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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enithrone
작품등록일 :
2024.05.08 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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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25 2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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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DUMMY

발단은 중량물운동이 한계치에 다다랐을 때 오는 찌릿한 쾌미에서 비롯되었는데, 난 나름 이것에서 스포츠 익사이팅을 느꼈었다. 특히 아령이나 덤벨을 반복적으로 들다가 더 이상은 힘에 부쳐 올리지 못할 때쯤 되었을 때, 억지로 반동을 주어 몇 번을 더하고 나면 그 순간부터 근육이 터질듯 빵빵해진다하는 느낌이 드는데 바로 요때 기구를 내려놓고 몸을 짜내듯 있는 대로 힘을 줄 때 오는 그···. 아~ 기억나 버렸다, 그때 그 기분, 그 느낌···! 정말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절대 알지 못하는. 그 땡땡해진 근육들 속에서 뭔가가 톡톡 터지는 것 같은 짜릿한 쾌감이 올라와 몸 전체를 휘감으며, 마치 아주 약한 전기에 살짝 감전되는 듯한 찌릿찌릿함이 잠시 황홀경을 불러일으키게까지 하는 것을! 이 맛, 바로 이 맛에 중독되어 미친 듯이 운동에 몸을 내맡겼었더랬다. 그런데 어떤 식으로든지 간에 역시 중독이라는 건 참으로 무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전날과 동일한 운동량으로는 똑같은 쾌감이 느껴지지 않았던 것이다. 근육이 발달하는 만치 한계점도 상승하기에 계속 중량과 횟수를 늘려가야만 원하는 만큼의 짜릿함을 얻어낼 수 있었고, 이렇게 한 시간 두 시간 늘려가기 시작한 것이 급기야 한 10년 지나니까 네 시간 가까이 운동을 해도 느껴지는 황홀감이 만족스럽지 않은 지경에 이르렀을 정도로.

그렇게 나이 서른이 되었고, 보다 더 많은 운동을 하기에는 점점 시간이 부족해져 갔다. 만족감을 느끼자니 운동을 더해야 되고, 운동을 더하자니 다른 것에 투자 할 시간을 희생해야 하고···. 살짝 양도논법에 빠졌지만 과감하게 끊었다. 이게 뭐 대수라고. 내가 이걸로 먹고 살 것도 아닌데. 그 뒤로는 시간 딱 정해놓고 그때에만 집중적으로 했었···으나, 참 사람이란 간사한 동물이어서 나태의 굴레로 흘러들어가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일이 걸리지 않았다. 몇 년의 시간이 더 지난 지금은 축구선수라고 해도 은퇴를 고려해야할 나이이기에 더 이상 무리는 못하고 그저 일수다~ 하고 매일매일 현상 유지하기에만 급급해하고 있다. 또 그동안 과도한 중량물로 관절을 너무 혹사시킨 탓인지 손목도 두 쪽 다 그리 상태가 좋은 편이 아니라 여간 신경 쓰이는 것도 아니다. 이제 아령이나 덤벨 같은 운동 기구들은 쓰질 않는다. 순전히 내 체중을 이용해서 단련해야만 너무 과도하지 않고 또 모자라지도 않는, 몸에 딱 맞는 근육이 생긴다는 지론으로 바뀐 때문이다. 그래도 후회는 없다. 사나이로 태어나 한창 팔팔할 때 꽤 봐줄만한 몸으로 남부럽잖게 지냈던 것도 그렇고, 그 덕분에 지금도 아직 근육이 풀죽지 않아 조금 관리만하며 사는 대도 나잇살 먹은 동년배 친구들에 비해 덜 아재스러우니까.

여닫이 화장실 문에 고정시킨 턱걸이 봉 잡고 몇 번 매달렸다가, 의자에 발 올려놓고 팔굽혀펴기 또 몇 세트 그리고 바닥에 누워 윗몸 좀 일으키면서 후욱후욱 거리니 대략 3~40분 만에 운동이 끝나버린다. 개운하다. 이 기분 그대로 어서 빨리 욕실로 직행해야 한다. 땀을 바짝 흘리고 나서 찬물을 온몸에 끼얹을 때 그 느낌. 이 즐거움 또한 근육이 터져나가는 것 같을 때의 그 기분 못지않으니!

역시 하루의 끝맺음은 운동으로 해야 가뜬하고 상쾌하다. 며칠 만에 해서 그런지 기분이 더 그렇다. 근데 진짜 얼마만이지? 어제 그제는 주말 아르바이트를 갔다 와서 못했고···, 지난 주 엔 몇 번을 했더라. 회식 한 번, 거래처 사람들과 술자리 한 번, 금요일에 친구들 모임 한 번. ··· 운동 이틀 했구나···. 조망간 배나온 아재 친구들 대열에 합류할 지도··· 모르겠다···.


밤 9시 살짝 넘기며 비로소 하루를 훌륭히 마친 나에게 진정한 휴식시간이 도래했다. 슬쩍 허기가 이는 듯 했지만 냉장고에 있는 보리차로 대충 갈무리 하곤 방으로 돌아와 이부자리를 폈다. 그 풀썩대는 소리에 또 어머니께서 참견을 하신다.

“자려고?”

“아뇨 아직. 책 좀 보려구요.”

“그래 적당히 보고 일찍 자라. 모처럼 빨리 들어왔는데···.”

“네. 이제 그만 어머니께서도 쉬세요.”

“그래, 아들.”

“넹. 엄니.”

정말 정감 넘치는 모자간의 대화가 아닐 수 없다.

근데 이제 정감 그만 넘치고 진짜로 좀 쉬자.

미닫이로 된 방문을 움직여 나만의 보금자리를 외부세계와 완벽히 단절시키고는 깔려진 요 위로 쓰러지듯 엎어져가며 바로 잠들어도 무방할 자세를 취했다. 그러고 잠시 동안 있었다.

아아~ 좋구나~~!!

지금 이 순간이 너무나도 좋다. 출근이고 소개팅이고 나발이고 다 필요 없다. 그냥 이렇게 시간이 멈춰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한참을 이렇게 무념무상으로 있다가 오른손을 꼼작거려 옆에 널브러져 있던 전화기를 끌어당겨 눈앞에 갖다 댔다. 별다른 건 없었다. 사귀는 여자가 있는 것도 아니요 그렇다고 또 요즘말로 썸 타는 아가씨가 있는 것도 아니니···. 그냥저냥 지들 필요할 때, 아니면 술 마시고 싶을 때만 찾는 수컷들의 향연이 단말기 안에 칙칙하게 펼쳐져 있을 따름이다. 볼 것도 없다. 회사 관련한 기록들은 눈길 주기도 싫었고···. 하릴없이 오랜만에 소개받은 여자 「승미」씨와 주고받은 문자만 쭉 훑어보았다. 별 내용 없는 무미건조한 대화에 불과했지만 몇 번을 보고 또 보았다. 그리고는 화면을 끄고 충전기에 꼽아 원래 널브러져 있던 자리에 다시 널브러 놓았다.

이번엔 고개를 반대편으로 돌려 책장을 바라보았다. 많은 책이 꼽혀져 있었는데 그 중에서 가장 손닿기 쉬운 위치에 있던 녀석 하나를 끄집어내었다. 근 사이 집에서 읽고 있는 놈이었다. 내가 가방에 싸갖고 다니는, 아까 낮에 정자에서 보았던 책과 대동소이한 고대유적에 관한 내용이었으나 더욱 심오한 냄새가 솔솔 올라오는 제법 매서운 친구였으니, 수메르어에 정통한 한 학자가 메소포타미아 유적에서 발굴된 수 만장에 이르는 이른바 「니푸르 점토판」을 판독한 뒤 그 기쁨을 어찌하지 못했는지 끝내 책으로까지 편찬해낸 상당히 수준 높은 녀석이었다. 내가 이 책을 처음 대형서점에서 접했을 때 같이 갔던 친구가 ‘골치 아프게 뭐 그런걸 보냐?’하고 핀잔을 줬었지만 뭐 관심 분야이기도 하고 또 이와 관련한 서적은 웬만한 건 다 찾아다니며 독파해온 터라 상당히 쉽고 재밌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토록 알고자 갈망해왔던 고대문명의 잊혀진 돌문으로 안내해 줄 지도의 결정판이라는 판단이선 나는 거금을 들여 총 다섯 권으로 이루어진 전질을 그 자리에서 망설임 없이 구입했고, 덕분에 집으로 오는 내내 힘들어 죽는 줄 알았다. 아주 작정하고 양장본을 표방한 딱딱한 겉장으로 일단 기선을 제압해온 이 친구는 다음으로 그 어마어마한 두께의 카운터 펀지를 날리며 수세에 몰려다니던 내게 첫 판부터 당당한 K.O패를 안겨줬던 것이다. 그 직후 두 번 다시 네놈과 경기를 갖지 않겠다 다짐했던 나였다. 도저히 들고 다니면서 볼 엄두가 안 났다는 말이다. 그 일이 있은 뒤 바로 협상에 들어간 우리 둘은 양측 다 수긍할만한 합의점을 도출해냈는데 그 내용인즉 ‘앞으로 시합은 바깥이 아닌 우리집에서만 한다.’였다는. 그래야만 내가 그나마 밀리지 않고 좀 싸움다운 싸움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요구에 한수 위의 호적수는 또한 배포 큰 아량을 보여주었고, 그렇게 해서 이 친구와는 오직 집안에서만 만날 수 있는 사이가 되었다.

참 요즘 사람 같지 않은 친구이고, 또 요즘 책답지 않게 보람줄도 붙어있는 녀석이다. 고맙게도···.

그러한 벗과의 오래도록 끝나지 않을 일전을 재차 이어나가기 위해 쉬이 자주색 줄이 끼워져 있던 면을 찾아 우리 둘만의 경기장을 펼쳐내었다. 그 속에는 새하얀 종이를 배경 뒤로 몰아세운 관중들이 새카맣게 운집해 나와 친구와 나의 대결을 관심 깊게 지켜보고 있었다.


「··· 4대 문명 중 명실 공히 최고最古라 할 수 있는 고대 수메르문명이 발현한 메소포타미아지역. 1889년, ‘두 강 사이’라는 찬란한 뜻에 걸맞게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라는 두 줄기의 큰 이름으로 지금의 이라크 내부 깊숙한 곳을 흐르고 있는 이 지역에서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 고고학 조사단의 발굴과정 중 어마어마한 양의 점토판이 세상의 빛과 만나게 되었다. 발견된 유적도시의 이름을 따 ‘니푸르 점토판’이라고 명명된 이 유물은 그 수량만 해도 5만장이 넘으며 그 안에 적혀져 있는 내용 또한 종교·정치·문학·과학·법률 등 전 방위적으로 안 다루고 있는 분야가 없을 만큼 방대하여 마치 손을 뻗으면 만질 수 있을 것 같은 생생한 모습으로 당시의 생활상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 게다가 이 고문서들에는 통치에 필요한 거창한 사상적 명제뿐만이 아닌 계약과 채무관계, 영수증 등··· ··· 일반 사람들이 살았던 자취까지 상세하게 기록되어있어 통치자와 제사장으로 대변되는 권력계급에 대한 기술 외에도 사실상 인류사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나 그 흔적은 별로 찾아볼 수 없었던 대다수의 백성, 즉 평민들이 영위하던 삶의 실상을 낱낱이 밝혀냄과 동시에 이들이 역사라는 무대 위로 올라가 하나의 주인공으로 자리잡아가게끔 도와주는데 큰 기여를 하였다. 선조들이 만들어놓고 후대의 우리들이 찾아낸 ‘점토판’이라는 타임머신에 올라타 사천년도 넘는 유구한 세월을 훌쩍 뛰어 넘어가보면, 그 선사와 역사의 접점에 서있던 수많은 고대의 사람들 역시 지금을 살아가는 현대의 사람들과 다를 바 하나 없는 생활을 하고 있다는 점에 적잖이 놀랄 수도 있다···」

여기까지 읽어 내리니 순간 짜증이 몰려왔다.

씨발, 그러면 그때나 지금이나 서민들 살기는 늘 팍팍하다는 소리네···. 이런 썅!

그리고 이 책 역시 그런 나의 생각에 화룡점정을 찍어주었다.

「···인류의 시원으로 여겨지고 있는 에덴동산. 지구상 모든 사람들이 아주 먼 옛날 어딘가에는 있지 않았을까 하고 바라 마지않는 이상향, 낙원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파라다이스도, 유토피아도 없었다. 그저 ‘사람 사는 세상’만이 있을 뿐이었다···」


한 한 시진 정도 몰입하고 있었을까. 원래 쉬운 내용도 아니었지만 녀석이 한층 더 복잡하고 난해하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무거워지는 머리를 크게 휘젓고 다시 집중하려 했으나 한 장을 채 넘기기도 전에 금세 또 어지러워진다. 아··· 졸린 거구나···.

아무리 날고 기어도 내 몸 상위에 존재하고 있을 자연법칙을 거스를 수는 없는 법. 결국 환경을 지배하기보다는 환경에 순응 할 밖에 없는 범인의 테두리에 속박되어 있는 한 잡념 많은 갈대는 결국 이성의 끈을 본능에게 넘겨주기로 했다.


내 사랑하는 친구야. 오늘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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