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영웅들의 라이벌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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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08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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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28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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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수 없는 일본의 선택 2

DUMMY

내가 침울해하자, 한참웃다가 흥이끊긴 선생이 여전히 팔짱인채로 날 빤히 보고있다.


“어떤 이들은 나에게 매국노라고 말합니다. 특히 조선인이 말이오. 난 단지 만주국의 장교일뿐이요. 내가 조선인을 덜잡는다고 독립이 빨라지는것도, 많이 잡는다고 해방이 늦어지는것도 아니지않소? 만주에 사는 사람은 어느 민족이든 만주국의 지배를 받아야하오. 더군다나 만주국은 중국인이 세운 나라 아니오?”


솔직히 난 억울했다.


중국대륙에 사는자가 중국정부의 지배를 받는건 당연하다.

만주국의 황제는 청왕조의 마지막 황제였던 푸이다.


아무리 지금 황제가 일본의 꼭두각시라고 해도 엄연히 중국인이 다스리는 국가다.

그렇다면 만주군 또한 중국인의 군대라 할수 있다.


만주가 일본의 조선 침탈과 무슨 상관인가.

왜 만주군 장교를 조선인은 매국노라 부르는가.


난 일본이 망하던 말던 관심도 없다.

만주국에 충성해야하는 만주군 장교로서 독립군이나 공산당이 만주에서 소요를 일으키기에 진압할뿐이다.


조용히 자기 본분만 충실히 한다면 왜 독립군을 탄압하겠는가.

그건 마적도 마찬가지 아닌가.


“맞습니다. 억울할만하지요. 만주군인에게는 매국노란건 가혹한 평가입니다. 특히 중위님처럼 초급장교에게는 더욱 그러지요.”


아니, 정말로?

진짜 그렇게 생각하는걸까?


‘역시 군인으로 재능만 출중했지 그외에는 백지장 그 자체구나.’


선생은 처음부터 알았다.

나란 인간은 이런 문제를 고심한적이 없다는것을.


대부분의 일제 부역자들이 지금 그러고 있다.


일본이 강성할땐 하지 않았을 고민이었다.

이제 일본이 열세에 처하자, 발등에 떨어진 불처럼 갑작스럽게 생긴 고민이었다.


‘이기적인 자들 아닌가.’


과거에 조금이라도 이런 고민을 했었더라면 그런 무도한 짓을 벌였을리가 없지.

그때는 자기들의 영달을 위해 했던짓에 어떤 거리낌도 없었다.

이제야 그동안 했던 과오에 구차한 변명을 해댄다.


‘흥, 미래가 불안해지니 다른 사람의 평가가 의식되는 거지.’


백성을 지키고 치안을 유지하기 위해 어쩔수 없이 일제에 협력했다는, 자기 합리화를 더욱 공고히 하고 있다.


나도 실상은 마찬가지였다.

가족을 부양한다는 극히 개인적인 이익을 위해서 군인이 되지 않았나.


“그러나 근본적으로 생각해 볼 문제가 있습니다. 중위님 말씀대로 분명 만주국은 중국인이 세운 국가입니다.”


선생 말이 좀더 완곡하게 변했다.


“그런데 과연 이들이 어떤눈으로 만주사람을 보았는가에 달린 문제입니다. 모든 문제의 근원은 여기에 있는것이지요.”


“어떤 눈..”


“그렇습니다. 같은 동포로 만주사람을 봤냐는 얘기지요. 자기 민족을, 또는 자기 백성을 이민족인양 대한다면 당연히 문제가 생길 겁니다. 마치 일본인들이 행했던 것처럼 말이죠.”


이건 깊이 생각할것도 없다.


지금 만주국은 철저하게 일본의 입맛대로 운영되고 있다.

오히려 중국인 관리들이 더 악랄하게 탄압하고 있다.

같은 중국인에 대한 동족의식이 있을리가 없다..


수틀리면 함부로 잡아가 고문하고 학살하는것에 주저함이 없었다.


일본의 영향일 것이다.

만주군 또한 마찬가지로 점령군처럼 행동했다.


“일본과 하등 상관없다고 생각하시지만 결국 눈높이가 일본에 맞춰졌다면 문제가 해결되지 않겠지요.


“일본인처럼 차별한다고 생각하겠군요.”


그런가?

결국 껍데기만 중국인이 세운 국가란 소리다.


내가 혼자 되뇌자 선생이 씁쓸해한다.


“그렇습니다. 바보같은 것이지요. 백성이란 원래 이렇게 미련합니다. 세상의 이치를 모르는 것들 말입니다.”


“세상의 이치를 말이요?”


“그렇습니다. 세상의 이치는 원래 불평등한겁니다. 차별을 두는것이지요.”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일본인이 차별하는게 세상의 이치라고?

머리가 아득해졌다.


“세상이 평등하다는건 책상머리의 지식인들이 했던 공염불에 불과합니다. 배부른 소리지요. 저 태양을 보십시오.”


그가 장작을 휘젓던 나뭇가지로 하늘을 가리킨다.


“그자들은 자연은 차별을 두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저 태양이 세상을 골고루 비추는것처럼 말이지요. 참 웃기는 얘기입니다. 저기를 보십시오.”


언덕 밑에 어둡고 습한 땅을 가리켰다.


“세상에 양이 있으면 당연히 음도 있는 법이니까요. 항상 그늘져있는 저기처럼 말이지요. 저기서 가느다란 줄기를 간신히 티운 야초가 평등하다고 생각할까요?”


그런 뜻이었나.

선생이 말한건 봉건시대에 지배계층이나 했던 말 아닌가.

태어날때부터 고귀한 혈통을 가졌다는.


“그렇습니다. 양지에 있는것들이나 해가 평등하다고 하는거지요.”


내 눈이 축축한 땅을 계속 담고 있다.

볕이 들지않아 가느다란 줄기의 이름모를 초목들.


땅에는 축축한 녹색의 이끼가 양탄자처럼 깔려있고, 불에 탄것처럼 새까매진 초목의 줄기에도 녹이 슨것처럼 이끼가 달라붙어있다.

얇디얇은 시꺼먼 줄기에 이파리도 몇 안달린 것들이 애처로워 보인다.


“그래도 세상은 잘 돌아갑니다. 대부분 사람이 이런 차별을 숙명으로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타고난 팔자라고 생각합니다. 재수없게 저런 음지에 떨어지는 바람에 어쩔수없이 싹을 티웠다고 말입니다. 저 야초처럼 말이지요.”


“그럼 독립군은 뭡니까? 공산주의자들도 그렇소. 이들은 왜 숙명에 저항하는 겁니까? 힘없는 조선인으로 태어난 숙명을 말입니다. 저 야초처럼 왜 순응하지 않느냔 말입니다.”


“맞습니다. 정말 바보같은 인간들이지요. 세상의 이치를 거역하다니 말입니다.”


선생의 말이 내 입을 봉하고 말았다.

정말 그렇다고?


“주변에 시든 초목만 있으니 차별인지도 모르고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살지요. 그런데 어딜가나 뾰족하게 모난것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십미터만 옆으로가면 햇빛 짱짱한 양지 바른곳이 있다는걸 아는것들 말입니다.”


좀 떨어진 곳을 나뭇가지로 가리킨다.

오늘따라 유난히 밝은 초목이 굵고 때깔도 좋게 보인다.


“비교할 대상이 없으면 차별이라는걸 모릅니다. 그런데 비교할것을 찾아버린 것이지요.”


나도 똑같았다.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차별은 어쩔수 없다고 생각했다.


만주학교에서 별별 차별을 겪었지만 항거할 생각도 못했다.

그냥 바보처럼 수용하니 그들이 더 당연하게 생각했던거 같다. 지금 이시겐도 그렇고.


이렇게까지 생각이 뻗치니 입맛이 써졌다.

하지만,


“선생 말처럼 차별이 세상의 이치라고 한다면 거기에 순응해서 살아가게 맞겠지요. 이들처럼 저항한다고 달라질게 없으니까요.”


아무리 총을들고 목숨을 버려가며 용써봐야 세상 이치가 그러하다면 어떻게 바꾸겠는가.

세상 이치란 말에 모든것이 쓸모없어지는게 자못 허탈하기도 하지만.


“네, 맞습니다. 그래서 바보들이라고 말씀드린 것입니다.”


그런가?

머리가 복잡해졌다.


선생도 이제는 입을 다물고 장작불만 물끄러미 보고있다.

나 역시 더는 물어보지 않았다.


모닥불도 이제 거의 타서 약간의 불씨만 반짝거리고있다.

나무 탄내가 은은하다.


“그런데 그게 정말 세상의 이치일까요?”


한참후에 그답지않게 잦아든 목소리로 웅얼거린다.

의아하게 쳐다보자 역시 씁쓸하게 웃는다.


“사람이 만든걸 자연의 이치처럼 포장한거 아닐까요?”


“....?”


“그 바보들은 일본도 흥망성쇠를 가진 국가일 뿐인데 무슨 세상의 이치냐고 항변하더군요.”


"아..."


고민이 깊어졌다.

생각할수록 옳은 말 아닌가.


흥망성쇠야말로 세상의 이치 아닌가.

지금 일본이 저리 흥해도 나중에 어떻게될지 누가 알겠는가.


“자연의 이치란 말은 일본의 수작일수도 있겠습니다. 지금의 일들을 숙명처럼 받아들이게 만들려고 말입니다. ”


“하하핫. 그렇게까지나요? 하하핫.”


선생이 일어나 발로 장작으로 흙을 쓸어밀면서 다시 유쾌하게 웃는다.



........



그일이 있고 몇주가 다시 지났다.


전황은 지금도 만주국과 특설대에 호의적이지 않지만, 후방의 이시겐 중대는 별다른 일이 없어 소대 전술훈련이나 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내고있었다.


“대장님?”


나른한 오후, 사무실에 조장이 찾아왔다.


“무슨 일이야?”


“손님이 찾아오셨습니다. 한번 나가보십시오.”


“손님?”


“네, 영내로 모시기엔 적절치 않아서 진송이네 식당에 모셨습니다.”


“새삼스럽게 누군데 그래?”


누가 찾아온적도 적지만 이렇게 식당에 안내하는것도 드문 일이었다.

영문을 모르고 부대를 나와 진송이네 가게로 갔다.


식당 문을 열고 들어갔다.


아....


평양에 계신 어머니가 오신다해도 이렇게까지 놀랐을까?

손잡이에 자석이 붙은것처럼 한발자국도 더 딛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짙은 속눈썹에 감싸인 눈동자 아래로 보름달처럼 수려하게 그어진 얼굴을 보는 순간, 심장으로 피가 몰렸는지 다리에 힘이 풀려버렸다.


식당 가장자리의 한쪽 탁자.

머리에 스카프를 두른 여인이 고개를 들어 이쪽을 바라본다.


진하디 진한 탓에 오히려 눈이부신 눈동자와 마주치자, 알수없는 뭔가가 가슴을 요동치게 만들고있다.

전장에서 느끼던 두근거림과는 사뭇다른 익숙하지 않는 심장의 가녀린 떨림.


맙소사, 순영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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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확신없이 벌인 전쟁 1 +2 24.05.11 101 5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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