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룡빌딩과 후보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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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수봉
작품등록일 :
2024.07.03 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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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3 0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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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03 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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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학군단

DUMMY

H-2년 11월.


“학군단장님께 경례!”


나, 대위 권정혁은 ROTC 훈육관이 되었다.


***

“권 대위는 다음에 어느 지역을 희망합니까?”


믹스커피 냄새가 가득한 사무실 안.


고급장교 지휘참모 과정, 통칭 OAC 담당교관은 커피 한 잔을 건네며 물었다.

강원도 오지에서 중,소위 시절을 보낸 사람에게 우선적으로 선택권을 준다는 소문처럼 교관은 교육과정이 끝나갈 무렵 가장 처음 나를 사무실로 불렀다.


“저는 아무래도 초급장교를 동부전선에서 지내서 서부전선 혹은 이작사에서 근무해보면 좋겠습니다!”


미리 준비해온 내 말을 듣자 교관은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요, 나도 중,소위 때 양구에서 근무했는데 거긴 너무 열악하죠. 지역은 그렇고, 그럼 보직은 희망하는 게 있습니까?”


“제가 아무래도 작전장교 보직만 1년 넘게 차다보니 참모보다는 지휘관을 하고 싶습니다.”

이후 대화는 물 흐르듯 자연스레 이어졌다.


작전장교라는 보직의 서러움, 초급장교때 있었던 일, 교관의 덕담 등 주거니 받거니 이어진 대화를 끝으로 나는 사무실 밖으로 나왔다.


“중대장이려나···”


다음 보직에 대해 부푼 기대를 품으며 가벼운 마음으로 강의실로 향했다.



***

서울 황무대학교

쑥색 육군 근무복을 입은 군인 세 명은 젊은 학생들 사이를 지나쳐 한정식집에 들어갔다.

미리 예약한 방에 자리를 잡고 앉아 앞을 보자 학군단장과 선임 훈육관이 마주 앉았다.

역시 아직까지 상관은 어색하다.

아니 세상 어디에 상관이 편해질 날이 있을까?


“자 먹으면서 얘기하면, 권 대위 우리와 함께 일하게 되었으니 같이 잘해보지.”


임석영 중령. 황무대학교 학군단장이자 3사출신이라는 정도만 알고 그 외에는 모른다.

진급은 포기한건지, 아직 진행형인지 모르는 상태.


“나는 김정우 소령이야. 이번이 대위되고 첫 보직이라고 했지? 잘해보자.”


아무 정보도 없는 임 중령과는 달리 이쪽은 귄 대위와 같은 학군출신, 부드러운 FM 이라고 들었고

무엇보다 모종의 이유로 진급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알고 있다.

학군단장의 주도 아래 귄 대위는 두 사람과 기본적인 정보를 주고 받았다.

그리고 그 사이에 알게 된 핵심 정보로는


-황무대학교 학군단은 4년째 지원율 미달이라는 것.

-학군단장은 야전으로 돌아가기를 원한다는 것.

-김소령은 1년 뒤 연금수혜자 요건이 충족된다는 것.


등이 있다.


“여기 학교를 보면 무슨 생각이 드나?”


생각을 정리하는 한편, 야무지게 무쳐진 잡채 접시에 젓가락 질을 하던 내게 단장이 물었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제가 나왔던 대학교와 비교했을때 좀 작은 것 같습니다.”


황무대학교는 귄 대위가 나온 학교와 비교했을때 그 규모 차이는 육안으로도 느껴질 정도였다. 과장을 보태면 황무대학교는 서울에 위치한 가장 큰 대학교의 호수에도 빠질 정도로 아기자기 했다.


“그래, 작지. 작아도 너무 작아. 작다는 것은 결국 그 규모를 감당할 수 있는 재력이 부족하다는 거지.”


“황무대 재정현황이 그렇게 안좋습니까?”


“과거에 황무대학교도 여러 기업에서 컨택을 해왔지만 창립자 재단에서 이를 거절했다고 하더군.”


황무대학교는 나름 인서울 학교 중 인지도가 있는 편이다. 그런 학교에는 자연스레 좋은 인재풀이 형성되기 마련, 때문에 해당 인재들을 확보하기 위해 기업에서도 움직임을 보였다. 하지만 학원 창립자 재단 측에서 이를 완강히 거부하였고 기업들은 다른 대체 학교를 지원하기로 한 것이다.


“문제는 학교 자체 예산으로 운영하기에는 시대가 많이 변한 것 같습니다.”


“바로 그 점이야. 학교 자체적으로 지탱하던 과거와 달리 시대가 변하며 훨씬 많은 예산이 필요하게 되었네. 그렇지 않으면 타 학교와 비교했을때 경쟁력이 생기지 않으니까.”


결국 억지로 지탱하던 학교 재정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 되었고 원래 재단에서 가지고 있던 부지 및 건물도 지자체에 팔아버리는 지경이 되었던 것이다.


“이게 우리 학군단의 가장 큰 걸림돌이야.”


도자기 그릇에 담긴 동치미 국물을 마치 막걸리 들이키듯이 마시는 임 중령의 말을 김 소령이 이어갔다.


“아까 신고할 때도 봤겠지만, 우리 건물 많이 열악하지?”


“아···”


“일부러 안그래도 돼. 나도 이런 학군단은 처음이었으니까.”


보통 대학교의 학군단은 크게는 건물 한 채를 배정해주거나 못해도 건물의 한 층 전체를 배정해주고는 한다.하지만 황무대학교는 자연대학교 건물 1층 구석 방 네 개와 창고로 사용하고 있는 컨테이너 박스 하나가 전부였다.


“연병장 하나 제대로 갖추지 못한 곳에, 멋스러운 모습 하나 제대로 보여줄 수 없는 현실에 가뜩이나 저조한 지원율이 바닥에 메다 꽂은거지.”


“실례지만, 현재 학군단 총원이 어떻게 되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3, 4학년 합쳐 열 명이 채 되지 않아.”


민망한듯 물수건을 만지작 거리며 임 중령이 말했다.

학군단 모집율이 저조하다는 이야기는 소문으로 들었지만 생각보다 심각한 수준이었다.


“그래서 말인데, 권 대위. 권 대위에게 내가 처음으로 내리고 싶은 지시는 내년 학군단 충원을 못해도 열 명이상으로 만드는 걸세.”


군인이라면 상관이 명령을 내리면 즉각 대답을 하는게 인지상정이지만 귄 대위는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점차 간부지원의 메리트가 떨어져가는 상황에서 나름 대한민국에서 공부 좀 한다는 아이들이 선뜻 ROTC에 지원할 것인가 확신이 서지 않았다.


‘확실하게 구미를 자극하는 당근을 제공하면 모를까.’


“권 대위가 그래도 가장 최신 OAC 자원이잖아. 응? 그··· 젊은 피와 창의성으로 묘수를 생각해봐. 필요한 거 있으면 얘기하고 지원해줄테니까.”


권 대위가 선뜻 답을 하지 못하자 임 중령이 몇 마디를 덧붙였다.


자기 딴에는 나름 파격적인 제안인거 마냥 말하지만 결국 권 대위 혼자 알아서 하라는 이야기다.


“우선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하지만 군인이 뭐 어쩌나, 까라면 까야지.


“하하! 좋구만. 권 대위가 들어와서 다행이야! 우리 한 번 잘해보자고!”


***


“화공과는 그래서 한 명도 없는거지?”


“예, 과 학생회를 통해서 물어봐도 하려는 후배들이 없습니다.”


“어··· 그래 알았다, 가서 개인정비 해”


“예, 알겠습니다 충성!”


권 대위가 학군단에 들어온 지 1개월 뒤


황무대학교 학군단은 여느 학군단과 마찬가지로 충청북도 괴산에 위치한 육군학생군사학교로 동계입영훈련에 입소했다.


3학년 훈육관인 권 대위지만 4학년 후보생들의 인맥을 통해 학군단 홍보에 대한 갈피를 잡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이곳 괴산으로 출근하고 있다.


하지만 학군단 내에서 가장 발이 넓은 4학년 이현준 후보생조차 학군단 지원을 희망하는 후배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하자 권 대위는 다시 막막해졌다.


‘후··· 이거 원, 열 명은 커녕 반 타작도 못할 거 같은데···’


답답한 마음에 애꿎은 펜만 돌리며 괴롭히던 권 대위는 휴게실 의자에 기대 쭈욱 몸을 이완시켰다.


“저··· 훈육관님”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고개를 돌리자 권 대위가 조금 불편한 듯 쭈뼛거리는 후보생이 있었다.


“어···그래 기찬이, 무슨일이야?”

“아··· 훈육관님 지금 다음 기수 모집홍보 때문에 힘드시지 않습니까?”


“그렇지··· 어 일단 서있지 말고 앉아.”


권 대위가 어색한 듯 박기찬 후보생은 한 칸 떨어진 자리에 앉았다.


“그래서 계속 얘기해봐.”


“같은 권역의 여대의 예시라 조금 저희 실정에 안맞을 수도 있고, 이···이건 어디까지나 제 생각이고 시···시답지않고 허황된 얘기일 수도 있긴 하지만 그럼에도 이게 조금은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한 말씀 얹어보자면··· 아··· 근데 이게 또 우리 학교 재정여건에 안맞을 수도 있을 것 같기도···”


“괜찮으니까, 말해봐”


“아··· 근데 생각해보니까 이게 별로 실현가능성 있지는 않을 것 같고 괜히 훈육관님 피곤하게 하실 것만 같···”


“됐으니까, 본론으로”


장황한 미사여구에 조금 짜증이 난 권 대위는 박기찬 후보생의 말을 잘랐다.

이에 움찔하던 박기찬 후보생은 이내 각설하고 본인의 생각을 이야기했다.


“아··· 저희 같은 권역에 유성대 있지 않습니까?”


“응”


“유성대 후보생들이랑 같이 훈련받다보면 이런 저런 얘기가 오가는데 그 중 가장 궁금했던게 너희는 어떻게 그렇게 여후보생들이 많냐는 거였습니다. 사실 여군들은 굳이 군생활 할 필요 없지 않습니까?”

“그렇지, 의무복무는 아니니까.”


“그··· 그런데 그 후보생들 얘기를 들어보니 어느 정도 혹하는 조건이긴 했습니다.”


권 대위가 이야기에 호기심을 표하자, 상급자의 눈이 불편한지 자꾸만 고개를 숙이는 박기찬 후보생이었지만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그 후보생들은 학군단에 입단만 하면 기숙사 무료에 전원 25% 등록금 지원에 심지어 자치근무자 지원시에는 100% 등록금 면제까지 가능한 혜택이 있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각종 보급품은 덤으로 지급하고 말입니다.”


복지가 그렇게 좋다고? 권 대위도 학군단 생활을 했지만 이건 듣도보도 못한 파격적인 조건이었다.


“혹시 황무대 애들은 입단하면 무슨 혜택을 받지?”


“자치근무자에게 10만원씩 주는 걸 제외하고는··· 없습니다.”


“보통 그래도 기숙사 우선권 정도는 주지 않나?”


“그게 한 19년도까지는 있었다고 들었는데 학교 커뮤니티에서 형평성 논란이 나와서 폐지된 걸로 알고 있습니다.”


허, 이거 참 자진해서 간부의 길을 선택한 아이들에게 혜택을 더 주지는 못할 망정, 이거 사회가 너무 팍팍하구만.


“그래··· 그게 우리 학군단이 갈수록 지원자가 줄어드는 이유구나. 근데 이건 나도 지난 몇달 간 알아본 것과 같고 이걸 지원해줄 재정이 우리 학교에는 없을 거 같구나.”


결국 돈이다. 황무대학교에는 유성대처럼 아이들에게 많은 것을 지원해줄 재정도 없을 뿐더러 학군단에 대한 인식도 바닥이다. 이런 상황에서 학교 측의 도움을 구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방법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여전히 고개를 내리깔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하는 기찬이였지만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권 대위의 귀에 그 작은 목소리는 훈련소 첫날 기상나팔처럼 빠릿하게 들렸다.


“이건 얼마전에 교양강의에서 02학번 선배님께서 해주신 말씀입니다만, 20년전에 구청과 계약했던 황무 미디어센터 이번에 재계약이 무산됐다고···”


기찬의 말에 권 대위는 깨달음을 얻은 듯 저도 모르게 박수치며 일어났다.


“학교 입장에서도 해당 건물을 공실로 두기 곤란하고 감사를 위해서 무언가 실적이 필요하다···”


권 대위는 고개를 주억거리는 박기찬 후보생을 응시했다.


“그걸 우리가 먹자···?”


잠깐의 정적 후 권 대위는 메모장에 무언가를 휘갈겨적기 시작했고 그 거친 볼펜소리가 끝나고 말했다.


“박기찬!”


“후보생 박기찬!”


갑작스레 불린 자기 이름에 기찬은 반사적으로 관등성명을 말했다.


“넌 다음 학기 정보과장 확정이야!”


그 말을 끝으로 얼떨떨해하는 기찬을 두고 권 대위는 생활관 밖으로 나갔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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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기초군사훈련(2) 24.07.28 5 0 13쪽
6 기초군사훈련(1) 24.07.28 2 0 13쪽
5 면접준비 (2) 그리고 시간은 빠르게 흘러 24.07.10 4 0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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