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상자와 거울과 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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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왕국
작품등록일 :
2023.09.12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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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9.18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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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3회 : 금지된 마법서

인생에서 무엇인가를 추구한다는 것, 그리고 그 길들




DUMMY

백작은 뒷짐을 지고 크고 넓은 방안을

그저 왔다 갔다, 무턱대고 이리저리 뚜벅뚜벅 걸어다니다가

다시 다른 쪽으로 가고 있었다.

방은 쾌적하고 찬란한 금빛으로 온통 사방이 번쩍거렸다.

크고 넓은 품의 소매와 위아래의 옷들은

모두 황금의 눈부신 금실로 수를 놓아서

고귀한 느낌마저 드는 매우 고급스러운 복장이었다.

백작은 고개를 숙이고 성급한 분위기마저 느껴질 정도로

이제는 빠르게 걷고 있었다.

그래서 그가 있는 큰 방이 웬지 비좁게 느껴졌다.

방에는 백색과 금색이 섞여서 만들어진 호화스러운 의자들과

작은 탁자와, 그 탁자 위에는 방과 비슷한 색깔의

무척 값비싼 가격으로 짐작되는 도자기 주전자와 찻잔들이

놓여있었다.

그리고 멀찍이 그의 먼 곳 벽에 큰 책상이 하나 있었고

그 책상에도 의자가 하나 딸려있었다.


백작의 금발머리는 길게 길러서 금빛의 약간 넓은 폭으로 된

끈으로 한 번 묶었고 그리고 그 금발머리는 가발이 아닌 것 같았다.


"어째서 내 몸에서 나온 자식인데

왜 이토록 내 뜻을 따르지 않는가?"


자탄하듯 푸념을 하는 목소리라서

신경질과 울분이 가볍게 섞인 듯한 어조였지만

그러나 방에는 그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었다.


그의 혼잣말을 잠자코 들어줄 사람도

그에게 그런데 말입니다, 백작님, 우리는 오늘 여기서 이상한 점을,

하고 대화를 주고 받을 사람도.


그가 부지런히 성실하게 걸어다니듯이

돌아다니다가 갑자기 걸음을 뚝, 멈춰서버렸다.

몸을 돌리고 그 앞의 먼 곳의 벽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그가 중얼중얼거렸다.

혼잣말의 목소리는 그렇게 억양과 음조가 높지 않았다.


내가 나를 배신하고

내가 나를 거역하는 게


가능할까?


그런 게 세상에 있을까?


백작은 공허한 독백을 추가로 그렇게

한마디 두 마디 더 허공 어딘가쯤에 덧붙이더니

다시, 이번에는, 느릿느릿 느린 속도로

방을 또다시 저벅저벅 왕복을 해가며 걸어다니기 시작했다.

가로의 길이가 세로보다 약간 더 긴 극도로 호화로운 방을

가로의 방향으로 이쪽에서 저쪽으로 왕복을 해가면서

약간 어두운 얼굴로 실내의 바닥을 들여다보며

걸어다니던 백작이

고개를 들며 말했다.


그렇다면,

세상의 모든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적혀 있다는

금지된 마법서,


트와레크메이워스에는 혹시 적혀있지 않을까?










모든 것이 이제는 이전과 달라졌다.

과거의 껍질 비슷한 것을 붙잡고

우두커니 어리석고 무기력한 모습으로

지난 날만을 돌아보고 있다니.


실력만이 너를 증명한다던

이 세계의 엄정하고 정확한 불문율이자 법칙.


"실력만이 너를 증명한다."


내가 누구인지 내게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은

내겐 필요가 없다.

이 세상도 나도 그리고 타인들

그 누구도 그런 것을 원하지 않는다.

내게도 자신들에게도.


내가 뭘로 이루어졌는지

관심이 없는 사람들에게

그러면 나는 무엇이란 말인가?


모든 것을 어떤 것들이 휩쓸고 지나갔다.

그리고 그 후로 무수한 평범하고 조용한 날들이 다시 이어졌다.

그러나 겉으로만 평온하고 침착했었지,

무엇인가가 이미 달라져 있었다.

아주 작은 미세한 금이라도 아주 사소한 변화라도

결국엔 변해 있었다.

다만 눈에 보이지만 않았다고 하더라도.


돌아보면 그 당시에는 그 모든 것들이 왜 그렇게 힘들었는지

잘 모르겠다.

그토록 고통스럽고 그토록 지독하게 지난(至難)하던

그 많은 것들이.

이상야릇한 착각이거나 구경하듯이 지켜보았던 남의 불행도 아니었는데도

왜 당시의 혼란스럽고 쓰라리던 느낌들이

왜 이제 와서는 전해지지도 않을까.

과거는 저만치 저 멀리 뒤에서

지금의 이곳 현재와는 사뭇 다른 얼굴로

그저 여기를 쳐다만 보고 있구나.



세상의 모든 정보와 비밀과 운명이 기록된 마법서,

이 마법서를 만들기 위해서 비밀스럽고 은밀한

거대한 희생과 그토록 괴로운 노력이 따라야만 했었다고 한다.

만 명의 마법사들이 모여서

그 많은 마법사들이 똑같이 공평하게 한 명씩...






그래,

나는 세상의 모든 알려지고 알려지지 않은 사실과 비밀과

정보와 장차 먼 훗날까지의 운명까지 다 적혀 있다는

금지된 마법서를 찾아서 멀고 먼 여행을,

아주 먼 그곳까지 갔다 왔지.


그래서 결국 원하던 미래의 운명을 알게 되었냐고?


마법서가 있는 곳은 정확하게는 아무도 모르고 있었어.

모두들 한마디씩 말하지만

그들이 알고 있는 장소는 제각각 다 달랐지.

각자 다른 곳으로 알고 있었던 거야.

어쨌든 나는 천 개의 강을 건너고,

999개의 들판을 지나서

드디어 그곳에 도착하기는 했어.


먼저 동굴부터 이야기해주지.

동굴을 지나야만 그 동굴 뒤의 길로 계속 나아갈 수 있는데

그 동굴도 평범한 동굴이 아니었던 거야.

마법의 동굴이었던 거지.

그 동굴에 들어가게 되면 말이야,

빛이 완전히 사라져서 어떤 것도 보이지 않아.

완전한 어둠.

절대적인 암흑.

그곳에서는 심지어 소리조차도 들리지 않아.

그 동굴은.


그리고 그러다가 언제부턴가

차츰 자신이 돌로 변하는 느낌을 느끼게 된다네.

암석의 하나로 변해가는 것이지.

나는 억지로 정말 죽을 힘을 다해서

내가 딱딱한 돌덩이로 변해가는 것에 저항을 했다네.

그런데 어떤 노력도 소용이 없어.

불가항력인 거지.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니

몇 십 개의 단 몇 백 개의 단에

그런 돌들이 사방에 널려서 조용히 그리고 얌전하게 놓여 있는 거라네.

제각각 다른 모습들로 굳어진 돌들이 되어서.

키가 큰 사람 모양의 돌,

키가 작은 사람 같은 돌,

우습게도 입맞춤을 하다가 돌이 된 듯한 두 남녀 모습의 돌들,

더 적나라하게는 남녀간에 옷을 벗고 성욕을 만족시키려고 하는

그 모습 그대로 굳어버린 돌들.









인내의 동굴이라네.

그 동굴의 이름은.


나도 잘은 모르겠는데

나중에 들은 바로는

그렇게 돌로 변한 사람들은

결국은 그 관문 비슷한 그곳을 통과하지 못했으니까

그렇게 돌로 남은 것이라고 하더군.

나? 나는 통과했으니까

그 금지된 마법서도 읽고 이렇게 귀환해서

돌아온 것이 아니겠는가?



다시 얘기나 계속하겠네.

나도 그래서 내 체격만큼의 돌 한 덩이로 변했다네.

그곳엔 실로 온갖 종류의 돌들이 있었지.

머리도 돌대가리처럼 돌로 변해버린

몸집도 키도 생김새도 다 다른 돌들이

즐겁게 춤을 추다가 그대로 멈춰라, 라는

어린아이들의 소꿉장난 놀이처럼

그렇게 그 자리에서 전부들 우뚝,

그리고 바보처럼 멈춰서있었다네.

그 조각상 비슷한 꺼칠꺼칠하고 투박하고 거친 겉표면으로 된 암석들이

귀족들이 호화로운 자신들의 정원에 세워둔,

비싼 취미로 돈을 줘서 만든 조각상들처럼

만들어진 단 하나마다 그 위에 놓여져서

몇 백 몇 천 개씩 끝도 없이 늘어서 있고

또 그 단은 온통 모든 동서남북으로

역시 몇 백 몇 천 개의 행렬이 줄을 지어서 이어지는

그냥 보기만 해도 숨막히는 장관이

내 눈에 들어온 것이라네.

믿기 어렵지? 믿겨지는가?


나도 사실은 그렇게 변해가는 한 덩이 돌덩이였었다네.

더 지독한 건 내가 그런 돌인데도 나에겐 아직 의식이

남아있다는 것이라네.

그 모든 걸 의식하고 생각하고 느낄 수 있는 정신이

여전히 남아있다는 것.

나는 그러면 생물인가 무생물인가?

대철학자 아리레우페스토텔레스가 정립한

생명을 정의하는 개념으로서의

생물과 무생물의 구분에 내가 해당될까?

어디에 해당되나? 그렇다면?


돌이 되었던 나는 차차 다른 걸로 변해갔다네.

그게 끝이 아니었던 거야.

뭔지 아는가?

구름 같은 무화(無化)된 존재로 변한다네.

아, 물보다는 훨씬 부드러워도

구름도 완전히 무(無)는 아니지만

어쨌든 구름이 물질로서 어떤 것인가?

희한하게도 어둠 속의 겨우 기이할 정도로 눈에 보이는

다른 돌로 변한 사람들은 그대로 있는데

내가 내 모습은 못 보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점점 더 연기 같은 구름이라는 기체로 변한다는

강렬하고 너무도 분명한 체험 같은 이상한 느낌을

자꾸 느끼게 된다고.

그리고 그 구름이 되고 나서

나는 더 나쁜 경험을 하게 되었다네.

구름들이 모여서 점차 결합하듯

뭉쳐지는 것이라네.

나도 모르고 있는 곳에서 내가 모르고 있던 존재로서의

온갖 화려하고 다채로운 찬란한 색깔들의 구름들이

강한 접착성으로 달라붙듯 서로 스며들어서

강력하게 붙어버리는 거라네.

점점 더 붙어버리는 몸집들이 계속 점차적으로 증대되어가만 가는

더욱 거대해지는 구름들의 뭉치.

나는 원하지도 않았지만 어느새

그 헤아리기도 힘든 부드럽고 푹신푹신하지만 굉장한 양(量)의

더없이 희고 아름다운 빛의 구름 속에

한 줌의 같은 구름 덩어리로 완벽하게 흡수되고 말았다네.

나는 더 이상 없었어. 나라는 존재는.



그런데 가장 경악스러운 점은

그 구름들이 모두 의식과 정신을 가지고 있다네.

그 점은 구름 속의 작은 솜뭉치 같은

그 많은 큰 구름들 속의 극히 미약한 구름 한 조각인

나도 마찬가지라네.

서로 정신을 가지고 있으니까 대화를 본격적으로

이제부터는 주고 받는 거야.

아주 짧은 한순간이었지만 정말 너무 시끄러웠다네.

내가 알고 있는 언어, 내가 태어나서 처음 들어보는 낯선 언어들,

별별 언어들로 별별 대화들을 혹은 내용만 그저 짐작만 되는

그런 소음들인 대화를 주고 받고 있는 거야.

고함을 치는 남자들의 음성부터

조용하고 차분하게 일상적인 수다만 주고 받는 여자들의 음성과

가족간 같은 나이 든 목소리와 어린 아이들 같은 목소리 들이 오고 가는 대화들 등등.



너무 시끄러워서 정신이 어지러울 정도로

많은 목소리들이 들려오는 거야.

그것도 한꺼번에.

제대로 명확하게 구분해서 대화의 내용들을

파악하기조차도 힘들 만큼.

천장이 까마득하게 높아서 시선도 잘 닿을 것 같지 않는

검고 광활한 동굴에 온통 사람들의 음성이라는 소음들로

너무 시끄러운 거야.

몇 천 몇 만 몇 십만의 갈래로 찢어져서

포위하고 포박할 듯이 밀려오는 소리들로.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도로 사람으로 돌아와 있었네.

내 육신의 주인인 나 자신으로 되돌아온 것이라고.


그러니까, 그만 정신을 잃고 졸도를 한 것 같아.

내 짐작에는.

얼마나 오래 기절을 하고 있었는지는 그거야

내가 확인을 할 길이 전혀 없지만.




보물상자를 가지세요! 자신만의 보물상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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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10회: 블라스펙트 러페이케이퍼스 23.11.01 5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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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6회: 내게는 뭔가가 없었다네 23.10.25 17 0 12쪽
5 5회: 칼 판매상과 도시 23.10.23 29 1 15쪽
4 4회 : 내 이름은 엔티레이미크 23.09.19 45 1 4쪽
» 3회 : 금지된 마법서 +1 23.09.18 49 2 10쪽
2 2회 : 세상에서의 처세 +1 23.09.13 94 3 10쪽
1 1회 : 시장에서 +2 23.09.12 264 2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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