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상자와 거울과 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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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왕국
작품등록일 :
2023.09.12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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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0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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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24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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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물살을 거슬러 다시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인생에서 무엇인가를 추구한다는 것, 그리고 그 길들




DUMMY

마치 넌 언제나 정당하고 언제나 옳다는 듯이 행동하는구나?


그러면 안 된단다는 거냐?

어차피 너도 평생을 지금껏 그렇게 살아왔잖아?


되돌아온 답변에 잠깐 동안 말문이라도 막힌 듯이

처음 말을 꺼냈던 남자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러자 말대꾸를 했었던 다른 남자가 다시 말했다.

도덕적이고 정당하게 살아왔었던 삶을

다른 사람들도 똑같이 살아가겠다는데, 왜 그걸 싫어하지?


둘은 서로 나이가 비슷해 보이기도 하고

아니면 나이가 서로 맞지 않아서 달라보이기도 했다.

말대꾸를 했었던 남자쪽이 나이를 잘 종잡을 수 없는

젊어보이기도 하고 반대로 나이를 먹을 대로 먹었지만

여전히 늙지 않은 동안의 외모여서였는지도 몰랐다.

우리는 친구가 맞을까?

비난하듯이 처음에 말을 꺼냈던 남자가

역시 씁쓸하다는 듯이 다시 말했다.

그의 얼굴은 상당히 착잡한 분노가 조용히 깔려있었다.

냉담하고 평범한 얼굴로 다른 남자가 평온하게 말했다.

뭐 특별한 것이 있기나 하냐는 식으로.

우리가 친구라면 이렇게 갈라섰을까?

우리가 친구라면, 이렇게 미워하고 있을까?

그가 몸을 쭉 펴고 새롭게 표정을 지으며

슬쩍 웃듯이 다시 말했다.

아직도 우리가 친구 사이라고 믿고 있나?







나는 왜 불행한 걸까?

이 말을 하고 싶어서 나는 내 일기장이나 붙들고 있구나.

탄식이라도 하듯이 일기장에 누가 읽지도 않을 이런 말들을

적고 있구나.

레이피엘페이셔스는 시간이 참으로 안 간다고 생각하면서

서글픈 얼굴이었다.

계절과 세상은 그대로 마치 영원이라도 할 것처럼

늘 그 자리에 있는데

반면 인간만이 바쁘고 분주하게 그래서 덧없이 지고 나타나고

다시 지고 사라져서 소멸하고 있었다.

사랑과 기쁨과 행복이라는 인간의 감정들도 역시.

레이피엘페이셔스는 가늘고 섬세한 밝은 갈색의 펜대를 내려놓고

일기장을 그냥 덮어버렸다.

음악 학교의 업무를 준비해야만 했다.

아침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고 또한 누구에게도 아름다웠다.

그러나 이 신선하고 싱싱한 시간의 자극을

누군가는 대단히 비참하고 불행하게, 오늘도 또 똑같은 하루가

마침내 다시 또 돌아왔구나 괴로워서 쓰라릴 대로

쓰라린 마음으로 받아들인다.

오늘도 또 똑같은 시작이구나.

레이피엘페이셔스가 이런 생(生)을 원한 적이 없었건만

세상은 이런 방식의 삶을 돌려주었다.

이제는 지나간 일이었으므로 그녀가 감정 조절만 잘 하면

될지도 모르는 문제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이 문제였다.

감정을 단순히 조절만 하면 된다는 것이

말로는 성립이 되고 말로는 잘 되었지만

그러나 그녀의 삶은 그런 쉬운 말과는 달리 쉽게 잘 돌아가지 않았다.

작동이 되지 않고 고착화된, 흘러가지 못하고

망가져서 제대로 굴러가지 못하는 듯한 그런 삶이

이제 그녀가 받아들이고 있는 삶이었다.

일기장을 대부분의 소녀들과 숙녀들은

잠들기 전에 적고 잠을 청했지만

그녀는 오늘 이 아침 일기장을 적고 있었다.

세상은 푸르고 싱싱한 기운으로 금빛이 반짝거리는

투명함으로 가득 채워져서 넘실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은? 임무 또는 업무만이 남은 삶이다.

나는 음악 학교에서 아이들이나 가르쳐야만 하는구나.

그녀는 자조적인 서글픈 미소를 엷게 짓더니

방을 나가기 시작했다.

복도를 침착하고 단정한 걸음걸이로 그렇지만 생기 없는

무표정한 얼굴로 걸어가는 그녀는

복도를 몇 번 돌아서 어느 방에 도착했다.

평범한 문이고 평범한 목재 재질이었으며

평범한 백색의 아름다운 장식이었다.

그녀는 천천히 방문을 열고 그 안으로 들어갔다.

문이 닫히는 부드럽고 유연하면서도 정교한 소리가 찰칵,

작게 나고 그녀는 그 문에 두 손을 뒷짐을 지고 서듯이 대고는

가만히 기대어 있었다.

자주 음악 학교에서 수업을 할 때면 칠판에 기대어 서 있었듯이.

그녀의 두 눈은 아름답고 투명한 눈동자들었으나

싱싱한 생기로 영롱한 것이 아닌

그저 늘 반짝거리는 평온한 눈빛이어서 건조하고 무관심했다.

그녀가 앞에 멀찍이 있는 창문과 그 밖의 풍경을 보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한참을 잠시, 그렇게 다른 감정과 동작은 없이 앞만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레이피엘페이셔스가

왼쪽 옆으로 돌아서서 걸어갔다.

그녀의 등과 무릎을 지난 치마가 서늘하고 긴 모습으로

보는 사람을 감탄하게 만들었다.

미(美)라는 것은 저절로 있을 때도 있구나 하는 식의.

이제 다른 세상으로 건너갈 시간이었다.

그곳에서 그녀는 과거를 잊고 자신을 버리고 또 다른 자신을 만나거나

최소한 습득이라도 해야만 한다.

설사 고가의 가격을 내고 취득은 해야 한다고 하더라도.

벽에는 피아노가 있는 실내 풍경화가 한 점 걸려있었다.

그러나 피아노만이 있을 뿐 사람들은 그 텅 빈 방에

아무도 존재하지 않았다.

달밤이 푸르게 적셔진 방은 크고 여유로운 면적이었으나

그 파란색 계열의 빛들은 휑하고 외로운 고독이라도 강요라도 할 듯

지나치게 크고 애처로운 소외 때문에

일종의 불편하고 외면하고 싶은 곤혹스러운 신비감으로

엷고 희미하게 물들어있었다.

그녀가 그 크고 아름다운 실내 풍경화에 손을 갖다가 대었다.

그녀가 오른손 몇 개의 손가락으로 섬세하게 어루만지듯

가져다가 대자 스르르르륵 자그마한 바람이 불어오다가

차츰 조금씩 더 큰 바람으로 변해가듯이 그렇게

그녀가 손을 댄 순간부터 그림과 그녀에게

무엇인가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녀는 자꾸만 금빛과 투명한 빛들과 각종 기이하고 신비한 빛들로

아름답게 또 놀랍게 휩싸이면서 그녀 너머로 그림이 보이고

다른 쪽인 그녀의 옆모습 너머의 벽과 거기 있는 방의 가구들이 보이는 등,

자꾸 투명하면서도 일렁거리는 가벼운 빛의 부스러기들이 모인 신체처럼

변하고 있었다.

그러나 최종적으로는 그녀 너머의 풍경들이 보일 듯 말 듯

그녀의 육체가 그대로 남아있는 듯 이상하게 상태가 고정되었다.

그러나 그녀는 횡으로 또는 수직일 종으로 이상하게 울렁거리고 일렁거리며

자꾸만 파동을 치고 오르락내리락하듯이 어른거리며

조용히 이탈하지 않고 그 위치에서 흔들리는 듯

섬세한 혼란과 아름다운 혼돈으로 제대로 모습을 포착하기 힘들었다.

그녀는 가만히 그곳에 있는데 어째서 그녀의 모습이 일렁거리고 어른거리며

제대로 잘 보이지 않는지는 아마도 마법의 작용 여부인 것만 같았다.

그녀가 차츰 흡수라도 되듯이 그 그림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이제 그녀는 모습이 축소되어서 들어간 것이 아니라

그냥 모습은 크기만큼은 그대로였으나 자꾸만 그림 어딘가에 들어갔는지

방에 남아있고 실내에 걸쳐져 있는 부분은 더욱 작아지고 적어져갔다.

그녀의 신체가 깎아내고 잘라낸 것도 아닌데

자꾸 어디론가 사라져서 그녀는 그림 속 어딘가로 들어가있는 듯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 피아노 한 대만이 홀로 있는 그림 속에서

그녀가 나타난 것도 아니었다.

소리도 없이 빛의 작은 무리 같은 작은 빛의 안개 같은 것들만이

그림과 그녀의 오른팔 사이에서 조용하고 느리지만 분주하고 끊임없이

오고가며 놀랍게도 퍼져나갈 듯이 온통 종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그 모든 것들을 휘감고 있었다.

이제 그녀는 없었다.







하지만 지나친 무관심이 의도된 숨겨진 애정인 것처럼

지나친 관심은 휑할 정도로 선량한 마음은 없는

그저 자신의 소유욕과 지배욕에서 나온

일종의 간섭과 참견일 뿐이다.

유사 간섭과 유사 참견이 때와 장소를 맞이하고 만나서

본격적으로 진정한 간섭과 참견이 펼쳐지고 가능해지는 순간,

지나친 관심은 자신만이 좋으려고 제멋대로 가지는

그럴 듯한 가면을 쓴 아름다운 척하는 감정이었지

상대에게는 호의나 선량한 마음이나 따뜻한 애정은 있던 적도 없던

그저 자신만이 만족하기만 하면 그뿐이었던

일방적인 이기심이었다는 걸

그때를 맞이하게 되어서야 비로소 알게 된다.

적어도 본인은 몰라도

그 상대방은 피해자로서 알게 되고 만다.

자의식은 여러 가지 가면을 써서 활동을 한다.

다른 감정들이 툭하면 가면을 쓰고 변신을 하는 것처럼.

자신이 언제나 최우선이었던 자의식 과잉이

마치 대단한 애정이라도 있었던 것처럼

지나친 관심이라는 과도할 정도로 넘치는 애정의 빛깔로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찬사를 받았다.

오직 사랑만을 위해서 태어난 사람이라고.

그러나 본질적으로 그 지나친 관심은

그저 본인만의 일방적인 만족감이었다.

인간은 결코 간단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툭하면 서로 상처를 주고

또한 그만큼의 상처를 늘 자주 흔하게 받았다.

지나치게 관심이 컸던 사람들은

대개는 시간이 지나고 흐르고 나면 지나치게 싸늘해진다.

그토록 흘러넘치도록 많았던 관심과 호감이

다 어디로 가버렸는지.

한때는 레이피엘페이셔스도 또 더웬델러스케펠경도

반짝거리는 빛으로 물든 아름다운 두 개의 별이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영원할 것만 같이 빛나던

대체가 불가능했었던 각자의 별이었다.

서로의 차갑고 신비한 밤하늘과

설레는 눈부신 한낮에

유일하게 떠 있던 별이고 태양이었지만

이젠 그들은 각자 자신만의 길을 간다.

그 누구도 그렇게 일부러 조정을 하려고

둘 사이에 끼어들지 않았다.

다만 운명이라는 것이 있다면

그 운명이 작용을 두 사람 사이에 했는지도 몰랐다.

그러나 운명은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다.

누구에게는 기적처럼 찾아오지만

누구에게는 영원한 저주처럼 찾아오지 않는다.

어느 누구의 눈에도 운명은 보이지 않으나

그럼에도 보이지도 않고 만져지지도 않는 그 운명을

평생 동안 그리고 일상에서도 모든 이가

늘 감촉하고 항상 인식한다.

이제 레이피엘페이셔스는 자신의 감정이

지나치게 무관심한 것인지

정말로 무관심한 것인지

잘 분간이 안 되고 진정 잘 모르는 단계까지 오게 되었다.

그 기간이 그렇게 길지 않았다는 걸 생각하면

가끔 레이피엘페이셔스는 놀랐다.

지나친 무관심이 비호감을 가장한 관심이라면

진정한 무관심이란 감정은 또 어떤 것일까?

내가 이렇게 그를 외면할 수도 있구나.

사랑이란 고작 이런 과정을 거치고 나면

증발을 통해서 향기조차도 남지 않고

증발되기 전의 액체 상태에서 묻어버린

어렴풋한 옛 얼룩들만 어떤 희미한 통증의 흔적처럼

달라붙어 있게 되는구나.

나는 그를 집착을 한 것일까?

아니면 그가 나를 너무 가볍게 너무 간단히

그냥 너무 쉽게 나를 잊어버린 것인가?

그 어느 쪽이든 이제는 시간에 파묻혀 버릴

옛 시절과 그 속의 사람이었다.

지나친 관심은 무관심이나 다름없는

나만의 감정이었다면

이제 진짜 무관심해졌다면

정말로 나만 선택하고 나만 결정하면

되는 것이 아닌가?

시간의 괴력이 사랑의 괴력을 이기는

마침내 그런 놀라운 순간이 오고 있었다.

한때는 사랑만이 세상에서 가장 놀라운 것이었으나

이제는 레이피엘페이셔스는 자신에게서

가장 놀라고 있었다.

데웬델러스케펠경을 이제는 음악 학교에서

매일처럼 만날 수 있게 되었지만

그러나 그렇다고 과거로 다시 돌아갈 수는 없었다.

모든 것이 아무 미묘하게 어긋나 버렸다.

그리고 마침내 그 아주 작은 간극이

점점 더 걷잡을 수 없게 바꾸어 버렸다.

자신도 그리고 그도 또 이 모든 것들을.

레이피엘페이셔스는 이젠 음악을 버렸다.

어차피 음악만이 인생의 길은 아니었으니까.

그러나 음악을 제외한 다른 인생도 여전히 익숙하지 않았다.

그녀가 잘해낸다고 해도 왠지 그 인생은

다른 사람의 인생이거나 뭔가 어느 누구 타인을 흉내를 낸

인생 같아만 보였다.

그녀의 인생은 어디에 그렇다면 존재할까.

모든 것이 혼란스러웠고 그만큼 아득하게 복잡해져서는

이제는 희미한 슬픔으로 비로소 편안해진 혼돈이었다.

하지만 차라리 지금의 혼돈은 편안해서

행복한 그래서 서글픈 혼란이었다.

문피아 판타지 다시 시간의 물살을 거슬러 돌아간다고 하더라도.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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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상자와 거울과 반지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77 내가 아는 세상 24.07.10 8 0 11쪽
76 세상의 끝에서 다시 돌아온다고 하더라도 24.07.10 4 0 14쪽
75 운명을 결정하는 자 24.07.09 4 0 13쪽
74 신비한 나무: 기적의 갑옷 24.07.08 8 0 12쪽
73 기한이 정해지지 않은 시험 24.07.07 6 0 12쪽
72 불의 보석 24.07.04 5 0 11쪽
71 얼음의 보석 24.07.03 8 0 14쪽
70 용의 보석 24.07.02 9 0 13쪽
69 이 낙엽들도 언젠가는 타오르는 불길로 24.07.01 3 0 12쪽
68 다시 돌아온 이 계절에도, 그러나 24.06.27 5 0 12쪽
67 너와 나의 건널 수 없는 강물 24.06.26 4 0 12쪽
66 참을 수 없는 아픔보다 더 괴로운 건 24.06.25 3 0 12쪽
» 시간의 물살을 거슬러 다시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24.06.24 4 0 12쪽
64 잠든 손의 반지 24.06.20 1 0 11쪽
63 타오르는 얼음처럼 24.06.19 4 0 12쪽
62 시간과 공간의 밖에서 24.06.19 5 0 12쪽
61 너도 나도 다 사람이지만 24.06.18 6 0 12쪽
60 종이에도 피로 글씨는 쓸 수 있다 24.06.17 6 0 8쪽
59 산과 호수의 잠든 밤 24.06.16 7 0 11쪽
58 내게도 이 들판은 너무 좁다 24.06.13 5 0 16쪽
57 거미줄에 매달린 곤충의 유해(遺骸) 24.06.12 4 0 12쪽
56 잘된 것은 잘된 것일 뿐 24.06.11 4 0 12쪽
55 어디선가 그랬었던 것처럼 24.06.10 1 0 11쪽
54 문신의 비밀 24.06.05 3 0 12쪽
53 처음부터 정해진 운명인 것처럼 24.06.03 7 0 12쪽
52 인생에서 마침내 사라지는 사람들 24.06.03 7 0 12쪽
51 어쩌면 만났었을지도 모르는 24.05.30 2 0 12쪽
50 왜라고 묻지 말지어다 24.05.29 3 0 11쪽
49 다정한 어리석음은 이렇게나 달콤하구나 24.05.28 2 0 12쪽
48 쓸데없는 욕망의 시체들 24.05.27 2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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