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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I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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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08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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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07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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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뒤에 내가 있다 - 6

DUMMY

평소에도 자욱한 스모그로 몸살을 앓고 있는 경부선 아스팔트 위에 잔잔한 가을비가 내린다.


운전기사는 뿌연 앞차의 브레이크 등을 체크해가며 천천히 운행한다.


*


2시를 조금 넘겨 고속버스터미널에 도착한 지희는 그녀의 차로 마중 나온 호준이가 종로 3가까지 운전해 고등어 구이집 근처에 내려준다.


“오빠, 근처 공영 주차장에서 기다리세요. 얘기가 좀 길어질 수도 있어요.”


“같이 가면 안 되나?”


“네.”


“그래, 끝나면 연락해. 난 근처에서 따로 식사하고 있을게.”


“네, 미안해요.”


“아닙니다~.”


우산도 없이 차에서 내린 지희가 하얀색 마스크를 쓰고 서둘러 걸어간다.


대낮인데도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어두컴컴해지자 벌써 여기저기서 네온간판의 불빛들이 마스크를 쓴 손님들을 반긴다.


지희가 밝은 그레이톤의 트렌치코트를 입고 듬성듬성 물이 고인 보도블록을 또각또각 걷다가 대형 금은방이 보이자 우측 골목으로 들어간다.


어둑한 골목 중간쯤에 베이지 컬러의 트렌치코트를 입은 연주가 네온 간판 빛을 받으며 우산을 쓰고 인사한다.


“지희씨, 여기요!”


“연주씨~, 많이 기다렸어요?”


“아뇨~, 우산 안 가져오셨네요. 제가 씌워드릴게요. 저기 전주집 맞죠?”


“예, 들어가요.”


지희는 전주집에 들어가자마자 아주머니한테 인사를 하며 백반 2인분을 주문하고 자리에 앉는다.


“소주 한 병 시킬까요?”


“좋죠. 이모~, 소주 한 병 먼저 주세요~.”


“야 이 썩을 년아. 어디 대낮부터 술이야. 알았어~. 자, 받아 이년아.”


“고마워요, 이모~.”


지희가 이모의 입담에 못 참겠다는 듯 웃음보를 터뜨린다.


“연주씨, 제가 여기 이모한테 욕 얻어먹는 재미로 오나 봐요. 너무 웃겨요!”


“저 이모, 저한테는 한 번도 욕한 적 없어요. 단골들한테만 욕하나 봐요.

하하하. 자! 한 잔 받으세요. 깁스 푼 거 축하해요.”

“고마워요. 건배!”


“건배.”


“이제 말 놓으세요. 제가 어리잖아요.”


“음~. 히히, 그럴까?”


“하하. 네 언니! 팔 좀 어떠세요?”


“3개월 만에 풀어서 팔 움직임이 아직 부자연스러워. 일단 재활이 제일 중요해. ”


둘은 한잔 모두 비우고 앞에 놓인 김치 한 조각을 집어 먹는다.


“연주씨, 아 참! 연주야. 언니가 목요일 9시경에 짐을 다 정리할 수 있거든.

우리 12시 반에 톨게이트 지나고 첫 번째 만남의 광장에서 만나는 게 어때?

CTC 섬 마지막 배 시각이 있으니까.”


“네, 그 시각에 맞춰 만남의 광장에서 보는 거로 하죠. 거기서 간단히 점심 먹고 같이 출발하는 거에요.”


“자 밥 나왔으니 먹자.”


“네, 맛있게 드세요.”


“연주도······”


*


전주집에서 두 여인이 걸어 나온다.


지희가 시계를 보니 7시다.


“연주야, 우리가 4시간 정도 먹었다. 와~, 시간 빨리 가네~.”


“그러게요, 저는 이사 준비하려고 목요일까지 월차 냈어요. 언니는 오늘 늦어도 상관없어요?”


“그럼, 너 만나는데 좀 늦으면 어때?”


“우리 거기로 나가서 커피 한 잔 마시러 가요. 제가 살게요.”


“아냐, 언니가 사야지 왜 동생이 사?”


“하하하, 아니에요. 커피는 제가 살게요.”


두 여인이 골목길의 신호등 없는 건널목을 건너기 직전 잠깐 서서 좌측을 살피다 건너려고 앞을 본다.


이때, 맞은 편 길가에 낯익은 사람이 정장 차림에 검은색 봉지를 들고 서 있다가 그녀들 쪽으로 건너온다.


“선생님!”


“어? 뭐여? 여기서 보내. 잠깐만, 이리와 봐. 사람들 복잡하니······”


한식이, 건널목을 지나 옆 골목 입구에 서자 두 여인이 따라와 선다.


“선생님, 지금 퇴근하시나 봐요. 우산도 안 쓰시고······”


“응, 그렇지. 회사가 바로 저쪽 근방이여. 근데 자네들은 여기서 뭐 하는 거지?”


“바로 옆 골목 전주집에서 백반에 소주 두 병 시켜서 먹고 지금 바로 나오는 길입니다.”


“아, 그랬구먼. 나도 거기 자주 가는디.

아 참! 내가 지희씨한테 지금 반말을 한 것 같은데,

원래 반말 안 했는데 기분 상했는가?

나도 모르게 반말이 튀어나왔어.”


“하하, 괜찮아요, 선생님. 말씀 낮추세요. 제가 한참 어리잖아요~.”


“그런가? 하하. 미안하지만 그럼 내가 이제 말 놓을게.”


“네~. 근데 선생님. 그 손에 든 봉지는 뭐죠?”


“아, 요거. 저기 앞에 정육점에서 고기한 점 샀어. 어디 좀 가려고.”


“이 밤에 어딜 혼자 가세요? 농담이시죠?”


“왜? 그럼 연주가 같이 가주게?”


“당연히 같이 가드려야죠. 이 밤에 길가다 시비 붙으면 어쩌시려고요?”


“자네 둘이 같이 가준다면 나야 든든할 거야.

그럼, 같이 가서 맛있는 것도 먹고 내가 인사시켜드릴 분도 있는데 잘 됐다.

가면서 자네들한테 부탁할 게 있어.”


“뭔데요? 말씀만 하세요. 저 어제 깁스 풀었거든요. 이제 자유로워졌어요.”


“지희 자네는 마담과 대련할 때 본 게 있어서 그 실력을 잘 아는데 그런 부탁이 아니고, 일단 가자구!”


한식이 네온 간판이 없는 어두운 골목길로 이들을 데리고 간다. 이들은 옛 간판이 즐비한 아주 오래된 재래시장에 들어선다.


간간히 셔터 문을 닫은 곳도 보이지만 아직은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이 느껴지는 정겨운 시장이다.


재개발로 내년 봄에 이곳이 철거되기 때문에 가계 문을 닫고 이사를 간 사람들이 보이는 것이다.


“선생님, 우리 오아시스 모임 때 말고 밖에서 보는 것은 처음이네요. 항상 이 시간에 혼자 퇴근하세요?”


“아니지~. 늘 직원들과 함께 퇴근하는데 오늘 같은 날은 혼자 퇴근하지.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서 그래.”


“그래도 이 늦은 시간에 혼자 다니시는 건 좀 위험하잖아요!”


“여긴 괜찮아. 내가 태어난 곳이거든. 장사하는 분들은 다 이 동네 사람들이고 여기 재래시장 사장님들은 모두 내 친구 부모님들이야.”


“아까 부탁하신다는 게 뭐에요? 말씀하세요, 지금.”


어느덧 이들은 시장 중간쯤에서 좌측 사잇길로 들어선다.


불빛이 전혀 없어 뿌연 달빛만이 그들의 발길을 비출 뿐, 적막한 어둠의 스산한 분위기로 인해 걸음을 머뭇거리게 한다.

한식은 당연히 익숙한 듯 앞장선다.


“내가 이 길을 50년 넘게 다녔지.

그리고 이제는 꿈에도 그리던 집을 샀는데, 가족들 다 죽고 어머니 홀로 남아 이 길을 다시 걷게 하고 계신다네.

그래서 오늘 만난 김에 도움 좀 요청하려고 그래. 여기야!”


갑자기 멈춘 한식이 바라보는 곳을 그녀들이 쳐다보니 오래된 창문 하나에 희미한 불빛이 보인다.


*


“보고 드립니다.”


[그래. 만났나?]


“30분이 지났는데 나타나지 않습니다. 안으로 진입하겠습니다.”


[기다려. 거기 말고 길이 없으니까]


“네, 알겠습니다.”


*


한식이 낡은 집의 오래된 철문을 연다. 이들은 작고 어두운 집 마당으로 들어간다.


마당으로 들어서자 바로 5개의 낡은 돌계단 위에 출입문이 보인다.


한식이 얼른 계단을 밟고 올라가 열쇠를 꺼내 문을 연 후, 뒤돌아서서 그녀들을 부른다.


“뭐해? 들어와. 내가 태어난 곳이야.”


“예?”


그녀들은 너무 놀랐지만 내색하지 않고 한식을 따라 올라간다.


한식이 그녀들이 모두 들어오자 무릎 높이의 마루에 서서 여닫이문을 보고 말을 한다.


“어머니~, 고기 사 왔어! 나와봐. 나 배고파!”


드르륵- 쾅-


여닫이문이 열리고 한식이 어머니가 역정을 낸다.


“아니, 뭐 하러 왔냐? 오지 말랑께!”


“왜? 뭐여? 내가 못 올 곳을 온 겨? 고기 사왔응께, 밥이나 좀 주쇼! 문 닫고 들어와, 어서.”


“저기 저분들은 뉘시니?”


지희와 연주는 마스크를 벗고 한식 어머니에게 인사를 한다.

“안녕하세요? 어머님! 저희들은 한식 오빠 친구들이에요.”


“일단, 올라와 앉아요. 밥 차려드릴 라니.”


“어휴~, 무슨 말씀을······저희도 좀 도와드릴게요.”


“그냥 앉아계슈.”


“네.”


지희와 연주는 일단 트렌치코트를 벗어 등 뒤에 놓고 나무 마루바닥에 다리를 모아 옆으로 해서 앉는다.


한식도 마스크와 재킷을 벗고 익숙한 듯 마루 구석으로 성큼 걸어가 냉장고 사이에서 꽃무늬 둥근 밥상을 꺼내 네 다리를 펼쳐 놓고 반찬을 나른다.


전부 나물 반찬인데 향긋한 들기름 냄새가 벌써 다르다. 한식 어머님은 간장 소불고기를 만들어서 내놓자 다들 일어나 밥을 푼다. 둥근 상 가득 저녁이 차려지고 넷이 둘러앉아 식사를 한다.


“색시들 둘 다 어째 이렇게 천사 같은 미인인겨? 지나가다 누가 보면 놀라겄소!”


“에이그 어머님, 아니에요. 말씀만이라도 감사합니다. 잘 먹겠습니다.”


“그려유. 어서, 어서들 잡수쇼!”


어머님 집에 한식이 친구들이 방문한 것도 처음이고, 여럿이 식사를 하게 된지도 40년은 족히 넘은 것 같다.


“어머님, 고사리 볶음에 깨소금이 넣은 거 정말 오랜만에 먹어봐요. 기절하겠어요. 어떡하죠?”


“하하하. 우리 연주가 말도 참 재밌게 하네.”


“뭘 어떡혀! 그냥 막 먹는 거제. 허허!”


그녀들은 밥 먹다 여닫이문 위를 보니 큰 액자에 30여 장의 사진을 넣어 걸어 놓은 것을 보고 정겨운 감흥에 젖는다.


“우리 어머니, 작년까지만 해도 요 앞 시장에 나가 채소랑 야채를 파셨는데,

이젠 힘드신지 이렇게 집에만 계시네. 자네들 안 왔으면 아마 오늘도 저녁은 건너뛰셨을 거야.”


“그러세요? 그럼 저희가 자주 찾아봬야겠네요.”


“하하, 말이라도 고맙네그려. 어머니, 이 사람들 참 착하쥬?”


“말도 참 이쁘게 하네.”


“어머님, 이제 한식 오빠 집에 들어가셔요.

그래야 색시가 생겨요. 어머님도 안모시고 나 몰라라 하는데 누가 한식 오빠를 좋아하겠어요? 그죠?


내년에 여기 재개발한다고 집들 다 허물어버리면 어머님 이제 어디 가시려구요.


아드님, 어머님 모시려고 돈 버느라 결혼도 못 했는데 이제 장가가야 하지 않겠어요?

저희가 이사 도와드릴 테니 한 달 내로 이사 가셔요?


“허허허, 젊은 색시가 말도 참 곱게 하네그려. 알았어. 갈게, 갈게. 어여들 먹어, 응?”


한식의 표정이 밝아진다. 오늘따라 지희와 연주가 이렇게 든든한지 너무 고마울 따름이다.


*


밤 10시경, 일행 세 명이 좁은 골목을 걸어가고 있다. 아직도 바닥에는 물기가 남아 저벅 소리가 난다.


골목을 나와 시장 동쪽 길로 들어서지만, 모두 문을 닫고 퇴근한 상태라 칠흑같이 어둡다.


지희와 연주는 한식의 모친이 담아준 나물 반찬을 한가득 봉지에 담에 얼굴에 미소가 끊이지 않는다.


“선생님 어머님, 요리 정말 잘하세요. 특히 나물 반찬은 최고의 맛이었어요. 잘 먹을게요.”


“아까 지희 자네가 도와줘서 정말 고마웠어. 어머니도 이젠 마음을 바꾸시겠지.”


“선생님, 그럼 어머님께서는 선생님이 아직도 결혼하지 않은 것 하나만으로 선생님이 마련한 집에 안 들어가신다는 거죠?”


“그래. 당신 때문에 그런 줄 아시고 미안해서 그러시는 거야. 그래서 내가 이렇게 속이 까맣게 타들어 가잖아.”


“그래도 아까 지희 저 친구가 ‘아들이 어머님 혼자 사시는 걸 나 몰라라 하면 어느 누가 시집을 오겠냐’고 말하니까

어머니 표정이 달라지더라고.

여하튼 오늘 정말 두 사람에게 고맙고 내 꼭 한턱낼게.”


“하하하. 아니에요. 그 정도는 천 번도 도와드릴 거에요.”


이때, 시장 동쪽 입구를 두 명의 남자가 막고 서서 한식을 부른다.


“정한식씨. 잠깐 얘기 좀 합시다.”


한식은 두 남자의 위협적인 말투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 두 사람 사이를 그냥 지나친다.


“오늘 내가 손님이랑 볼 일이 있어서 그냥 간다. 누군지 모르겠지만, 한 번 만 더 길에서 나 부르면 작살날 줄 알아.”


한식의 낮게 깔린 으름장에 그 두 사람은 흠칫 놀라며 길을 비킨다.


지희와 연주도 고개를 숙이고 한식의 뒤를 바짝 따라붙어 그들을 지나친다.


“거기로 나가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


“내가 여기로 나간다면 나가는 거야. 니들이 상관할 바가 아니라고······”


“거기로 나가면 죽어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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