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궁의 의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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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품글
작품등록일 :
2023.07.16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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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17 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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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0.23 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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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대왕의 유산

DUMMY

난처한 표정의 문규와 김 주부의 마음을 알아 챈 금군별장이 위엄이 가득한 투로 말을 꺼냈다.

"마마께서 힘들게 납신 걸음이네. 마마의 명을 따르시게!"


금군별장의 말이 무색하게, 이내 김 진은 부드럽고 조용하게 말을 이었다.


"지금 우리는, 적들이 있다는 것만 알고 있을뿐.

어떤 대비를 해야 할지도 모르고, 그 시간이 얼마나 남은 것인지도 전혀 알 수가 없는 상황이오.

훌륭한 소가 있다한들, 잔치가 끝나고 잡으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이겠습니까!"


누가 듣기에도 옳은 말 같았다.

지금 그들은, 무엇 하나 적들의 계획에 맞추어 대비를 할 만한 것이 전혀 없는 것이 사실이었다.


"중전마마, 전하와 함께 의논하심이..."


조심스럽지만 굽히지 않는 문규의 대답이었다.


"전하의 총기를 흐리기 싫을 뿐이오!

어쩌면 이 일은 일어나지 않아도 될 일이고, 하지 않아도 될 일일지도 모릅니다.

또한 준비는 하였지만 전하께서 먼저 해결을 할 수 있는 정도라면, 그것이 우선인 것이오!"


그녀의 이야기를 듣던 문규와 김 유천이 한참동안 서로를 마주본 채 서 있을 뿐이었다.

그들의 마음을 정하기로 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문규가 입을 열었다.


"그러하오면... 마마, 마마의 뜻을 받들겠나이다!"


문규의 말에 이어서 김 유천도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고맙소, 이 또한 전하의 노고에 대한 결실이 아니겠소!"


"네 마마, 그러 하옵니다."


"이 곳에서 만들어 낸 조총은 얼마나 있는 것이오?"


김 진의 여린 모습에 어울리지 않는 여장부다운 투였다.


"기존의 방식을 보완하여 실용화하여 쓸 만한 것을 몇 자루 만들어 보았으나

아직 자금이 여의치 않아, 많은 양을 생산하지는 못하였습니다."


"자금은 후에 금군별장이 직접 전하러 올 것이오.

생산비는 걱정하지 말고, 최대한 시일을 서둘러 백 자루의 조총을 먼저 만들도록 하세요."


"네, 마마 알겠습니다. 바로 시작 하도록 하겠습니다!"


"준비된 물품은 아이들에게 필요한 물건과 섞어, 조총의 실체가 드러나지 않게 조금씩 포장해서 원자궁으로 보내세요."


"네? 아이들의 물품이라고 하였...?"


김 진의 말끝이 조금 떨릴 즈음, 모두 알 것 같았다.

궁에서 그 곳만큼 안전한 곳도 없을 것이라는 것을,

하지만 사랑했던 아이의 방에 차갑고 흉칙한 물건들을 차곡차곡 몰래 쌓아두어야 하는 어미의 마음을 생각하는 이들의 마음은,

아무도 더 이상 어떤 말도 이을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조총과 함께 활이나, 다른 필요한 병기류도 금군별장과 함께 의논해서 보내주도록 하세요.

그리고 이곳으로 드나드는 사람은 아이의 물건을 주문해야하니, 김 상궁이 할 것입니다."


"네... 마마, 알겠사옵니다!"




****




아침 일찍, 임금의 일행은 몇몇의 호위청 무사들만 대동하고 궁 밖으로 은밀한 행차를 나섰다.

수원 화성 행궁의 군사시설을 확인하기 위해, 비밀리에 신속하게 다녀올 행차를 한다고 하였다.


도성에서 노량진과 시흥을 거쳐 안양 행궁을 지나, 정조대왕의 건릉까지 이어지는 수원별로(水原別路)는 총 백리에 달하는 거리로,

을묘 년 원행 길에서 팔 일간 걸렸던 행차 길을, 말을 타고 이틀 안에 다녀오기로 하였다.


부지런히 달린 말은 짧은 동지 해에도, 어두워지기 전에 화성행궁의 정문인 '신풍루'(新豐樓)앞에 당도 하였다.


" '신풍루, 새로운 또 하나의 고향' 이라는 뜻이라지..."


"네, 전하 그렇다고 하옵니다."


벅찬 감동으로 전해지는 임금의 말에, 백 선이 공손하게 대답하였다.


수원 화성은 정조대왕의 원대한 꿈과 효심으로 만들어진 곳으로, 생의 말년이 되면 이 곳에서 어머니와 함께 평생을 같이 지낼 요량이었다고 했다.


"정조대왕께서 진정으로 마음에 두셨던 곳인 게야! 그러니 당연히 이 곳 이었겠지."


거의 정신이 반쯤 나가버린 공륭이, 말에서 곧 떨어질 것 같은 모습으로 힘들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러하옵니다. 전하! 춥지 않으시옵니까, 얼른 안으로 들어가시옵소서!"


딱한 공륭의 모습에 심술궂게 웃음을 띠던 원범과 백선이, 고삐를 잡고 천천히 봉수당 쪽을 향해 걸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드디어 좌익문을 지나고, 봉수당의 바로앞전을 가로막아 지키고 서있는 중앙문 앞에 마주섰다.


"공륭아, 어차피 비밀스럽게 온 걸음이다.

수선 떨고 할 필요 없으니, 간소하게 하루를 묵을 준비를 하고,

함께 온 호위청의 무사들과 먼저 가서 쉬도록 하거라.

내일 아침 일찍 한양으로 다시 출발 할 것이다."


"네, 네.전하. 그럼 어서 다녀 오십시요.

소신은 그만 물러가서, 잠자리를 살피겠나이다!"


"그래, 어서 가 보거라."


중앙문을 마주보는 원범의 몸에도 한기와 피곤함이 몰려오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쓰러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도성을 출발할 때부터 가졌던 두근거림은, 조금씩 다가오는 현실이 되어 그의 기운을 부추겨 주었다.


선대왕이 물려준 저 힘은, 이 나라의 굶주린 백성들을 살리기에 충분한 몫을 할 것이었고,

이제서 야 그가 진정한 조선의 두목이 될 수 있을 것 같은 설레임이 밀려왔다.


그리고 드디어 이제, 완연한 현실로 바뀌어 질 꿈이 몇 발자국 앞으로 다가왔다.


중앙문을 통과하고 어도를 따라 봉수당 앞까지 이른 후, 나지막한 계단을 밟아 정전의 문 앞까지 다가선 원범이 찬찬히 그 문을 열었다.

문은 소리 없이 참 부드럽게 열렸다.

문 앞쪽을 향해 놓여 진 어좌의 뒤로, 웅장한 자태로 펼쳐진 일월오악도(日月五岳圖)가 한눈에 들어왔다.


그가 앉을 자리였다.

아직도 한 번씩은 믿기지 않는 사실이었지만,

이 나라 임금인 자신을 위해 저렇게 신성한 자태로 놓여 진 어좌를 볼 때마다, 어색한 마음이 드는 것이 한 두 번이 아니었던 것 같았다.


백 선과 함께 정전으로 들어 선 원범이 조심스럽게 어좌 앞으로 다가가 섰다.

붉은 빛깔의 비단 방석이 풍성하게 부풀린 모양으로 놓여있었다.

그리고 다른 곳보다는 나지막한 돋음 자리위로 놓인 어좌를 향해 발길을 들었다.


어좌에 앉는 동안에도 궁금해 미칠 것 같았지만, 대견하게도 그는 눈길을 들어 미리 살피지 않았다.

그리고 어좌에 앉은 원범이 잠시 고개를 떨구고, 지금이라는 생각이 미치자...

천천히 머리를 들어 천정의 단청 위를 더듬기 시작했다,


자리에서 몇 번이나 궁둥이를 들썩거리며 앉아 고개를 갸우뚱 거리던 원범이

눈살을 폈다 찌푸렸다 하기만을, 또 여러 번 이었다.

옆에 선 백 선이 의아한 듯 그의 주군을 쳐다보았다.


"전하, 뭐가 이상하옵니까?"


"그러니까... 네. 좀 이상합니다."


" ... ?"





"전하...?"


"이리 와서 보세요. 백 선형님."


"네? 하지만... 어떻게."


"괜찮습니다. 이쪽으로 올라오세요."


"아 네. 전하."


자리에서 주춤 거리던 백 선이, 어색하게 어좌가 있는 곳으로 다가가 조심스럽게 단 위로 발을 디뎠다.

왕좌의 기운에 주눅이 드는지 사뭇 떨림까지 느껴졌지만, 원범의 옆으로 엉거주춤 다가서서 단청 위를 향해 머리를 들었다.

원범의 눈길을 따라 쳐다 본 천장 아래로, 어좌에 앉은 임금만이 볼 수 있는 위치에 맞추어 별자리 같은 모양을 이은 선이 선명하게 드러나 보였다.


"별자리 같아 보입니다. 전하!"


"그렇지요? 저도 처음엔 별자리 인지 알고 실망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저 그림은, 제가 가진 사인검의 검 날에 각인 된 동국대지도를 옮겨온 산수의 모습과 같은 것입니다."


"그럼..."


"네, 맞습니다.

이제껏 곁에 있어도 알지 못했었지만, 정조대왕께서 금괴가 있는 곳을 두 곳에 나누어 숨겨 두셨습니다."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해서, 치밀하게 장치를 해 두신 것 같사옵니다."


"그래요. 백성들을 위해 쓰여 져야할 금괴가 다른 이의 손에 들어갈까, 고심하신 마음이 그대로 느껴집니다.

먼 곳을 돌아 다시 제자리로 온 것 같지만, 감탄 스러울 뿐이에요."


"그러하옵니다 전하!"


"사실을 알았으니, 후에 백 선형님이 사부님과 함께 저 여러 곳들 중 한 곳이라도 먼저 가서 상황을 살펴봐 주세요.

정말 아직 온전히 보전이 되어 있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사실이라면 ... 백성들을 위해 사용할 계획을 꼼꼼히 세워야 합니다!"


"네, 전하 알겠사옵니다!"


"그리고 당분간 이 사실이, 조정의 대신들에게는 절대 드러나서는 안 됩니다.

욕심이 많은 자들이니, 어떻게 또 악랄한 방법으로 뜯어내려 할 지 모르는 일이지요."


"그러하옵니다 전하."


"조선을 풍요롭게 만들 방법을 생각해 보아야 해요.

나라가 풍요로워지면 백성들의 고충을 덜어내 줄 수 있을 것입니다.

백성들이 먹고 사는 일에 수월해 지면, 나라에 내는 세금정도는 더 이상 그들을 힘들게 하지 않겠지요.

그러면 몰래 고향을 버리고 도망가는 이들도 사라질 테고, 빨리 그런 세상을 만들어야 합니다."


"네 전하, 곧 그리 될 것이옵니다!"




****




"형님, 일이 너무 커지게 되는 건 아닐까요?

저는 좀 두렵습니다!"


김 수근이 잔뜩 걱정이 낀 얼굴로, 김 좌근의 찻상 앞에 마주 앉아 있었다.


"사람 참, 쪼잔 하게 ... 무에 그걸 가지고 그리 염려해!

섭정 승이나 섭정 왕이나 뭐가 많이 다르다고!"


"아닙니다. 자칫 잘못해서 우리에게 등을 돌리는 이라도 생기게 되면,

이건 역모가 될 수도 있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어허 참 내, 사람하고는!

지금 조선을 한번 돌아봐, 제대로 된 세상인가!

평생 죽도록 일만해도, 배곯고 굶어죽고 병들어 죽는 이가 가득한 아비지옥이지.

이런 곳에서 누가 임금을 떠 받드나!

쌀을 주는 이를 더 떠 받들게 되어있는 게 사실인 게지."


"그건... 그렇지만 서두, 젊은 사대부들 고집을 어찌 쉽게 꺾을 수나 있습니까!"


"아닌 말로, 섭정 왕이 생기면서 세금이라도 하나 줄여 줘봐, 어찌 이제 사 나타 나셨슈... 라고 할 걸. 하하!"


"그럼 진짜 세금이라도 줄여주게 되면, 나라재정은 어찌 하려구요?"


"쯧쯧, 어찌 저리 맹할까!

어좌에만 가까이 갈 수 있으면, 금괴를 찾을 수 있다 하지 않았는가!"


"아 하, 맞다맞다! 그렇지요.

그럼 형님이 섭정왕이 되어서 백성들에게 선심 좀 베풀 어도 손해 볼 건 없겠습니다."


"말해 뭐해!"


그의 손에 잡혀진 찻잔을 동글동글 돌리며, 김 좌근이 마냥 기분 좋은 웃음을 짓고 있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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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 조총은...? 23.11.11 69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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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 폭풍전야 23.11.06 63 4 12쪽
112 강화로 가시지요. 23.11.05 71 4 12쪽
111 오지랖이 넓었다. +2 23.11.04 77 5 12쪽
110 민란의 주동자. 노 상추 +2 23.11.03 74 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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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 시작된 농민항쟁 +2 23.11.01 81 4 11쪽
107 움트는 진주민란 23.10.31 70 3 12쪽
106 섭정왕 23.10.30 77 5 12쪽
105 졸(卒)의 길 +2 23.10.29 84 4 11쪽
104 엽전 헹굼 23.10.28 68 4 12쪽
103 나랏일만 생각할 것이다. 23.10.27 72 4 12쪽
102 출결장 23.10.26 81 4 11쪽
101 추노꾼잡는 귀신 23.10.25 87 4 12쪽
100 비밀 향회 23.10.24 77 5 12쪽
» 선대왕의 유산 23.10.23 82 5 11쪽
98 조총을 가져오게 23.10.22 92 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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