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궁의 의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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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3.07.16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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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17 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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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1.14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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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둘째형님

DUMMY

"그래요. 내 오늘 흥선군 그대를 이리 따로 만나고자 한 이유는...

더 중요한 우리의 일을 이야기하기 위함이오."


"아, 네.. 전하. 무슨..."


"내가, 그대에게 부탁을 해야 할 말이 좀 있어서 말이지요."


"하오면 전하. 무엇이든 하명하시옵소서!"


"... 무엇이든 이라... 정말 괜찮겠소?"


임금의 벼르는 말에, 잔뜩 움츠려든 흥선군의 얼굴이 아이처럼 하얗게 질려가고 있었다.


"그게... 내가 보아하니 말이오...

흥선군 그대가 임금을 좀 해야 할 것 같아서 말이오."


"네? "


낯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놀란 흥선군의 표정이, 이젠 아예 그가 뭔가 잘못 듣기라도 한 것 같은 맹한 표정으로 바뀌어가고 있었다.


"전...하, 무슨 말씀이시온지..."


"과인은 진정 백성을 위하는 일을 하기를 원하오! 내 식으로 말이지.

솔직히 말하면 말이오...

난 처음부터 임금이라는 자리하고는 너무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란 걸 알고 있었소.

이 나라 조선을 위해서라도, 아닌 사람은 빨리 빠져주고 잘 할만한 사람에게 넘겨주어야 하는 것이 옳은 일이 아니겠소!"


"저 전하... 무슨 그런 망극한 말씀을..."


"그래서 생각을 많이 해 보았지 않겠소!

흥선군 같은 깊은 속내와 의지가 있는 사람이라면, 더 없이 잘 해 낼 것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가, 가당치 않은 말씀이옵니다. 전하!"


"내, 중전에게 얘기를 해 놓을 것이오.

지금 궁에서 가장 윗어른이신 효유왕대비의 양자로 들어간다면, 무난하게 다음 임금의 자리로 등극을 하는 데는 무리가 없을 것이오.

또한 내가 알기로, 흥선군 그대와 나의 관계가 십칠 촌이라는 먼 친척 뻘은 되더란 말이지요.

그러니 후사로 정한다고 한들, 그다지 생뚱맞은 각도 아닌 것 같기는 하잖소."


"전, 전하. 말씀을 거두어 주시옵소서. 제가 어찌... 아니 되옵니다!"


그의 이야기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듯이 임금의 이야기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래서 말이오, 그대가 나를 위해 하나 더 해주어야 할 일이 있어서 말인데, 이건 부탁이라고 해야 하나...?"


"네? 또 무슨 ..."


"흥선군 그대가 나를 죽여 줘야 하오."


"네에...?"




****




부용정

찰나와 같은 희노애락이 스쳐가는 동안, 여전히 이곳 부용정의 연꽃은 아름답게 피어나 시간의 흐름을 무색하게 하고 있었다.

팔작지붕아래 새하얀 문살을 고이 열어젖혀 놓으니, 붉은 노을이 지는 하늘빛이 고와서 심장이 터져 버릴 것 만 같다는 생각에 젖어들고 있었다.


아니 사실은,

이별을 하기에는 더 없이 아름다운 순간이 필요할 것 같아서,

드디어 오늘이라면, 생애 단 하나의 여인 그녀에게 용기를 내어 말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였다.


"중전..."


"네. 전하..."


"난, 이곳 궁이라는 곳이 중전 말고는 버텨낼 만한 이유가 없다오!"


" ... "


"임금의 자리가 욕심과 미련으로 채워져서는 아니되오.

나도 알고 있소. 내가 임금의 자질은 참 부족하다오."


"아니옵니다. 전하!

전하께서는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이 누구보다 진실 되고 크옵니다!"


"하지만 임금은, 그런 마음만으로는 한 나라를 이끌 수가 없소!

힘과 전략과 의지와 지혜까지도 필요하지...

헌데, 사실 부끄럽지만 난 그 정도가 아니거든..."


원범이 온통 붉은 빛으로 번져가는 하늘을 향해 옅은 미소를 띄우고 있었다.


"저 노을빛 하늘을 볼 때마다 난, 당신을 생각할 것이오!"


"전하..."


김 진의 목소리가 애처롭도록 가냘프게 떨렸다


"당신 곁에 조금 더 머물고 싶어서 그동안 미련을 가졌던 것 같아.

비싼 밥만 축냈지 뭐요.

이제 드디어 당신을 떠나도 슬프지 않을 용기를 내기로 했소.

백성들을 더 많이 사랑하면 될 것 같아..."


"전하 어찌 그런..."


"내 이리 저리 많은 생각을 굴려 보았는데, 분명 흥선군이라면...

집요하고 능글맞더라도 나라를 위해 할 일은 다 해낼 것 같은 생각이 든다오.

최소한 대신들에게 휘둘릴 인물은 절대 아니지.

그러니, 중전이 잘 도와서 함께 조선을 더 나은 길로 이끌도록 해야 하오!"


"전하, 저는... 어찌..."


"같은 하늘아래 있다는 위안만으로도 충분하지 않겠소.

흥선군도 드디어 얼마 전에, 어려운 결정을 내려 주었다오.

이제 세상이 슬슬 제자리를 찾아가는 거지..."





****




"저언하!! ... 저언하!!"


천팔백 육십 사년 향년 삼십 이세. 한성부 창덕궁 대조전 별채에서 재위 십 사년간의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온 철종이 승하하였다.


"이보게, 저어리... 멀찍이 물러나시게!

어허... 참 큰일 나려고 그러나... 저 쭉으로, 어여 어여 비켜나시게!"


흥선군이 대조전 문 앞에서 사람들을 물리고 있었다.


이례적으로 그의 즉위와 함께 준비하였던 소나무 대관(大棺)이 전날 미리 대조전에 들었고,

임금을 지극히 모셨던 대전 내관 공륭과 호위별장 백 선이, 위험을 무릅쓰고 임금을 직접 관에 누이고

능에 매안 할 때까지, 임금의 바로 곁에서 모든 일을 도맡아 진행하기로 하였다.


임금은 얼마 전 잠행을 다녀 온 이후로 역병을 달고 온 것 같았다.

온 몸으로 일어난 발진은 어떤 약으로도 다스릴 수가 없었고, 결국 수일 만에 잠을 자듯 고요하게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지붕위에서 외치는 세번의 '상위복(上位復)' 소리에 이어, 임금의 떠남을 애도하는 곡 소리는 창덕궁 안 밖으로 무수히 흐르고 있었지만,

어느 누구도 임금의 마지막 용안을 볼 수도, 보려 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저 최대한 멀찍이서 임금이 떠난 대조전의 방향을 향해 엎드려 곡소리를 내어줄 뿐이었다.


궁궐 안으로 역병이 퍼지지 않기 위해,

모든 과정과 절차를 생략하고 재빨리 관은 궁 밖으로 내 보낸 후에, 서삼릉에 매장을 하였다.

하지만 왕실의 존엄을 지키기 위하여, 궁에서는 임금의 의관을 모시고 빈전에 모신 후 오개월간의 온전한 장례절차를 이어가기로 하였다.


그리고 처음부터 끝까지 임금을 직접 만지고 곁에서 모든 일을 한 공륭과 백 선도, 더 이상 궁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다.

또한 궁인들의 감염을 우려한 탓에, 공륭과 백 선을 도와 전반적인 일들을 도운 일꾼들은

중전의 부탁으로 흥선군이 많은 돈을 들여서 궁 밖에서 따로 구해온 사람들이라고 하였다.

이들 또한 모두 임금을 매장한 후에는, 뿔뿔이 흩어지고 궁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못하도록 하였다.


물론 간도에서 구 만석이 보내어준 일꾼들이었던 그들은, 나름 용돈벌이에 신나는 걸음과 함께 간도에 있는 가족들에게로 돌아가고 있었다.




****




"전하, 흥선군이 준 독약이 효과가 참 제대로 였던 것 같습니다!

예전에 전하께 써먹었던 약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걸 어찌 아직까지 ... 뭐에 쓰려 했을까요...?"


"쓸데없는 소리는 치우고,

이제 어느 곳에서도 다시는 내게 전하라는 말을 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 것이야.

궁에서의 이야기도 매사 조심해서 삼가 하도록 하고!


새하얀 도포자락에 갓까지 멋들어지게 쓴 모습은, 마치 유람이라도 나서는 듯 한 자유로움이 물씬 흐르고 있었다.

하지만, 짙은 갈 빛 갈기의 말위에 올라앉은 그의 눈빛은 어둡게 그늘져 있었다.


"어디가 집인지 모르겠다...

집을 나온 것인지, 집을 찾아가는 것인지... "


말 엉덩이가 유독 삐뚤삐뚤 많이 흔들리는 돌 숲길을 걸어가면서 웅얼거린 소리는

보지락 거리며 밀려나는 돌멩이 소리 사이사이로 먹혀 들어간 탓에, 흔적도 없이 이내 사라져 버렸다.


"공륭아!"


몇 걸음 앞서 나가던 원범이 뒤쳐져 따라오는 공륭이를 불렀다.


"네, 전하! 아.. 아니, 형..님 이라고 하라... 하셨지요..?"


"그래.. 내가 미리 궁 밖을 나와서, 너의 집에 며칠 있을 때 보니...

홍 명부 상선의 성심에 참으로 탄복을 했었다.

집 안에 있는 물건들이 하나같이 허수룩하고, 값나가는 것이 하나도 없더구나!

참으로 대단한 분이셨지 않으냐.

상선의 자리라면, 나라에서 내려오는 녹도 만만치 않았을 것인데..."


"그러하옵니다. 아버님께서는 먹을 쌀 조금 말고는, 모두 천불암으로 보내셨습니다.

그곳에서 힘든 백성들을 살펴서 구휼하시는 일을 하실 수 있도록 하였지요."


"그래, 참으로 고운 분이셨다.

그런 모습으로 살다 가셨으니, 얼마나 인생이 행복 하셨겠느냐!

나도 이리 나선 걸음이 많은 백성들을 위한 길이 되어야 할 터인데...

참, 빈 관을 옮기는데 아무도 눈치 챈 사람은 없었습니까. 백 선형님?"


"네... 무게를 맞추느라, 흥선군께서 몰래 돌과 베개 같은 것으로 관 안을 메우느라 고생을 좀 하였습니다."


"그렇군요. 모두 고생들 하셨습니다!"


"흥선군께서는 후에 간도 쪽으로의 관권은 최대한 힘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하였으니, 자유롭게 백성들과 함께 터를 일구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요..."


"그러면, 전하.

백 선 호위별장이 첫째, 전하께서 둘째, 무영형님이 세째, 제가 막내인 것이옵니까?"


"그래, 이젠 둘째 형님이야. 자꾸 부르는 연습을 미리 해야 어색하지 않지."


"네... 전하. 아니 아니 둘째 형니임..."


공륭이 슬며시 눈치를 살피며 올려보았다.


"오늘 산채 식구들도 우리들을 많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말을 조금 더 재촉하자구나!


"네! 혀 ... 엉님 ... 두우.. 째."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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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 우리 아이를 죽인 자이옵니다! 23.11.12 66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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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 아버님을 좀 밟았습니다. 23.11.10 69 3 12쪽
116 그 죗값, 내가 거둘것이야! 23.11.09 73 4 12쪽
115 쏘아라! 비격진천뢰 23.11.08 63 4 11쪽
114 그 칼, 저 주시오! 23.11.07 63 4 11쪽
113 폭풍전야 23.11.06 63 4 12쪽
112 강화로 가시지요. 23.11.05 71 4 12쪽
111 오지랖이 넓었다. +2 23.11.04 77 5 12쪽
110 민란의 주동자. 노 상추 +2 23.11.03 74 5 12쪽
109 인삼뿌리 못받으셨어요! +2 23.11.02 75 6 12쪽
108 시작된 농민항쟁 +2 23.11.01 81 4 11쪽
107 움트는 진주민란 23.10.31 70 3 12쪽
106 섭정왕 23.10.30 77 5 12쪽
105 졸(卒)의 길 +2 23.10.29 83 4 11쪽
104 엽전 헹굼 23.10.28 68 4 12쪽
103 나랏일만 생각할 것이다. 23.10.27 72 4 12쪽
102 출결장 23.10.26 81 4 11쪽
101 추노꾼잡는 귀신 23.10.25 87 4 12쪽
100 비밀 향회 23.10.24 77 5 12쪽
99 선대왕의 유산 23.10.23 81 5 11쪽
98 조총을 가져오게 23.10.22 92 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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