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상자와 거울과 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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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왕국
작품등록일 :
2023.09.12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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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27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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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돌아온 이 계절에도, 그러나

인생에서 무엇인가를 추구한다는 것, 그리고 그 길들




DUMMY

마법에 걸린 시간이 지나가고 다시 내게는 사랑이 텅 비워졌다.

그러나 나의 친구여,

나도 아직은 살아가야만 할 이유라는 것도 있기는 할 테지?


휘케텔프는 새벽부터 숲의 정령처럼

새벽숲을 거닐고 있었다.

자신의 저택에 있는 침실 혹은 화실이 아니라.

그가 이토록 이른 새벽부터 촉촉하고 습한 이끼들이

자욱히 혹은 폭신폭신하게 깔린

이슬 방울들처럼 영롱한 연두색의 풀밭들 사이를

조용히 거닐고 있었지만

도시는 도시대로 잠에서 이제는 이윽고 깨어나고 있을 것이다.


아직 죽지 않고 나는 살아서 이토록 싱그럽고

이렇게 아름다운 세상 속에 존재하는구나.

그런데 나는 과연 뭘 하고 있는 것이고

뭘 하기 위해서 더 살아남았지?

아직 죽지 않고 살아서 나는 뭘 하고 있는 거지?

뭘 더 하고 있는 걸까?

내가 살아있어야 할 이유가 있을까?

내 자신에게는 없다.

그렇다면, 이 나라에게는 내가 살아있다면

무슨 쓸모라도 또 있을까?


새벽의 숲은 모든 것이 생생한 생기로 가득 찬

신비스러운 아름다움이 깃들어져 있어서

세상의 모든 것들이 신령스럽고 거룩하며

신성하게만 보였다.

그러나 그럴 리가 없었다.

숲에 잘못 들어가면 늑대든 곰이든

짐승들에게 잘못 걸리게 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짐승들에게 잡아먹혔다.

또한 짐승들만이 인간에게 위협적인 것도 결코 아니었다.

숲은 무성하고 깊어서 잘못 길만 들어서도

계절에 상관 없이 매우 위험했다.

이토록 거룩하고 신성스럽고 신비한 숲이

사람들을 툭하면 잡아먹듯이 그들의 목숨을 희생시킨다.

사람들의 목숨을 자꾸만 요구하는 숲이

그토록 신성하고 신령할 수는 없을 터였다.

새벽 때만의 분위기이리라.

문득, 자신이 화가가 되고 싶어서

지금도 붓을 놓지 않고 그림을 계속 그리고 있는 것이

휘케텔프는 생각이 났다.

나는 화가라서 예술가적인 감수성이라는 잣대로

이 세상을 판단하는구나!

여전히 내 기질은 변함이 없구나.

그렇다면 나는 앞으로 장차 가문의 작위를 물려받아서

정치나 내 영지의 통치 같은 건 하지도 못하겠지?

수도에 올라가서 지내며 자신들의 영지(領地)인

지방에 가끔 내려가는 귀족들이 있었고

자신의 고향에서 평생 지내는 귀족 가문들이 있었다.

나처럼 나약한 사람도 정치라는

험하고 두려운 싸움에 뛰어들어서 승산이 있을까?

정치가 모든 인간 생활의 분야를 다 담보하거나

다 결정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상당 부분이 결정되며 상당히 많은 영역을

정치가 좌우했다.

하지만 휘케텔프 자신은 권력욕이나 투쟁에 대한

본능적인 재능이 거의 없었다.

자신이 봐도 그랬고 많은 타인들이 평가해도 그랬다.

어떻게 앞으로 하면 좋을지 잘 몰랐다.

그래도 어떻게 꾸역꾸역 간신히 해나가면

그냥 대충 수습이 장차 될 것만 같았다.

장래는 아직 먼 미래이고

지금은 단순히 현재이다.

그렇다면 미리 서둘러서 걱정을 앞당겨서

때보다 이르게 뭔가를 받듯이 하지는 말자.

내가 불태울 고민들은 널려 있는데

걱정이라는 감정 속에서 근심과 번뇌로 불타지는 말자.

앞으로 내게 닥칠 근심 걱정은 가지가지 널려있으니까.

잠시 후에 만날 사람은 자신과는 다르게

미래와 운명에 대한 단호한 각오와 결의가 있는지

그게 궁금했고 물어보고 싶었다.

아직까지 그가 나타나지 않은 것 같아서

조용히 아름다운 습기가 엷은 천 조각처럼

곳곳에 걸려있듯이

아득하게도 휘돌아가면서

몰래 흐르며 깊숙이 배어있는

깊은 고요와 작은 경이가 스며든

신비스러울 정도로 낯설고

또한 그만큼 매일매일마다의 새벽숲을

조금 더 휘케텔프는 걷기로 하고

천천히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아름다운 풍경에 대한 그 이유는 없이

그저 사람이 단순히 경험하는 것일까,

아니면 그 아름답다고 느끼는 감상에도

정밀하고 체계적인 분석이 가능한 걸까.

휘케텔프는 경외에 휩싸인 감정으로 찬찬히

거대한 나무들과 휘황할 정도로 아련한

엷고 흐릿한 풍경들을 지켜보며

조용히 걸어다녔다.

거미줄들마다 새벽 이슬들이 맺혀서

투명하게 반짝거리는 보석들처럼 매달려있었다.








더웬델러스케펠경은 팔짱을 끼고

아름드리 굵고 긴 큰 나무 줄기에 기대고 서 있었다.

왔냐는 간단하고 짧은 인사말을 하며

더웬델러스케펠경은 미소를 살짝, 지었다.

언제나 온화하고 친절한 태도인

선량한 사람이라고 늘 더웬델러스케펠경을 볼 때마다

휘케텔프는 느끼고는 했다.

휘케텔프가 천천히 미소를 지으며 다가갔다.

오래 기다리셨습니까?

아니, 뭐 별로.

더웬델러스케펠경은 나무 줄기에서 등을 떼면서

팔짱도 풀고 휘케텔프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자, 가자고.

더웬델러스케펠경이 그에게 손짓을 하더니

돌아서서 앞장을 서며 숲의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숲은 이윽고 이제부터는 새롭게 다시 시작할 것이다.

새로운 영기(靈氣)와 새로운 생명력으로 충만한

숲이라는 또 다른 생명의 터전을 다시 열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이른 새벽에 숲을 떠돌고 있는

낯선 존재가 있었다.

또 다른 숲의 사람이 있었다.

그는 숲을 떠돌다가 드디어 도시 근처에 닿았다.

도시는 입성을 해야 할 무대처럼

멀리서 자욱하고 거대하게 펼쳐져서

존재하고 있었다.

눈앞에 보이는 그 위대하고 감격스러운 광경을

감동해서 보는 것이 아니라

허겁지겁 타는 갈증에 물을 급하게 마시기라도 하듯이

사내는 휘청휘청거리면서 도시로 들어갔다.

그러나 작은 길들과 한적한 곳들만을 골라서 가는

그의 모습은 누구를 두려워하는 것처럼

도시의 시선을 회피하는 것처럼만 보였다.

사람들에게 들키면 안 되는 것처럼.

도시에 살고 있는 타인들에게 발각이 되면 안 되는 것인지.

그의 얼굴은 핏기가 없이 창백했고

몸 곳곳에 찢겨진 것처럼 흉터가 엿보였고

옷 역시 여기저기 뜯겨지고 구멍이 나 있었다.

며칠을 못 먹은 것인지 굶은 사람 특유의

휑하고 메마른 눈빛은 생명에 대한 공포로 가득 차서

무척 공허해 보였다.

자신의 생명이 위험하다는 공포와

타인이 자신의 생명을 위협할지도 모르므로

타인이라는 낯선 생명에 대한 공포로.

그러나 아직까지는 도시는 농촌과 달리

일찍부터 깨어나지 않아서

그는 들키지 않았다.

이 도시에 살고 있는 어떤 사람들에게도.

그러나 이 행운이 언제까지 갈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었으므로

그는 신속하게 이동을 해서 좀 더 깊숙한

도시의 으슥하고 외진 골목 같은 곳들로

더욱 잠입하기로 했다.

어서 서둘러야만 한다.

사람들의 눈에 띄면 띌수록 위험해진다.

아니 단 한 명의 눈에도 띄지 말아야만 한다.

탈주하는 자는 이렇게 서러운 운명이다.

그는 곧 안개 같은 어둠이 서서히 밝고 환하게 걷히고 있는

도시의 커다랗고 희며 거대한 건물들의 희끄무레한

막 생기기 시작한 그림자들 사이로 숨어들어갔다.

그리고 그는 곧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절뚝절뚝거리며 위태롭게 겁에 질린 듯이 도망가던 그 모습은.






도시가 분주하게 활동을 서두르기 시작하는데

낯선 사람 한 명이 생업을 위해서 가게를 열려고

부지런히 오고 가는 사람들 사이에 언제 나타나기라도 했는지

무서울 정도로 고요하게 거닐고 있었다.

넓고 큰 리본은 먼지 한 점이 묻지 않은 청결한 상태로

그의 목 밑에 매달려 있었고,

천천히 차분하게 뒷짐을 지고 걷고 있는 젊은 귀족 같은 사람은

이렇게 이른 아침에도 완전히 복장을 갖추고

거리를 나서고 있었다.

그의 두 눈초리는 침착하게 안정을 유지하고 있었으나

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사람들과 가게들과 그 주변의 풍경들을

낱낱이 포착하듯 점검하고 있었다.

그렇게 그는 아침에 장을 보러 나온 집사거나 하인이거나

혹은 그 집의 젊은 주인처럼 급할 것이 하나도 없이

걸어다니고 있었다.

귀족가에서는 집사장이나 하인들도 상당히 옷을

잘 차려 입었으므로 외관상만으로는 가끔은

집사인지 귀족인지 말을 않고 있으면 잘 몰랐다.

그가 지켜보는 것들은 평범한 도시의

아침을 여는 늘 익숙한 풍경이었지만

그는 그런 것들을 보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저 꼼꼼히 관찰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외이겐테르델핀은 지금 무엇인가를 찾고 있었다.

혹은 누군가를.

그러나 언제나처럼 수런수런거리며

일상의 기쁨과 그만큼의 작업에 대한 기대로

오늘도 역시 생업과 인생을 위해서 깨어나고 있는

도시에는 어디에도 그가 찾아다니는 사람은

눈에 띄지 않았다.

아직까지 이 도시에는 흘러들어오지 않은 것인가.

할 수 없다고 체념을 가볍게 하면서

외이겐테르델핀은 돌아섰다.

지금까지 천천히 시내 시가지를 아침 산책이라도 하듯이

걸어오던 방향과는 정반대로 다시 되돌아갔다.

역시 오던 대로 천천히 침착하고 단정한 걸음걸이로.

대동한 시종들을 한 명도 거느리지 않았지만

그는 당당한 귀족 신분이었으므로

언제나 체통과 품위가 중요했다.

비록 지켜보고 있는 전부터 알던 사람들이 없다고는 해도.





대낮의 도시는 한낮답게 뜨겁고도 활발한

삶의 생명력으로 바쁘고 시끄럽게 소란스러웠다.

세상 속에서 살아있다는 느낌이

가득가득 전해져 오는 것은 여러 모로 즐거웠고

사람들이 많이 거주하는 도시만이

이토록 충만한 느낌을 줄 수 있었다.

더웬델러스케펠경과 헤어진 후에

휘케텔프는 평소대로의 온화하고 다정한 태도로

그의 평상시 성격대로인

급할 것 없이 서두르지 않는 걸음걸이로

도시를 천천히 거닐고 있었다.

이제 집에 들어가면 아침 식사를 해야 하리라.

조촐하고 소박한 그리고 맛있는 아침 식사를

언제나처럼 혼자서 하게 되리라.

그의 두 눈빛이 이상하게 번쩍거리고 있었다.

은은한 불길 같기도 하고 푸른색이거나 붉은색 같은

충혈된 핏기가 두 눈에서 내비치고 있었다.

얼굴이 조금씩 일그러지듯이 옆턱이 꽉 다문 것처럼

자꾸 좁혀지며 당겨지고 일그러지고 있었다.

그는 배가 고팠으므로 어서 집으로 돌아가자고 생각하고 있었다.

일단 뭘 좀 먹고 진정을 하고, 그러고 나서

생각을 정리해야겠다고 차분히 생각을 가다듬었다.

도에 지나치는 처사는 언제나 견디기 어렵다.

너무 무리한 요구가 그래서 기분이 나쁜 법이다.

도시는 언제나차럼 생(生)의 활기로

신선하고 떠들썩하게 요란했으나

오늘 따라 휘케텔프의 눈에는 기분 나쁘고 혐오스럽게 보였다.

내가 이 세상 속에서 휘말려 들어간다고 한들

어떤 자국이나 흔적도 남지 않겠지?

자탄하는 비참한 심정에 휘케텔프는 갑자기

더욱 시장기가 온몸을 감돌았다.

자꾸 모든 것이 후회가 되기 시작했다.

보석 보관자라는 극비의 신분으로

최종적으로 선발이 되었을 때도

또한 후보의 대상에 포함이 되었을 때도

그는 그다지 기쁘지도 그다지 감격스럽지도 않았다.

몰래 차출되듯이 가족들에게도 적당히 둘러대고

훈련을 받으러 아무도 모르는 모처로 끌려갔을 때에도.

그러나 나중에 알고 보니 가족들의 기억은

모두 강제로 주입이 된 것으로

자신이 둘러댄 핑계는 전혀 기억도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도 자신이 둘러댄 핑계를

오해처럼 착각하고 있었다.

원래대로의 계획이라면 기억도 못하고 있는

다른 핑계를 가족들에게 대었던 걸로

지금도 기억을 하고 있어야만 했다.

그걸 처음으로 가르쳐준 사람이

더웬델러스케펠경이었다.

그때도 경악을 했었지만

비참한 경악은 언제나 기분이 생경한 불결함으로 다가왔다.

나는 무얼 하고 있는 걸까.

내 존재의 이유는 이젠 어디에 있는 걸까.

언제라도 내 기억은 다시 그들에 의해서

또 한 번을 아니 여러 번을 강제로 주입이 될 수 있겠지.

휘케텔프는 점점 더 알 수 없는 인생의 소용돌이에

휘말려서 그 속으로 깊이 빨려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이 눈부신 시장 거리와 도심지 건물들과 곳곳이

이상하게도 기이한 시커먼 심연처럼

막막하고 불길하게 그의 두 눈에 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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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 내가 아는 세상 24.07.10 8 0 11쪽
76 세상의 끝에서 다시 돌아온다고 하더라도 24.07.10 4 0 14쪽
75 운명을 결정하는 자 24.07.09 4 0 13쪽
74 신비한 나무: 기적의 갑옷 24.07.08 7 0 12쪽
73 기한이 정해지지 않은 시험 24.07.07 6 0 12쪽
72 불의 보석 24.07.04 5 0 11쪽
71 얼음의 보석 24.07.03 8 0 14쪽
70 용의 보석 24.07.02 9 0 13쪽
69 이 낙엽들도 언젠가는 타오르는 불길로 24.07.01 3 0 12쪽
» 다시 돌아온 이 계절에도, 그러나 24.06.27 5 0 12쪽
67 너와 나의 건널 수 없는 강물 24.06.26 4 0 12쪽
66 참을 수 없는 아픔보다 더 괴로운 건 24.06.25 3 0 12쪽
65 시간의 물살을 거슬러 다시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24.06.24 3 0 12쪽
64 잠든 손의 반지 24.06.20 1 0 11쪽
63 타오르는 얼음처럼 24.06.19 4 0 12쪽
62 시간과 공간의 밖에서 24.06.19 5 0 12쪽
61 너도 나도 다 사람이지만 24.06.18 6 0 12쪽
60 종이에도 피로 글씨는 쓸 수 있다 24.06.17 5 0 8쪽
59 산과 호수의 잠든 밤 24.06.16 7 0 11쪽
58 내게도 이 들판은 너무 좁다 24.06.13 4 0 16쪽
57 거미줄에 매달린 곤충의 유해(遺骸) 24.06.12 4 0 12쪽
56 잘된 것은 잘된 것일 뿐 24.06.11 4 0 12쪽
55 어디선가 그랬었던 것처럼 24.06.10 1 0 11쪽
54 문신의 비밀 24.06.05 3 0 12쪽
53 처음부터 정해진 운명인 것처럼 24.06.03 6 0 12쪽
52 인생에서 마침내 사라지는 사람들 24.06.03 6 0 12쪽
51 어쩌면 만났었을지도 모르는 24.05.30 2 0 12쪽
50 왜라고 묻지 말지어다 24.05.29 3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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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쓸데없는 욕망의 시체들 24.05.27 2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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