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궁의 의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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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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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3.07.16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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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17 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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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1.14 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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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선군의 활약

DUMMY

"내 감정의 도리까지 헤아릴 시간이 있나?

그건 두고, 뭘 해보겠다고 예서 이렇게 소란을 떨고 있는 거지?"


"음... 거참, 보기보단 시원시원하니... 좋긴 하오. 하지만 내가 섭정왕이 되고 나면, 주상께서는 어쩌시렵니까?

그냥 조용히 누님과 함께 사냥이나 하고 꽃구경이나 하면서, 틈나면 아이나 만들어가면서 사시면 누이 좋고 매부 좋고 할 수는 있을 것 같은데...

그런데, 그렇게 팔자 좋은 건 또 싫어할 사람 같기도 하고..."


그리고 그때였다.

한 걸음이 늦게 따라온 흥선군과 문규와 김 유천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아무도 막지 않는 문턱을 천천히 넘어 들어오고 있었다.


"역시, 흥선군 대감께선 그쪽 배에 오르신 것 같습니다?"


줄지어 들어서는 이들을 지켜보던 김 우진이 흥선군에게 비아냥거리기라도 하듯, 먼저 아는 척을 하고 있었다.


이내 깜짝 놀란 얼굴로 김 우진을 쳐다보던 흥선군이 재빠르게 말을 받았다.


"아이쿠, 작은 도련님. 예서 뵙습니다! 당당하신 게 참으로 보기에 좋습니다... 하하!"

누구와 함께 들어온 게, 뭐가 중요 하겠습니까!

... 그보다 이거..."


곱지 않은 눈길이 흥선군을 향해 모아졌다.

정전 안으로 들어서며 잠시 주춤 거렸지만, 주변을 한번 휘 둘러 보던 흥선군이 얼른 발길을 돌려 김 우진이 있는 곳으로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내가 빈청에 들렀다 오는 길인데 말입니다. 판윤 대감께서 이걸..."


품안에서 주섬주섬 꺼내어 든 종이가 여러 번 곱게 접혀 있는 모양으로 그의 손을 따라 드러났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받쳐 들 듯 잡아 든 종이를 들고 김 우진을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음...? 벌써... 주더란 말인가...?"


김 우진이 의아한 표정이었지만, 내심 반기는 눈길로 종이를 쳐다보고 있었다.


"대신들이 벌써... 뜻을.. 모았다는 말이라고?

그렇다면... 그들도 지금의 주상을 한시라도 따르고 싶지는 않은 심정이었나 보군... 하하!"


"... ?"


정전 안에 모여든 이들의 모든 눈길이, 흥선군이 꺼내어 든 종이조각을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그래 그래... 이렇게나 빨리...! 이렇게 조선의 대신들이 나를 반길 줄은...

이리만 된다면야... 이리 수월하게..."


'척-, 푹- !!'


김 우진의 말 사이로 둔탁한 소리가 끼어 들었고, 함께 정전안의 모든 소리가 잠시 고요함을 뒤집어 쓴것 같았다.

의아했지만, 이어진 소리는 모두가 예상한 대로 그의 입을 타고 흘러나왔다.


"...윽...!!"


김 우진이 꼬꾸라졌다.

중전의 가슴 앞으로 세워 들었던 적들의 칼날이 흥선군을 향해 방향을 바꾸어 날아드는 순간에 맞추어,

백 선의 진검이 가볍고 빠르게 그들의 가슴을 먼저 베어 버렸다.


바닥으로 쓰러지는 김 우진을 따라 당황한 적들의 칼날이 한꺼번에 사납게 움직였지만,

그들의 몸뚱이 또한 바닥으로 내리 꽂히는 김 우진을 따라 거의 동시에 함께 쓰러져 갔다.


백 선과 무영이 휘두른 검의 속도에, 지켜보는 이들이 모두 혀를 내두르고 있었다.


놀란 마음이 아직 진정되지 않은 듯, 떨림이 채 가시지 않은 흥선군의 한 손엔 얼마 전 문규에게서 얻어낸 비밀 칼이 붉은 핏물을 뒤집어 쓴 채 흔들리고 있었다.


사실 이 일 또한 저 암울한 정전의 문을 들어서기 전까지만 해도, 흥선군 그에게는 전혀 품어 본 적도 없던 계획이었다.

단지 반백년 역사의 조선의 정전이 저따위의 미친개 같은 자에게 밟힌 모습을 본 후,

그저 저놈을 없애야겠다는 생각만 치밀어 올랐던 것 같았다.




전날 밤,

주막 안에서 세상에서의 마지막 밤이라고 생각 했을 때, 그의 마음을 다잡아 준 건 역시 그의 손끝에서 그려진 몇 줄기의 난초잎 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완성된 그의 마지막 난화를, 지금껏 가슴 깊이 품어 안고 있었다.


아침에 김 수근의 두 아들에게서, 일들이 흘러가는 모양을 어느 정도는 자세하게 전해 들을 수 있었다.

김 좌근의 지시로 흥선군 그가 새로 만든 빈청에서, 김 수근이 조정 대신들을 모두 모아 둘 것이라고 했다.

아마도 그곳으로 모두를 잡아들인 이유는, 분명 조정의 고관대작들을 모두 압박하여

임금을 옭아매고 새로운 섭정왕을 위한 명분을 만들기 위함 이라는 것 정도는,

눈치껏 금방 알 수가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이제 두려울 것 없이 기고만장한 김 우진 그에게 가까이 접근하기 위해서는,

지금 그가 간절하게 보고 싶어 하는 것을 가져왔다는 것을 믿게 하는 것이었다.


그들이 직접 하나하나 수결한 종이를 가져온 것이라고 믿게 하는 데는, 그다지 어려움이 없이 먹혀 들게 할 수가 있었다.

뻔뻔한 허세만 있으면 되는 것 이었다.

그리고 상갓집 개 흥선군 그에게, 그건 참 자신이 있는 덕목이었다.


한편 촉이 날렵한 무인들 사이로, 칼날이 없이 접힌 비밀 칼을 종이 안에 숨겨 가까이 다가간들, 아무도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일 것이었다.

검의 살기를 감지하는 고수라도, 조그마한 비밀 칼은 좀 힘이 들 것이었다.


짧은 순간안에 그의 계산이 맞아떨어진 것을 확인한 흥선군의 입가에, 드디어 낮은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하지만 정전안의 비빈들이 놀란 소리를 내지르고 있을 동안,

김 진은 분노에 일그러진 표정을 여전히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의 가슴 앞으로 내려진 분홍빛 당의 안에 숨겨진 소검을 늘어뜨린 채, 곱게 바닥으로 드러누운 김 우진을 눈에서 놓지 못하고 있었다.


"우리가... 내가... 할 일이었어!"


그녀가 낮게 중얼거리는 소리에 원범이 걱정스럽게 돌아 보았다.


인정전 밖의 조총 소리와 섞인 비명 소리도 조금씩 잦아들고 있는 것 같았다.




****




비원의 기린 석상을 앞에 두고, 임금과 흥선군이 한동안 말을 잃고 나란히 서 있었다.

그동안의 많은 일들을 되뇌어 보기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인 듯,

하늘을 올려보던 임금이 여운이 가시지 않은 눈길로 주변의 숲을 둘러보고, 드디어 흥선군에게 눈길을 돌렸다.


"결국 이번일의 크고 중요한 건, 흥선군 당신의 손끝으로 마무리를 지은 셈입니다!"


"아, 아니옵니다. 전하!

전하께서 자리를 다 깔아두셨으니, 제가 그 위로 염치없이 한발을 디뎠을 뿐이옵니다."


"겸손이 과합니다.

그리고 병조판서인 영상의 큰 아들이 이번에 많은 일을 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것도 중전과 미리 얘기가 된 것이었다고요?"


"그러하옵니다. 전하!

그날, 병판이 아침 일찍 중전 마마를 찾아와 이야기를 하였다고 합니다.

분명, 김 우진이 몰래 조선에 들여놓은 사병들이 있을 테니, 자신이 직접 그 무리들을 찾아 일망타진 하고 이번 일이 끝나면 안동 김 씨 측에서 부리던 모든 사병들을 해산한 후,

그들이 가진 재산의 대부분도 이번 일을 회복하는데 쓸 자금으로 다 내어놓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음... 그런다고, 처음부터 사특한 마음을 가지고 왕가와 조선을 유린한 김 좌근 대감을 그냥 두고 볼 수는 없는 노릇이오.

그러니까, 병판이 이렇게 까지 나오는 데에는, 기대하는 어떤 댓가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겠군요?"


"네, 전하...! 그저 그의 아비에게서, 모든 걸 다 거두어 가더라도,

아비라는 자의 목숨 줄 만큼은, 거두어 가지 말아 달라고 탄원을 하였다고 합니다."


"그럼 중전이 애초에 그에게 길을 열어주려고 하였나 보군.

허기사, 사부님을 찾을 수 있도록 몰래 서찰을 전해 준 것도 그자의 공 이었으니..."


"그러하옵니다.

그날 아침, 병판이 김 우진과 약속된 일을 지키지 않고 오히려 김 우진을 자극하여,

그가 아무도 몰래 준비하고 부리려던 이백여명의 무사들을 미리 움직이도록 하였습니다.

그리고 다행히 궁으로 오는 길목에 숨어서 기다린 후에, 별 탈 없이 무리들을 사전에 막아 낼 수가 있었다 하옵니다.

나라를 어수선하게 만들기 위해, 미리 조선에 머무르면서 민란 속에 숨어 들어서 난을 키우는 역할을 했던 것으로 아옵니다."


"김 우진 그자가 표독스럽기는, 김 좌근보다도 몇 곱절은 더 한 것 같구려!"


그 때문인지, 대신들 간의 이야기에도 영상과 병판이 김 우진의 일을 막기 위해 노력했지만, 같은 집안 식구를 단속하지 못하여 죗값을 함께 받아야 하는 정도로만 이야기가 퍼진 것 같사옵니다."


"허허 참 ... 자식 둘이 모두 양자이거늘, 어찌 부모를 대하는 마음이 저렇게 다를 수가 있단 말인가!

어쩌면... 중전의 생각대로 따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소.

한나라 영상이었던 자의 악랄한 횡포를 그대로 들추어내 보았자, 안 그래도 힘든 시국인데 제 살 뜯어먹는 어수선함밖에 더 남는 게 있겠소.

백성들에게는 재상들에 대한 불신감만 한층 더 부추기겠지.

저들도 이미 그들의 잘못을 알고 있으니, 더 이상 궁의 실세 같은 허영은 일삼지 않을 테지요."


"예 전하! 지금으로서는 어떤 죗값이 떨어질지 몰라서 근신하느라, 문밖으로 한 걸음 조차 내어딛지 못하고 있다 합니다."


"그래 그래... 지금까지의 어수선한 나랏일에, 이제 곧 임금까지 죽어야 하니...

조정에 너무 많은 변화는 백성들에게도 불안한 영향을 미칠테지.

김 좌근은, 남 모르게 발톱을 잘라두고 그 자리는 지키고 앉아 있도록 하는 것이,

나라의 분위기를 위해서는 더 나은 방법 인것 같긴 하오."


"네? 전하...! 무, 무슨 말씀...?!"


흥선군이 잔뜩 놀란 얼굴로 임금을 쳐다보았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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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흥선군의 활약 23.11.14 72 3 11쪽
119 우리 아이를 죽인 자이옵니다! 23.11.12 66 3 12쪽
118 조총은...? 23.11.11 69 3 12쪽
117 아버님을 좀 밟았습니다. 23.11.10 69 3 12쪽
116 그 죗값, 내가 거둘것이야! 23.11.09 73 4 12쪽
115 쏘아라! 비격진천뢰 23.11.08 63 4 11쪽
114 그 칼, 저 주시오! 23.11.07 63 4 11쪽
113 폭풍전야 23.11.06 63 4 12쪽
112 강화로 가시지요. 23.11.05 70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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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 민란의 주동자. 노 상추 +2 23.11.03 74 5 12쪽
109 인삼뿌리 못받으셨어요! +2 23.11.02 75 6 12쪽
108 시작된 농민항쟁 +2 23.11.01 81 4 11쪽
107 움트는 진주민란 23.10.31 70 3 12쪽
106 섭정왕 23.10.30 77 5 12쪽
105 졸(卒)의 길 +2 23.10.29 83 4 11쪽
104 엽전 헹굼 23.10.28 68 4 12쪽
103 나랏일만 생각할 것이다. 23.10.27 72 4 12쪽
102 출결장 23.10.26 81 4 11쪽
101 추노꾼잡는 귀신 23.10.25 87 4 12쪽
100 비밀 향회 23.10.24 77 5 12쪽
99 선대왕의 유산 23.10.23 81 5 11쪽
98 조총을 가져오게 23.10.22 92 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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