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름다운 일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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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enithrone
작품등록일 :
2024.05.08 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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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0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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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22 2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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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DUMMY

“아 예, 저 오전에 인사드렸던 인차투어 천준호 대리라고 합니다. 기억하시죠?”

“··· 예···, 아! 아 예! 예예, 아 안녕하세요~.”

···

서운해라. 근데 어쩌랴. 이게 영업사원의 숙명인 것을···. 그저, 일수다~ 하고 부지러~언히 찾아다니는 것 외에는 달리 방도가 없으니···.

“네네. 뭐 어차피 관심도 없으시겠지만, 아무튼 저는 사무실에 잘 들어왔습니다.”

“푸핫!”

아까도 그랬지만 이 아가씨 진짜 기술접수가 좋다. 덩달아서 나까지 기분이 좋아질 정도로. 이 정도 리액션이면 아마 주변에서 오해하고 접근하는 남자들이 부지기술 꺼라 내 장담한다. 큭큭.

암튼, 본론으로 돌아와서.

“다 웃으셨나요?”

“아 네네. 죄송해여···.”

“아뇨~. 별말씀을요. 다름이 아니라, 아까 차까지 주신 것 너무 감사해서요. 그렇게까지 친절을 베풀어주는 곳이 그렇게 많지는 않거든요.”

“어머 정말요?”

“아 그러믄요!!”

물론 그짓말이다.

그래도 들어서 이래저래 기분 좋아질 말 몇 마디 더 붙여주고는 슬슬 다음번으로 넘어갈 준비를 했다.

“예 아무쪼록 퇴근준비 잘 하시구요, 오늘도 즐거운 저녁시간 되십쇼.”

“예 고맙습니다. 천준호 대리님두요~. 담에 또 들러주세요~.”

“물론 그럴 겁니다. 꼭 또 찾아 뵐 테니 그때까지 그럼 안녕히 계세요~.”

“네~ 감사합니다~.”

“예예 먼저 끊으세요. 그래야지 저두 끊죠.”

“아, 예 그럼,”

뚜 뚜 뚜···.

이런 식으로 4번의 통화를 더했고, 끝내 전화를 받지 않은 나머지 몇 집은 문자로 오늘의 감사 인사를 대신했다.

「안녕하십니까 아까 찾아뵈었던 인차투어의 천준호 대리라고 합니다 오늘도 즐거운 저녁시간 되시구요 항상 즐거운 일 가득했으면 좋겠습니다 조만간 또 인사드리러 갈께요~」

휴우~ 입에 침이 다 마르네. 이렇게 꾸준히 밑밥을 뿌려놓으면 뭐가됐든 언젠가는 걸려들겠지.

어느 틈엔가 컴퓨터는 전기를 넘칠 듯이 머금고 총천연색으로 빛나는 배경화면을 멋지게 껌쩍 거리며 자신을 봐달라는 눈치를 보내오고 있었다. 늘 이 일상의 반복인데, 전화 한 통화 짧게 잡아 몇 분이라 쳐도 그게 대 여섯 번이면 벌써 10여분 훌쩍 넘어가니 그날분의 전화영업을 마치고나면 혼자 외로이 내 얼굴만 쳐다보고 있는 녀석의 쓸쓸한 화면과 시선이 꼭 마주하게 된다는. 아이구 놈··· 심심 했겠구나··· 이제는 너하고 놀아주마.

겨우 기분 풀려하는 녀석을 재차 달래는 척 하며 화면 하단에 있는 시계로 슬쩍 눈을 돌리자 돌아오는 숫자는 벌써 다섯 시하고도 사십분. 서둘러야겠다. 빨리 일일보고서 작성하고 내일 방문지 정보 수집을 시간 내에 마쳐야 홀가분한 마음으로 사무실을 나설 수가 있으니.

먼저 영업보고서 작성. 이건 사실 일도 아니다. 한글 프로그램으로 오늘 방문했었던 여행사를 순서대로 열거한 뒤 각 담당자의 이름과 연락처를 적고 상담했던 내용, 그러니까 한 달에 모객 인원은 대략 얼마나 되는지, 주로 보내는 지역은 어디인지, 그리고 결정적으론 동남아지역으로 여행객이 모집될 때 우리에게 팀을 맡길 의향이 있는지 등을 간단하게 서술하여 출력한 후 받아온 명함을 스테이플러로 찍어 문서에 같이 고정하면 끝. 그리고는 우리 영업부서 제일 상석에 앉아있는 대빵에게 제출하면 된다.

“부장님. 오늘 보고서입니다.”

갓 나온 따끈따끈한 결과물에 혹시라도 데지 않도록 양손으로 조심스럽게 들고서는 최대한 정중하게 움직여 우리 동네 골목대장에게 헌납했다.

그러나 이 아저씨, 고개를 돌리기는커녕 자기 컴퓨터에서 눈도 떼지 않은 채

“그래 수고했다.”

라는 말만 무심하게 내뱉고는 한 손으로 서류를 받아 역시 한 번 훑는 기색 없이 책상 한 귀퉁이에 대충 던져놓을 뿐이다. 그곳에는 며칠 치 인지도 모를 제법 많은 양의 종이뭉치가 쌓여져 있었다. 내가 이렇게 열심히 만들어 올려도 저 부장이라는 양반은 과연 검토를 하기는 하는 건지? 아니, 검토는 고사하고 매일매일 쌓여가는 양상으로 미루어 보건데 어쩌다 실수로라도 펼쳐보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이 각박한 현대사회에서 나 역시 어떻게든 살아보기 위해 악착같이 발버둥 치며 만들어낸 귀한 결과물들이 이러한 취급을 받는다는 것에 살짝 서러움이 일었지만, 그것보다는 매번 애꿎은 A4지만 낭비되는 것 같은 이 비효율적인 현실에 하릴없이 희생되어가는 순백의 종이들에 대한 미안함이 한참 앞선다.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내가 힘이 없구나···.

···슬프고도 슬프지만 내 역할은 여기까지. 이제 나머진 위에서 알아서들 처리하겠지.

“예.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래라.”

공식적인 업무가 비로소 그 끝을 만났음을 알려주는 마법의 언어다.

이다음에 할 일은 방문지 정보수집. 이건 더더욱 일도 아닌 것이, 지금부턴 자리로 돌아와 퇴근시간까지 그저 내일 찾아갈 여행사들을 인터넷 지도에서 미리 봐두기만 하면 된다. 얼핏 보면 아무것 아닌 것 같아도 이 작업이 매우 중요한 게 이렇게 먼저 대략적인 장소를 파악해 놓지 않으면 정작 방문했을 시 자세한 위치를 몰라 헤매게 되는 경우가 설혹 있는데, 이럴 때는 대략 난감. 목적지를 찾느라 단 5분만 허비해도 이후에 짜놓은 일정들이 도미노처럼 밀려나 할당해놓은 목표치를 이루기까지 시간에 쫓겨 허덕이게 된다.

이 회사에 처음 들어왔을 때 교육기간 도중 받은 자료가 있었다. 그 안에는, 세상에나! 거의 2만여 개 달하는, 전국의 모든 여행사가 다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어마어마한 양의 여행사 목록 파일이 들어있었는데, 거기서 서울 안에 있는 여행사를 고르고 고른 것만 대략 삼 사천여개. 정말 누군가의 처절한 노력으로 마침내 완성된 필생의 역작이라고 불러도 무방할만한 「작품」이었다. 난 이 보물을 신주단지처럼 여기며 신봉했고, 거기 적혀있던 작전지역들을 하나하나 내 것으로 만들어 가리라는 굳은 다짐을 했었더랬다. 그러나··· 어처구니없게도 그 세찬결의는 첫 영업을 나간 날 처음 방문했던 곳에서부터 우습게 부서져 나갔으니···. 그날 처녀방문으로 예정해 놓았던 여행사가 힘들게 찾아간 수고를 무색하게 사라져 나타나지 않았던 것이다. 목록에 적혀있는 주소를 두 번 세 번 확인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혹시나 해서 상호 옆에 적혀있던 번호로 전화를 걸어보아도 없는 번호라는 이쁜여자 목소리만 들려올 뿐···. 문제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없어진 여행사가 그 하나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가련하게도 그 첫 출전일은 이 몸의 영업경력에 평생가도 잊혀지지 않을 오점하나를 쎄게 박아 넣은 하루였고, 이 사건 이후로 난 절치부심하며 방문하기 전 빛바랜 보물단지에 표기되어 있는 여행사와 나름 공신력 있게 돌아가고 있는 인터넷 모 사이트의 지도상에 나와 있는 그것과의 교차 확인에 심심치 않은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으나 그래도 많은 오차율을 줄이고 효율적인 영업운용에 큰 도움이 되어주는 이 작업을 소홀히 해오지 않고 이른 지금이었다.

꽤 중요하지만 그닥 어렵지는 않은 이 업무를 집에 가기 전까지 최대한 수행해놔야 하는데, 물론 장소는 오늘 방문했었던 신천역 근처, 거기다가 정수네 가게에서 좀 더 가까이 있는 쪽으루다가. 초창기 얼마간은 구시대의 유물과 신시대의 정보망사이에서 갈팡질팡하기도 했으나 시간 차차 흐르며 모든 것이 워낙 잘 갖추어져있는 세상에 살고 있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되니 이제는 영업하러 갈 여행사 찾는 게 식은 죽 먹는 만치 쉽다. 기존에 있던 명단을 기반으로 그 일대를 인터넷 지도에서 확인하기만 하면 찜해놨었던 회사 근방에 있는 다른 녀석들까지 자동으로 딸려 나와 주니까 말이다.

내일 정수와 점심 먹을 걸 감안해서 그 주변에 포진해 있는 친구들을 콕콕 찝어 정리해놓고 나니 대충 퇴근시간이 맞물려온다. 아니나 다를까 사무실 곳곳에서도 점점 부산스러움이 피어오르는 것 같더니만 마침내 ‘아 오늘 퇴근하고 뭐하지?’ 하고 누군가가 내뱉은 혼잣말을 필두로 갑자기 도떼기시장이 되어버렸다. 이 소란은 이제 모두가 사무실을 떠날 때까지 절대 멈추지 않을 아우성. 나 역시 대세에 편승해 아무런 미련 없이 슬기틀의 전원을 내린다.

아아아~ 드디어 하루 중 가장 즐거운 순간이 찾아왔구나! 여기서 이 좋은 기분에 취해 한 가지를 더 강조하자면, 우리 회사는 야근이 없다는 것을 힘주어 이야기하고 싶다. 이거 정말 좋은 거시 아닐 수 없다, 이거 정말. 예전에 경기도 안산에 위치한 FPCB, 즉 유연성회로기판공장에 있었을 때나 몇 사람 없는 조그만 사업체에 몸담고 있었을 때, 아 물론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도 중소기업의 범주 안에 들어있기는 하지만, 가부간 여타 회사에 있었을 때는 매일 매일이 야근에 잔업이라 정시 퇴근한다는 것이 어쩌다 한 번 있을까말까 한 일이었었는데···. 빠르면 9시, 늦으면 10에 퇴근해 겨우겨우 집에 도착하면 밤늦은 11시. 여자 친구를 만들 시간도, 하다못해 가까운 친구 하나 만나 소주 한잔 기울일 시간도 대부분 잠의 어둠속으로 일찌감치 도망가 버려 삶에 이렇다 할 영향을 주질 못했었다. 그뿐만이 아녔다. 점점 쌓여가는 피로를 주말에라도 풀어주는 것이 당연한 이치겠으나 그때가 되면 왜 또 그리 할 일이 많이 생기는지, 어차피 쉬는 거 회사에 나와 업무 보면서 쉬는 것이 오히려 속편할 지경이었다. 주변에서도 젊을 적에는 그렇게 일해야 한다고들 말해쌓는 통에 나중에는 나 자신도 인이 박혀 이게 당연한 거구나 다들 이렇게 살아가고 있나보구나 하며 순응하고 살던 시절이었다. 그러다가 운명이 던진 기구한 장난에 깔려 몇 번의 이직을 전전한 끝에 지금의 이곳까지 오게 되었더니, 와~ 세상에! 천국도 이런 천국이 없는 거다? 당연히 사회생활과 사람상대에서 오게 되는 짜증이 없을 순 없겠지만, 이 모든 걸 포함해서라도 근무여건이 이정도로 선진화된 회사는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찾아보기 힘들지 않을까싶다. 당장 퇴근시간만 하더라도 저녁 6시 30분이 되면 모든 직원이 하던 일을 멈추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모습이, 갓 입사했을 적에는 고루한 한국의 기업형상에서 자유로울 수 없던 범부의 눈으로는 쉽사리 받아들여지질 않는 현상이었다.

첫 출근한 날이었다. 게다가 경력도 아닌 신입이니 무얼 알겠는가. 사장님도 예하 다른 직원들도 그냥 당분간은 회사 분위기나 익히라고 자유롭게 놔두었었는데 아무것도 하지 못하던, 할 줄 몰라 할 수 없었던 지루한 시간을 어찌어찌 보내며 임박해 오는 퇴근시간을 목전에 두고 있을 때였다. 시계는 6시하고도 20분. 과연 나의 이 새로운 직장은 하루 업무가 끝난 이후에는 어떻게 돌아갈까? 하는 궁금증을 긴장감 속에 품고 조마조마해 하고 있던 와중,

“너 뭐해 인마!?”

“네??”

사장님이었다. 씨름선수 연상케 하는 그 큰 덩치를 이끌고 사장실을 나오다가 자리에 앉아 있는 날 보았던 것이다.

“인마 퇴근 준비해~ 뭐 너 뭐하게. 뭐 할 거 있어?”

“아 아님다!”

“빨리 가방 싸갖고 일어나~ 우리 회사는 6시 반 칼퇴야 칼퇴! 집에 안가고 남아있는 놈은 능력 없는 놈이야~! 너 그런 놈 되고 싶어?”

“아 아닙니다!”

“빨리들 일어나이씨~!! 전기세 아까워!!!”

이 마지막 호통에 다들 주섬주섬 짐을 싸들고 일어나는데 한쪽 구석에서

“아 이것만 보내면 되는데!”

하는 말소리가 들려왔다.

“시끄러이씨~!!”

그러나 대번에 묵살되어 버렸다.

참으로 놀라운 광경이었다. 우리나라에 이런 사장님이 있었던가? 이런 건 외국 영화에서나 나오는 장면인 줄 알았더니만···. 지금까지 겪어왔었던 사장님들의 모습··· 이라기보다 행태는··· 아 아니다. 말을 아끼자. 인생 반세기도 안 산 놈의 경험이 많다면 또 얼마나 많다고. 내가 이 땅에 있는 기업가들을 모두 다 만나 본 것도 아니지 않는가.

여하튼 이 충격적인 모습이 아직도 뇌리에서 생생하게 뛰어다닌다.

마지막에 ‘오늘 새사람 들어왔으니 회식이나 할까~??’하고 기분 좋게 외치시던 사장님의 목소리까지도.

그러나··· 누군가가 그러지 않았던가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는. 몸이 편해지면 마음도 편해진다고 그 얼마 지나지 않은 새에 안타깝게도 적응은 빠르게 이루어져 이젠 이게 매우 당연하게 여겨질 따름이다. 그러다가 어쩌다 다른 사람들과 만나 바깥세상에서는 야근이라는 분이 아직도 밤의 황태자로 군림하고 있다는 무시무시한 사실을 새삼 접하게 되면 그럴 때만 가끔 고맙게 느껴지는 간사함에 스스로 치가 떨리곤 한다.

흠흠~! 즐거운 추억은 여기까지.

이제 마지막으로 반드시 해내야 할 일 하나만 남았다. 앞서 행했던 두 개의 경우와는 달리 이건 좀 많이 힘들다.

바로 집에 가는 일이다.

회식이나 술자리 없이···.

아무 일 없이···.

무사히···.




슬기틀 : 컴퓨터의 순 우리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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