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상자와 거울과 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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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왕국
작품등록일 :
2023.09.12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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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18 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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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 나도 다 사람이지만

인생에서 무엇인가를 추구한다는 것, 그리고 그 길들




DUMMY

횃불들은 타오르면서도 동요하거나 흔들리지 않았다.

어둠 속에서 뜨겁고 차갑게 암흑과 불안을

불살라서 내쫓겠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과 함께 이 차갑고 깊숙한 공간을 지키고 있겠다는 듯이

수호와 결의의 맹세와 표지처럼 말없이 그리고 굳세게

지키고 있는 병사와 문지기처럼

동굴에 대한 침묵을 앞장서서 방어하고 있는 것처럼

끊임이 없이 그러나 안정되고 지속적으로 타오르고 있었다.

둥근 천장은 위로 차츰 올라갈수록 볼록하게 치솟아가는

둥근 구조였지만 거기에 매달리듯 박혀 있는

괴물들의 조각상들은

반대로 바닥을 내려다보면서 흉칙하고 흉악스럽게

완만하고 둥글게 튀어나와 있었다.

길고 굵은 강력한 이빨들을 드러내고

공포의 감정을 줄 수 있어서 환희하듯이 만족스럽게 웃고 있는

이마 양쪽으로 옆머리마다 뿔이 달린 괴물들은

영원의 시간 속에서 편안하고 무감동한 가수면 상태에 있었다.

다시 분노로 뛰쳐나올 준비만을 하고 있는 듯

즐겁고 태연자약해서 위협적이고 강력한 권능을 과시하고 있었다.





데이모레페이게스는 꿇어앉아서 눈을 감고 있었다.

지금 이 인공 석조물로 만든 인공 동굴에는

아무도 없었다.

동굴은 산꼭대기에 만든 인공 동굴이었고

동굴을 떠받드는 기둥들 사이로 훤히 뚫린 공간들이

여기저기 있어서 산밑으로 까마득하게 내려가는

완전히 개방된 풍경이 어둠 속에서 펼쳐져 있었다.

위가 굵고 가운데는 약간 가늘어졌다가

다시 동굴 바닥 가까이 내려온 부분만 굵어지는 기둥들 옆으로

부드러운 바람이 간혹 불어올 뿐

바람조차도 이 인공 동굴에게는 방문하는 법이 드물었다.

사람들은 더욱 오고 가는 흔적이 드물었다.

왕래를 하다가도 저절로 알아서 돌아나갈 공간이었다.

데이모레페이게스는 언제까지고 꿇어앉아있을 듯이

가만히 두 눈을 감고는 두 손도 무르팍에

차분히 얹고만 있었다.

바닥에 떨어질 깃털 소리들도 들릴 것처럼

차갑고 메마른 시간들이 쌓여갔다.

그가 천천히 두 눈을 뜨고는 동굴 정면에 안치된

크고 긴 괴물 신상을 쳐다보았다.

신상의 튀어나온 두 눈동자는 빛깔이 없는 죽은 눈동자여서

석재다운 물질이었지만

데이모레페이게스는 끝없이 들여다보기라도 할 듯이

올려다보았다.

천천히 그가 마침내 일어나서 동굴을 등을 돌리고는

바깥으로 걸어나갔다.

기둥과 기둥 사이로 훤히 열려있듯이 뚫려지게

처음부터 설계된 그 공간 사이로.













영원히 그냥 저렇게 살게 내버려두자.

저들에게는 저들 나름대로의 행복이 있겠지.

그리고 나에게는, 나만의 후회가 있을까? 나만의 불행이 있을까?






엔티레이미크의 교관이었던

데이모레페이게스는 동굴을 나오면서

천천히 마음을 다잡았다.

그는 한때는 더웬델러스케펠경에게도

마법을 가르쳤던 적이 있었다.

왕국에서 마법을 국가적인 전략의 일환으로

특정한 사람들을 선발하여 훈련시켜 왔었다.

그런 비밀한 국가적 계획 이후로 어느덧 상당한 시간이 흘렀다.

몇 백 년은 지난 듯싶었다.

왕국은 그 마법의 가공할 위력을

긴요하게 그리고 비공개로

유용하게 잘 썼으리라.

어디에 마법의 힘들을 얼마나 사용했는지는

평범한 국민들은 모르고 살았지만.




무엇이 나를 이토록 지금까지 붙잡고 있을까?

데이모레페이게스는 소원인가 욕망인가

지금 자신이 붙잡고 있는 것들을 추측해보았다.

잘 가늠이 되지 않았다.

모든 것이 막연하고 모든 것이 뒤섞여버려서 그런 것일까.










그런데 나는 왜 이렇게 행복하지?

생각을 해보면 우습기도 하고 이해가 되지도 않았다.

어쨌거나 자신은 지금은 행복했다.

과거에는 미칠 듯이 괴로웠지만.

지금은 자신이 걸어가고 있는 이 길과

이 길의 끝에 어딘가에 있을

삶에 대하여 행복과 평안한 마음이었다.

포기인가? 체념인가? 달관인가?

자신이 자신의 마음을 잘 모른다는 것이

데이모레페이게스에게도 어처구니가 없을 때가 가끔 있었다.





나는 왜 행복한가?

데이모레페이게스는 조심스럽게 주의를 기울이듯이

생각에 잠기고는 했다.

그는 상당히 높은 신분까지 자신의 능력만으로 올라갔으므로

잡일이나 험한 업무는 당연히 지시만 내리는 위치였다.

지금의 직위는 능력으로 임명이 되는 직분이었으므로

그의 혈통과 가문만으로는 가능한 것이 아니었다.

물론 이 모든 영광된 가문들 가장 위에는

국왕의 가문이 있었지만.

일상이 바빠야 할 이유라고는 없는 특수한 신분이었으므로

그는 자주 한가한 틈이 많았다.

그때마다 호수의 잔물결이 한낮의 따분한 평화 속에서

영원의 시선을 하고 언제나 제멋대로 뒤척이면서

자신들의 이야기를 반짝이는 정오의 눈빛으로 속삭일 때마다

그도 자신의 내면으로 가라앉았다.

이제는 지난 모든 과거가 되었으므로 그런 것인지

자신이 행복한 것이 가끔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인간은 감정을 타고

그 감정의 물결 위에서 흘러가는 존재이지

감정을 지니고 그 온갖 기쁨과 불행과 슬픔과 분노와 환희와 열광을

품고 살아가는 존재는 결코 아니었다.

착각에 불과했고 아무리 오랜 세월을 살아도

그저 모르고 살다가 그대로 무덤에 들어가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인간이 감정을 지니고

그 감정에 울고 웃으며 분노하고 사랑하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 감정이 잠깐 잠깐씩, 그저 인간들을 스치고 지나가며

가끔은 그 인간들의 마음을

통과하거나 꿰뚫었거나 그저 그렇게 주인이 하인에게

지시를 하듯이 명령을 할 뿐이었다.

감정이 인간들을 농락이라도 하듯이 불쑥 찾아왔다가 불쑥 또 떠나버렸고

감정의 물결 위에서 항해를 하는 배가 인간이었지,

인간이 감정을 가지고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니었다.

정열이 인간을 찾아와서 부추기는 것이었지

인간이 정열을 찾아내서 그 정열로 무엇인가를 마음대로 즐기는 것이 아니었다.

정열이 예고도 없이 연락도 없이 떠나버린 삶은

빈 집처럼 공허하고 허무해졌다.

이제 자신이 행복한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을 하면

데이모레페이게스는 과거와 현재가 부조화스러워서

과거와 현재가 서로 전혀 다른 것들로 느껴졌다.

지난 과거가 내게 남아있지 않다면

과거는 내게 무슨 의미가 있었을까.

지금은 과거와 다른 상태의 삶일까.

나는 무엇일까.

과거의 나는 무엇이었고 지금의 나는 무엇일까.

그렇다면 장차 앞으로의 나는 또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삶이란 과연 어떤 것이길래 이토록 혼돈에 가득 찬 무엇일까.







죽은 왕녀를 위한 의식처럼

데이모레페이게스의 삶은 경건하고 신성한 목표인

왕국의 안녕과 왕국의 번영을 위해서 봉사하고 있었다.

그런 목적에서 그는 종사하고 있는 삶이었다.

그렇게 그 길을 가려고 데이모레페이게스가 스스로

선택을 했었다.

그러나 죽은 왕녀는 죽은 왕녀였고

다른 사람들은 여전히 살아서 숨쉬며 활동하고 있었다.

죽은 과거의 그림자는 무덤들 위를 얼씬거리며 거닐게 해야만 하리라.

그러나 살아있는 오늘의 양지에도 죽은 사람들이 온갖 구실로

간섭과 참견처럼 끼어들었다.

그 장막과 커튼은 사랑이라고 불러도 그만이었고

충성이나 서약 등 온갖 이름으로 드리워졌다.

과거에 붙잡힌 삶에도 미래는 다가오리라.

당연히 그러겠지? 데이모레페이게스는

막연하고 모호했지만 미래에 대한 예감처럼

일상을 그저 차근차근 준비하자고 마음을 다졌다.



데이모레페이게스는 다시 임무를 받고

잠깐 외출 아닌 외출을 해야만 한다.

그가 만나야 하는 사람은 데이모레페이게스가

찾아올지도 모르고 있겠지만.





들판에 피어난 꽃들과 풀들은 푸르러서

계절의 진행이 완연해졌다는 것을 느끼게 했다.

세상에 이토록 가득한 생명이 피어나듯

언제나 세상에는 모든 것들이 갖추어져 있었다.

사랑도 행복도 평화도 즐거움도 쾌락도 오락도.

그러나 가끔 그에게는 없을 때가 있었다.

그리고 어떤 때에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런 것들이 없었다.

그렇다면 그런 것들이 그에게 없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데이모레페이게스가 없는 때가 있는지도 몰랐다.

세상에 그가 없는 것이다.





데이모레페이게스가 가만히 서서

그가 들어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을

주인은 모르고 있었다.

아마도 그랬기에 놀라서 데이모레페이게스를 보자마자

짧고 큰 외마디 고함을 질렀을 것이다.

아! 왜 여기에?

데이모레페이게스는 천천히 고개를 들고

그를 혹은 그의 두 눈을 바라보았다.

길고 넓은 옷깃이 양쪽으로 내려가는

푸른색 상의를 입고 있는

데이모레페이게스는 여전히 매우 수려하고 멋졌으며

그리고 나이보다 훨씬 동안이었다.

남자답게 곧고 각이 진 옆얼굴의 턱선을 비롯하여

반듯한 직선들의 이목구비는

섬세하게 늙은 흔적이 가벼운 스침처럼

나이가 내려앉았으나

여전히 실제 나이보다 더 젊고 더 인상적이었다.

데이모레페이게스...

데이모레페이게스의 두 눈이 엷은 불길로 붉게

서서히 타오르기 시작했다.

데이모레페이게스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매력이 흘러넘치는 호남아의 외모와는 달리

그의 목소리는 어린아이가 장난을 치면서 내는

목소리처럼 기묘했다.

국왕 전하께서, 너를 특별히 보자고 하신다.

나, 난... 나는...

그는 데이모레페이게스가 전부터 잘 알고 있던 사이였는지

스스럼이 없고 나이도 비슷한 것 같았다.

데이모레페이게스가 그에게로 성큼성큼

침착하지만 위협적으로 다가왔다.

데이모레페이게스의 옷은 푸른색이었으므로

자꾸 눈이 부시게 빛에 휩싸이게 되었다.

데이모레페이게스가 다가가는 사람의 뒤에서

빛들이 환하게 들어오고 있어서

그 사람에게는 데이모레페이게스가

잘 보이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불의 보석이 어디에 있는지

이야기만 해줄 수 있다면,

그렇다면 국왕께서는 자네를 그냥 내버려두시겠다는군.

난, 나, 나, 나는... 진짜, 몰라.

모른다고? 누구나 일단은 그렇게 부인부터 하고 보지.

그러나 자네가 말을 안 한다고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서 확인을

못 하는 것이 결코 아니라네.

내가, 말하고 싶다고 말을 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

내가 모르는 걸 내가 어떻게 말을 해줄 수 있겠어?

그러지 말게나, 데이모레페이게스...

그러나 데이모레페이게스는 그에게 더욱 다가서고 있었다.

나, 나를 못 못 믿는 건가...?

믿지. 믿기야. 하지만 자네가 이젠 필요가 없어졌으니.

누, 누가?

그러나 그가 대답을 미처 듣기도 전에

데이모레페이게스는 오른손을 이리저리 아주 느리고 완만하게

둥글게 휘감기도 할 듯이 혹은 쓰다듬기라도 하듯이

기묘하고도 어지러운 곡선을 그리면서

차츰 그의 얼굴을 만지려고 가까이 대었다.

데이모레페이게스가 오른손으로 괴상하면서도

놀라운 환상(幻像) 같은 선들을

느리고 기이하게 그리면서

허공에서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그의 손바닥에서 현실에서는 볼 수 없는

오묘하고 신비로운 색채들의 빛들이

은은하게 그러나 음험하고 위협적으로 빛났다.

데이모레페이게스가 왼손으로 그의 오른쪽 어깨를

꽉 붙들고는 오른손으로 그의 이마부터

이쪽저쪽 그의 뺨을 어루만지자

그는 허물어지는 짚단처럼 서서히 풀썩, 쓰러졌다.

그의 두 눈은 크게 뜨고 있었으나

이미 그의 숨은 끊어져서 편안하게

영원 속에 잠들어있게 되었다.

불의 보석과 자네는 자네의 일생을 맞바꾼 것이라네.

오래 더 살 수도 있었지만.










이 사람은 죽은 왕녀를 닮았던, 그리고

데이모레페이게스가 사랑했었던 여자의 먼 친척이었다.

그녀의 먼 친척이라서 이제 와서 데이모레페이게스가

더욱 반가웠던 것도 아니었고

그녀의 먼 친척이라서 데이모레페이게스가

모든 책임은 이 사람에게 있다고 생각하여

더욱 분노로 가슴이 들끓어올랐던 것도

역시 아니었다.

그냥 기계처럼 데이모레페이게스는

맡은 임무만 완수하고 또 돌아갈 뿐이었다.

그래서 어떤 감정도 그는 가슴에 싣지 않았다.

단지 데이모레페이게스가 지금 죽인 사람은

검은 성에 소속된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데이모레페이게스는 푸른 성에 소속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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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도 나도 다 사람이지만 24.06.18 6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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