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와 재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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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바이
작품등록일 :
2024.05.11 16:33
최근연재일 :
2024.08.30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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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21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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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부랑 남자 (2)

DUMMY

꼬부랑 남자 2화



다음 날이 되었다. 거사는 시작되었다. 혁명군은 곧장 궁궐을 포위하였고 마지막까지 포섭하려 애를 썼지만 실패한 근위대만이 지하 궁궐을 보호했다.


“역적들은 당장 무기를 버려라! 지금 네놈들이 무슨 짓을 저지르고 있는 것인지 정령, 모르는 것이냐!”


“치안대는 근위대를 죽여라! 궁궐안에 남아있는 모든 이들을 하나도 남기지 말고 죽여라!”


치안대와 근위대가 맞붙었다. 제아무리 근위대가 강한 이들이라 한들 치안대의 쪽수에 서서히 밀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생겨난 틈으로 바티오 재무대신이 함께한 대신들을 이끌고 궁궐 안으로 진입하였다.


“멈추시오! 재무대신! 지금이라도! 컥-!”


“사병들은 궁궐을 장악하라!”


재무대신이 이끌고 온 휘하의 사병들이 궁궐을 돌아다니며 모든 이들을 처참하게 죽였다. 그리고 재무대신과 대신들은 계속해서 거침없이 걸어나갔다. 많은 문과 계단을 올랐다. 이제 단 하나의 얇은 문만이 그들을 가로막을 뿐이다. 문을 열려던 찰나였다.


“재무대신, 이제 이 문을 열면 왕에게 도달할 수 있소. 정말로 문을 여시겠소?”


“당연한 것이 아니오. 어서 비키시오. 내가 직접 열겠소.”


대신은 품 안에서 단검을 꺼내어 바티오를 향해 휘둘렀다. 그의 어두운 표정은 평생 잊히질 않을 것이다. 분명히 지금까지 오랫동안 고민을 해오다가 내린 선택이리라.


“그렇다면 죽으시오!”


*


쾅! 문이 부서지면서 단검을 휘둘렀던 대신의 시신이 저 멀리 날아갔다.


서겅-! 그리고 날아갔던 대신의 시신은 단 번에 두 동강이 났다. 안에는 왕이 왕좌에 앉아 있었으며 그의 앞에는 근위대장이 있었다.


“근위대장, 끝끝내 내가 너를 죽이게 되는구나.”


“재무대신, 기어이 내가 너를 죽이게 되는구나.”


근위대장과 재무대신은 서로를 잘 알고 지낸 사이 같았다. 그리고 검을 뽑아든 재무대신은 근위대장과 격돌하였다.


챙-!


“단 한 번의 순간을!”


“단 한 번의 충성을!


둘의 검이 부딪칠 때마다 불꽃이 튀기며 어두운 지하 세상에 불빛을 가져왔다. 둘의 연이은 격돌에 모든 뒤에 있던 대신들과 사병들이 뒤로 넘어졌고 주저앉았다. 주변이 일그러지는 파장은 모두의 정신을 아득하게 만들었다.


“하르폴, 지금! 이 순간! 너와 나, 둘뿐이다.”


“바티오, 우리는 다른 꿈속에 살았구나.”


둘은 같은 현실 속에 다른 꿈을 꾸었다. 한사코 서로의 우정을 의심한 적이 없는 둘은 하나가 죽어야만 하는 순간이 오고야 말았다.


“왕이시여, 어서 오소서. 이제 저 자리에 오르시옵소서. 부디 이 지하 세상을 평화롭게 이끌어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리옵니다.”


쓰러진 하르폴을 품 안에 안은 바티오는 주저앉아 그의 시신을 부둥켜안으며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그의 뒤로 새로운 왕이 될 자가 걸어왔다. 검고 자두색을 가진 옷을 길게 입고 바닥에 끌으며 천천히 걸어왔다. 하얀색의 기나긴 머리카락은 찬란한 웨이브를 휘날렸다. 피와 같은 색은 유독 보석처럼 아름답게 빛이 났다.


“아버지, 제가... 당신의 자리에 앉아야겠습니다. 이제 내가 지하 세상의 새로운 왕이 되겠습니다.”


“지금 나의 모습을 기억하거라. 너는 결국 나와 같은 이유로 죽을 테니까.”


그리고 재무대신을 바라보았다.


“재무대신, 너를 아버지를 나의 아버지가 자리에 앉혀 놓았지. 그런 아버지에게 배운 것이 이런 것뿐이었을 뿐이다.”


“하, 어른이 되면 다시 새롭게 사는 법을 배우지 못하는가 보지.”


왕은 그럼에도 태연했다. 아니, 속의 차오르는 분노를 참으며 부들거렸으나 아무렇지도 않은 척을 했다.


“이놈은 내가 직접 키운 녀석이 아니니, 나와는 다른 법을 가지고 있을 거다.”


그 말을 끝으로 스스로 자신의 목을 베어 죽었다. 왕이 죽었고 그의 손에서는 갈고리 형태의 검이 떨어졌다.


“밖에 있는 근위대를 모두 죽였습니다!”


치안대장이 달려와 승리를 알렸다.


“궁궐 안의 모든 이들을 죽였습니다!”


사병들이 달려와 자신들의 성과를 보고했다.


“대신들은 들으라! 이제 이 순간부터 새로운 세상이 열렸음을 선포한다! 그러니 경들은 부디 과인은 잘 보필하여 이 나라를 잘 이끌어 주기를 바라는 바이다!”


“위대한 왕이시여! 왕을 경배하라! 왕을 찬양하라! 왕을 보필하라!”


거사는 그렇게 끝이 났다.


*


“저기, 왕고! 혹시 소식 들었어?”


오늘도 채석장에서 곡괭이를 두들기는 우리는 끝없는 땀과 흙에 온몸이 범벅으로 뒤덮여 있었다.


“소식? 무슨 소식!”


“아니, 글쎄 내전이 일어났다고 하는데?


“흠, 그건! 우리하고는 상관없는 일이니까. 일이나 하라고.”


왕고는 다시 묵묵히 일을 했다. 평소 같았으면 욕하면서 투정이란 투정과 짜증이란 짜증은 다 부려서 덩달아 나도 열이 받게 했던 그 왕고가 오늘은 조용했다.


“나는 관심없다. 그러니 너도 조용히 하고 일이나 해라.”


그러고는 각자의 일터로 발걸음을 옮겼다. 꼬부랑 남자는 곡괭이질을 하면서 궁금했다. 지도자가 바뀐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 것일까. 우리는 대대로 이런 역할만을 맡아온 우리인데 혹여나 다른 역할을 맡을 수도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말이다. 나는 다른 삶을 살아보고 싶었다.


“안 지겹냐고? 지겹지. 하지만 뭐, 어쩌겠어.”


생각하면 할수록 답답해지고 화가 치밀어 올라 오늘 치 할당량을 더욱 빨리 끝내고 아무도 모르는 나만의 비밀스러운 집에 들어가 쉬었다. 땀과 흙투성이인 몸은 바닥에 웅크려 누우면 불편할 수도 있지만 평생을 이렇게 살아왔기에 그런대로 편안함을 찾을 수 있다.


“이 세상에 나는 속하지 못한 건가...”


*


“재무대신, 오늘은 그대의 영지를 행차하는 날이구려.”


“그렇습니다. 왕이시여, 소신이 만반의 준비를 해놓았습니다.”


왕은 거대한 마차가 아닌 위풍당당한 말을 닮은 검은색의 비늘이 있는 태고의 존재를 타고 행찻길에 나섰다. 인력은 과거의 왕이 했던 것보다 많았으나 무장한 치안대의 수는 더 적었고 대신에 궁궐에서 일하며 독특한 제복들을 입은 대신들과 하인들이 주를 이루었다.


“찬양하라! 경배하라! 보필하라! 지하 세상의 군주이시니라!”


바티오 재무대신의 영지를 돌아다니며 많은 이들이 왕의 행잣길에 나왔다. 전과는 다른 점이 있다면 엎드려 절을 하는 것이 아니라 허리를 꼿꼿이 펴며 두 발로 당당하게 서있는 것이다. 고개마저 들고 말이다. 이전에는 정말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왕께서 내리시는 은총이니라! 감사함을 마음에 새기며 받도록 하여라!” “우와아! 식량이다! 식량!”


왕은 행차를 하면서 상태가 좋은 식량들을 뿌렸다.


“이, 이거 봐! 신기하게 생겼어!”


“그것도 먹는 거야?”


“몰라, 설마 왕께서 하사하신 것인데 이상한 거겠냐고. 한번 먹어볼까?”


분홍색의 동그란 광석을 닮은 것은 사탕이었다. 지하에서만 살아온 다크 엘프들은 처음으로 달달한 사탕을 맛보는 것이다.


“우리의 위대하신 왕이시여! 만세! 만세!” 백성들은 환호했다.


“왕이시여, 고생하셨나이다. 저의 영지는 이것으로 끝이옵니다.”


“아니, 아직 끝나지 않았지 않은가. 한 군데가 남은 것으로 알고 있네만.”


“설마, 광산의 노예들을 말씀하시는 것이옵니까? 그들은 구태여 가실 필요 없사옵니다.”


“결정은 내가 하네. 그대는 따라주면 되네.”


그렇게 왕의 행차는 갑작스럽게도 광산까지 가게 되었다. 그곳의 노예들은 모두 하던 일을 멈추고 밖으로 나와 엎드려야 했다.


“어째서 이들은 엎드리고 있는가. 괜찮으니 당당히 일어나서 고개를 들어도 된다.”


우리는 망설였지만 치안대가 눈치를 주기도 전에 왕고가 먼저 당당히 일어섰고 그제야 우리도 눈치를 보며 슬그머니 일어섰다.


“저들에게도 먹을 것과 사탕을 뿌리도록 하여라. 그리고 이들의 수에 맞게 차를 한 잔씩 하사하도록 하게나.”


“왕이시여, 어찌 이들에게 그렇게까지 하시는 것입니까.”


“재무대신, 이들의 빚을 모두 탕감하여 빚으로 노예가 된 이들을 일반 백성으로 되돌려 주게나.”


왕의 요구는 끝나지 않았다. 노예제는 절대로 효율적이지도 않고 훌륭한 제도 역시 아니다. 하지만 그들은 재산이었다.


“왕이시여, 뜻이 그러하시다면 따르겠나이다. 하지만 이번 대에서 노예가 된 이들만을 원래대로 돌리겠사옵니다만 이전부터 대대로 노예였던 이들까지는 아니 되겠사옵니다."


그것이 당장은 이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이었던 것일까.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어서 인 것일까. 알 수 없었지만 재무대신도 마음에 들지는 않았고 왕은 그저 은은한 미소를 지녔으며 노예였던 이들은 희망을 보았고 꼬부랑 남자는 그저 가만히 있었다.


*


왕의 행차가 끝이 났고 그들은 돌아갔다. 그리고 약속대로 많은 이들이 빚과 노예라는 신분에서 풀려났다. 아직도 노예로 남은 이들에게는 굉장히 질이 좋은 처음 보는 먹을 것을 얻었으며 그날은 일을 하지 않고 쉬었다. 가장 신기했던 것은 차였다.


“이것이 차라는 말인가?”


냄새는 기름냄새가 났다. 물과 철과 기름이 섞여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것은 분명히 뜨거웠고 김이 모락모락 올라왔다. 나는 그 한 컵을 소중히 들고서는 나만의 집으로 돌아왔다.


“먹을 것은 그런대로 괜찮은 것 같은데.”


음식은 처음 보는 재료들이었지만 식감은 그냥 그랬다. 냄새는 나지 않았다. 미각이 좀 더 살아있었다면 맛있게 먹었을 것이다. 배가 불러서 더 먹지 못하고 나머지는 보관해 두었다.


“차는 어떻게 마시는 거지?”


아직도 김이 나는 뜨거운 차를 가만히 내려놓고는 바라만 보았다. 희한하게도 계속 보게 만 된다. 나는 양손으로 컵을 만졌다.


“뜨거워. 뜨겁네? 뜨겁다!”


감촉인 것일까? 아, 아니다. 이것은 온도라는 것이다. 항상 내가 느끼는 광산에서의 뜨거운 온도와는 다른 것이었다. 차는 점차 식어갔다. 밋밋하게 식어서 온도가 더 이상은 느껴지지 않을 때까지 그냥 만져만 보고 있었다.


“이걸, 마셔?”


마시기 위해 한참을 뚫어져라 관찰했다. 차의 위로는 처음 보는 무언가가 비추어졌다. 정말 신기하게도 빛이 하나 없음에도 비추어 꼬부랑 남자는 자신을 보았다. 그렇게 말없이 한참을 또 바라만 보다가 용기 내어 한 모금을 홀짝였다.


“뭐야? 생각보다 뜨거웠잖아?”


목 넘김은 뜨거웠다. 뜨거움이 내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는 것이 느껴졌다. 분명히 나의 배에 있는 내장에 도달한 것이 분명했다. 차가 내 몸속의 안으로 들어가 온도가 퍼져나갔다.


“음, 더는 못 마시겠어.” 나는 남은 먹을 것과 옆에 남은 차를 고이 두고는 오늘 하루의 휴식을 취했다. 오늘은 정말로 뭔가 이상한 날이었다.


*


꼬부랑 남자가 자신만의 집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와중에 왕의 은혜를 받은 것은 그 만이 아니었다.


"왕고, 진짜 미안한데... 사, 사탕은 돌려주면 안 될까?"


퍽 퍽 퍽 퍽 퍽


"시끄럽다. 이 세상은 힘이 전부다. 그게 우리들의 세상이야! 모든 사탕은 내 거야!"


영롱한 분홍색의 알사탕은 많이 없었기에 그나마도 힘이 있는 노예들만이 가져간 것을 왕고가 모조리 빼앗아 갔다.


"사탕은 왕고 꺼다!"


왕고는 더러운 손으로 비대해진 몸을 이끌며 손에 음식과 딸기맛이 나는 알사탕을 입에 넣고 와그작하며 씹어 삼켰다.


"그, 그럼! 무슨 맛인지라도 알려 주면 안 돼?"


"흠, 그건."


왕고는 잠시 턱에 손을 대며 고민을 하다가 고민이 끝났는지 대답했다.


"내가 먹어본 것들 중에 가장 맛있었다!"


왕고는 딸기맛 알사탕이 마음에 들었다. 입에 넣고 잠시 굴리다가 튼실한 이로 씹으면 입안에 퍼지는 그 딸기맛이 좋았다.


"대신 차를 주마! 나는 차 따위는 마시지 않는다!"


왕고가 건넨 차를 그거라도 아쉬워하며 딸기맛이 나는 알사탕을 빼앗긴 이들이 뜨거운 차가 담긴 컵을 돌아가며 한 모금씩 나누어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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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외전 1-4화 24.08.21 21 0 14쪽
48 외전 1-3화 24.08.19 17 0 15쪽
47 외전 1-2화 24.08.16 18 0 12쪽
46 외전 1-1화 24.08.14 19 0 14쪽
45 꼬부랑 남자 4화 <완결> 24.08.12 18 0 12쪽
44 꼬부랑 남자 (3) 24.06.24 17 0 13쪽
» 꼬부랑 남자 (2) 24.06.21 22 0 12쪽
42 꼬부랑 남자 (1) 24.06.19 22 0 12쪽
41 지상과 지하는 그렇게 (5) 24.06.18 29 0 13쪽
40 지상과 지하는 그렇게 (4) 24.06.17 31 0 17쪽
39 지상과 지하는 그렇게 (3) +2 24.06.16 35 2 16쪽
38 지상과 지하는 그렇게 (2) 24.06.15 37 1 12쪽
37 지상과 지하는 그렇게 (1) +1 24.06.14 43 1 16쪽
36 개미를 좋아하던 군인 (15) 24.06.13 43 1 12쪽
35 개미를 좋아하던 군인 (14) 24.06.12 41 0 16쪽
34 개미를 좋아하던 군인 (13) +1 24.06.11 44 0 16쪽
33 개미를 좋아하던 군인 (12) 24.06.10 42 0 17쪽
32 개미를 좋아하던 군인 (11) 24.06.07 45 0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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