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상자와 거울과 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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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왕국
작품등록일 :
2023.09.12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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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01 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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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이 낙엽들도 언젠가는 타오르는 불길로

인생에서 무엇인가를 추구한다는 것, 그리고 그 길들




DUMMY

그다지 선량하지 않은 밤이 또 찾아오고 있었다.

예의도 없고 다정하지도 않으며

편파적으로 치우친 이기적인 밤이.

침묵만이 모든 것을 서술하듯

침묵이 모든 공간을 채우면서 그 밤을 완성하고 있었다.

변함 없는 여유와 변함 없는 허위로 위장한

쓸데없이 겉표면만 멀쩡하고 아무런 불안도

어떤 붕괴의 조짐도 없는

언제나 그랬듯이 언제나 평화로운

그냥 평범하고 그냥 일상적인 어느 밤에.





뭔가 싸늘하고 차가운 것이

아름답고 비참하게 빛나는 밤이었다.

강철처럼 날카롭고 매혹적인 공포였다.

데이모레페이게스를 만나고 돌아온

외이겐테르델핀이라고 불리던

남자는 별로 그다지 기분이 좋지 않았다.

데이모레페이게스가 외이겐테르델핀에게 했던

말들 때문이었다.

자신은 왕궁으로부터 직접 지시를 듣는

대단히 단독적이며 또한

각별히 직접적인 명령 체계에 있었는데

외부 인사까지는 아니지만 왕궁이 아닌

데이모레페이게스가 있는 푸른 성에게서

또 다른 지시를 듣게 되다니.

주의나 권고든 그게 뭐가 되든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게 푸른 성이 내린 결론이거나 결단인지

아니면 데이모레페이게스가 보내는 지시인지는

모르겠지만 권력 의지는 자신과 왕궁만이

특별히 그리고 단독적으로 소유하고 있어야만 했다.

간섭과 참견이라는 상대방으로부터 받는 감정이

이런 기분이 어두워지는 불쾌한 종류라는 걸

외이겐테르델핀은 항상 이상한 이물감을

정신적으로 느꼈다.

그렇게 수동적으로 감정적인 지적을 당할 때마다.



차갑고 가만히 응결된 눈동자처럼

그의 오른손에 쥐어진 금속 물질은

가라앉은 적개심과 억누른 분노처럼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앞으로 활약할 기회를 노리고 있다는 듯이.

금속은 단검처럼 보이기도 했고

일종의 가늘고 긴 철제 막대기 같기도 하고

끊임없이 이상한 흰 안개에 싸인 것처럼

기이하게도 계속 모습이 변하고 있었다.

전체적인 색상은 휘감고 있는 아주 작은 안개처럼

역시 흰 색채였다.



어리석은 이 자를 제발 구원하소서.

용서가 아니라 구원을.

외이겐테르델핀은 날카로운 경멸감으로 번쩍거리는

조용하고 잔인한 눈빛으로

어떤 소음이나 작은 기척도 없이 그대로

눈앞에 두 팔이 공중에 걸린 것처럼 양쪽으로 묶여서

힘없이 크게 펼쳐진 남자의 배에

대단히 부드럽게 그 금속으로 된 물체를 찔러넣었다.

너무 소음이 없이 들어가서 찔렀다기보다는

그냥 천천히 조용히 밀어넣었다는 표현이 더 옳았다.

세상에서 이기심과 이기심이 대결을 하면

더 큰 이기심을 가진 쪽이거나

혹은 더 맹렬한 이기심을 가진 쪽이 대개는 이겼다.

이 자는 어떤 유혹에도 그리고 어떤 고문에도

결코 알고 있는 정보를 팔아넘기지 않았다.

금속은 그 끝이 가늘고 날카롭게 벼려진

끝으로 갈수록 미묘하게 날카롭고 뾰족해지는

길고 긴 흑색의 강철 송곳처럼 변해있었다.

말하라. 말하라고.

다시 조용하고 나지막하게 그러나 매우 단호하게

다그치는 외이겐테르델핀에게서는

불길이 타오르는 조용한 눈빛으로

그의 내면으로부터 창밖에 내비치는 등잔의 불빛처럼

그의 돌변한 감정을 표출하고 있었다.

옷이 거의 다 찢겨진 결박당한 자가

천천히 고작 눈을 뜨고 눈앞의 외이겐테르델핀을

쳐다보았다.

그 정도로 고개를 드는 것만 해도 대단히 힘이 드는 것만 같았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없는데 어떻게 말하라는 거냐.

뭘 알아야 말을 하든 침묵을 하든 할 게 아니야.

꺼져가듯 토막토막 끊어져가며 말을 하고 있는

심한 학대를 당하고 있는 남자는

얼굴이 상반신처럼 너무 많은 피로 얼룩이 져 있어서

나이를 제대로 알 길이 없었다.

끝까지 거만스럽군.

외에겐테르델핀이 쇠사슬에 양쪽 손목이 결박당한 남자를

쳐다본다기보다는 그 남자 뒷편의 벽을 쳐다보듯이

바라보며 좀 더 그에게로 다가갔다.

고개가 자꾸만 수그려지는 윗옷과 상반신의 여기저기에

온통 피가 묻은 남자는 갑자기 기침이라도 하듯이 웃었다.

쇠사슬이 덜그럭덜그럭거리며 챙강챙강거리는 금속성이 들려왔다.

죽을 때 그런 거만이든 겸손이든 뭔 소용이 있겠는가.

너무 심하게 아픈지 웃을 때마다 그의 입에서

피가 흘러나오며 그의 갈색으로 변해버린 더러운 옷을

다시 한 번 피로 더 더럽게 물들였다.

외이겐테르델핀이 오른손에 좀 더 힘을 주었는지

두 손이 쇠사슬로 벽에 걸린 것처럼 두 팔이 펼쳐져있던

가련한 남자가 상반신을 반대쪽일지도 모르는 왼쪽을 향해

간신히 비틀었다.

복부에서 계속 피가 더 흘러내렸다.

그래도 아직도 피는 몸속에 더 남아있었던 듯 다시 붉고 넓게

흘러내렸다.

내게서는, 뭘 더 알아내려고 해도, 끝내 헛수고만 할 거야.

그걸 어떻게 장담을 하냐?

귓속말이라도 할 것처럼 가깝게 다가갔던 외이겐테르델핀이

그의 오른쪽 귀에 자신의 오른쪽 귀를 가까이 대며

차갑게 비웃었다.

왜냐하면, 불의 접시는, 내가 관여할 만큼

나는 높은 위치의... 인물이 아니야.

그가 힘겹게 겨우 겨우 토해내듯이 하는 말을 들으면서도

감정의 작은 흔들림조차 없는 단호하고 단단한

외이겐테르델핀의 얼굴은 신경 안 쓴다는

멸시의 날카로운 미소가 스쳐지나갔다.

그것 잘 되었군. 그렇다면 그냥 사라지도록 해.

이 지상에서 영원히.

쓸모가 없는 건 없애야 하지 않을까?

마치 자신에게 묻듯이 희미한 비웃음을 지으며 묻는

외이겐테르델핀은 잠깐 모든 동작을 멈추고

피와 땀으로 뒤범벅이 된 머릿결의 정수리를

깊이 숙이고 있는 지친 남자에게

무슨 마지막 기회라도 주겠다는 듯이

그 남자의 곁에서 그 방의 모든 것을 감시라도 하는 듯이

그대로 서 있었다.

호흡마저 정지한 것인지

외이겐테르델핀 그가 잠깐 깃털처럼 표류라도 하는 덧없는

사소하고 시시한 무엇이라도 된 것처럼

인기척뿐만이 아니라 다른 움직임들마저도 다 제거되고

오직 피와 고통으로 뒤범벅이 된 고문 받는 남자만이

존재하는 듯한 착각이 느껴졌다.

그렇다면 너는, 왕궁에서 최근 탈출한

환자 한 명도 잘 모른다고 하겠구나?

외이겐테르델핀의 오른손 약지에서

갑자기 빛으로 된 반지가 그의 약지를 감싸며 돌면서

나타남과 동시에 그의 오른손에 쥐고 있었던

고문을 위한 직접적인 도구였던

가 사라졌다.

빛은 강렬하면서도 폭사하는 듯한 찬란하고 기이한

복잡하게 여러 색채들이 함께 뒤섞인 작고도 번쩍거리는 크기였다.

너무 힘이 드는지 침도 피와 함께 흘리고 있는 남자는

미처 대답도 할 여력도 없어 보였다.

외이겐테르델핀은 대답을 들을 마음도 없다는 듯이

그냥 잠자코 가만히 있었다.

그 다음은 반지가 알아서 다 했다.

반지는 폭사라도 하듯이 굉장한 분출을 그만두고

점점 반지의 형태로 돌아라도 가듯이

빛이 사라지면서 진짜 반지처럼 변해갔다.

은빛의 아름답고 평평한 균일한 두께를 가진

둥근 반지로.

반지가 뭔가 연기나 안개가 그 속에서 피어나오듯이

괴이하면서도 놀라운 빛이거나 혹은 기체 같은

뿌옇고도 아스라한 무엇인가를 무럭무럭

마치 토하기라도 하듯이 내뿜기 시작했다.

그 이상한 기체나 혹은 안개 같은 것은

점점 더 학대와 멸시를 당하던 남자를

휘감기 시작했다.

안개는 무력한 남자를 침착하고 그리고

마음대로 능욕이라도 하듯이

남자의 상반신으로 또 배와 허리와 그 밑의

하반신까지도 제멋대로 타고 돌아다녔다.

남자가 비참하고 끔찍한 표정을 지을 새도 없이

자꾸만 남자의 몸은 이상한 가는 흰 연기가 피어오르면서

반지에서 끝없이 흘러나오는 듯한 안개에 동화가 되어

같은 안개로 변하는 것처럼 계속 사라지고 있었다.

흰 연기로 변한 남자의 몸이었던 부분이

다시 그 흰 연기마저도 사라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안개가 가늘고 길게 여기저기서 몇 줄기 피어오르고 있는데

그 안개 밑에 또는 그 옆에 남자의 다른 몸은 여전히 남아있는

기이하고도 희한한 상태가 한동안 다시 지속되었다.

쇠사슬에 묶여져서 비참한 학대처럼 축 늘어져있었던

두 팔뚝과 그 두 손목과 목과 머리통과

그 더러워질 대로 더러워진 머리칼들만이

남아있어서

그렇게 괴상하고 믿기지 않는 일종의 공포스러운 모습들은

그러나 곧 머리통마저도 최후에는 다 사라지고

철컹거리며 양쪽의 쇠사슬마저 벽을 치면서 내려지면서

마침내 벽만 널찍하고 지저분하게 남았다.

원래 그 벽에 매달고서 고문을 너무도 많이 했었는지

벽은 온통 알 수 없는 색깔의 흔적들과 그만큼이나 오래되고도 바래버린

곰팡이들로 두꺼운 더께가 달라붙어있었다.

한참을 그 사라진 남자의 오른쪽 귀 뒤쯤일 벽을

바라보고 있던 남자가 이윽고 돌아섰다.

그의 오른손에 나타났던 반지는 어느샌가 사라지고

그의 오른손은 다시 어떤 반지 한 개도 착용하지 않은

그냥 맨손이었다.

멀리서 희미하고도 사소하게 파도 소리가 들릴 듯 말 듯 들려왔다.

그러나 이곳은 바다가 가까운 해안가가 아니었다.

왕국에는 바다와 인접한 곳이 별로 없었다.

그렇다면 큰 강물이거나 호수의 수면이 철썩거리는 소리였다.

호수라고 해도 상당히 큰 격랑이 있어야 들릴 소리였다.

이 성(城)이 호숫가에 있고 검은 성(城) 쪽이든 푸른 성(城) 쪽이든

그런 건 외이겐테르델핀에게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어느 쪽이 거느리고 있는 별도의 장소인지는.

그는 잠입을 해서 먼저 해치우고 떠난다.

고문은 그가 하기 전에 이미 이곳에서

다른 사람들이 저 불쌍한 자에게 하고 있었지만.

불쌍하다고 해봤자 타인의 인생일 뿐

외이겐테르델핀에게는 차가운 분노만을 불러온

쓸데없는 인생에 불과했다.

정말로 알고 있는 것이 없었는지 아니면

진정한 의지를 가진 참된 의리의 사나이였는지.

앞으로 데이모레페이게스가 이 연기로 변해서 사라져버린

방금 전의 남자 때문에 분통을 터뜨리면서

곤혹스러운 여러 가지를 겪겠지만

선수를 먼저 치는 쪽이 언제나 유리한 법이다.

왕궁은 데이모레페이게스든 어느 쪽이든

그렇게 신뢰도 그렇게 총애도 하지 않았다.

대단히 건조하고 대단히 실용적인

오직 협조의 충실한 여부가 최우선인 판단 대상이었다.

달리 말한다면 충성을 누가 가장 잘 바치느냐가

왕궁의 유일한 기준이었다.

충성을 바치지 않는다면 가장 유능한 집단이나 인물도

전혀 왕궁의 눈에는 차지 않았다.

왕궁에는 사실대로 보고를 해야만 한다.

그러나 새를 통해서 보내더라도 왕궁의 사람들이

어떤 표정일지는 보지 않더라도 외이겐테르델핀은

짐작이 가고도 남았다.

어떤 실적이 없는 상황이 답답해서 화가 날 만큼

지리하고 길게 이어지고 있었다.

이젠 어떤 가짜 상황이라도 연출을 해서

작고 시시한 건수의 실적이라도

억지로 조작된 보고서라도 올려야 할 판이었다.

그러나 그랬다가는 한동안은 임시로 버틸 수는 있어도

나중에 발각이 되고 들통이 나면,

더 힘들어질 수도 있었다.

외이겐테르델핀이 보낸 결과와 나중에 진짜 결과가

서로 일치하지 않게 된다면.

그리고 아직은 그 결과들도 최종적인 결과들과는

전혀 거리가 멀었다.

중간 결과들로 이행도 되지 않았다.

외이겐테르델핀은 그대로 그 벽을 뚫고 벽 너머로 나갔다.

호수는 철렁거리는 검은 물결에 연해있어서

성벽도 호수도 다 검은 밤이었다.

허공을 뚫고 그대로 날아가는 급한 화살처럼

순식간에 호수의 물결 너머 숲속의 나무들 가지들을

차례차례로 밟아가면서 다시 어디론가

외이겐테르델핀은 사라지듯 가고 있었다.

오직 어리석은 자들만이 편안하게 잠을 이루지 못하는

깊고 검은 무한에 가까운 공간이

그런 아득한 밤처럼 도시를 향해서 달려가고 있었다.

그리고 외이겐테르델핀도 곧 그 도시의 공간 속

어딘가로 흡수되거나 파묻히듯이 사라지고 말 것이다.

모든 것은 온건하고 평탄한 똑같은 밤이 되고 말 것이다.

그리고 다시 또 똑같이 평범한 새 아침이 세상에 찾아올 것이다.

세상은 개인의 사소하고도 거대한 비극 따위와는

완전히 무관한 것이니까.

그렇게 광대한 구조였다. 이 세상의 모순이라는 본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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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 내가 아는 세상 24.07.10 8 0 11쪽
76 세상의 끝에서 다시 돌아온다고 하더라도 24.07.10 4 0 14쪽
75 운명을 결정하는 자 24.07.09 4 0 13쪽
74 신비한 나무: 기적의 갑옷 24.07.08 7 0 12쪽
73 기한이 정해지지 않은 시험 24.07.07 6 0 12쪽
72 불의 보석 24.07.04 5 0 11쪽
71 얼음의 보석 24.07.03 8 0 14쪽
70 용의 보석 24.07.02 9 0 13쪽
» 이 낙엽들도 언젠가는 타오르는 불길로 24.07.01 3 0 12쪽
68 다시 돌아온 이 계절에도, 그러나 24.06.27 4 0 12쪽
67 너와 나의 건널 수 없는 강물 24.06.26 4 0 12쪽
66 참을 수 없는 아픔보다 더 괴로운 건 24.06.25 3 0 12쪽
65 시간의 물살을 거슬러 다시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24.06.24 3 0 12쪽
64 잠든 손의 반지 24.06.20 1 0 11쪽
63 타오르는 얼음처럼 24.06.19 4 0 12쪽
62 시간과 공간의 밖에서 24.06.19 5 0 12쪽
61 너도 나도 다 사람이지만 24.06.18 6 0 12쪽
60 종이에도 피로 글씨는 쓸 수 있다 24.06.17 5 0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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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거미줄에 매달린 곤충의 유해(遺骸) 24.06.12 4 0 12쪽
56 잘된 것은 잘된 것일 뿐 24.06.11 3 0 12쪽
55 어디선가 그랬었던 것처럼 24.06.10 1 0 11쪽
54 문신의 비밀 24.06.05 3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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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어쩌면 만났었을지도 모르는 24.05.30 2 0 12쪽
50 왜라고 묻지 말지어다 24.05.29 3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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