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천문(檀天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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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礎(고초)
작품등록일 :
2024.05.08 10:22
최근연재일 :
2024.09.19 06:30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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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3,753

작성
24.05.08 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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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글자
5쪽

서 (序) .

DUMMY

번쩍!

쏴아아!


세찬 빗줄기 사이로 검은 인영이 모습을 드러낸 순간 마치 정지된 듯 굵은 빗방울이 인중에 멈춰 서고, 불꽃 같은 안광이 전면을 향해 이글이글 타올랐다.


그의 신형이 벼락같이 움직인 순간, 짓눌린 비명과 함께 진득한 액체가 차갑게 식은 팔목에 섬뜩하게 와 닿았다.


쿵!


썩은 고목이 넘어지듯 터져 나온 굉음과 함께 사방으로 튀는 붉은 물보라. 출렁이는 고인 물웅덩이와 대나무 사이, 모습을 드러낸 검은 인영. 꼭지에서 발끝까지 검은색 일색이다.


“지독한··· 놈들!”


그의 시선이 천천히 돌아갔다, 대 여섯 구의 처참한 시신이 쓰러진 대나무 사이로 을씨년스런 모습을 드러낸 이때, 피가 내를 이룬 시신 사이로 붉은 비단보에 싸인 아기의 가냘픈 호흡이 그의 귓불을 흔들었다.


“모두··· 없앤 것인가···.”


퍼붓는 빗줄기 사이로 흐르는 탁성과 입술 위로 드러난 헝클어진 하얀 수염, 굵은 주름으로 빼곡히 덮인 투박한 손이 비단 천을 들추자 문득 드러난 뽀얀 아이의 맑고 투명한 눈빛. 형형했던 그의 강렬한 눈빛은 순간 순한 양의 눈빛으로 변했다.


“아가! 미안하구나···.”


무엇이 미안하다는 것일까?


복면인은 품에서 하얀 무명천을 꺼내 바닥에 깔고 비단 천에 감싼 아이를 조심스레 들어내 옷을 벗기고는 낡은 무명옷으로 갈아입혔다.


하얗고 뽀얀 아기의 피부. 방글방글 활짝 웃는 아기의 밝은 모습이 검게 그을린 그의 손과 극명한 대비를 이루었다.


아기의 목, 그 목에는 용과 뱀이 하늘로 날아오르듯(龍蛇飛騰) 힘찬 필체의 글자와 알 수 없는 계곡 형상의 그림이 양각된, 은패(銀牌)가 철 고리에 엮여 있었다.


“은패···. 검은 반점···.”


옷을 벗겨내며 몸 구석구석 세세히 살피던 복면인은 아기의 오른쪽 가슴에 선명히 드러난 엄지손가락 크기의 반점을 뚫어져라, 응시했다.


마치 눈에 새겨 넣으려는 듯. 이때 툭, 떨어진 빨간 뭉치. 어른 팔뚝 굵기의 뭉치는 붉은 끈으로 칭칭 감겨있었다.


빨간 뭉치에 시선을 둔 그의 눈에선 뜻 모를 기광이 번뜩했다.


“역시···.”


예상했던 물건인 듯 그는 빠른 손놀림으로 보자기를 풀었다.


풀어진 붉은 보자기 사이, 두 장의 회색과 자주색 비단보자기가 기름종이에 곱게 싸인 상태로 모습을 드러냈다.


물건을 확인하던 그의 시선이 문득 치켜 들렸다.


멀리서 또 희미한 기척이 포착되었던 것.


“놈들이 또······.”


잠시 여유롭던 그의 눈에서 불꽃 같은 안광이 폭사 되었다.


백여 장 밖, 십여 명의 온기가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었다.


매우 가벼운 몸놀림. 지금까지 상대한 놈들과는 차원이 다른 녀석들. 그러나 그의 눈빛에는 초조한 기색이 전혀 엿보이지 않았다.


‘저런 허수아비 같은 놈 수십, 아니 수백이 몰려온다 한들 나 천룡검객 곽거정의 손끝 하나 건드릴 수 없을 것이다.’


곽거정?

이 자는 자신을 가리켜 천룡검객 곽거정이라했다.


얼마나 놀라운 이름인가.


오십여 년 전 무명(無名)의 존재로 무당과 소림의 장문인에게 무모한 도전을 신청, 오십여수만에 승리를 쟁취하고 홀연히 사라진 뒤 다시는 무림에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았던 수수께끼의 인물.


워낙 짧은 기간 무림에 무명을 떨치고 사라졌기에 그 이름이 주는 전설은 위대했다.


그 전설적인 고수가 천룡검객 곽거정. 그렇다면 이 사내가 위대한 전설적 검객 곽거정? 아님, 동명이인?


알 수 없는 건 그런 전설적인 고수가 왜 복면을 쓰고 신분까지 위장한 채 아이를 유괴(?)하는 해괴한 짓을 벌인단 말인가?


믿기 힘든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더 지체해서는 안 된다.’


입술을 질끈 깨문 그는 아이에게 얻은 물건을 모두 챙겨, 품 안에 넣고는 아이를 다시 무명천으로 조심스레 감쌌다.


“아이야! 이 모든 일, 천기(天氣)에 따른 것이다. 고귀한 네 신분··· 후~ 어쩔 수 없는 일···. 대업이란 괴물에 어린 네가··· 사실. 미안하구나. 하지만 평범하게 산다는 것, 칼과 멀어진다는 것 그것 또한 그리 나쁜 선택만은 아닐 것···.”


부르르.


갑자기 그의 오른손이 떨었다.


곽거정 그 자신도 놀란 듯 황급히 내려다보는데. 그의 손에 꽉 쥐어진 물건, 그것은 닳고 닳아 번들번들해진 그의 분신과도 같은 낡은 지팡이. 마음의 짐이 무거웠음일까?


물끄러미 내려다보는 그의 시선엔 알 수 없는 그늘이 희망의 빛에 혼재되어 나타났다.


‘그래···. 옳지 않은 짓이지. 그러나, 할 수 없잖은가.’


꽈꽝!


천둥 번개와 함께 귀를 찢어발길 듯 터진 낙뢰의 굉음에 귀가 먹먹한 사이, 그의 흔적은 순간 사라지고 없었다.


흔들흔들, 그가 남긴 자취일까?


서너 개의 기다란 대나무가 비린내로 진동하는 수풀 위로 흔들흔들, 고통의 여운을 여진처럼 남긴 채 말없이 흔들거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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