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궁의 의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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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해품글
작품등록일 :
2023.07.16 15:33
최근연재일 :
2023.11.17 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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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1.16 2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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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진의 죽음

DUMMY

" ... 그러하옵니다.

하지만 지금 그 여인은 긴 시간을 병으로 몸져 누워있던 탓에, 볼 살이 많이 수척하고 몸의 기운도 모두 빠진 상태여서, 마마와는 다르게 많이 왜소해 보일 것입니다."


"참으로 딱하군요. 여인의 마지막을 잘 보살펴 주세요. 오라버니."


"그리하겠습니다...

어차피 죽은 후 생기가 빠져나간 육체는, 혈색을 가질 때의 모습과 많이 다를 것이옵니다.

굳어지고 표정이 없는 모습 또한 다른 사람처럼 느껴지는 게 당연할 것이니,

마마의 모습과 조금 다르다 하여도, 많이 의심을 하지는 않을 것이옵니다."


"네... 그렇겠군요.

마침 가족도 없이 외롭게 지내던 여인이라고 하였으니, 저라고 여기시고 장사도 후하게 치르도록 신경 써 주세요 오라버니."


" ... 네, 마마."


"제가 이런 결정을 내렸다고, 너무 나무라지는 마세요.

그 분의 자유가, 얄밉도록 부럽더라구요.

저도 이제, 궁이 아닌 자유로운 세상 속에서 살아보고 싶은 생각이 간절 하답니다.

남은 인생은 평범하게 ... 어쩌면 그분과 부부로 만난 인연대로 한번 살아보았으면 하고 바라는 마음이기도 하지요"


"네...마마... 소신이... 준비 하겠나이다!"


김 진을 바라보는 사내의 음성이 많이 무겁게 느껴졌다.


"그래요. 고맙습니다 오라버니."


병조판서인 그가 나즈막하게 머리를 조아리며 표정 없이 문 밖을 나간 후로,

한동안 살며시 웃음 짓던 김 진이 그녀 앞에 놓여진 자개로 만든 서 탁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두어 번 서 탁을 부드럽게 쓸어내린 후, 작은 서랍을 당겨 열었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그녀가 꺼내어 집어든 건, 그 옛날 원범이 사 준 노란 호박 반지였다.


"김 상궁!"


미소를 잃지 않은 채 문 밖을 향해 소리를 냈다.


"네, 대비 마마!"


제법 머리 정수리 부분에 하얀 서리가 많이 내린 김 상궁이 여전히 맑은 웃음기를 머금고 경쾌하게 들어와 앉았다.


"김 상궁, 이제 오늘부터 나는 죽을 먹어야 겠습니다. 다과는 일체 들이지 말구요."


"네? 마마! 어디 불편한 곳이라도..."


"이제 나갈 때가 되었답니다."


"네... 마마...하온데, 다과는 어찌하여..."


이미 알고 있는 듯한 김 상궁의 대답에 놀람은 없었지만, 의아함은 가득해 보였다.


"나의 자리를 대신할 여인의 몸이 많이 초췌하다고 합니다.

대신들이 놀라지 않으려면, 내가 여인의 몸을 따라야 겠지요."


"하지만 마마의 몸이 너무 상하시면, 그곳까지 가시기에 무리가 되실 수 있습니다!

험하고 춥고 먼 곳이옵니다."


"괜찮습니다. 궁 안에 어수선한 소문이 돌게 해서는 안 됩니다.

최대한 내 몸이 수척할 수 있도록 준비해 주세요."


"하지만..."


"괜찮대두요. 그 곳에 가서 살은 다시 찌우면 될 일이지요. 안 그런가요 .. 호호 ..!"


여전히 기분이 좋은 김 진에게 더 이상의 말은 찬물만 끼얹는 격일 것 같았다


"네, 마마."




****




"원범이는 아직도 그러고 있는 게야?"


"네, 상추어른.

다른 때는, 김 상궁 마마님이 한 번씩 불시에 다녀가신다고는 해도...

칠월 칠석 날 만큼은 지금껏 십 오년간 한 번도 편지를 거르신 적이 없으셨는데, 이 번엔 며칠째 연락이 전혀 없으십니다요."


"그래... 사실 나도 걱정이 많이 되긴 하는구나. 무슨 일이라도 생기신 겐지... 별일은 아닐 테지.

김 상궁 마마님도 연세가 좀 드시다보니, 아마 걸음이 편치 않으셔서 도착하시는데 시간이 조금 더 걸리는 일인지도 모르지 않겠느냐."


"네, 그래야 할 텐데요.

저리 기운이 없으시니, 우리 전하... 아니, 둘째 형님 딱해서... 어쩝니까요!"


"예끼! 시끄럽다. 딱하긴 뭐가 딱하다고 그러는 게야!

그 동안 제가 원했던 대로 백성들을 위해서 얼마나 많은 일을 하면서 바쁜 시간을 보내며 살았는데,

그러면 됐지, 뭐!"


"그래도 속마음이 휑한 건 누가 알아줍니까! 그러니 더 딱한 일이지요.

서로 못 잊어 하면서도 고작 할 수 있는 게, 일 년에 한두 번 올려 보내는 편지가 다니 말입니다.

... 그것도 칠월 칠석 날이라니... 퓅-!!"


"이게 뭐야!

공륭아, 콧물 튄다!

야무지게 좀 가리고 하거라. 이런 ... 이런..."


"상추어른, 콧물이 문제가 아니지요.

얼른 식구들 다 모아서, 둘째 형님께 맛난거라도 해서 같이 위로하러 가야하지 않겠어요.

이제 나이도 있는데, 형님은 꼭 나무 꼭대기에 앉아서 저 아래 길을 내려 보시니...

기운이 없어서 떨어지지나 않을지, 걱정이에요."


"걱정은 무슨, 만날 백 선이가 나무아래에서 대기타고 있는데... 떨어지면 받아주겠지.

어쨌든 그 녀석이 좋아하는 게 있긴 하지."


흐뭇한 미소를 짓던 노 상추가 마당가운데서 빨래를 걷는 연이를 달게 바라보고 있었다.


"여보, 연이야!"


"네, 오라버니."


"아까 개떡 찌던 거는 다 되었는가?

다 되었으면 식구들 불러서, 둘째가 기다리는 고개 마루위로 가서 함께 먹고 올거나?"


"네, 그래요 오라버니.

원래가 둘째 삼춘 주려고 준비한 거니, 식구들이 함께 가서 마음이나 풀어드려야죠.."


"그래그래, 차암.. 곱기도 하지.

공륭아, 어서 저기 솥뚜껑이나 치거라. 얼른 모아서 올라가 보자."


"네, 상추어른!"




"... 상추 아부지!"


마당 안으로 급하게 들어 온 양순이와 무영이였다.


"오냐, 그래. 안 그래도 솥뚜껑 치려는 중이였는데, 잘 왔다."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구요. 큰일 났어요!"


"무에가 큰일 났다고, 그렇게 숨넘어가는 소릴 내고 그러는 게야!"


"대비마마께서 ..."


"엉...? "


"대비마마께서, 어제 밤에 돌아가셨다고..."


"...!... 효유왕대비마마께서 말이더냐...?"


"아니요. 아니! 우리 원범오라비... 중전마마요!"


"떼끼! 뭔 쓸데없는 소리를 하고 댕겨! 그 분이 갑자기 왜 돌아가셔.

아직 새파랗게 젊으신 분이... 편지도 잘 보내고 하셨구만.

이번 칠월 칠석이 좀 늦어져서 그러지.

... 그래서...라고?"


"네, 이유 없이 갑자기 음식도 잘 안 드시고 하시더니만,

몸이 너무 쇠약해지시고 잘 다니지도 못하시다가, 지난밤 주무시다가 영 일어나시지를 못했다고 하더라구요.."


" ... !"


세상이 멈춰버린 것 같은 무거운 침묵이 너와집 지붕 아래로 사납게 내리 깔리고 있었다.


말을 잃은 사람처럼 입은 분명 벌여 놓았지만, 숨소리조차도 입 밖으로 새어나오지 않는 공륭이 바보처럼 두 줄기 눈물만 무성하게 쏟아내고 있었다.


"지금 저 양반이랑 읍내에 달래 꽃신 사러 내려갔다가 들은 말인데, 점방마다 사람들 말들이 무성한 걸 보니 농은 아닌 것 같아요!

다들, 지아비도 잃고 아이도 일찍 잃었으니 그 속이 오죽했을라나... 하고 측은해 하는 말뿐이더라구요.

차라리, 잘 가셨다고...!"


"뭐? 미친것들! 지들이 뭘 안다고!

뒈질거면, 지들이나 뒈질 일이지!"


분노가 치밀어 오른 노 상추가 아무렇게나 거친말을 내 던지고 있었다.


"그러니까, 우리 마마께서 잘 드시지를 못하셨다구요...?

전하께서 아시면, 얼마나 상심하실까요... 쩌 언 하!... 우리 전하 딱해서 어떡해요... 상추어른...!"


공륭이 숨 넘어 가는 소리를 늘어놓을 동안,

어느새 눈알이 시뻘겋게 물든 노 상추도, 빨랫감을 들고 놀란 얼굴로 다가선 연이를 하염없이 바라만 보고 있었다.

잠시후 말문을 잃은 채 한참이나 망연하게 서있던 노 상추가, 무겁게 고개를 돌려 무영이를 바라보았다.

목소리가 많이 낮고 굵었다.


"솥뚜껑을 쳐라!"




****




천 팔백 칠십 팔년 무인년(戊寅年). 철종의 정비 명순(明純) 왕대비가 창경궁 양화당에서 훙서하였다.

철종 승하 십오 년이 지난 후였고, 그녀의 나이 사십 이세였다.



"아유, 마마...!

소인은 따라가기가 너무 힘이 드옵니다. 좀 천천히... 가시옵소서!"


"이제, 김 상궁도 공기 좋고 경치 좋은 산속에서 지내면서, 건강도 좀 관리하고 하세요.

나와 함께 오래오래 사셔야죠."


"그건 그렇지만, 지금 소신 숨이 넘어가면 관리할 몸도 남아나지 않을 것 같사옵니다!"


"그래요 알았어요. 오라버니, 좀 쉬었다 가세요."


맑은 옥색 도포에 넓고 윤기 나는 흑립 갓을 쓴 병조판서의 얼굴은 한성부를 떠나는 그 순간부터 한번도 웃지 않은 굳은 낯빛이었다.


빽빽한 가문비나무 숲사이로 비치는 햇살이 빛길을 만들며 땅 아래로 내려앉고 있었다.

하늘을 휘 덮을 듯이 맑게 울려 퍼지는 산새 소리는 시원한 바람소리와 참 잘 어우러지고, 여민 옷 속까지 찌릿찌릿한 청량감을 느끼게 해주었다.


"그나저나 김 상궁, 그 능구렁이 같은 내의원의 어의 들은 어떻게 구워삶았어요?

분명 뭔가 찜찜하게 생각을 했을 텐데요...?"


"아유, 말도 마세요 마마. 그게... 우리 병판나리께서도 한다면 하는 분이시더라구요.

세상에, 눈도 한번 깜짝하지 않고 어의들에게 호통을 얼마나 쳐대는지요... 호호

완전히 딴사람으로 보일만큼 마마를 어떻게 이 지경까지 되도록 놔두었느냐며, 호랑이처럼 어르렁 하셨더랬지요."


김 진이 흐뭇한 눈길로 사내를 바라보았다.


"기력이 쇠하시어 밤에 평안하게 돌아가신 걸로 해야 모두가 살 수 있을 테니,

큰일 당하기 싫으면, 이것저것 살피려 하지 말고 그냥 조용히 입 다물고 있으라고 하시더라구요!

그러니 그 능구렁이 같은 내의원 나리들도 어쩌시겠어요.

이상하다 싶어도, 그냥 다 입 꾹 다물고 쉬쉬하면서 넘어가는 수 밖에요!"


우쭐해 하는 표정으로 김 상궁이 병판을 쳐다보았지만, 여전히 그는 아무 말도 듣지 못한 사람처럼 무겁게 앉아 그들이 올라온 길만 망연히 쳐다보고 있었다.


"오라버니... 고마워요!

우리가 이제 언제 다시 만나게 될지는 모를 일이지만, 잊지 않을 께요..."


하지만 김 진의 작별인사 같은 말을 전혀 새겨 듣지 않은 사내는, 오히려 여인을 향해 가볍게 웃어보인 후 다른 말을 건넬 뿐이었다.


"언제라도 버티시기가 힘 드시면, 기별을 넣어 주십시요.

한성부 외곽에 조용한 집을 마련해서, 소신이 마마를 모실 것이옵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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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 민란의 주동자. 노 상추 +2 23.11.03 74 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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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 움트는 진주민란 23.10.31 70 3 12쪽
106 섭정왕 23.10.30 77 5 12쪽
105 졸(卒)의 길 +2 23.10.29 84 4 11쪽
104 엽전 헹굼 23.10.28 68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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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 조총을 가져오게 23.10.22 92 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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