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상자와 거울과 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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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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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9.12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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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0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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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29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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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라고 묻지 말지어다

인생에서 무엇인가를 추구한다는 것, 그리고 그 길들




DUMMY

모든 주장들과 모든 의견들은 다 선동을 위한 이기적인 것이다.

전체에서 차지하는 그 이기적인 부분이

대단히 크든 극히 미소한 함량이든.

아무리 공평하고 합리적이더라도

어떤 주장과 어떤 의견을

남에게 말을 하고 타인이나 사회에 고한다는 것은

설득의 여지나 설득하고 싶은 욕구가 들어있다.

그렇지 않다면, 자기 혼자 일기장에나 적고 말았겠지만

그러나 끝끝내 타인들을 상대로 전파를 하고 말겠다는

시도를 하고 만다.

결국엔 정의롭고 선량한 목적이든

이기적이고 사악한 목적이든

추악하고 극악무도한 목적이든

늘 어떤 목적이 있기에 온갖 종류별로 주장과 요구가 나온다.

다만 그 목적의 방향이 단지 성격에 있어서 다르다.

주장과 의견이 만들어지면 널리 퍼지게 되고

그런 방식으로 진행이 되면 되어갈수록

모습을 갖춘 사상과 이론이 되고

그러고 나면 필연적으로 사회성을 가지게 되며

그러므로 어떤 사상과 이론이든

세상에 대한 좋든 나쁘든 어떤 목적이 반드시 있기 마련이다.

아무리 고매하고 위대한 사상이라도

세상에 펼칠 마음이 없다면 자신 외에는

다른 타인 누구도 알 수도 없고

보고 들을 기회조차 없게 되고 만다.

그렇게 세상의 모든 사상들은 다 만들어지고

자신만을 위해서든 타인들과 사회를 위해서든

더 나아가 무척 광대하도록 범위가 확장되어서

만인에게 공평하게 쓰이든

결국엔 그런 식으로 다 구축되어서 마침내 고착된 이론이 된다.

소녀도 처음에는 그런 불순한 목적이 있는 줄도 모르고

그 부름이나 그 지시 혹은 그 계약을 따랐다.

매우 까다로운 선발 과정을 이윽고 다 통과하고

최종적으로 남은 미소녀들의 한 명이 되었을 때

그녀는 매우 기뻤었다.

그러나 그녀에게도 모종의 속셈은 따로 있었다.

아주 사소하고 너무 흔해빠졌다고는 해도

대단히 유명해지거나 굉장한 존재가 되고 싶다는

아주 간단한 것들이라고는 해도.







멋진 남자들에게서는 더러운 향기가 난다.

멋지고 아름다운 것들이 흔히 배반처럼

그 동안에 숨기고 있었던 다른 상태로

변하게 될 때 나타나는

비열한 모습들처럼.

그래서 소녀는 멋진 남자들이 싫어졌다.

하지만 그녀는 아직은 연애나 결혼을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남자들이 어떤 존재인지를 알게 되었다.

세상은 단순히 그 겉표면만으로

그리고 눈으로 보기에 아름답게 이루어진 것이

절대로 아니었다.

그 내부는 실체라는 것이 따로 있었다.

소녀는 다른 나이의 소녀들보다 비교적 이른 나이에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녀가 마음이 허무해지고 괴로워진 나머지

견딜 수 없이 슬펐던가?

그것은 아니었다.

단지 그녀는 세상을 배웠고 그래서 어른이 되었다.

그렇게 어른이 되어간다.

그것뿐이었다.











소녀는 아름다운 갸름한 얼굴로

차가운 무관심한 묘정으로 잠시 앉아있듯

그러나 오랜 침묵처럼 그렇게 물속에 잠겨 있었다.

눈은 명징하고 선명하게 두 눈을 다 뜨고 있었지만

물은 액체다운 투명함으로 그녀와 세상을 가로막고

또 동시에 분리하고 있었다.

특수한 색체와 특수한 빛들로

오묘하고 신비로운 액체는

그러나 위화감이 은연중에 느껴지는

차가운 간섭처럼 언제까지나 그녀를 가두고 있을 것처럼만 보였다.

그녀는 그 속에서 가만히 액체 밖을 내다보면서

은은하고 적막한 증오처럼 조용히 바깥 세상을 응시하고 있었다.

여신이 태어날 때 오랜 기다림의 시간이 있었다는

고대로부터의 신화처럼 그녀도 이렇게 힘든 인내의 과정을

반드시 통과해야만 하는 것일지도 몰랐다.

그녀도 정확하게 또 자세하게는 모르지만

그녀처럼 이런 여신이 되는 과정을

몇 명의 왕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소녀들이

함께 통과하고 함께 시험을 받고 있다고 했다.

왕국의 사람들은 이 소녀들을 서로 연락이 불가능하게

필사적으로 애를 써가며 막았다.

그래서 소녀도 이런 정보들을 구하는 것이

대단히 힘들었다.

어쨌거나 다른 미소녀들도 탈락을 하거나 해서

조용히 자취를 감추었다고 했다.

그 이후에는 어디로 갔는지 무엇을 하는지

그녀도 그리고 이런 소식을 은밀히 전해준 쪽도 잘 몰랐다.

알아야 뭐가 되었든 전달을 해주겠지만

잘 모르니 가르쳐줄 수도 없었다.

소녀는 막막한 체념과도 같은

아름답고 맑고 깨끗한 신비스러운 액체 속에서

특수하고 비밀스럽게 아주 고요히 은밀한 부드러움처럼

가볍게 가라앉아서 이상한 꿈이라도 꾸듯이

사랑스러우나 차갑고 싸늘하게 정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어떤 옷도 입지 않은 완전한 알몸은

물고기를 닮은 갸르스름한 곡선처럼

황홀한 미의 극치를 자랑하듯이

여성이 되어가는 소녀의 육체에서

희고 연한 분홍과 엷은 붉은 빛들로

생의 환희가 이룩할 수 있는 정점에 도달해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기쁘거나 즐거워 보이지 않았다.

선물 꾸러미를 끌어안은 어린 여자아이가 아니라

빼앗기기 싫어서 몸을 웅크린 어린아이가 보이는

반항과 적의처럼

오히려 그녀는 화가 난 어린 계집아이로 돌아간 것처럼

차가운 분노로 번쩍거리는 조용한 불만으로 가득 차서

적막하게 외로워 보였다.

그 외로워 보이는 감정이 외롭다기보다는

조절이 잘 된 공격성으로 억제가 잘 되어서

뭔가 심상치 않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수많은 단계의 선발 과정을 통과해서

이제는 왕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소녀들의 한 명으로

최종적으로 확정이 된 것이나 다름없는

그녀의 얼굴에서

하얀 돌을 깎은 것처럼

그녀의 얼굴만을 남기고 머리카락들이 전부 남김 없이

깊은 바다의 밑바닥처럼 깊이 고요한 물속에서

위로 무섭게 치솟아 올라갔다.

뻗어서 마구 자라나는 식물들처럼

타오르는 시뻘건 불길들처럼

머리카락들은 놀랍도록 무섭게 또는 황홀하리 만치 아름답게

자꾸만 위로 치켜져 상승이라도 하듯이

타오르는 빛들과 열망을 안고서 날아오르려는 깃발들처럼

뻗어서 올라갔다.

나풀거리듯 유연하고도 부드럽게

또한 섬세한 희망처럼 아름답게 휘청거리면서.

맹렬한 불길이라도 타오르는 것처럼

머리카락들이 빛들을 발했다.

복잡하고도 층층이 뒤섞인 여러 색깔들이 빛처럼 번져나오듯

물속의 위로 자꾸만 올라가려는 머리카락들에서

조용하지만 끊임없이 뿜어져 나왔다.

주위의 특수한 액체 속으로 스며들 듯이

번지며 퍼져나가듯 새어나오는 빛들은

차갑지만 이상하게 기이했고

아름답기 그지 없으면서도 특이하게도 따뜻했다.

신비스럽지만 동시에 기괴하면서도 황홀한 아름답지만 섬칫한

지극히 휘황한 빛들이 그녀 주변의 물속을 자꾸만

여러 색깔로 바꿔가면서 물들이고

그때마다 그녀의 조각상처럼 아름다운 알몸도

여러 번 색깔이 미묘하고 복잡하게 따라서 변해갔다.

마침내 그녀의 알몸은 원래대로 눈이 부시게 흰 상태로

처음처럼 평온하게 평상시 피부색으로 돌아왔다.

그녀가 물속에서 말했다.

아주 자그마한 목소리로 아주 짧은 말을.

"내게는 젊음 대신 다른 것들이 있어."






물속은 차갑지만 아주 아늑해 보였고

그녀는 건강하고 젊고 싱싱하고 무엇보다 아름다워 보였다.

그녀가 눈을 감았다.

그녀가 눈을 뜨기까지 걸린 시간은

긴 것 같기도 했고 짧은 것 같기도 했다.

두 눈을 그녀가 떴다.

푸르고 엷은 금빛 보석이 들어간 듯한 두 눈동자에는

알 수 없는 적막한 광경만이 들어간 것처럼

침착하고 평온해 보여서 오히려 더 낯설었다.

그녀가 오른손을 들어서 주먹을 쥐었다.

한참을 주먹을 쥐고서 차츰 주먹을 내려다 보다가

그녀가 다시 고개를 천천히 들고

정면을 향해서 오른손을 천천히 손가락들을 폈다.

손가락들마다 빛이 번쩍거리며 쏟아지기 시작했다.

주변의 물들이 부글부글거리며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짙은 갈색의 물들과 마찬가지인 짙은 남색인 물들이

나중에는 음험한 아주 진한 검은색으로 마구 변했다.

심하게 요동을 치며 위아래로 미친 듯이 격렬하게

오르내리며 붉고 검게 불안과 공포를 담은 듯

빠르고 불규칙하게 움직이던 액체들은

그녀에게는 침범하지 못하는 것처럼

다가오지를 못했다.

그녀의 알몸만은 견고하고 강력한 물체처럼

그런 색체의 변한 물에 물들지도 시달리지도 않았다.

그녀가 손을 온전히 그리고 편안하게 다 펴자

더 이상 손가락들마다 빛살들은 수중에서 쏘아져 나가지 않았다.

물들도 평온한 처음처럼 잠잠해지면서

이윽고 그녀와 그녀가 들어간 물은 조용한 평화와 적막한 행복처럼

막막할 정도로 지루한 긴장으로 돌아갔다.

다시 그녀는 두 눈을 감고 따뜻한 물속에서

느긋한 헤엄을 치는 치어(稚魚)처럼

전부터 몰두하던 조건에서 다시 그대로 반복했다.

그녀가 되어야만 하는 여신과 상징의 단계에서 습득해야만 하는 것들을.




또 다른 날들이 올 것이다.

그래도 그녀는 이곳에서 혹은 다른 곳에서 계속

또래의 소녀들과는 다른 삶을 혹은 다른 일상을 보내야만 한다.

그녀가 계약에 동의했었고 그녀가 선택했으므로

어쩔 수 없다.

이제 와서 돌린다거나 계약을 파기할 수도 없다.

그렇지만 그녀도 이제는 다른 삶을 살아보고 싶었다.

가능하다면 이 모든 것들을 다 잊고.

세상의 아름다운 표면에 속아서

그 후에 상호간의 거래로 자신의 삶을 교환한 결과는

대가로 보기에는 너무 초라하고 너무 부당했다.

적어도 자신의 계산으로는 너무 부당했다.

그러나 이런 외침을 들어줄 이가 없었다.

세상 사람들은 겉으로는 아름다운 말들을 늘 늘어놓지만

행동으로는 절대적으로 사과하거나 반성하지 않았다.

그 놀랍도록 무책임한 태도가 세상의 숨겨진 실체였다.

어른들은 그래서 그토록 혐오스러운 것이라고

소녀는 본능적으로

그리고 절실하게 후회하게 되었다.

자신도 언젠가는 어른이 된다고 생각을 가끔 하게 될 때면

너무 놀랍기도 하고 그만큼 두렵기도 했다.

나도 저들과 똑같아질까.

어처구니가 없다는 점이

세계를 구성하고 있는 가장 기초적인 진실이라면

자신은 정말 사소한 희생에 불과할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에

그녀는 가끔 울기도 했다.

집에서는 오빠도 그리고 아버지나 어머니도

자신의 이런 진실 혹은 현실을 모르고 있었다.

멸망은 그녀가 원하는 바가 아니었지만

그녀는 자꾸만 어떤 부름을 듣는 것만 같았다.

내가 왜 이런 운명에 떨어졌을까.

그 부르는 목소리는 도대체 무엇이고 어디서 들려오는 목소리일까.

처음으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그렇다면 나는 무엇이라도 하고 싶다.

하지만 할 수 있는 것과 하고 싶은 것은 서로 완전히 다르다.

어른들이 만든 이 세상을 나는 부수고 싶다.

하지만 어째서 나도 곧 따라가듯이 따라하듯이 어른이 되고 마는 걸까.

곧 나도 어른이 되겠지?

이 물속은 평화롭고 모든 것이 완전하게 갖춰져있다.

물 밖을 나오면 그러나 나는 다시 달라진다.

세상은 평화롭고 즐거우나

나와 다른 소녀들은 그렇지 않다.

이런 걸 불평등이라고 부르기보다는 뭐라고 불러야 좋을까?

왕국에 알려진 내 근황들은 언제나 정상적이다.

그리고 왕국도 멀쩡하고 평화롭다.

내일이 되면 나는 무엇이 되어있을까.

그 점이 그녀는 가장 궁금했고 또 가장 두려웠다.

세상은 그대로인데 나는 그렇지 않고 나는 없을 수도 있다는

너무 대조적인 점이 그녀를 가장 괴롭혔다.

물은 차가웠지만 그녀의 내면은 불처럼 뜨거웠다.

다시 다른 단계의 수련을 받으러 곧 이곳을 떠나야만 한다.

다음 단계에서는 물 수련하는지 왕국의 높은 교관들은

가르쳐주지도 않았다. 늘 그랬듯이.

미소녀 보물상자와 거울과 반지.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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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 내가 아는 세상 24.07.10 8 0 11쪽
76 세상의 끝에서 다시 돌아온다고 하더라도 24.07.10 4 0 14쪽
75 운명을 결정하는 자 24.07.09 4 0 13쪽
74 신비한 나무: 기적의 갑옷 24.07.08 7 0 12쪽
73 기한이 정해지지 않은 시험 24.07.07 6 0 12쪽
72 불의 보석 24.07.04 5 0 11쪽
71 얼음의 보석 24.07.03 8 0 14쪽
70 용의 보석 24.07.02 9 0 13쪽
69 이 낙엽들도 언젠가는 타오르는 불길로 24.07.01 2 0 12쪽
68 다시 돌아온 이 계절에도, 그러나 24.06.27 4 0 12쪽
67 너와 나의 건널 수 없는 강물 24.06.26 4 0 12쪽
66 참을 수 없는 아픔보다 더 괴로운 건 24.06.25 3 0 12쪽
65 시간의 물살을 거슬러 다시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24.06.24 3 0 12쪽
64 잠든 손의 반지 24.06.20 1 0 11쪽
63 타오르는 얼음처럼 24.06.19 4 0 12쪽
62 시간과 공간의 밖에서 24.06.19 5 0 12쪽
61 너도 나도 다 사람이지만 24.06.18 6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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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잘된 것은 잘된 것일 뿐 24.06.11 3 0 12쪽
55 어디선가 그랬었던 것처럼 24.06.10 1 0 11쪽
54 문신의 비밀 24.06.05 2 0 12쪽
53 처음부터 정해진 운명인 것처럼 24.06.03 6 0 12쪽
52 인생에서 마침내 사라지는 사람들 24.06.03 6 0 12쪽
51 어쩌면 만났었을지도 모르는 24.05.30 2 0 12쪽
» 왜라고 묻지 말지어다 24.05.29 3 0 11쪽
49 다정한 어리석음은 이렇게나 달콤하구나 24.05.28 1 0 12쪽
48 쓸데없는 욕망의 시체들 24.05.27 2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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