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천문(檀天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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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礎(고초)
작품등록일 :
2024.05.08 10:22
최근연재일 :
2024.09.20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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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08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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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 장. 평생지기와 소녀와의 운명적 만남

DUMMY

"그만 하세요 아빠!

제 머리가 무슨 무쇠머리인줄 아세요?"


키가 사척(尺)내외에 불과할 꼬마와 중년의 사내가 펄펄 끓는 무쇠솥을 앞에 두고 옥신각신하고 있었다.


오척 반에 불과한 작은 키에 평범한 인상, 볕에 타 검게 그을린 피부의 중년인은 영락없는 농부의 모습. 더욱 특이한 건 그의 머리 모양. 머리털을 가지런히 끌어 올려, 정수리에 틀어 감은 형상에 빛바랜 누런 구리 동곳(핀)을 꽂아 몹시 이색적이었다.


옷 또한 장포가 아닌 짧고 하얀 무명옷에 발목을 무명천으로 질근 동여맸고 신발은 짚으로 엮은 짚신을 신고 있는 모습이 여느 한족과는 확연히 다른 차림새였다.


쪼그려 앉은 꼬마 아이의 차림새 역시 중년인과 별반 다르지 않았지만, 머리를 뒤에서 엇걸어 땋아 한 가닥으로 하여 뒤에 댕기를 드려 늘인 머리 모양으로, 한 번도 자르지 않았는지 땅에 닿을 정도로 치렁치렁했다.


"넌 아빠가 흑피와 청피를 깨끗이 제거하고 하얀 백피만 잿물에 넣고 끓이라 누차 말했건만 그 말을 콧구멍으로 들었냐? 귓구멍으로 들었냐?"

"씨! 건져 내고 다시 끓이면 되잖아~!

그렇게 잘 하면 아빠가 하지 왜 나한테 시켜!"


꼴 밤을 매기며 중년인이 나무라자 꼬마는 참지 못하겠는지 벌떡 일어서며 꽥 소리쳤다.


입을 한자는 내밀며 퉁명스레 종알대던 꼬마는 억울했던지 쇠똥 같은 굵은 눈물을 방울방울 떨어뜨렸다.


동시에 질질 흘러나온 누런 콧물은 벌어진 아이의 도톰한 입술을 타고 넘어 앙~ 벌린 입속으로 꾸역꾸역 사라졌다.


“쯧쯧~”


화를 내며 나무랐지만, 안쓰러웠는지 혀를 끌끌 차던 중년인은 옷소매를 걷어 아이의 작은 코를 닦아주었다.


"흥! 흥! 자식 열 살이나 먹은 놈이 고거 몇 대 맞았다고 그렇게 서럽게 울건 뭐냐!"

"아빠! 저 친아들 맞아요!"


뾰로통, 툭 튀어나온 입에서 침이 튀었다.


아이의 급작스러운 반응에 정색하며 무슨 말인가를 하려던 중년인은 장난기가 발동했는지 정색한 얼굴과는 달리 눈가에 작은 주름을 만들며 소리쳤다.


"그래 욘석아! 너는 파천교(破川橋) 다리 아래에서 주워 키웠다!"


다리?

아이는 다리에서 주워 키웠다는 말을 듣기 무섭게 뚝 울음을 그치고는 곧바로 굳은 얼굴로 중년인을 올려다봤다.


중년인은 화난 표정의 아이 얼굴을 슬쩍 외면하며 먼 산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빠!”


몇 번을 정색하며 불러도 대답이 없자 아이는 곁에 있던 중년 여인을 향해 쪼르르 달려갔다.


"엄마! 나 정말 다리 밑에서 주워 키웠어? 맞아?"

"우리 집은 대대로 손이 귀해 나이 마흔이 넘도록 아이를 얻지 못했단다.

그런데 부처님이 도우사 귀엽고 앙증맞은 아이를 보내 주신 거지···."


아이는 넋 나간 듯 멍한 표정을 짓다 시무룩해지더니 푹 고개를 떨궜다.


충격적인 사실, 설마 아빠 엄마가 거짓말할 이유는 없는데. 고개 숙인 아이는 작은 돌이 눈에 밟히자 힘껏 걷어찼다.


퍽! 돌은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 담벼락에 부딪히곤 떼구르르 튕겨 나왔다.


멍하니 돌 구르는 모습을 지켜보던 아이는 문득 파란 하늘로 시선을 옮기더니 철퍼덕! 대성통곡했다.


일촌광음(?) 왕방울만 한 굵은 눈물이 펑펑 두 볼을 타고 쏟아져 내리는데.


"엉엉엉!"

"그만해 욘석아! 누가 돌아가셨냐? 너는 다리 밑에서 주워온 것이 아니고 엄마 다리 밑에서 주워 온 거야 알겠어! 그만 뚝!"

"그 말 맞는 거지~."

"당연하지 넌 엄마가 배 아파 낳은 아들 맞아."


아이는 엄마의 말을 듣자 이내 표정이 환하게 밝아졌다.


그리고는 뒷짐을 지고 서 있는 아버지를 향해 삐죽 입을 내밀었다.


그러나 그도 잠시, 아이는 두 부부의 손과 발을 보고 자신의 손발을 유심히 살피더니 이내 시무룩해졌다.


"하나도 닮지 않았네! 내 손은 짧고 뭉툭한데 엄마, 아빠 손은 길쭉하잖아, 엄마! 거짓말했지?"

"아니 이 녀석이 사실이라니까 자꾸 우기네. 당신! 얘한테 왜 그런 쓸데없는 소리를···"

"팽욱아! 너는 누가 뭐래도 아빠, 엄마 피를 받은 고려인이란다. 알겠지!"

"아니야! 거짓말하지 마! 성이 팽씨인데 어떻게··· 엉엉엉!"


어눌한 표정의 아이는 둘의 눈치를 보며 소리 죽여 울었다.


"쯧쯧! 욱아! 엄마 품으로 오련."


여인이 두 팔 벌려 오라 손짓하자 아이는 못 이기는 척 가려다 멈칫하고는 분이 가시지 않았는지 아버지를 흘겨봤다.


여전히 차가운 시선의 아빠를 확인한 아이는 복받쳐 오른 설움에 그쳤던 울음을 다시 터트렸다.


“엉엉!”


눈물, 콧물로 범벅된 얼굴을 연신 훔치며 아이는 아까보다 더욱 큰 소리로 울었다.


그리고는 웃고 있는 엄마를 향해 달려갔다.


“엄마!”

“녀석!”


넉넉한 미소에 둥글고 갸름한 얼굴의 시골 아낙 같지 않은 고운 피부를 지닌 여인은 아이의 볼에 자신의 얼굴을 비비고는 웃으며 속삭였다.


"팽욱! 귀신은 속일 수 있어도 이 엄마를 속일 수 없다는 사실, 너도 잘 알지?"

"···."

"아무리 울어도 엄만 눈 하나 깜짝 안 해요. 뚝, 그치고 이제 서당(書堂)에 공부하러 가야지."


풀 죽은 음성이 꼬마의 작은 입술을 비집고 흘러나왔다.


‘엄마는 속지도 않아···. 하루 정도는 봐줄 수 없나.’


엄마 그림자를 등에 지고 걸으며 꼬마는 눈물 자국이 지렁이처럼 남아있는 작은 눈을 한쪽으로 모아 흘기며, 계단을 뛰어내려 담 쪽에 붙은 싸리문을 거칠게 제치고는 닫지도 않은 채 터덜터덜 골목길을 따라 걸어갔다.


지금은 명나라 초기, 꼬마의 아비는 고려(高麗)에서 이주한 고려인 5세로 성은 팽씨이며 이름은 팽춘길, 개경에서 150여 년 전 왔다고 했다.


성을 팽씨로 개명한 건 거의 100년전, 그전의 성씨가 무엇이었는지는 아버지 춘길도 모른다.


그 당시 고려에서는 무신의 난으로 온 나라가 혼란에 빠지며 치안이 극도로 불안, 사방에서 도적이 창궐했다.


하늘의 분노일까.


10여 년 이어진 가뭄에 흉년이 들자 백성들의 삶 역시 피폐해져 초근목피로 연명하는 자, 굶어 죽는 자가 속출하게 되었다.


결국, 이들의 선조도 정든 땅을 버리고 하남성 외딴 시골인 이곳 봉담현(峰坍縣) 파지향(破紙鄕)까지 흘러들어 살게 되었다.


이곳 파지향은 보통 향과는 달리 가구가 일 천호 가까이 되는 인구 오천의 제법 큰 향으로 다섯 개 정도의 작은 마을과 향청을 포함, 시장과 주루, 기녀 원, 무관, 다점 등, 현 정도나 있을 모든 것이 갖추어져 있었다.


처음 50여 가구가 집성촌을 이루며 살던 이들은 오랜 세월이 흘러 중화에 동화되며 하나, 둘 흩어지더니 지금은 팽씨 한 가구만 남아 고려인의 명맥을 겨우 유지하고 있을 뿐이었다.



* * *



"수신제가(修身齊家) 치국평천하(治國 平天下)!"

"수신제가 치국평천하!"


열 평 남짓 크기의 황토흙벽과 짚으로 지붕을 얹은 초옥, 겉보기엔 초라한 모습이나 자세히 보면 정갈하고 단아한 자태가 곳곳에 베어 묻어나는 곳이었다.


한쪽에 열려있는 작은 사각 창, 그 작은 창을 통해 흘러나오는 낭랑한 아이들의 목소리는 따뜻한 봄날의 개구리 합창처럼 싱그럽다.


"좋다! 이 얼마나 좋은 말이더냐! 수신, 몸과 마음을 닦아···."


걸걸하고 묵직한 초로인의 음성, 그 앞에 10여 명의 아이가 서탁을 앞에 두고 옹기종기 모여 천자문(千字文)을 낭독하며 초롱초롱 작은 눈망울을 빛내고 있었다.


글 선생 낙방거사(落榜居士) 진평(陳評).


한때는 한림원 학사를 목표로 주경야독(晝耕夜讀)하며 학업에 정진하던 인물로 가진바 뜻은 높았으나 독불장군처럼 남들과 잘 융합되지 못하고 엉뚱한 생각과 발상으로 전통 사상을 어지럽히는 일이 잦아지자 진시에 합격하고도 중앙에 진출하지 못해 이런 시골 서당에서 아이들이나 가르치면서 여생을 보내는 50대 초로의 청수한 중년인이다.


"··· (중략) 나라를 다스릴 수 있느니라. 알아듣겠느냐!"

"예!!"

"다음은······."


어디선가 정체를 알 수 없는 미미한 소리가 낙방거사 진평의 귀를 간질간질 긁어 왔다.


진평의 눈과 귀는 소리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 사방위를 분주히 오갔으나 소리의 정체는 그의 이목으로도 알아챌 수 없었다.


짜증 섞인 표정에 역 팔자의 눈이 커졌다.


"모두 일어나거라!"


작지만, 냉막한 훈장님의 명에 아이들은 조용히 하나, 둘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때 큰 아이의 뒤로 하얀 옷의 댕기 머리 소년이 펼친 책 위에 머리를 붙인 채, 진한 물로 명나라 전도를 각인시켜 놓기라도 할 듯 가까이 뚫어져라, 눈 감은 채 있었다.


"팽수마(睡魔:잠 귀신)! 퍼뜩, 일어나지 못할까!"


항상 되풀이되는 일상이었지만 수마에 걸린 팽욱은 여전히 졸았고 회초리를 손에 쥔 글방 훈장은 기다렸다는 듯 손가락 굵기의 회초리로 가냘픈 아이의 종아리에 실선을 한 줄 두 줄 새겨 넣었다.


철썩, 철썩!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지만, 진평 그의 입가에는 뜻 모를 미소가 맺혔다, 스르륵 사라졌다.


그럼 선생은 취미가 때리는 것?


"넌 남아서 여기 청소하고 숙제해야 하는 사실, 잘 알지?"

"예···."


고개 숙인 댕기 머리 아래로 풀 죽은 음성이 흘러나왔지만, 동공은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았고 아래위가 하얗게 붙은 눈꺼풀만 두툼하게 도드라져 보였다.


‘에이그, 이놈 정말 대책 없는 녀석!’


혼을 내면서도 아웅다웅하면서도 그는 팽욱을 좋아했다.


이 아이가 비록 소수민족인 고려인에 형편도 썩 좋지 않아 학비 연체하는 일이 비일비재 했지만, 사물을 관찰하고 창의적인 생각을 끌어내는 탁월한 능력과 구김살 없는 명랑한 성격이 그는 좋았다.


특히 자신이 추구하는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실용학문을 좋아하기에 더욱 그랬다.


당시는 유교 사상을 앞세운 초기 명이 지배하는 시대였으므로 더욱 실용학문이 비집고 들어갈 공간은 없었다.


자신의 어릴 적 모습과 판박이 같은 이 아이를 끔찍이 아끼고 사랑한 그는 돈, 민족을 떠나 자신의 잃어버린 꿈을 대신 이루게 해줄 희망의 별로 키우려 노력하고 또 그렇게 실천하고 있었다.


학당에서는 다른 아이들과의 형평성 문제로 학습에 불량한 아이를 매번 혼내는 처지지만 이렇게 아이들이 모두 돌아간 뒤에는 둘만 남아 이런저런 실용학문에 대해 밤늦도록 교습했다.


'수준도 떨어지는 놈들이 한족이랍시고 거들먹거리며 아이를 구박하는 것을 보면 참 안타깝기 이를 때 없다만 그것 역시 네가 극복해야 할 하나의 과정인 것을 어쩌누···.'


교습 시작과 동시에 수마의 그림자는 어느덧 천리만리 사라지고 초롱초롱 빛나는 맑은 눈빛만 남아 세속에 찌든 그의 마음을 씻겨주며 함께 천진난만한 동심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욱아! 달걀은 왜 삶은 즉시 바로 찬물에 담그는 줄 아느냐?"

"그거야 뜨거우니까 빨리 식혀서 먹으려고 하는 것 아니에요?"

"맞아, 그도 하나의 이유는 될 수 있는 데 정답은 아니다."

"···."


작가의말

부모와 자식, 훈장 선생 사이의 뻔하디 뻔한 대화라며 식상하신 분, 하지만 결코 가벼이 넘길 소재가 아닌 소설 전반을 꿰뚫는 아주 중요한 이야기가 1-1까지 전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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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 13-3 24.09.06 138 9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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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13-1 24.09.04 150 9 11쪽
99 제 13 장 다시 만난 그리운 여인 24.09.03 159 10 12쪽
98 12-6 24.09.02 166 9 17쪽
97 12-5 24.08.30 175 9 17쪽
96 12-4 24.08.29 164 9 14쪽
95 12-3 24.08.28 156 8 12쪽
94 12-2 24.08.27 161 9 12쪽
93 12-1 24.08.26 166 10 11쪽
92 제 12 장 새로 찾은 조부(祖父), 그러나 24.08.23 187 10 12쪽
91 11-11 24.08.22 180 7 13쪽
90 11-10 24.08.21 179 8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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