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름다운 일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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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enithrone
작품등록일 :
2024.05.08 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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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14 2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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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DUMMY

그러는 사이 또 상념의 꼬리를 물고 따라 나오는 누군가가 있었는데··· 친구였다. 오랫적 사문의 길로 들어선···. 그 순간, 별 한 톨 찾아내기 힘든 칠흑의 밤하늘처럼 새카맣던 땅굴 속을 쓸쓸히 질주해오던 열차가 드디어 그 길었던 어둠의 여정을 이겨내고 광휘로운 빛의 세계로 들어서며 지하철에서 지상철로 새롭게 단장하였고, 동시에 속세를 등졌던 우정에 관한 생각도 빠르게 잊혀져갔다. 이젠 자리에 앉자마자 습관적으로 펼쳐냈던 책을 등한시 한 채 그저 멍하니 밖을 바라볼 차례이다.

열차 안에는 출근 시간이 지나고도 한참인지라 사람도 별로 없어 자리에 앉아서도 건너편 창문 너머로 펼쳐진 풍경을 감상하기가 용이했다. 맞은편 정원 7명짜리 좌석엔 양옆 서울메트로 1등석 쪽으로 각각 남자가 두 명씩, 그리고 이들과 좌우 한자리씩을 건너 뛴 채로 젊은 아가씨 한 명이 의자 한가운데 도도하게 앉아있었다. 다행히도 창밖을 향한 넓은 시야는 확보되어 있었으나 여기서 조심해야 할 것은 절대 저 아가씨를 의식해서도, 행여나 눈이라도 마주쳐선 안 된다는 것이다. 나야 자연스럽게 바깥경치를 음미할 뿐이라지만 상대방 입장에서는 웬 짜증나게 생긴 젊지도 늙지도 않은 좀 애매한 나이를 쳐갖고 있는 새끼가 자신을 흘끔흘끔 쳐다보는 것 같아 내심 기분이 나쁘지 않겠느냐 말이다. 참으로 각박한 요즘세상, 이상한 일에 휘말리면 그것만큼 또 곤혹스러운 일도 없는 것이, 혹여 저도 모르는 사이 휴대전화기에 촬영되어 악마의 편집을 당한 뒤 인터넷에 유포되기라도 한다면··· 으으으 생각하기도 싫다. 그러니 최대한 자연스럽게 시선을 그녀 양옆으로 분산시켜야 한다. 어쩌다 여자의 눈길이 날 향해도 그저 태연하게 뒤에 펼쳐져있는 창밖만 응시할 뿐. 처음엔 좀 신경 쓰이겠지만 자기에게 시선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금세 깨닫고는 저쪽에서도 더 이상 관심두지 않겠지.

그 분산된 시선을 맞이하고 있는 유리창 너머로는 옛 조선왕조 500년 도읍의 이름을 딴 대학이 자못 웅장하고 자부심 넘치는 모습으로 자기를 끼고 도는 10량짜리 녹색 전철과 그 안에 앉아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가며 밖으로 눈길을 내보려 애쓰는 날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하핫! 저 명성마저 자자한 학교에 다니고 있는 친구들은 얼마나 좋을까? 자신뿐만이 아니라 그 부모들까지. 아마 우리 자식이 명문대 다닌다고 동네방네 소문내고 다닐 텐데. 그리고 그 모습을 본 당사자들은 약간 멋쩍은 듯하지만 그 속에 남모르는 쾌감과 희열이 섞인 미소를 짓고 있을 테고. 지난 지 얼마 되지 않은 겨울의 끄트머리에서는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저 정문을 쳐다보며 울고 웃었을지. 근데··· 그러한 기분에 찬물을 끼얹어서 미안하지만, 참으로 안타까운 건 저 멋들어진 곳에서 큰 배움을 닦고 나와도 이놈의 고도로 성숙화 된 한국사회가 극히 제한된 일부에게만 그 바늘구멍만한 취업의 길을 빼꼼 열어준다는 사실이다. 청년실업률 9.9%, 평균 취업 준비기간 1년. 그나마 어렵사리 취업을 해도 첫 직장 재직기간 15개월···. 이 자랑스런 대한민국을 살아가고 있는 창창한 청년들의 눈앞에 히말라야 설산처럼 펼쳐져있는 슬픈 지표들이다. 눈을 돌릴 곳도 없다. 지구에 가장 먼저 도달한 태양빛을 탐욕스럽게 머금고 있다 내뱉은 그 무시무시한 반사광으로 보는 이들의 눈을 멀게 만드는 고원의 빙설처럼 이 땅의 젊은이들은 자신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취업이라는 거대한 산맥 앞에서 설안염에 걸린 등반가처럼 갈 곳도 모른 채 갈팡질팡 대고 있다. 물론 여기서 부정청탁이니, 이미 내정자가 있었다느니 하는 얘기까진 꺼내고 싶지 않다. 만약 그것까지 짚고 넘어가다가는 사회 온 구석구석이 비리와 부정으로 얼룩져있는 이 자랑스런 조국에 대한 한탄만 몇 날 몇 밤을 해도 시간이 부족할 테니.

강남을 향해 가는 전철은 쉬지 않고 달려 아, 아니 역마다 빠짐없이 쉬어가며 달려 위풍도 당당하게 서있던 대학교 대신 북녘하늘 아래를 동서로 가르며 쉼 없이 남쪽으로 물을 실어 나르고 있는 중랑천을 보여주었다. 객차 안도 몇 정거장을 지나고 나니 슬슬 사람이 차기 시작했고 눈앞에 앉아있던 아가씨 양 옆으로도 새로 들어온 사람들이 자리를 잡아 차츰 창밖을 향한 나의 시선을 애타게 만들었다. 여기쯤에선 눈길을 새로 정비하기 위해 머리를 살짝 휘젓는 척 하며 조심스레 열차 안을 둘러보아야한다. 더 이상은 자리가 없다. 이제부터 들어온 승객들은 가고자하는 거리가 멀든 가깝든 어쩔 수 없이 서서 가야만 한다. 다음 자리가 나기 전까지는···. 생각해보면 나야 이번엔 운이 좋았으나 서울바닥에서 전철을 이용하는 사람들 중 거의 대다수···를 넘어선 절대 다수에게 의자에 앉아 편하게 간다는 건 극히 드문 일일 것이다. 특히나 출·퇴근 시간일 경우에는 더욱더.

여기까지 오는데 좀 오래 걸렸지만, 아까 얘기한 내가 지하철을 기피하는 이유 중 두 번째이자 마지막이 바로 이것이다.

정말 선택받은 극소수의, 다시 말해 차고지 부근에 사는 전체 직장인 대비 매우 적은 수에 불과한 사람들이 아니고서는 편하게 앉아 전철을 이용하기란 하늘에 별 따기와도 같다는 것. 이 현상을 접할 때마다 마치 우리사회의 축소판을 보는 것 같아 입맛이 매우 쓰다. 슬픈 단면. 어두운 자화상. 누군가는 잘난 지하철 한번 타면서 뭐 그리 쓸데없는 생각까지 거창하게 확대시키느냐고 할 수 있겠으나 원래 한번 비틀고 꼬아서 보기 좋아하는 나의 패악스럽고 조야한 시각에는 그리 그렇게 간단한 문제로만 비춰지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열차가 출발한다. 종점에서. 물론 이때는 객실 안이 텅텅 비어있겠지. 하지만 차고지에서 가까운 역을 몇 번 거치고 나면 그 많던 자리는 이내 엉덩이들로 들어차 더 이상은 새로운 하반신을 맞이하지 못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열차는 신경 1도도 쓰지 않고 정차하는 역마다 40개의 입으로 승강장에 서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꾸역꾸역 삼켜댄다. 편리한 도시민들의 발 지하철은 어느새 地獄鐵이라는 무시무시한 이름으로 탈바꿈한 채 수많은 회사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서울 도심으로 마냥 달려갈 뿐이다. 전철 안의 사람들은 꼭 시루 속의 콩나물마냥 빽빽하게 짓눌려져 있어 숨조차 쉬기 힘들다. 어쩌다 자리가 나서 근처에 서있던 운 좋은 사람이 목적지까지 다소 편하게 갈수 있는 경우가 생기기도 하지만 그런 일은 극히 드물게 일어난다. 아주 가끔 지하철 자리 때문에 시비가 붙었다는 사소한 다툼이야기가 어떤 경로를 통해서든 들려오곤 하는데 그만큼 열차 안에 비치되어 있는 이 「의자」가 우리 모두에게 출·퇴근길이라는 메마른 사막 한 복판에서 힘겹게 만날 수 있는 소중한 오아시스처럼 느껴지기 때문이겠지. 그만큼 찾기 힘들고 또 설사 우연히 발견했다 하더라도 쉽게 그 위안을 향유할 수 없는 지하도시 속의 오아시스. 무한하게 펼쳐져있는 모래의 바다에서 실크로드를 찾아 헤매이던 먼 옛날의 대상행렬처럼, 각기 저마다의 보고寶庫를 향해 분주히 오가는 현대의 캐러밴들은 그 지친 몸을 조금이라도 뉘일 수 있는 「사막의 눈물」을 경유하기 위한 치열하기 짝이 없는 경쟁의 대열에 무자비하게 노출되어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혹자는 나의 조악한 단상을 향해 이렇게 말할 지도 모르겠다. 그럼 좀 더 서두르면 되지 않느냐고, 다 너희가 게을러서 그런 거라고. 근데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않다. 그 거칠고 막돼먹은 비난 안에는 어쩔 수 없는 「태생적 한계」에 대한 배려 따위 눈곱만치도 찾아보기 힘든 정말 잔인하기 그지없는 책잡음만이 난무하고 있다는 걸 알아듣지 못할 젊은이 어디 찾을 수나 있겠나.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차고지에서 멀리 떨어져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아무리 서두르고 일찍 일어나도 「오아시스」의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기회란 좀처럼 주어지지 않는다. 이미 종점 부근에 기거하고 있는 다양한 인간 군상들에 의해 그 많던(?)자리는 모두 점거되어 있는 채로 으레 그들 앞에 도달하는 까닭에. 난 이 부분을 좀 더 넓게 대입해서 더욱더 노력하라는, 너희는 노오오력이 부족하다고 늘 다그치는 이 땅의 기성세대들에게 묻고 싶다. 과연 이것이 우리의 노력부족 탓일까? 여기서 더 나아가 우리의 노력으로 극복할 수 있는 범주 안에 정말로 포함되어 있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까? 내 대답은, 또는 나와 동시대를 살아가는 이 땅의 젊은 세대들의 대답은 열이면 여덟아홉이 아니올시다~ 로 수렴될 것이다.




설안염 : 설원에 반사된 자외선에 수정체가 지속적으로 노출되어 일어나는 시력 장애


작가의말

한 주의 시작, 월요일을 살아가는 직장인 천준호. 그의 솔직 담백한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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