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름다운 일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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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enithrone
작품등록일 :
2024.05.08 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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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11 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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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DUMMY

오만 잡생각 가득한 출근길이 사무실 문 앞에서 겨우 끝을 만났다.

정확히 8시 47분. 오예~ 여유 있는 도착이다. 좋구나! 이 자그마한 행복 앞에 건물복도를 걸어오는 동안 머릿속에 어지럽게 떠다니던 객려의 마지막 자락들이 홍로점설처럼 순식간에 사그라져버려 흔적조차 찾아 볼 길 없다. 역시 나라는 인간은 이리도 심심한 존재였던가. 조그마한 일에도 일희일비하는 모습이 단순무지하기 짝이 없는···. 아이고 이 청맹과니 으찌 구제 가능하리오.

가냘픈 모습으로 육중한 유리문을 힘들게 막아서고 있던 전자식 자물통이 네 자리 비번을 받아먹자마자 너무나도 쉽게 금기의 서약을 풀어준다. 쉬운 녀석 킥킥. 사람의 마음속도 비밀번호 따위 하나로 이리 편하게 들어갔다 나왔다 할 수 있다면 좋으련만. 그렇다면 아리따운 아가씨의 마음을 훔치는 일도, 커다란 계약을 수두룩하게 따오는 것도 손바닥 뒤집기일 텐데···. 그런 신묘한 비밀번호 같은 것 좀··· 어디 없을까? 허허 참.

손쉽게 열고 들어온 문 안 사무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예상했던 바대로 오늘도 일빠다. 확실히 가장 먼저 출근하여 텅 빈 공간에 이렇게 혼자 덩그러니 있노라면 왠지 기분이 좋아지는 걸 참기 힘들어진다. 뭐랄까, 아직 오지 않은 사람들보다 조금 더 여유 있게 하루를 시작하는 것 같은 사소한 우월감이 든다고나 할까? 그러나··· 어차피 일을 한다는 건 들이는 시간과는 별개로 그저 업무에 대한 숙련도에 의해 좌우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 능숙함까지 방해받을 정도의 엄청난 지각을 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그러니까 지금 소박하게 느끼고 있는 이 부심은 그저 혼자만이 가지고 있는 아주 쪼매나고 씁쓸한 자기만족에 불과하다는 거다. 한마디로 그냥 착각이다 착각. 아직 이 바닥에 발 디딘지 얼마 안 된 나에겐 몇 년 경력 다부지게 쌓여져있는 다른 직원들만큼의 노련미 따위 있을 리 만무하니 이렇게 일찍일찍 나와서라도 ‘뭐 열심히는 하네.’라는 소리라도 이끌어내어 일단 당장 쫓겨날 일 없도록 만드는 것이 급선무겠지. 다행이 아직 숙련도보다는 일을 대하는 성실성에 더욱 무게를 두는 기간에 속해있어 당분간은 업무성과로부터 자유로운 상태니까. 하지만··· 이 빌어먹을 정도로 치열한 현대 경쟁사회는 언제까지나 속절없이 기다려줄리 없으며 이 자비로운 기간이 끝나는 순간 눈앞에 화려한 불바다가 펼쳐지리란 것쯤은 지나가는 개도 알 수 있는 일이다. 으으~ 생각만 해도 몸서리 처진다. 이미 다른 소사회, 다른 직종, 다른 회사에서 몇 번의 죽을 고비를 넘기고 이곳까지 흘러온 나로서는 이 평화가 그리 길게 이어지지 않으리라는 것쯤 시쳇말로 안 봐도 비디오. 그러니 이렇게 해서라도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할 필요가 매우 당연하다는 것이다. 아, 물론 업무성취도도 피나게 닦아 올려야겠지. 살아남기 위해서. 이 인생이라는 무시무시한 전장 안에서.

“어? 천 대리 일찍 왔네?”

내가 이 회사를 나오기 전까지는 계속 첫 번째로 사무실 문을 열었을 차장님이 아침 인사를 건네며 들어왔다.

“아 네. 차장님 안녕하십니까.”

참고로 여자다. 그것도 가장 나이 많은. 여직원들 중에.

“그래. 천 대리도 안녕~ 항상 열심이네. 천 대리 오기 전에는 내가 가장 빨리 왔었는데.”

“아 제가 좀 아침잠이 없어서요. 그리고 잘 모르면 열심히 라도 해야지요.”

“뭐 아직 다닌 지 얼마나 됐다고. 하다보면 실력 다 늘게 되어있어.”

“네 감사합니다.”

자, 그나마 내가 갖고 있는 줄 알았던 조그만 부심도 이렇게 단 십 몇 분 되지 않아 깨어져 버렸으니 종내 현실로 돌아와 제대로 된 일과나 열어나가 보자.


시계 침이 정각 9시에서 쬐끔 오른쪽으로 기운다 싶을 무렵, 별안간 복도 밖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이윽고 “저것들 또 뛰어오나 보네.”라는 차장님의 반 빈정 섞인 말씀이 있었는데, 그 말 끝나기 무섭게 아우성의 주인공들이 유리문을 벌컥벌컥 열어 재끼며 사무실 안으로 우르르 뛰쳐 들어온다.

“안녕하세요~.”

“아싸 지각 아님!”

“지각이야 미친년아~.”

등등의 말소리가 헐떡거림 중간 중간에서 새어나오며 조용했던 실내에 갑작스러운 부산스러움도 같이 번져 올랐다. 다들 각자 지각이 아니라는 둥 가부간 그런 내용의 자기 합리화적 의미 강하게 느껴지는 한마디씩을 내뱉고 있었는데··· 그러다가 그들 중 누군가에 의해 나의 차례가 강요되어졌다.

“천 대리님 혹시 사장님 와계세요?”

“아직 안 왔어 이년들아. 어서 자리에 앉기들이나 해.”

“···.”

물론 마지막 말줄임표는 내 것이다. 입을 차마 떼기도 전에 차장님이 앞을 가로막아 선 것이다. 쩝, 할 말이 없다. 고맙다. ···고맙다고 해야 하나? 그래도 모처럼만에 온 내 순서인데 여기서 물러설 순 없지.

“네 아직 안 오셨어요. 제가 출근했을 때 아무도 안 계셨습니다.”

이미 종료된 상황에 굳이 사족을 붙여보았다. 그런데 그게 생각보다 반응이 좋다. 내가 입을 다문 뒤에 찾아온 찰나의 정적은 곧이어 무서운 환호를 불러오기 위한 폭풍전야. 자기 자리에 앉아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던 직원들 사이에서 “이야~!” “좋았어!!” 하는 안도감 충만한 함성이 터져 나왔다. 저리도 좋을까. 좋겠지. 당근. 뭐 나라고 저런 일들이 없지 않았겠으랴. 출근시간 조금 넘겨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소심하게 사무실 문을 열었는데 상급자가 아무도 없었을 때의 그 다행스러움이란. 흐흐 차마 말로 형언하기 힘들다. 거기다 더해 잠깐 뒤에 사장님이나 여타 나보다 높은 사람들이 들어오며 ‘어?! 아이쿠 늦어서 미안하네.’ 하며 내 등을 툭 치며 지나갈 땐 다행스러움을 넘어서 짜릿하기까지 하다. 상황이 이정도 되면 나 역시 자리에서 일어나 평소에도 하지 않던 90°인사를 시전해 마지않는다. 아마 ‘아니 이 친구 왜 이러지? 더 미안하게 스리···.’라고 속으로 생각까지 했었다면 정말 좋은 상사!


커피를 마신다, 선식을 먹는다 하며 잠시 어수선해졌던 사무실의 아침은 대략 9시 30분이 지나면서부터 차차 차분해지더니 이내 “언니 베-캄(베트남-캄보디아)일정 어떻게 돼? 남는 자리 있어?” “이번 금요일 싱-빈(싱가포르-빈탄) 현지 누가 받기로 했지?” 하는 등의 치밀한 업무내용만 간간히 왔다가는 프로들의 침묵으로 채워졌다. 이쯤 되면 나도 이제 사무실을 나설 시간이 됐다는 거다.

“부장님 저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수고해라. 오늘은 어디 가냐?”

“네. 오늘 아침에 송파구 쪽 여행사 목록 주소하고 전화번호 정리했습니다. 그쪽에도 여행사가 많네요.”

“그래 갔다 와라.”

“네.”

서울영업부 부장이라는, 장년과 중년사이의 애매한 경계선에 위치해 있는 아저씨는 의자에 앉아 자신의 컴퓨터화면에서 눈도 떼지 않은 채 성의 없이 말만 받아넘긴다. 과연 내가 했던 말을 이 자리가 지나가고 불과 몇 분이 흘러간 뒤에도 기억해낼 수 있을까? 아마 아니겠지. ‘부장님. 제가 어디 간다고 말씀드렸죠?’하고 심술스런 질문을 던지고는 싶지만 참자. 왜? 난 여기서 살아남아야 하니까. 도대체 내 직속상관이라는 저 양반하고는 언제쯤 친해질 수 있을는지··· 그런 날이 오기는 할런지···. 에라, 모르겠다. 일단 살고 보자. 모든 건 그 다음이다. 일단 살자.

난 어색한 기류를 애써 외면하며 검은색 서류가방을 챙겨들고는 걸음에 힘을 가했다. 그리고 입구에 잠시 서서 몸을 다시 사무실 쪽으로 돌리고는 심호흡 한 번 크게 하고 외쳤다.

“저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되십쇼!!”

뒤이어 사무실 문을 열고 나오는 등 뒤로 여러 외침들이 들려왔다.

“다녀오세요~.”

“응 천 대리 힘내!”

“수고해요~.”

“잘 다녀와요~.”

“읍읍읍읍”

딱 여직원 수만큼의 목소리다. 아마 마지막의 ‘읍읍읍읍’은 뭔가를 먹다가 다급하게 내뱉은 의성어이겠고. 킥킥킥. 그래 힘내자. 힘내서 오늘도 살아보자.

뭔가 북받치는 감정을 느끼며 복도를 걸어가고 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이내 다급하게 뛰어오는 기척 전해지는 것이, 어? 이거 나를 향해 오는 거 같은···? 짐작했던 데로 익숙한 목소리 하나가 어깨를 타고 넘어온다.

“형~, 천 대리님 같이 가요.”

“어? 김 대리님?”

“네.”

“아직 정리 안 끝났는 줄 알았는데?”

“네, 사실 좀 더 해야 되는데 형 가는 거 보고 그냥 나왔어요. 영업사원이 사무실에 혼자 있기는 좀 그렇잖아요.”

같은 사무실, 같은 부서에 근무하고 있고 자리도 바로 옆인데다가 직급도 나와 같은 김민혁대리였다.




객려(客慮) : 마음이 산란하여 생기는 쓸데없는 생각.

청맹과니 : 사리에 밝지 못하고, 사물을 제대로 분간하지 못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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