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궁의 의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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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해품글
작품등록일 :
2023.07.16 15:33
최근연재일 :
2023.11.17 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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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0.26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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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결장

DUMMY

"네, 나리. 향리의 모든 백성들의 마음을 하나로 뭉치기 위해서 입니다.

패악한 관리들에게 대항을 하는 일에 백성들이 모두 한 마음이 되지 않고서는, 우리는 큰 힘을 만들 수가 없습니다."


"예야 ... 듣고 보이 ... 그기 맞는 말 같습니더!"


"맞심미더."


"그라믄예!"


유 계춘을 쳐다보고 있던 사내들이 한 마디씩 힘을 보태기 시작했다.


"이렇게 출결장에 표를 해서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을 확실하게 구분을 한다면,

흐지부지 남일 보듯 하던 사람들도 소외된 마음을 느끼고, 우리의 모임에 함께 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맞심미더,

우리는 어데 뭐 시간이 많고 겁이 없어가꼬, 이래 비밀리에 모이서 이런 계획 저런 계획을 논한단 말입미꺼!

우리만 잘 살라카는가예?! 움직일라마 한데 같이 움직이야지예.

그래야, 혹시나 일이 잘못 된다 케도...

진주 백성들을 조금은 죽일 수 있어도, 다는 못 죽일 거 아임미꺼!"


"어허 이 사람이 뭐라카노, 우리가 하는 일이 어데 뭐 죽일 만한 일이가!

와이래 엄청스레 말하노. 겁나구러!"


그들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이 명윤이 조금 더 부드러운 음성으로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우리가 한뜻으로 하려고 하는 일은,

그저 진주 관아에서 세금을 거두는 방법과 그 금액이 너무 부당하다는 것을, 감영이나 비변사에 알리려 하는 일일 뿐인 것이오!

어쩌면 몇몇 만의 생각이 아니라, 진주의 모든 백성들의 마음이 한결같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출결장이라기보다 서명서의 의미라고 생각하고, 지장을 찍어서 탄원서와 함께 보내는 것도 좋은 방법인 것 같소이다!"


몇 마디씩 말을 잇던 사내들도, 이 명윤의 말에는 아무도 토를 달 생각도 없이 순한 양처럼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자, 유 선비. 책자를 이리 주시오. 내 먼저 이름을 쓰고 지장을 찍으리다!

오늘 처음 왔지만, 노 선비도 이름자를 올려서 이 곳 사람들에게 힘이 되어주시오."


"아, 네... 그 그렇게 하여야지요."


노 상추도 얼떨결에 순한 양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자신의 이름을 쓰지 못하는 자는, 유 초시에게 부탁해서 이름자를 쓰고 그 옆에 지장을 찍도록 하시오."


"예야, 알겠슴미더. 나리 마님예."


순박한 백성들은 지체 높은 양반이 하자고 하는 일은, 의심 한 톨 없이 참 잘 따르는 것 같았다.

방안에 모인 이십 여명이 안 되는 사람들이, 앞 다투어 이름을 적고 먹물에 그득 담근 지장까지 꾹 찍어 내는 데는 얼마의 시간이 채 걸리지도 않았다.


이 명윤이 느긋하게 화롯불의 숯을 한 번 들쑤시자, 유 계춘이 벌써 책자를 덮고 있었다.


"그런데 나리 마님예, 궁금한 게 있심미더!"


"뭔가?"


이 명윤이 여전히 느긋하게 대답했다.


"혹시 조선 팔도 모든 백성들이, 우리 진주백성들처럼 이래 전신만신 힘들게 살아가는 기 맞는깁미꺼?

그게 아이마, 우리 진주만 이래 힘이 드는 기라예?"


방안에 가득 들어찬 맑고 우둔한 눈망울들이, 똑같이 궁금하다는 듯 반들반들 빛을 내고 있었다.


"조선 팔도 모든 백성들이 힘이 든 것도 사실이지만, 진주만 특별하게 더 힘이 든 것도 사실이지.

진주목의 관리들이 죄다 제 욕심에 눈이 먼 자들 뿐이어서 그런 거요."


유 계춘이 대신해서 대답해 주었다.


"나리 마님과 초시어른 덕분에 그나마 진주목사가 여럿 바뀌어는 졌는데, 그라마 뭐함미꺼!

지금까지 더 나아지는 거 하나 없이, 항상 똑같았다 아인가예.

... 우리가 조금 더 나은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는 날이 오기는 올까예?"


우둔한 눈망울들은 이내 똑같이 또 한번, 고개를 끄덕끄덕 거리고 있었다.


"그래서 더 이상 이렇게 두어서는 안 되지!"


"네?"




방 안의 모든 사람들이 유 계춘의 입을 쳐다보았다.


"무슨 소린가?"


이번엔 이 명윤 까지도 깜짝 놀란 모양이었다.


"사실 우리가 아무리 탄원서를 올리고 감영을 찾아가서 읍소를 해도, 그 때 뿐이지 않습니까!

힘이 없는 자들의 몸부림이 어디까지 일지는, 그들도 잘 아는 탓이지요."


"맞는 말씀임미더!"


"그래서 어쩌자는 것인가?"


이 명윤의 칼칼한 목소리가 이어지고, 뒤지지 않고 유 계춘의 고집스런 목소리가 다시 이어졌다.


"이제 우리도 몸으로 일어서야 하지 않겠습니까!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거린다는 말이 어찌 나왔겠습니까.

우리 진주 백성들도 이쯤이면, 죽기 직전까지 내몰린 정도가 아니겠습니까!"


"예야 ... 듣고 보이, 초시어른 말씀이 백 번 맞는 거 같습미더!"


"맞심더. 인쟈 우리도 , 우리가 얼매나 힘들어 하는지를 높은 사람들한테 직접 보여줘야 할 때가 된 기라예!

계속 이래 밟힌 채 살 수는 없다 아임미꺼?!"


"하모예, 못 살겠다고 소리를 내는 게 뭐가 그리 큰 죄겠습미꺼!

저기 높은데 계시는 임금님 한테까지, 우리의 소리가 들리도록 해야 되는 기라예!"


"맞씸미더!"


겉잡을 수없는 의지가, 작은 방안에 가득 차고 있었다.


아직 이방인인 노 상추는 그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이 이들의 노기를 묵묵히 지켜만 볼 뿐이었다.


"어허, 와 이케샀노! 우리가 이카마 안 되는기라. 그라마 저 도둑놈들 하고 뭐가 다를낀데.

또 저 도둑놈들은 감투를 쓰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똑같이 설쳐대마 괜히 우리만 죽어 나가는기라.

괜히 우리 약점을 만드는 일이 될 수도 있다 아이가!"


"맞다 맞다. 옥이 아부지 말도 말제.

시간이 조금 더 걸리더라도, 우리는 저 도둑놈들처럼 어거지기로 나가마 안 된다카이!"


"듣고 보니 그 말도 맞기는 하네. 그제요? "


"... 그렇게 생각하면서 보낸 세월이 얼마인가! 또 다시 똑같은 시간을 반복 할 수는 없네."


유 계춘이 제법 냉랭한 말투로 다시 그들 사이로 끼어들었다.


"이 보시게, 유 초시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겐가. 그만 하시게!

자네가 그렇게 감정을 누르지 못하면, 여기 이 사람들은 어떻게 자네를 곧이곧대로 믿고 따를 수가 있단 말인가!"


이 명윤도 더 이상 일을 키우지 않으려는 듯이 끼어들었다.


"아닙니다!

감정이 아니고,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실을 이야기하고 있을 뿐입니다.

이제는 이렇게 표현만 하면서 앉아있을 때는 지났다고 생각됩니다."


"앉아 있지 않으면,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가?"


제법 놀란 표정으로 이 명윤이 물었다.


"며칠 후, 수곡장터에서 집회를 열 것입니다.

이미 여러 마을대표들과 이야기가 다 되어있는 일이지요."


"뭐라 했는가!

그런 말을 왜 이제서 야 한다는 말이야!"


일이 순식간에 다른 국면으로 접어드는 분위기였다.

방안의 사내들의 표정도 가지각색으로 바뀌어지고 있었다.

적극적인 행동에 기분이 들뜬 사람들도 있는가 하면, 갑작스런 사태에 잔뜩 불안함을 느낀 사람과 아직도 어안이 벙벙한 채 맹한 표정의 사람들이 한데 섞여

그저 이 명윤과 유 계춘을 번갈아 쳐다만 보고 있었다.


"그만 두시게! 나라만 더 어지러워 질 뿐이야!"


"나리, 백성이 있어야 나라가 있는 법입니다.

나라 안의 백성들이 몇몇의 탐관오리들 때문에 헐벗고 고통받고 있는데, 어찌 백성들만 참으라고 한다는 말입니까!"


유 계춘의 언성에, 몇몇 사람들은 벌써 감격에 찬 박수갈채까지 쏟아내기 시작했다.

자신들의 고충을 위로하고 그들의 편을 들어주는 유 계춘을 향한 눈빛은, 이미 장군을 따르는 수장들과도 같은 위상을 풍기는 지경이 된 것 같았다.


"어허 참 내, 나는 허락할 수 없네.

그런 곳에 내가 설 자리는 없을 것이야!"


"나리, 저 또한 제가 설 자리가 필요 없을 만큼

이 모임은 이미 몇몇 양반들의 허락 따위는 필요치 않는, 백성들의 의지만으로 뭉쳐 진 봉기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막아야 하네!"


"그럴 수는 없습니다. 나리!"


이 명윤과 유 계춘이 팽팽히 맞서는 분위기였지만, 사실 이미 사람들은 이 명윤을 보는 눈이 곱지 않다는 것을 넌지시 드러내 보이고 있었다.


"이런 자리, 나는 더 이상 머무르지 않겠네!"


이 명윤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후, 틈도 전혀 보이는 않는 길을 사람들의 엉덩이를 걷어차며 나아가고 있었다.

이런 사나운 분위기안에서 움찔거리던 노 상추도, 옳거니 하고 이 명윤의 길을 따라 나가기로 하였다.


사실 노 상추의 움직임에 대해서는 사람들은 그다지 신경도 쓰지 않는 것 같았다.

이 명윤을 따라 방을 나가는 서넛 사람들에게, 남은 이들이 궁둥이를 들썩 거리며 자리를 내 줄 뿐이었다.

그리고 방을 나가는 이들을 바라보며 앉은 그들의 표정엔,

여지없이 독기가 가득 어리고 있었다.




****




아직 비가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처마 밑에 앉아 있던 노복 둘이 문 밖으로 먼저 나온 이 명윤을 확인한 후 쏜살 같이 달려왔다.

주인의 옷이 조금이라도 비에 젖을까,

노복 하나가 지우산을 펼치고 다른 노복은 유삼(油衫)을 꺼내어 주인의 몸에 재빨리 둘러 쳐주었다.

도롱이를 걸친 노복이 팔을 뻗어 지우산을 세우자, 이 명윤이 거한 헛기침과 함께 우산 속에서 걸음을 떼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부러운 눈길로 망연히 지켜보던 노 상추를 의식했는지,

서너 걸음을 떼지 않은 이 명윤이 다시 뒤를 돌아 노 상추를 쳐다보았다.


"그리 있다간, 얼마 못가서 고뿔에 걸리고 말게요."


"아 네, 제가 미처 아무 준비를 해오지 못한 터라,

잠시만 있다가 힘이 들면 다시 방으로 들어가지요."


"쯧쯧, 그 험한 곳엘 어찌 다시 들어간다고...

여봐라, 이 유삼이라도 저 선비에게 전해 주고 오너라!"


이 명윤이 그가 걸친 유삼을 벗으려 하는 모양이었다.


"아이쿠 안 됩니다요. 나리마님!

빗물이 굵고 차서, 지우산만으로는 옷이 다 젖고 말 것이옵니다요."


"어허, 저 양반은 비를 완전히 다 맞게 생겼지 않느냐. 우리는 우산을 쓰고 걸음을 재촉하면 될 터.

자 어서 이 유삼을 전해 드리고 오너라"


"... 네, 나리 마님."


노복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지는 것이, 제 주인의 것을 남에게 주고 마는 것이 참으로 아깝게 생각이 드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유삼을 건네받은 노 상추도, 다행히 이제 이 집 앞을 나설 수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만으로 주저 없이 받아 재빨리 걸쳐 입었다.


"아이쿠 이 귀한 것을, 감사합니다 나리. 후에 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뭐, 일부러 그럴 것까지야 없지만서도, 타지에서 외로운 심경이라도 들거든 집에 들러서 약주나 함께 하도록 합시다."


"아하, 네 약주 좋습니다 좋지요. 조만간 곧 들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살펴 가십시오 나리."


기분이 한결 좋아 진 노 상추가 날 듯이 가벼운 걸음으로 빗속을 뛰어 들어갔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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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 움트는 진주민란 23.10.31 70 3 12쪽
106 섭정왕 23.10.30 77 5 12쪽
105 졸(卒)의 길 +2 23.10.29 84 4 11쪽
104 엽전 헹굼 23.10.28 68 4 12쪽
103 나랏일만 생각할 것이다. 23.10.27 72 4 12쪽
» 출결장 23.10.26 82 4 11쪽
101 추노꾼잡는 귀신 23.10.25 87 4 12쪽
100 비밀 향회 23.10.24 77 5 12쪽
99 선대왕의 유산 23.10.23 82 5 11쪽
98 조총을 가져오게 23.10.22 92 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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