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름다운 일주일

무료웹소설 > 자유연재 > 일반소설

공모전참가작 새글

zenithrone
작품등록일 :
2024.05.08 23:08
최근연재일 :
2024.09.20 18:00
연재수 :
52 회
조회수 :
524
추천수 :
0
글자수 :
390,044

작성
24.05.26 21:15
조회
6
추천
0
글자
13쪽

화요일

DUMMY

7시 반 신사역.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이다.

날이 날이니 만큼 오늘은 각별히 의상에 신경을 썼다. 드레스셔츠도 평상시 안 입던 좀 귀티 나는 녀석으로 골랐고, 친구 놈이 이럴 때 쓰라고 선물해 주었던 넥타이의 포장도 드디어 뜯어보았다. 훗날을 대비해 비닐도 벗기지 않은 채 고이고이 간직해 온 보람을 오늘에야 느낀다. 마무리는 자수정 은은히 빛나는 소맷부리단추로.

집을 나서기 직전 현관문 앞에 있는 거울을 한번 쓱 쳐다봤다. 그리고는 적잖이 놀랐다. 내가 이렇게도 멋있었나?

“오늘 무슨 일 있냐?”

윽. 어머님께서 애써 잡아놓은 분위기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시네.

“아뇨~ 일은 무슨···.”

대충 둘러대며 지난밤 닦아 놓은 구두에 발을 얹었다.

“있구만 뭘~ 옷에 신경 쓰는 품이···.”

“··· 티 나요?”

“에혀~ 내가 너 봐온 게 니 살아온 햇수랑 같다.”

“아···.”

할 말을 잃게 만드는 어머니의 말씀이다. 그러나 사나이 여기서 물러서면 안 된다.

“거, 거기서, 군대 2년은 뺍시다!!”

억지 가득한 나의 대꾸에 어머니께서 또 뭐라고 하시려는 찰나 잽싸게 문을 열고 도망쳐 나왔다.

낄낄낄.

계단을 내려와 빌라 앞 골목길로 접어들 무렵, 머리를 살짝 뒤로 꺾어 건물 2층에 있는 우리 집을 바라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어머니께선 창문 안에서 내가 출근하는 모습을 바라보고 계셨다.

살짝 찡해진다.

나는 몸을 완전히 돌려 제대로 고개 숙이며 인사했다.

“다녀오겠습니다~!”

거리가 가까워서 내가 드린 인사말도, 거기에 답해주신 당신의 말씀도 서로 똑똑히 잘 들린다.

“그래 조심히 갔다와라~.”



이상하다. 아까 집을 나서기 직전엔 거울에 진짜 멋있는 남자 하나가 서 있었는데, 지금 여기 버스정류장에 설치되어 있는 유리판엔 웬 찌질하게 생긴 오징어 외계인 한 마리가 서 있다? 사람은 본인이 본인 스스로를 보는 모습과 남이 자길 보는 모습이 다르다고 하는데, 과연 집에서 본 모습이 내가 나를 보는 모습이고 지금 여기서 내가 보고 있는 모습이 남이 나를 바라보는 모습일까, 아니면 집에서 본 모습이 남이 나를 보는 모습이고 여기서 보고 있는 모습이 내가 나를 보는 모습일까···. 혼란스럽다. 과연 어느 것이 내 모습인지···. 그런데 기왕이면 후자였으면 좋겠다. 나를 위해서도, 나를 바라보는 주위 사람들을 위해서도···.


오늘은 원래가 편한 출근길이 어제보다도 더 편했다. 월요일이 아니라서 그런가보다. 사무실에서의 출발도 빨랐는데, 이 역시 방문할 곳을 엊저녁에 사전탐지 해놓은 덕이리라. 이렇게 미리미리 준비해놓은 상태에서 정작 일까지 톱니바퀴처럼 딱딱 들어맞아가 주면 매사 좋은 기분으로 임할 수 있으련만 흐흐.

난 이 여새를 몰아 전날과는 달리 버스를 잡아타는 모험을 강행했고, 철저히 계산해서 움직인데 대한 적당한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그리고 이 과정들 사이에서 정수에게 연락하는 것 또한 잊지 않았다.


부지런히 다니며 여행사 몇 군데를 방문하고 나니 점심시간은 빨리도 다가온다. 마지막 영업지의 문을 닫고 나온 시점부터 발걸음에도 가속이 붙어 채 10분 걸리지 않아 근방에 있던 신천 새마을시장에 도착. 이 동네에서 살아보지 않아 소상히는 모르겠으나 그냥 한눈에 딱 봐도 매우 큰 장터임을 알 수 있게 하는 곳이다. 역시 평일 낮인데도 불구하고 입구부터 차올라있는 인파가 여유 있게 시장 안을 돌아볼 여지를 허락지 않는다.

정수의 가게는 이 초입에서부터 대략 50미터정도 내부에 위치해 있다. 최근 몇 개월간 방문하지 않았다고는 하지만 그곳을 찾아가기란 눈감고도 여반장이어서 사람들 사이에서 치이는 것 말고는 힘 하나 들이지 않고 녀석의 일터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근데, ‘어?’하는 소리가 저도 모르게 입에서 뛰쳐나왔다.

본시라면, 대략 도로변 구둣방 두어 개 합쳐놓은 듯한 째깐한 상점에서 혼자 분주히 뛰어다니며 끊임없이 몰려드는 손님들 사이에 끼어 ‘어 왔냐’하는 말 쪼가리 하나 던져놓고는 이생선 저생선 급히 만지작거리는 얼굴 심하게 그슬린 사내 녀석이 있어야하는데, 그 모습 온데간데없는 자리에 낯선 이 하나만이 열심히 어물을 다듬고 있다? 한술 더 떠 이 가게 맞은편에 있던 족발집은 언제 들어섰는지 모를, 거의 정수네 그것의 세배만 한 규모의 커다란 어물전으로 탈바꿈하여 많은 길손들을 상대로 성황리에 영업을 하고 있는 거다.

“어어?”

기대하고 온 것과는 다른 광경에 적이 당황한 나는 두 상점 사이에 서서 정수네 가게로 들어가지도, 또 그렇다고 이 자릴 지나치지도 못하며 잠시 주춤거리었다. 맞은편에 들어선 대형매장 때문에 그동안 고생하고 있었을 정수에 대한 걱정이 속에서 맴돌았다.

아··· 이곳도 드디어 자본을 앞세운 냉혹한 규모의 경제에 잠식당하고 말았구나···.

애끓는 마음을 애써 가누며 전화기를 꺼내 정수의 번호를 눌렀다.

“준호냐.”

마침 신호 몇 번 울리기도 전에 친구가 전화를 받는다.

“어 야 그래. 나 지금 니네 가게 앞이다.”

“왔냐? 빨리 왔네. 조금만 기달려 나 거의 다 왔어.”

“어 그래. 근데, 뭐냐 이거?”

“뭐가?”

“야 니네 집 앞에 뭐 이렇게 큰 생선가게가 들어섰어?”

“아··· 그거···.”

정수는 잠시 하던 말을 멈추었다.

나는 아무 대꾸도 않고 녀석의 입에서 나올 다음 응답을 기다렸다.

“··· 힘들다. 사실 말을 안 했는데, 앞에 가게가···.”

그때였다.

“어? 형님! 안녕하세요!!”

하고 누가 크게 외쳐대는 통에 기다려온 친구의 마지막 대답은 내 유모세포에 들어오지도 못하고 허공으로 흩어져나갔다.

반사적으로 소리가 들려온 쪽을 쳐다본 나는 의외의 반가운 얼굴 하나를 찾아 볼 수 있었으니,

“?? 병수? 병수냐?”

“네 형. 여긴 어쩐 일이세요.”

정수의 동생인 병수였다. 난 당연히 상상조차 하지 못했기에 파란 비닐앞치마를 두르고 노란 고무장갑을 낀 녀석을 전연 알아보지 못하고 있었으나 그쪽에서는 그래도 몇 번 봤다고 먼저 알아보고는 반갑게 인사를 걸어왔던 것이다.

“나야 뭐 친구 보러 왔지.”

“네 헤헤. 형 지금 잠깐 납품 갔어요.”

“알아. 통화했어. 아, 아니 지금하고 있어. 근데 너 왜 여깄냐? 어제만 봐주는 거 아니었어?”

“아 저 이제···.”

“아 아, 병수야 미안, 잠깐만. 나 잠깐 통화 좀 먼저···.”

멍청하게스리 아무리 뜻밖이라고는 해도 수화기 너머 기다리고 있을 정수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다. 항상 바쁜 녀석인데···. 후우··· 나란 놈···.

“정수야 미안하다.”

“왜 그래, 무슨 일이야? 뭔 일 있어?”

한참이라고 할 순 없지만 전화기를 서로 켜놓은 상태라고 하면 또 얘기가 틀려지게 될 짧고도 긴 시간을 인내해 준 친구는 내 말소리가 다시 들리자 응당 폭풍 같은 연타를 쏟아내었다.

“아, 별일 아···닌게 아니라, 니 동생 만났다.”

“아, 병수? 만났냐?”

“그래 깜짝 놀랐다. 어제만 봐주기로 한 거 아녔어? 너 요즘 많이 바쁜가봐?”

“아~. 걔 회사 관뒀어.”

“뭐. 요즘··· 다 힘드니까···.”

“이제 우리가게에서 일해. 그리고 그 앞에 가게···.”

드디어 사건의 전말을 털어놓는 정수.

“내꺼다.”

어쩐지. 첨엔 많이 당황스러웠지만 모르는 사람이 있던 원래 정수가게야 그렇다 쳐도 이편에서 다망하게 뛰어다니는 사람들 중 하나가 병수였다는 사실을 안 순간부터 머릿속에는 대충 그림이 그려지고 있는 바였다. 제 아무리 눈치 없는 사람이라도 이쯤 되면 모르는 게 더 이상하겠다.

“오우~ 이번에 좀 늘렸다 친구야~!”

“이 자식이?”

“낄낄낄.”

“그럼 힘들다는 건 뭐야?”

“아 그거? 가게 늘리느라 힘들었다. 많이.”

“알았다···. 빨리 와라···.”

이쯤 되니 더 이상 할 말 찾기도 힘들어 녀석의 낄낄거리는 웃음소리 넘실대던 전화기를 그냥 꺼버리고는 병수가 있는 쪽으로 다가갔다.

“병수야. 니네 형하고 통화 끝났다.”

“아 어쩐지, 형하고 통화중이었구나.”

“그래. 병수 너 직장 그만두고 이제 여기로 나온다며?”

“네. 그렇게 됐어요. 헤헤.”

나이 삼십도 넘은 놈이 뭐 이리 귀여운 웃음을 흘려대는지. 살끔 징그럽다.

“그래 잘 됐네. 직장생활 해봐야 뭐 남는 거 있냐. 더 늦기 전에 이렇게 기술 배우는 게 낫지. 니 형 봐라. 일찌감치 한 우물 파서 이렇게 올라섰잖아. 우리 친구들 중에서도 정수가 제~일 잘 나간다.”

“그러니까요 헤헤. 울 형이 이제 조만간 형님도 여기 올 것 같다고 하던데요.”

“나, 나? 나??”

“네.”

“이런 미친···.”

“그러지 말고 형도 빨리 오세요~ 내 밑에 오심 제가 잘 가르쳐 드릴게요.”

“···? 이런 미친~??!”

되도 않는 헛소리에 뭔가 한 방을 급히 준비하려는데 자긴 이제 손님 받아야 된다며 쪼르르 달려가 버리는 병수.

푸하하하. 암튼 보면 볼수록 활력 넘치는 두 형제다.

이제 곧 도착한다는 정수를 기다리며 슬슬 주위를 둘러보니 전체적인 모습이 내 눈에도 확연히 들어오기 시작했다. 원래부터 있었던 정수네 가게 안에선 아까와 다름없이 남자 한명이서 부지런히 생선을 다듬고 있었고, 시장 길을 가운데 두고 있는 반대편 매장에서는 병수를 빼고도 두 사람이나 더 손님을 상대로 각종 해·수산물을 팔아재끼고 있었다. 이건 뭐 완전히 동네 골목 어물전이 아닌 하나의 기업이다 기업. 여길 다녀간 지 6개월도 안 되는 그 짧은 기간 동안 갑자기 점포가 이렇게나 커지다니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내 원래 정수가 돈을 잘 번다는 건 알고 있었으나 이 정도까지 일 줄은 몰랐었다는 말로 설명이 가능할까? 물론 자세한 건 녀석이 와봐야지 알 수 있겠지만, 그러나 이 모든 걸 떠나서 근 사이 같이 경기가 어려워 사회가 온통 힘들어하는 이때 버티는 것만으로도 내공소모가 클 텐데 이렇게 세를 갑작스레 확장하다니 그 배포에 혀가 내둘러지는 걸 막지 못하겠다. 여하튼간에 기분이 좋다 기분이. 친구 하는 일 이렇게 나날이 번창해 가는 것이.

그리고 얼마 안 있어 이 기분 좋게 하는 자식이 드디어 그 모습을 나타내었다.

난 많은 인파를 가르며 다가오는 정수를 보자 왈칵 반가운 마음이 앞서 따뜻한 인사말을 건네지 아니할 수 없었다.

“야, 빨리 빨리 안 다녀어~?”

“오오오~ 준호냐!”

“그래 이 씨꺄!”

밝은 미소를 띠며 마주 선 나와 정수는 힘차게 손을 맞잡고 흔들어대었다. 작년 가을, 잠시 백수였을 때 하는 일 없이 빌빌거리다 한번 이 자리로 나와서 얼굴 본 뒤로 거의 반년이 흘렀다. 시간이 흘러도 이 친구는 거의 변한 게 없다. 아니 오히려 노안이었던 고교시절보다 더 젊어진 것 같다. 그럼 여기서 또 외모 칭찬을 안 해 줄 수 없지!

“야 넌 갈수록 신수가 훠~언해 지냐? 요즘 먹고 살만 한가베?”

“뭐, 그렇지 뭐. 너는?”

“뭐 나도. 쪼오금 살만해졌다.”

“다행이네. 이제는 돈 좀 모아라. 회사도 다시 다니고 하니 여자도 좀 만나고.”

“아이고 남 말하시네~.”

악수하던 손을 놓고 우린 어물전 옆 한갓진 곳으로 두 몸뚱어리를 옮겨 그간 하고 싶었던 말을 주거니 받거니 했다.

“근데, 오~ 너 오늘 멋지게 차려입었다?”

“야 직장인 다 그렇지 뭐. 이게 평상복이다.”

“킥킥. 난 또 오늘 무슨 일 있는 줄 알고.”

정수는 알아봐 준걸까? 내가 꾸몄는지 안 꾸몄는지를.

아까 아침에 출근했을 때는 나름 화사하게 인사를 했어도 동료직원들 모두 눈치를 못 챈 건지 원체 관심이 없는 건지 아무 말들 안했었는데.

“내가 원래 좀 멋지잖냐~.”

“···그, 그래···.”

영혼이 느껴지지 않는 대답이다. 이 자식, 눈길까지 피하고 있어!

···

잠깐 찾아온 이 썰렁한 분위기를 타파하기 위해 난 주먹 대신 농담하나를 날려 보냈다.

“야 좀 도와줄까?”

“응, 이제 필요 없어. 꺼져.”

씨바···.


작가의말

무사히 월요일 하루를 보낸 우리의 주인공 천준호.

서른 넘어 오랜만에 나가게 된 소개팅.

과연 그 결말은?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나의 아름다운 일주일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2 화요일 24.05.29 11 0 12쪽
21 화요일 24.05.28 9 0 14쪽
20 화요일 24.05.27 9 0 14쪽
» 화요일 24.05.26 7 0 13쪽
18 월요일 24.05.25 9 0 11쪽
17 월요일 24.05.24 9 0 12쪽
16 월요일 24.05.23 7 0 16쪽
15 월요일 24.05.22 7 0 14쪽
14 월요일 24.05.21 6 0 13쪽
13 월요일 24.05.20 6 0 11쪽
12 월요일 24.05.20 8 0 15쪽
11 월요일 24.05.18 6 0 15쪽
10 월요일 24.05.17 8 0 14쪽
9 월요일 24.05.16 9 0 15쪽
8 월요일 24.05.15 11 0 21쪽
7 월요일 24.05.14 13 0 9쪽
6 월요일 24.05.13 14 0 11쪽
5 월요일 24.05.12 12 0 11쪽
4 월요일 24.05.11 15 0 9쪽
3 월요일 24.05.10 18 0 13쪽
2 월요일 24.05.09 25 0 11쪽
1 월요일 +2 24.05.08 70 0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