는 똑같은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하아암, 도와주러 온 손님에게 이렇게 푸대접해도 되는 거야?"

"뭐, 뭐야? 어떻게??"

진명이 침대에 걸터 앉아있는 제인을 바라보며 말했다.


관물대에는 아무도 없었다.

'뭐지, 환영이라도 본 건가?'

믿기지 않는 일에 진명의 얼굴이 오싹해졌다.

제인은 입꼬리를 올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읏차, 내가 좀 관대한 여자라서 이런 행동은 넘어가줄게. 대신 다음에도 그러면 예외 없어!"


"당신, 정체가 뭐에요?"

형호가 물었다.

화람은 그의 어깨를 옆으로 살짝 밀친 후, 제인의 앞에 다가와 섰다.

"여긴 왜 다시 온 거야? 스파이를 한 명만 심은 걸로는 부족해?"


"스파이라니, 그게 무슨."

학방에서의 이야기를 전혀 듣지 못한 두 사람이었기에 머리 위에 물음표가 쌓여만 갔다.

제인이 고개를 저었다.

"딱히 그런 건 아니고, 해줄 말이 있어서 왔더니 이런 상황을 봐버려서."


"무슨 말?"

화람이 무서운 기를 내뿜었지만 제인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그건 나중에 말해주고 싶은데, 지금 이런 한가한 이야기나 나누고 있을 상황 아니지 않아?"

제인이 곁눈질로 하나에게 시선을 옮겼다.


화람은 상체를 숙여 제인에게 눈을 맞췄다.

두 사람의 기싸움이 시작되었다.

"너는 상관할 일이 아니야, 이건 우리끼리의 문제라고."

제인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차르카 올로소가 벌인 짓 아니야?"


화람의 몸이 움찔거렸다.

"처음부터 끝까지 다 들은 거야?"

"응."

형호와 진명은 뒤에서 중얼거리며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지휘부대장님은 저 여자를 잘 알고 있는 것 같은데요?"

"그런 것 같은데, 일단 들어나 보자."


화람이 상체를 일으켰다.

"그래서, 네가 듣고 싶은 말은 뭐야? 우리를 대신해서 드림 체이서로 조하나의 환영에 침투하는 거?"

제인은 아무 말 없이 듣고 있었다.

"미안하지만 그건 안 되겠는데, 침략자들의 생각을 어찌 알고 너를 허락하겠어? 막말로 네가 조하나의 환영으로 들어가서 이상한 장난이라도 치면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


"드림 체이서를 쓸 필요가 없지."

제인이 처음으로 반박했다.

"무슨 소리야, 그럼 다른 해결 방안이 있다는 거야?"

"레코드 어나일레이션은 말 그대로 기억의 완벽 삭제야, 일반적인 기억 손상에 경우 그저 기억이 손상된 것일 뿐, 아예 사라지지는 않는 현상이지."


그녀가 말해준 것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래, 알아. 그러니까 드림 체이서를 활용하려는 거잖아."

화람의 말에 제인이 검지를 돌렸다.

"쯧쯧, 잘못 알고 있어. 레코드 어나일레이션이 머릿속에 있는 궁전 내에서 기억을 삭제하는 것은 맞지만, 아예 빠져나가 버리는 건 아니거든."


""에?""

모두가 벙찐 듯 그녀를 쳐다보았다.

한 번에 많은 주목을 받자 제인이 쑥스러운 듯 머리를 긁적였다.

"와, 드디어 내가 원하는 반응들이 나오네?"

화람이 제인의 두 어깨에 손을 올렸다.

"너, 그게 무슨 말이야? 빠져나가는 게 아니라니?"


제인이 기뻐하는 표정으로 손뼉을 쳤다.

"드디어 내 말을 들어주는구나, 자 그럼 알려줄게!"

이 상황에서도 활기찬 그녀의 행동이 짜증났지만 일단은 듣기로 결정한 일행들이었다.

제인이 머리를 검지로 카리키며 말했다.


"알지? 생명체가 살아가는 데에 보았던 기억들은 다 머리에 위치하는 궁전에 저장된다는 거. 그런데 만약 기억이 완전히 소멸될 경우에는 따로 뇌의 구석탱이에 위치한 아카이브에 저장이 돼."

"아카이브라니? 그게 무슨? 너는 들어본 적 있어?"

진명이 형호에게 묻자 그 역시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처음 듣는 이야기네요. 완전히 소멸된 기억들이 따로 저장되는 곳이 있다는 건."

제인이 웃어보였다.

"그래, 아마 절대 몰랐을 거야. 그럴 수밖에 없도록 아카이브가 이루어져 있으니까."


"자세히 좀 설명해 봐."

화람이 설명을 재촉했다.

"자세하게 들어가면 너무 오래 걸리니까 짧게 말해줄게, 체내에서 흘러나오는 계수들은 전신으로 흩어져.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입으로 말하고. 생명체가 취하는 모든 행동들은 에너지와 관련이 있지. 기억도 마찬가지야, 보고 들었던 내용을 함축시켜 머릿속에 저장하는 행위이니까."


"뭐야, 짧게 설명하겠다더니 왜 이렇게 긴데?"

화람이 투덜거리자 제인이 꿀밤을 먹였다.

빡- 소리와 함께 그녀의 손이 저절로 정수리를 매만지기 시작했다.

"야, 왜 갑자기 때리는데!!"

"지금 선생님께서 설명하시는데 감히 토를 달아?"


제인이 볼에 바람을 넣은 채로 미간을 찌푸렸다.

"아, 알았어."

화람이 마지 못해 중얼거렸다.

제인은 계속해서 설명했다.

"다시 말해서 기억에 대해서는 두 개를 알아야 해, 기억 자체를 보존시키는 궁전과 그 행위 자체의 에너지를 저장시키는 아카이브."


약간 어려웠는지 진명이 갸우뚱거렸다.

"의학쪽으로는 머리가 쥐약이라 이해가 안되네."

제인이 헛기침을 내뱉었다.

"아니야, 이해할 필요 없이 그냥 듣기만 해. 어치피 이쪽은 알아듣는 눈치니까."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형호를 응시했다.


화람이 그에게 물었다.

"진짜야? 너는 이해가 돼?"

"예, 뭐. 어느 정도는? 그런데 이것과 관련해서는 전혀 배운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네요."

화람이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보냈다.


그러나 제인은 익숙해진 듯 아무렇지 않은 반응이었다.

형호가 대신해서 그녀에게 말했다.

"그러니까 그렇게 생각하시면 돼요, 궁전은 기억만을 저장하는 거고, 아카이브는 그 기억을 저장한 행위를 저장한다는 거죠."

'똑같은 말 아닌가?'


그러나 형호가 알아들었다면 그걸로 된 것이었다.

그는 제인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니까 이 분의 말씀은 궁전에서 소멸된 기억이 아닌 아카이브에 저장된 기억을 되살린다는 말씀이신거죠?"

제인이 손가락을 딱- 쳤다.


"맞아, 그 말이야."

"정말로 그게 가능하다고.....?"

진명이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제인에게 말했다.

"가능하지, 그럼. 그리고 말해줄 게 있는데, 애초에 레코드 어나일레이션은 드림 체이서를 시전할 필요도 없어."


"드림 체이서를 시전하지 않고도 기억을 다시 떠올릴 수가 있다고?"

제인이 웃으며 검지를 들어올렸다.

"대신 약간의 귀찮음이 따르지. 여기에서 쓰러져 있는 조하나를 제외하고 연보라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있어?"


진명이 곧바로 손을 들었다.

"내가 알고 있긴 한데, 너무 오래전 일이라 기억이 희미하......"

제인이 곧장 그에게 달려들었다.

"그런 건 상관 없어."

화람이 말리기 위해 그녀의 옷에 손을 댔다.

"잠깐, 지금 뭐하는 거야?!"


그러나 안간힘을 씀에도 불구하고 전혀 떼어놓을 수 없었다.

"뭐야, 이거?"

제인은 눈을 감고 진명의 옆쪽에 손을 댔다.

"미안하지만 잠시 가져갈게."

제인의 머릿속에 진명이 가지고 있던 기억의 파편들이 흘러 들어왔다.


연보라의 얼굴이 보였다.

조하나와의 기억 역시 그녀의 머리 속으로 침투했다.

일상에서의 즐거웠던 기억과, 전대 훈련의 힘들었던 기억 등등.

연보라의 행동과 몸짓, 습관들이 모두 제인의 머릿속에 입력되었다.


'좋아, 이 정도라면.....'

제인이 눈을 뜨며 진명에게서 두 손을 떼었다.

그녀는 바닥에 착지하며 하나에게로 걸어갔다.

진명은 머리가 어지러운 듯 비틀거렸다.

"아아, 이게 무슨?"


화람이 그를 부축했다.

"어, 하진명. 괜찮아? 무슨 일이야?"

진명은 가늘게 뜬 눈으로 화람을 응시했다.

"으으, 지휘부대장님. 뭔가 이상해요."

화람이 제인에게 소리쳤다.


"너, 무슨 짓을 한 거야?!"

제인은 퉁명스럽게 하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별 거 아니야, 그냥 가지고 있던 기억을 빌린 것뿐이지. 나중에 다시 돌려줄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뭘 하려고요?"

제인이 형호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혹시 여기 있는 것들, 전부 바깥으로 빼 줄 수 있어?"


------


슥슥-.

누군가가 손으로 하나의 머리를 어루만지고 있다.

하나는 그 촉감을 이기지 못하고 일어났다.

흐릿한 초점이 또렷해지며 눈앞에 누군가가 나타났다.

보라색의 머리켤을 지닌 귀여운 인상의 외모.

연보라였다.


하나는 눈을 비비며 일어나 보라에게로 시선을 맞췄다.

둘은 서로를 10초 정도 응시했다.

"저, 혹시 누구......"

보라가 하나를 꽉 껴안았다.

하나는 무슨 상황인지도 모른 채 눈알을 굴렸다.


"저, 저기, 왜 이러시는......"

"잠시만!"

보라가 하나를 더 세게 안았다.

"잠시만, 이러고 있게 해줘......!"

점점 조여지는 허리가 불편했지만 거절할 수가 없었다.

주변의 환경이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분홍빛으로 물들어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곳에 놓여진 침대 하나.

그곳에서 하나가 누워 있었던 것이다.

'뭐야, 내가 왜 여기에 누워 있던 거지?'

"하나야."

"ㄴ, 네? 제 이름은 어떻게 아시는 거에요?"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지는 순간이었다.

"흑, 흐윽.....!"

흐느껴 우는 소리가 들렸다.

하나는 당황스러운 듯 보라를 떼어놓으려 했지만 힘이 부족했는지 소용이 없었다.

그러나 우는 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흐윽, 미, 미안해.....!"

갑자기 사과를 해버리는 보라.

하나는 영문도 모른 채 눈알을 굴릴 뿐이었다.

그러나 왜일까.

공허한 느낌이 들었다.

어딘가 비어있는 것 같은 머릿속이 갑자기 요동쳤다.


"미안해, 내가!! 하나야!!"

보라는 눈물로 하나의 어깨 제복을 적셨다.

그녀는 끌어안은 두 손에 힘을 더 꽉 쥐었다.

"연락 못해줘서 미안하고, 너한테 무심했던 것도 미안해! 약속 못 지켜서 미안하고, 마지막으로.....!!"


- 살아있지 못해서 미안해!!!

보라의 흐느낌에 하나의 눈빛이 흔들렸다.

혼돈과 위화감이 뭉쳐져 있는 덩어리가 폭발했다.

아주 작은 스크린 마냥 작은 파편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마치 1인치도 안되는 아주 작은 빔 프로젝트로 다큐멘터리를 시청하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일 이분 정도의 시간이 더 지나고 보라가 손을 놓았다.

이미 너무 많이 울어서 얼굴이 퉁퉁 부은 지경에 이르렀다.

하나는 그저 보라를 계속해서 쳐다보기만 할 뿐,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다.


손의 떨림, 사고회로의 정지 등, 기이한 감정들이 뒤섞이며 뇌를 뒤집어 놓았다.

보라는 하나의 제복에 달려있는 은깃털무늬 장식 쪽으로 시선을 내렸다.

반쯤 망가져버린 꿰줴줴한 모습이었지만 그녀는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하나 역시 시선이 밑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보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나야, 계속....."

- 차고 있어줘서 고마워!


보라는 눈물을 흘리는 와중에도 하나를 향해 활짝 미소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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