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을 열어주지 않을 거야
이 땅 위에 믿을 사람은 오직 나 하나. 나에게 다가오지 마. 나는 너를 좋아하지 않을 거야. 그냥 그렇게 이해해.
'TP 전자 상무 서은우'를 치고 검색 버튼을 누른다.
너무 익숙한 얼굴이 나온다. 10년 전 내가 좋아했던 그 얼굴이 남아 있다. 두 손가락을 벌려 화면을 확대한다. 날 한 때 감쪽같이 속였던 저 맑은 눈.
'재수 없어. 정말 재수 없어. 꼴 보기 싫어'
연우가 선물한 손거울이 보인다. 거울 이모티콘이 날 향해 웃고 있다.
'그래... 나에게는 재수 없는 놈의 눈보다 더 다정하고 설레는 눈을 가진 연우가 있다.'
마음이 변하기 전에 재빨리 핸드폰 화면을 끈다. 근데 마음이 좀 아리다. 하지만 난 나쁜 년이 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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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에게 전화가 왔다. 혹시나 내가 광고 안 찍는다고 난리칠까봐 기분 살피러 전화한건가?
"여보세요."
"어... 차배우 난데. 혹시 TP전자 상무랑 아는 사이야?"
TP전자 상무라면... 서은우? 뜨끔하다.
"글쎄요. 왜 갑자기 그런 걸 물어보세요?"
"차배우 번호 좀 알 수 있냐고 물어보더라고."
"저 그런 사람 몰라요. 이상한 사람 같으니까 절대 알려주지 마세요."
"이상한 사람 아니야. 내가 믿을 수 있는 형님한테 부탁 받은거니까 그럴 리는 없어."
"아무튼 전 잘 모르겠어요. 이만 끊을게요."
깊은 숨을 내뱉으며 끓어오르는 분노를 가라앉히려 한다. 하지만 분노는 쉽사리 진정되지 않는다. 이 분노는 서은우를 향한 걸까? 아님 번호를 줄까 잠시 흔들렸던 나를 향한 걸까? 나쁜 놈. 이제 와서 왜 날 찾는 건데? 짜증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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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은우의 등장 이후로 연우의 얼굴을 보는 게 조금 불편하다. 나를 사랑해주고 아껴주는 연우. 나의 상처를 이해해주고 감싸준 연우. 그래서 그가 참 고맙다. 그래서 그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과거 나를 배신하고 버린 그 사람 때문에 연우가 상처 받지 않았으면 한다. 그러지 않기 위해 노력할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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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동안 서은우라는 존재를 잊고 살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아무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되는 순간에, 아무 일을 하지 않는 시간에 '서은우'라는 존재가 불쑥불쑥 찾아왔다. 계속 나를 '똑똑똑' 두드렸다. 그래서 나의 노력은 나의 의지대로 쉽게 큰 성과가 없었다. 분명한 건 두드린 문을 열어주지는 않았다. 열지 않아야 한다. 앞으로도.
결국은 나도 어쩔 수 없는 사람이었다. 상처는 결국 사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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