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천문(檀天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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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礎(고초)
작품등록일 :
2024.05.08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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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27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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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7-6

DUMMY

비급의 도움을 받은 건 사실이지만 어찌 되었든 모든 난관을 자신의 힘과 의지로 돌파한 것은 사실 아닌가.


지금까지 얼마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른다.

옷은 옷이라 할 수도 없었다.

모두 다 찢겨 떨어져 나가고 몸 주요부위를 가리는 천 쪼가리 하나가 그의 몸에 남은 전부였다.


소지품 또한 대부분 잃어버렸고 오직 헤지고 떨어진 너덜너덜한 오혈천 비급, 한 권만이 그의 손에 쥐어져 있었다.


4단계 모두를 통과한 지금 그는 좀 전 각 단계를 통과할 때마다 느꼈던 오만이란 괴물이 어느덧 그의 뇌리에서 사라져버리고 없음을 깨달았다.


각성.

오면서 보았던 수없이 많은 이름 모를 무사들의 시신, 그들 또한 풍운의 꿈을 안고 여기에 도전했을 것이다.


비록 자신은 성공하며 이 자리에 우뚝 서 있지만 만일 비급과 행운이 함께 하지 않았다면 어찌 여기까지 올 수 있었을까.


마존(魔尊)!

여기가 정말 그분이 창조한 공간이 맞다고 하면, 그분은 후인이 어떤 사람이길 바란 것일까?


통상의 무공전수는 다 만들어진 완성품을 손에 쥐어 주는 그런 형식이 태반이다.


그런데 마존 이분은 개개의 능력에 따라 몸과 마음으로 부딪치며 깨우치도록 만들어 둔 것이니 위대하신 분이 아닐 수 없다.


문득 그분의 존안을 우러러 뵙고 자신의 오만과 독선을 뉘우치며 사죄받고 싶었다.


마존, 그분은 여기 4단계까지 왔지만, 자신의 어떠한 흔적도 남기지 않았다.


그럼 마지막 5단계에 가면 존체를 만나 뵐 수 있을까?

생각만 해도 온몸에 전율이 짜르르 흘렀다.

문득 생각이 미친 비급.


‘5단계 파(破)!’


별 기대를 걸고 펼친 건 아니다.

앞서 3단계, 답답했을 때 이미 끝까지 훑어봤었다.

역시나 앞서와 같이 미로처럼 그려진 약도만 있을 뿐 별도의 서술 내용은 없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뚫어져라, 살폈지만 역시나.


‘그래, 역시 없어···’


있다면 마노사가 했던 그 말뿐, 다시 한번 상기하며 되새긴 그는 비급을 보며 약도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한발 두발 오랜만에 밟아 보는 단단한 땅, 그리고 맑은 하늘, 아무렇지 않게 여겼던 평범함이 이 순간 이렇게 고귀하게 느껴질 줄이야, 웃음이 절로 터져 나왔다.


호쾌하고 시원한 웃음.

웃음과 함께 신형을 놀리는 순간 놀라운 현상이 일어났다.


마치 온몸이 순풍에 돛단 듯 아니 바람처럼 붕 뜨더니 앞을 향해 쭉 뻗어 가는 것이 아닌가, 몸은 종전보다 휠씬 빠르고 강하며 유연했다.


거기에 체질 또한 크게 변모, 독이나 기타 몸을 해하는 모든 것을 이겨낼 힘이 생긴 것이다.


단단한 땅에 두 발을 딛고 선 그는 하늘을 우러러 크게 소리쳤다.


"악적! 기다려라, 내게도 이젠 너를 이길 힘이 생겼다!"


찢어질 듯 가늘고 날카로운 의지의 목소리는 메아리가 되어 협곡 안을 수십 번, 소멸할 때까지 끝없이 맴돌며 퍼져나갔다.


권집은 자신의 까칠까칠해진 얼굴과 두 뼘이나 길게 꼬불꼬불 자란 검은 구레나룻을 쓸어 만졌다.


"노도사! 난 한번 진 빚은 절대 잊지 못하오, 죽지 말고 기다리시오!"


그런데 목소리가 왜 이래?

카랑카랑하고 음침했다.

자세히 보니 눈가에 어린 짙은 그늘이 마치 붓으로 그려 넣은 것처럼 선명했다.


그는 그 자신의 크게 변한 모습을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아마도 짧은 시간, 무공수위가 급격히 상승하면서 얻은 반대급부인 모양이다.


자신의 변화를 눈치채지 못한 그는 5단계, 마지막 남은 단계를 어서 정복해야겠다는 급한 마음에 쉼 없이 걸음을 재촉했다.


너덜너덜 색 바랜 비급, 험난한 여정을 함께 다니느라 비급 또한 온전치 않았다.


그의 휘젓는 팔 동작에 따라 손에 쥔 비급의 후미, 뒷장이 힐끗힐끗, 뭔가를 비쳐 보였다.


파(破)!

파라는 글자. 무엇을 깨뜨린다는 의미다.

이미 읽어 알고 있는 이것이 이 순간 왜 다시 펄럭일까?


환경(幻警)


파라고 명기된 백지의 장 후면 너무도 작아 잘 보이지 않을 문구가 적시되어 있었다.


환상을 경계하라?

이건 또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이미 약도에 눈이 쏠린 그는 그 뒤는 보지도 않고 천천히 마지막 단계로 들어섰다.


동굴!

높이 1장에 폭 1장 정도 되는 칡넝쿨로 뒤덮인 동굴이 좁은 소로 길 사이로 드러났다.


파(破) 동굴 입구 상단, 무려 한 치 깊이에 길이 반장에 달하는 거대한 문자가 그를 내려다보듯 각인되어 있었다.


너무도 선명하고 깨끗한 글씨.

과연 누가 새겨 넣었을까?

마존, 그분일까?

여기에선 과연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각 단계의 입구에 들어설 때마다 느꼈던 두려움과 설렘이 여기에 서니 진한 떨림으로 다가왔다.


캄캄한 어둠, 빛 한 점 보이지 않는 어둠이 그를 어서 오라 손짓하는 듯했다.


‘그래, 이제 다 온 거야. 다 왔어···’


수없이 반복해 떠오르는 궁금증, 두려움, 호기심, 호승심.


입술을 다져 물고 걸음을 내딛던 그, 문득 느껴진 괴이한 기운에 우뚝 걸음을 멈췄다.


우측, 삼장정도 떨어진 곳의 우거진 칡넝쿨에서 풍기는 괴이한 기운. 오랜 세월 자라고자란 넝쿨인지 두께만 한자가 넘었다.


뚫어지게 훑었지만 별 특이점이 없는 평범한 넝쿨. 그가 노려보자 괴이했던 기운이 점차 옅어지더니 사라졌다.


약도의 방향과는 많이 떨어진 곳, 고개를 갸웃한 그는 즉시 입구 안쪽으로 들어갔다.


이장 여쯤 갔을까.

일장 앞 좌, 우에서 빛나는 무엇이 보였다.

불빛은 분명 아닌데 환하게 빛나는 광채.

언 듯 든 생각에 조심조심 다가가 확인했다.


‘야명주(夜明珠)?’


밝게 빛나는 보석, 생각했던 그 야명주가 분명했다.

스스로 빛을 밝힌다는 보석.

문헌에서만 봤지 실물을 본 건 생전 처음이다.

너무도 아름답게 빛나는 주황색의 명주, 아름답다.

그 귀하디귀한 그 보석이 한 개도 아닌 두 개나 있다.

크기도 사람 주먹만 한 큰 크기.

황제나 되어야 겨우 얻을 수 있다는 보석이 움푹 파인 바위 홈에 환한 빛을 밝히며 놓여 있었다.


빛의 영롱함과 밝기에 따라 값이 천차만별이라는데 이건 최상의 진품 중 진품이 틀림없었다.


순간 동한 욕심.


‘이것만 갖다 팔아도 흐흐··· 야! 권집! 무슨 쓸데없는 생각을··· 이게 놓였다는 건 빛을 이용, 5단계를 통과하라는 마존의 배려 아니겠어?’


각성하고 두 개 중 한 개를 취한 그는 넙죽 절을 올린 뒤 손에 꽉 쥐고는 전방을 향해 비췄다.


한발, 한발 조심스레 접근하는 그.

앞선 단계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기관의 기습에 무수히 당한 경험이 그를 더욱 경계하게 했다.


빛 한 점 없는 캄캄한 어둠에 구원이 된 야명주, 아무리 야명주라 하더라도 불빛만큼의 밝기는 아니다.


하지만 한층 높아진 내력과 몸으로 체험한 초감각 덕에 미약한 빛일지라도 증폭된 듯 밝은 횃불처럼 환하게 보이는 그, 어둠을 별 어려움 없이 헤쳐 나갈 수 있었다.


오랜 시간, 사람의 왕래가 없었던 듯 폐쇄된 동굴의 곳곳은 거대한 거미줄이 촘촘히 처져 있는 거미들의 왕국이다.


앞을 가로막는 거미줄을 헤치며 들어서는 이때 멀리 희미하게 비쳐드는 빛이 있었다.


동굴에서의 빛?

야명주의 빛과는 전혀 다른 성격의 빛이다.

고조되는 긴장감에 심장이 쿵쿵 뛰었다.

무엇일까?

조심조심 들어서자 빛은 점점 그 밝기를 더하며 환해졌다.


“엇!”


문득 터져 나온 경악의 외침, 좁은 동굴이 사라지고 갑자기 탁 트인 30여 평의 너른 공터가 나타났다.


그가 경악해 외친 것은 전혀 예상치 못했던 두 구의 시신과 녹슨 검. 그리고 동굴 중앙 길게 뻗은 위로 밝은 빛이 스며들고 있었기 때문.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광경이다.

설마 여기까지 살아서 누군가 왔을 것이라곤 전혀 생각지 못했었다.


그런데 비록 해골이지만 있다.

만일 모든 관문을 순수 자신의 실력으로 여기까지 돌파해 왔다면 그는 무림의 일대 종사이거나 그에 버금가는 자질을 갖춘 사람이 분명하다.


‘누굴까? 도대체 어떤 분일까? 혹, 저 두 분 중 한 분이 마존?’


설마?

자신이 만들고 자신이 희생양이 된다?

믿기지 않는 말이다.

짙은 호기심에 가까이 다가간 그.

해골만 남은 시신은 둘 다 죽은 지 오래되었는지 중앙 골격을 빼곤 대부분 흩어져 형체조차 갖추지 못했다.


그러나 해골이 깨지지 않고 모두 온전히 붙어 있는 것으로 미루어 죽임을 당한 건 아닌 듯 보였다.


해골의 품에는 아직 썩지 않은 헝겊쪼가리와 다 삭아 흐믈 거리는 낡은 책자 한 권이 간신히 걸쳐 있었다.


"혈···무···록(血無錄)?"


혈무록?

삭아 희미했지만 겨우 알아본 글씨는 혈무록이란 글자.

생전 처음 듣는 이름이다.

하지만 전대의 무림고수들이라면 그 이름을 듣는 순간 까무러쳐도 여러 번 까무러칠 정도의 대단한 비급.


그걸 몰랐다니··· 하긴 아무리 대단한 것이라 할지라도 가치를 모른다면 그건 한낱 이름 모를 해골 주인이 남긴 썩어 삭아버린 낡은 책자에 불과할 것이다.


그러나 혈무록? 혈무록이라니.

이 비급의 주인공은 600년 전 천하를 피로 물들이며 횡횡하다


이 세상엔 나의 적수가 없다며 한탄하다 어디론가 홀연히 사라진 당대 제일인 혈무존(血無尊)이 남긴 비급이다.


갑자기 실종되며 수많은 사람의 궁금증을 유발케 했던 그가 600년이 흐른 지금 귀곡의 이런 허름한 동굴에서 생을 마감한 채 뼈도 추스르지 못하고 죽어있다.


무림인들이 이 사실을 안다면 뭐라고 할까.

살짝 손이 닿기만 해도 부스러질 듯 삭아 버린 비급, 그는 혹여나 부서질까 조심조심 손을 갖다 댔다.


스슥! 파사사···.


손이 닿기 무섭게 가루로 부서져 흩날리는 비급.

예상은 했지만, 글귀 한자 얻지 못한 채 귀한 비급이 통째로 날아갔다.


안타깝다.

아쉬움에 입맛을 다신 그는 1장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또 다른 시신에 시선을 돌렸다.


시신의 곁에는 용두(龍頭) 장식의 4척 장검이 뼈만 남은 앙상한 손가락 사이에 끼어 있었다.


용두 검은 거무튀튀한 검집에 꽂혀 있어 어떻게 생긴 것인지 외견상 전혀 알아볼 수 없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검집과 검의 손잡이는 무엇으로 만들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손상이 거의 되지 않은 원형 그대로였다.


독특한 생김새의 검에 호기심이 인 그는 아까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 더욱 조심해 검을 잡았다.


투두둑!

집어 들기 무섭게 바스러져 떨어지는 하얀 백골.

검집을 쥐고 있던 뼈가 가루가 되어 떨어지는 소리였다.

하얀 백골 가루는 뽀얀 먼지를 일으키며 흩날렸다.

분진이 가라앉길 기다렸다가 이윽고 가라앉은 걸 확인한 그는 검은색 일색인 장검을 두 손으로 받쳐 잡고 세밀히 살폈다.


천마신검, 검집 표면에 새긴 천마신검이란 금박 문구가 시야에 들었다.


"천마신검(天魔神劍)!"


그의 입에서 놀란 경악의 외침이 터졌다.

천마신검이라니.

삼백 년 전 천하를 오시하며 주물렀던 희대의 마왕 천존(天尊)의 분신 같은 검이 아닌가.


삼, 사백 년 주기로 출현했던 무소불위 능력의 이들.


그래서 사람들은 그들의 이름 석자를 호명하는 대신 존(尊)이라는 극존칭을 붙여 불렀다.


수천 년 무림 역사에서 존(尊)이란 호칭이 붙은 이는 다섯 손가락에 꼽을 정도.


그런 극소수의 절대 고수 중 마도(魔道)의 전설적인 인물 두 명이 이런 이름 모를 동굴에서 쓸쓸히 생을 마감한 것이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앞서 혈무존의 존재에 대해선 전해 들은 바가 전혀 없어 별 감흥이 없었으나 지금 들고 있는 이 신검, 그리고 그 주인에 대한 전설은 그의 아버지 입을 통해 들어 생생히 기억했다.


아버님은 그가 신이라 했다.

인간의 한계를 넘어 선 존재라 했다.

물론 실재보다 과장된 면이 없지 않아 있었겠지만 어릴 적 귀동냥으로 들은 그에 대한 기억은 한마디로 절대자, 절대자라 불리어도 전혀 부족함이 없을 그런 인물 중 하나였다.


그런 절대자의 검과 신영(身影)을 이런 곳에서 보게 되었다.


이 얼마나 놀랍고 살 떨리는 일인가.

권집은 흥분과 설렘에 가빠오는 가슴을 애써 진정시키며 천천히 손잡이를 그러쥔 뒤 검을 뽑아 올렸다.


스르륵!

미끄러지듯 매끄럽게 빠져나오는 검.


이것 역시 비급과 마찬가지로 녹이 슬어 빼는 순간 부서지리라 예상했다.


그런데 예측과는 정반대로 멀쩡했다.

검은 그의 상상을 비웃기라도 하듯 날카로운 예기와 투명한 은빛 광채를 선연히 뿜어내며 눈부시게 빛났다.


마치 금방이라도 살아 숨 쉴 듯 빛의 향연을 퉁겨내는 검.


그는 뽑아 든 검의 날을 손가락으로 살짝 퉁겼다.


팅~~!


환상처럼 울리는 맑은 검음.

울음의 여운에 갑자기 혼이 쑥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뭐지??’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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