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름다운 일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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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enithrone
작품등록일 :
2024.05.08 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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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27 2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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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DUMMY

확실히 전에 비해 이 녀석 분위기가 달라졌다. 뭔가 여유가 넘친다고 해야 하나? 우리가 마지막으로 만났었을 때, 그래봤자 불과 몇 달 전이지만, 암튼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내가 온다고 한 날이면 목이 빠져라 기다리고 있다가 가게에 발들이기 무섭게 앞치마와 장화, 고무장갑을 던지면서 ‘빨리 입어라’하고 재촉했었는데···. 그 등쌀에 못 이겨 주섬주섬 전투복을 걸치고 나면 이 녀석은 그제사 화장실을 간다 밥을 먹고 온다 하고 자리를 비워댔고, 난 친구가 다시 자신의 빈자리를 채울 때까지 가게를 봐주고는 했었다. 혼자서 일한다는 게 이렇듯 참 쉬운 일이 아닌데 정수는 이 생활을 무려 10년 넘게 해오고 있었던 것이다.

고등학교시절 이 녀석은 공부를 그다지 잘하는 축에는 들지 못하는 그저 학업성적만 놓고 봤을 땐 별 특색 없는 학생이었다. 그러나 운동은 참 잘했다. 거기다가 넉살이 좋아 학교 옆에 있는 시장에만 가면 죄다 이모·형님이었다. 없는 돈을 쪼개며 살아야했던 궁벽한 학생신세 때 요 정수란 놈하고만 같이 가면 얼마 안 되는 돈으로도 많은 곁들이를 얻어내었던 기억이 나는, 학업 외적으로는 좀 많이 특출 난 녀석이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어제 잠깐 말 나왔듯이 그닥 친한 사이가 아니어서 졸업과 동시에 각자 밟아나가게 된 길에 서로 관심을 갖지 않았었다. 그렇게 소식도 모르고 지낸 지난 십 수 년. 그 사이 정수는 별로 공부에 관심이 없던 특기를 살려 아예 대학진학을 하지 않았고, 빠르게 군대문제를 마무리 지은 뒤 시장으로 흘러들어와 어전에서 사회생활의 포문을 열었다. 그리고 또 몇 해. 홀로서기를 해도 지장이 없을 것 같다는 판단이 들자 어린나이에도 불구하고 서둘러 자신의 점포를 하나 차리며 다른 친구들에 비해 매우 빨리 자리를 잡아나가기 시작하였다. 물론 쉬운 길은 아니었다. 「직원」으로 일하는 것이 아닌 「자기장사」라고 하는 게 겪어 본 사람은 다 알겠지만 사생활이라는 놈을 찾아 먹기가 매우 힘들다. 정수 역시 그랬다. 상점을 꾸린 이후로는 쉴 수 있는 날이 없었다. 게다가 어패류라는 것이 선도와의 싸움이기 때문에 관리를 제 아무리 잘해준다 하여도 그날그날 물건을 빼지 않으면 처리하기가 점점 곤란해진다. 이건 장사치들이 아무리 속이려고 해도 속여지지가 않는 부분이다.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딱 보면 누구나 알 수 있다. 어쩌다 고객이 한 번은 모르고 사갈 수 있겠지만, 그걸로 끝이다. 두 번 다시 오지 않는 것은 당연한 절차. 이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정수는 매일 늦은 밤과 이른 새벽의 경계가 모호한 시간에 일어나 각종 산지를 찾아다니며 직접 물건을 띠어왔고, 하루 종일 어물이 싱싱한 상태를 유지하도록 힘쓰다가 해가 떨어지고 나서야 가게를 정리하고는 그날 받은 배달 주문들을 처리하며 집으로 들어갔다. 그 외에는 어디에도 거치지 않고 바로 잠자리에 들었다가 다시 새벽에 일어나는 생활을 1년 365일 내내 반복했다. 내가 정수와 사회인 신분으로 다시 교분을 튼 지 몇 해 전, 그리고 정수가 생선에 칼밥을 멕여온 지 근 십년 여가 다 되어가던 그 교차점에서도 녀석은 이 일상을 숙명인 것처럼 묵묵히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리고 진정한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고 했던가? 내가 정수의 눈앞에 얼쩡거리기 시작했을 무렵은 이미 이 친구가 두각을 나타내고도 조금 지나 있을 때였다. 처음 찾아갔었던 개포동에서부터 임대계약만료로 인해 두세 번 점포를 옮겨 다니는 동안 틈만 나면 놀러갔었는데 정수네 가게는 그 어느 동네 그 어느 시장을 가더라도 항상 사람들로 북적북적 거렸다. 이건 한참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녀석은 가는 곳마다 늘 들어갈 때 지불했던 권리금보다 나올 때 받았던 그 돈이 훨씬 더 컸다고. 하긴 녀석이 손님 대하는 모습을 보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법 하다.

각설하고, 끝끝내 입성하게 된 이곳 신천 새마을시장. 여기서 새롭게 이름을 내걸게 된 정수의 「새마을수산」은 그동안 겪어왔었던 시행착오를 모두 건너뛰고 개장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정상궤도에 오르더니 한두 해 지나서는 숨 쉴 겨를과 잠 잘 겨를이 동시에 없다는 행복한 비명을 질러대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생기는 것이 세상의 법도. 원래도 찾아먹지 못하던 개인시간은 갈수록 그 흔적마저 구할 길 없이 사라져버려 집‒가게‒집‒가게로만 이어지는 무한 반복의 틀 속에서 갇혀 점점 피폐해져가는 영혼을 그저 맞이해 들일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한데다가 하루 이틀은 몰라도 만날이 그 모양이면 몸이 버텨내질 못하기 마련···. 당연하게도 정수는 체력이 한계에 부딪혔다는 것을 몸소 실감하기 시작했다. 그 강철 같던 녀석이 말이다.

이랬던 그에게 친구가 찾아온다는 것은 지치고 마른 일상에 뿌려지는 한 줄기 소나기와 같은 시원한 휴사임이 틀림없었으리라. 거기에 참고 있던 볼일과 주린 배를 처리하는 것 또한 기분 좋은 덧거리임이 분명했다. 그래도 정수는 계속 혼자였다. 근래 들어 그 넘쳐나는 업무량을 혼자 감당하는 녀석을 보고 있노라면 혀가 내둘러 질 정도였기에 올 때마다 소매 걷어 부치고 시간 허락될 때까지 도와주곤 했었는데··· 뭐? 이제는 「필요없다」고? 아무리 사람 맘 측간 갈 때하고 나올 때가 다르다지만, 이리도 쉽게 친구의 호의를 팽하다니!

“뭐? 인마? 이게~??”

“어떻게 놀러 온 사람한테 일을 시키냐?!”

히엑~? 갑자기 말문이 막힌다?

“야!! 그럼 그동안 내가 해 준건,”

“난 그런 적 없어. 내가 언제 너한테 일 시킨 적 있냐?”

“???”

“니가 알아서 옷 갈아입고 나댄 거지 낄낄. 사실 그때 내가 막 말리려고 했는데···.”

“그럼 왜 안 말렸어 새꺄!”

“··· 응, 말리면 니가 막 화낼 것 같아서···.”

“이런 미친···?”

“케헤헤헷!”

“허 참··· 허허 참. 허하허하~.”

결국 호탕한 웃음으로 서로의 대화가 가로 막혔다.

진짜다. 이 녀석 마지막으로 만난 날 보았던 피곤에 찌들은 힘겨운 웃음이 아니다. 정말 밝은 모습으로 힘차게 웃고 있다.

“야 난 놀랬다. 앞에 큰 가게가 생겨서.”

“다들 그러더라. 이번에 좀 많이 늘렸어. 그래서 좀 힘들다.”

“힘들긴 퍽이나~, 이젠 잘 나가는 일만 남았구만 뭘.”

“아니다. 이젠 책임질 사람들이 생겼잖냐.”

정수는 넓어진 매장을 자랑하기에 앞서 바삐 일하고 있던 직원들에게 날 소개시켜 주었다. 제법 사업가 티가 난다.

“인사들하세요. 제 친굽니다.”

“아이구, 우리 곽 사장 친구구먼~.” “장사 잘 하게 생겼네~.”

날 보며 씨익 웃고 있던 병수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던져댄다. 그래봤자 두 명, 원 「새마을수산」 안에 있던 1인은 여전히 생선과 씨름하느라 여념이 없다.

“아 안녕하십니까. 처음 뵙겠습니다.”

난 가게 앞으로 나온 두 사람과 돌아가며 인사를 했는데 재밌는 건 둘 다 우리보다 나이가 한참 많아 보이는 아저씨였다는 거다. 개중 쪼오금 더 젊어 보이는 아재가 장난스런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이제 곧 온다메요? 우리 정수가 자기 바쁠 때 많이 도와줬다 카던데.”

아니 이 아저씨마저?

“아··· 하하··· 예, 그게···.”

이 새끼 도대체 무슨 소릴 하고 다니는 거얏!!

그때 뒤에서 큰 소리 하나가 또 들려왔다.

“형~ 제가 잘 가르쳐 드린다니까요~. 많이 안 때릴께요~.” 병수였다. 이 시기적절한 농조에 좌중이 일순 웃음바다가 되었다.

“너 이씨!”

때를 놓치지 않고 정수 역시

“준호야 너 우리 병수는 알지?”

라는 말로 지 동생을 거들었는데, 그 동생이란 작자는 거기서 더 나아가

“형아~ 나 저 아저씨 몰라~ 오늘 처음봐~!!”

하고 소리치며 아주 설을 박아버리는 게 아닌가?

덕분에 주변의 소태는 더욱 커졌고 졸지에 난 난장의 웃음거리로 전락해 버리고 말았다.

“아놔~ 이 두 놈 자식이! 오늘 한 판 떠?”

“그래 이 자식아 한 판 뜨자! 니가 우리 형제를 이길 수 있을 것 같아 이 자식아? 병수야!”

“응 형!”

“거기 칼 갖고 와.”

“예 형님!!”

엇? 이건 안 되겠다.

대번에 무릎을 꿇어야겠다.

“정수야 잘못했다. 살려다오.”

“그럼 그럴 것이지 이 자식! 병수야 됐어.”

“아녜요 형, 그냥 넘어가면 안돼요.”

엇?? 무릎을 저쪽에도 꿇어야 하겠구나.

“병수야 잘못했다. 제발 살려다오.”

“준호형 그럼 제 밑으로 들어오실래요?”

···부창부수란 말을 이런 때에 써도 될까? 아님 용형호제···?

“하아···.”

내 이것들을 그냥!! 가만 안 둘려는 찰나···.

“뭐 하는 거야, 사내새끼가 꼴사납게!”

갑자기 정수가 정색을 한다.

“남의 신성한 가게 앞에서, 지금 영업방해 하는 거야?”

“······.”

도저히 지금은 내가 이 둘을 이길 수 없겠다. 일단 훗날을 기약해야겠다.

“나 간다 이 씹새꺄.”

“가긴 어딜 가? 밥 먹고 가야지!!”

아아아~ 아주 들었다 놨다 하는구나~.

아주 그냥 이 녀석들과 더 있다가는 농짓거리로 하루가 다 지나가도 모르겠다 정말!

“야 너 뭐 먹고 싶냐?”

“여기 뭐가 있는지 내가 아냐. 너 가고 싶은 데로 가라. 난 맛만 있으면 그만이다.”

“그래 알겠다.”

드디어 오늘 내가 정수와 만나고자한 목적으로 넘어가려는 순간이로구나. 힘들었다. 세상에 쉽게 되는 건 진짜 아무것도 없어···.

“나 친구랑 밥 먹고 올께요. 다들 시간되면 먹고들 오세요. 병수 너도.”

“응 형~ 맛있게 먹고오셩~.”

“자, 가자.”

“그, 그래··· 가자 좀··· 제발.”


정수와 난 번잡스러운 시장통을 빠져나와 한 구획 옆에 뻗어나 있는 골목길로 꺾어들었다. 이쪽은 식당가였는데, 중국집과 한식집 몇 군데를 기웃거리다가 요즘 새로 뚫었다는 부대찌개 집 문을 두드리는 것으로 의견을 모았다. 사실 아까 잠깐 망설였던 곳들도 꽤 평이 훌륭한 집이라는 데에 이견이 없었으나 정수와 앞서 몇 번씩 먹어봤던지라 좀 색다른 걸 접하고 싶다는 쪽으로 생각이 기울어진 때문이다.

그리고 이리로 걸음을 옮겨오는 내에 당사자의 입을 통해 그간의 사정을 생생히 전해들을 수 있었다.

물론 그렇게 바빠지기까지 직원을 뽑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우리 나이가 그리 많지 않다 보니 젊은 친구들을 몇 번 두었었는데 길게는 몇 개월, 짧게는 며칠만 하고는 다들 힘들다며 손사래를 치고 떠나버렸다 한다. 아무래도 연장자를 직원으로 부리기에는 좀 부담스러운 면이 정수에게도 없잖았었나보다.

‘응? 근데 지금 있는 사람들은 니 동생 말고는 다 우리보다 나이가 있어 보이는데?’

그랬다. 갈수록 힘에 부치다가 어느 순간부터 혼자서는 도저히 어찌 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되자 더 이상 찬 밥 더운 밥 가리지 않고 사람을 구했는데, 생각을 달리하고 보니 그중에 예전 자신에게 생선기술을 가르쳐 준 형님도 포함되어 있었더라는 것이다. 이 「장사」라는 게 「기술」만 갖고는 되는 것은 아니었던 모양인 갑다. 어찌 보면 스승이라고도 할 수 있는 분이었고, 또 그만큼 절륜한 솜씨의 소유자임이 분명할진데 연유가 어찌되었든 장사를 접고 잠시 야인으로 떠돌고 있다는 소문을 어렴풋이 접해오던 정수는 바로 작업에 들어갔다. 그리고는 곧 어렵잖게 자기사람으로 만들어 버렸다. 녀석 입장에서도 눈썹이 휘날리도록 바쁜데 암 것도 모르는 초보자 뽑아서 가르친다 뭐다 하며 없는 시간 쪼개 쓰느니 차라리 숙련자를 데려와 바로 실전에 투입하는 게 훨씬 효율적이란 계산이 섰었다고.

그런데··· 너무 일 잘하는 사람을 데려오니 반대로 이번엔 할 일이 갑자기 없어져버리더라는? 이 새마을수산 본점은 두 명의 절등한 기술자가 있기엔 그 무대가 과히 협소하다는 걸 드러내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던 모양이다. 또다시 「이대로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될」 상황에 봉착해 버린 정수. 그때였다. 평소 눈여겨두었던 길 바로 건너편 돼지족집이 가게를 내놓는 것을 보자 그동안 돈도 많이 모아놨겠다, 또 어차피 쓸 시간도 없겠다 하여 과감하게 확장의 세를 펼치고는 내친김에 직원도 몇 명 더 두었는데, 이게 시쳇말로 그냥 대박이 나버린 것이다. 지금 이렇게 아무 걱정 없이 밥 먹으러 나올 정도로···.

짝-!

듣고 있자니 박수가 절로 나왔다.

이건 뭐 무슨 TV에나 나올 법한 성공이야기를 듣는 것 같았다. 지극히 주관적 의견에 따르자면, 그것들보다 훨씬 더 흥미진진했다. 내 주변, 아주 가까운 인물들 중에도 이런 사람이 있었을 줄이야!

밥은 나온 지 이미 한참이지만 이 녀석 얘기를 듣느라 음식이 줄어드는 것도 모를 만큼···까지는 아니었고 좌우간 진짜 재밌었다. 그리고 친구가 쉴 새 없이 입을 놀려준 덕분에 나는 아무 간섭 없이 백반에 걸쭉한 찌개 국물을 비벼 열심히 목구멍으로 넘겨댈 수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꽃도 지고 달도 기우는 법. 끝나지 않을 것 같던 녀석의 이야기도 어느새 점점 현재의 근황으로 치달아 오는 것 같더니만 결국 나에게 공을 던지고야 만다.

“그래서, 너는 그간 어떻게 지낸 거냐?”


작가의말

무사히 월요일 하루를 보낸 우리의 주인공 천준호.

서른 넘어 오랜만에 나가게 된 소개팅.

과연 그 결말은?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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