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룡빌딩과 후보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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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수봉
작품등록일 :
2024.07.03 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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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3 0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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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30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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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군사훈련(5)

DUMMY

“다은이다.”


지민은 계단으로 올라온 다은을 보고 적잖이 당황했다. 지난 일주일간 봐온 다은은 정해진 규칙 밖의 일을 실행할 위인이 아니었다. 그녀는 이유를 외부에서 찾고자 했다. 그녀가 다은 옆에 서 있는 여 후보생을 보자 바로 알 수 있었다.


‘쟤가 데리고 왔네.’


다은보다 머리 하나는 큰 키에, 여성 중에서 꽤 장신에 속하는 지민보다도 한 치수 큰 여자. 뱀눈이라는 개념을 몰라도 보자마자 압도될 듯한 날카로운 눈매, 무엇보다도 절대 쉽게 자기 뜻을 내보일 것 같지 않은 치밀함과 자신만만함까지, 한 눈에 보기에도 그녀가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님을 알 수 있었다.


“다은이 안녕~”


준영은 오전에 같이 PX를 갔던 다은에게 친밀감을 느껴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준호는 안면은 있지만 아직은 어색한지 손만 흔들었다.


“어~? 너 지민이 아니니?”


여자는 지민을 아는 듯 인사를 건넸다. 그 인사가 조금 가식적이고 억지텐션이 가미된 것 같았지만.


“응~ 맞아. 유정이 맞지? 우리 생활관 유림여대 애들한테 많이 들었어.”


“나도 우리 애들한테 들었어. 아는 것도 많고 에이스라고~ 지민이도 우리 생활관이었으면 좋았을텐데~”


지민은 각설하고 그녀에게 이유를 물었다.


“근데 너희 둘은 여기 왠일이야? 사실 여기 원래 오면 안되잖아.”


“그게 지민이도 알겠지만 오늘 PX에서 빈털털이로 돌아온 데가 꽤 있잖니? 그 중 우리 2소대 2분대도 포함되서 말이지.”


김유정은 재활용백에 담긴 과자를 흔들며 말했다.


“우리 애들이 하도 보채서 나눔 좀 하러 왔어.”


“흐음, 그래? 착하네. 둘 다. 알았으니까 너희도 훈육관이나 빨간 모자 눈 잘 피해서 가져다줘.”


대화는 그렇게 짧게 마무리되었다. 뭔가 다은이 유정의 페이스에 끌려다니는 감이 있었지만 전에도 말했다시피 타분대가 간섭해서는 안될 일이었다.


“근데 좀 이상하네.”


두 사람이 떠나간 후 다시 자리를 잡고 앉으려 할 때 준호가 이상하다는 듯 말했다.


“2분대 애들 말이야. 아까 옆 분대에 있던 자기 학교 동기들한테 알아서 구걸하러 다니던데, 굳이 쟤네까지 올 필요가 있나?”


“먹을 건 다다익선이라 그런거 아니야?”


준영은 큰 이유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지민의 생각도 크게 다를 게 없었다. 유림여대 사이에서 실질적 우두머리인 존재가 여 후보생 생활관에 무료함을 느껴 강행한 마실 정도라고 생각했다. 혼자 가기 심심해 시녀 포지션으로 채택한게 다은이 인 것이다. 같은 분대이겠다, 그 명분은 확실하기 때문에. 그래도 지민은 한편으로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걱정했던 것보다 유정이 다은을 표면적으로 괴롭히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저 말투, 행동, 상황으로 은근하게 텃세를 부리는 것 같았지만 앞으로 3주 후면 학교로 돌아가기에 별 문제될 건 없을 것 같았다.


“야, 너희 둘, 여 후보생이 왜 여깄어? 빨리 돌아가.”


복도를 울리는 차가운 음성. 그 소리는 분명 작았지만 목소리에 묻어나오는 감정이 진심이었기에 세 사람도 뭐지 하고 고개를 내밀어 복도를 향했다.


“미안~ 우리 분대원들이 밥을 좀 굶어서, 이것만 같이 먹고 갈테니까 조금만 봐주라~”


살짝 콧소리를 섞어 낸 애교에 먼저 숙이고 들어가는 태도. 보통이라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조금의 유도리를 봐주는 선에서 합의가 이루어졌겠지만 아쉽게도 그러지 못했다.


“안돼. 여 후보생은 지금 시간에 남 후보생 생활관에 들어오는 게 금지야. 잘못 걸렸다가 다 같이 얼차려 받으면? 규정이 지금보다 더 빡세지면? 책임질 수 있어?”


석훈이 누구인가. MBTI ESTJ의 원칙주의자이자 현재 대대장이라는 완장 뽕에 가득차 있고, 오늘만 무사히 넘기면 자기 임기를 무결점으로 끝낼 수 있었다. 그런 그의 눈에 대놓고 규정을 어겨놓고 봐달라는 유정이 아니꼬울 수 밖에 없었다.


“책임만 지면 되는거야?~ 그럼 내가 문제 없도록 할게~ 만약에 걸려도 내가 다 책임질테니까 한번만 봐줘.”


자신이 책임지겠다고 말하는 그녀의 뒤로 2분대 인원들이 짜증스러운 눈길을 보낸다.


“그래, 대대장. 우리 진짜 배고파. 아까 다른 생활관 먹을때 우리만 굶어서 얼마나 서글픈데.”


“이런게 전우애 아니겠냐? 너무 빡빡하게 굴지 말고. 응?”


2분대 인원들은 목소리에 섞인 짜증을 미쳐 다 걸러내지 못했지만 말 자체는 호소력 넘치게 나갔다.


다만 그들이 파악하지 못한 것은 석훈 같은 관리자 타입은 얼렁뚱땅 넘어가는 것을 매우 싫어한다는 사실이었다.


“난 분명히 경고했고, 이 뒤에 일은 규정에 따라 보고할 수밖에 없어. 그러니 알아서들 해.”


단호하게 선 그은 석훈은 그 길로 행정반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잠시 후 육중한 몸의 홍서대 훈육관과 합마공이 석훈을 따라 나왔다. 세 사람은 다른길로 새는 일 없이 곧장 현장을 덮쳤다.


홍서대 훈육관 최태균 대위는 평소 유도리 있는 훈육관으로 통했다. 그 역시도 학군 후보생 시절 훈육관들 속을 꽤 썩였고 일탈 행위도 많이 저질렀다. 그래서 그런지 고작 10년도 차이나지 않는 후배들에게 은근한 꿀팁도 공유해주고는 했다.


“야! 여기 흡연하는 애들! 내가 강조하는데 들키지 않으면 그건 없는 일이 되는거야, 대신 들켰을 때는 책임을 지면 되는 거지. 알아 들어?”


그가 입버릇처럼 말하던 지론이었다. 그가 건들일 수 없는 사적인 영역은 간섭하지 않겠다. 단, 그 일이 공적으로 번졌을때는 가만히 있지 않겠다. 지금이 그런 상황이었다. 사실 그가 여 후보생들이 넘어와서 노는 걸 모르고 있겠는가. 매년 있던 일이고 자신이 후보생이던 시절도 그랬다. 해서 그냥 눈감아주고 있었는데 무슨 문제가 생겼는지 대대장 후보생이라는 녀석이 이를 정식으로 물고 늘어지기 시작했다. 보고가 들어온 이상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훈육관으로서의 본이 서지 않기에 그는 이곳에 와있다.


“앉아, 일어서. 앉아, 일어서.”


규정에 입각한 얼차려는 그 횟수는 적어도 분위기를 무겁게 환기시키는 기능은 확실했다.


“니네 주말이라고 좀 살 것 같애? 이제 적응됐어? 넘치는 기운 좀 어떻게 풀어줄까?”


2분대 후보생들이 침묵으로 일관하자 그는 한 명을 콕 집어 물었다.


“한동훈이, 대답 해봐. 살만하냐고.”


같은 학교 훈육관이 자신을 가리켜 물어보는데 떨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아···아닙니다!”


"너희 전원 벌점 5점씩 제출해. 그리고 기훈 감독후보생은 현 시간부로 인원들 사제 음식 다 제출하라고 하고 총기수입 실시하도록 해.


최 대위는 이 정도면 만족하냐는 듯한 눈으로 석훈을 쓱 쳐다본 후 행정반으로 돌아갔다. 이윽고 합마공의 갈라지는 목소리가 행정반 마이크를 타고 전 생활관에 울려퍼졌다.


“행정반에서 기훈 감독후보생이 전파한다. 현 시간부로 전 대대, PX 구매 음식 전부 행정반으로 제출할 수 있도록, 다시 한 번 전파한다. 현 시간부 전 대대, PX 구매 음식 전부 행정반으로 제출할 수 있도록, 이상.”


청천벽력같은 지시에 후보생들은 잘못들은게 아닌가 하고 하나 둘 밖으로 나왔다. 이내 복도는 후보생들의 웅성거리는 소리로 가득찼다. 이내 사태 파악이 된 후보생 일부는 바로 관물대로 달려가 남아있는 씹을거리를 몽땅 입에 우겨넣었고, 누군가는 생활관으로 들어가 짜증섞인 고함을 질러대는가 하면, 또 다른 이는 침착하게 사건의 원인 및 책임소재 파악에 나섰다.


잠시 후 합마공이 고함을 쳐대며 생활관을 돌아다니기 시작하자 후보생들은 하나 둘 미처 처분하지 못한 음식물을 꺼내 모으기 시작했다. 원래 같았으면 저녁점호 전까지만 취식하면 되었기에 아껴두었던 이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제출할 수 밖에 없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지민을 포함 몰래 들어온 여 후보생들도 생활관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곳에서도 무전을 전달받은 빨간 모자들이 지시사항을 하달하고 있을테니.


“당장 네 자존심을 채우는데는 도움이 됐니?”


2분대 생활관에서 나온 유정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 석훈을 지나치며 그에게만 들리게 말했다.


“뭐?”


“생각보다 멍청하네. 너 누구 위에 있어본 적이 없지?”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으며 유정이 말을 이어갔다.


“뭐라는 거야. 너희가 규정을 어겨서 단체로 불이익 받는거 아니야.”


“그래, 올곧고 정의로운 건 알겠는데 그러면 적이 많이 생기는 법이거든~”


석훈이 뭐라 반박하려 했지만 유정은 자기 말만 끝내고 생활관으로 돌아갔다.


“지민아, 같이 가자.”


앞서 걷고 있던 지민, 내심 혼자 가고 싶어 급히 발걸음을 보채던 그녀는 떨떠름한 표정을 애써 감추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사소한 일이었다. 바깥에서였다면 아무도 관심가져주지 않을 사소한 다툼에 지나지 않을 일이었을 뿐이다. 그러나 이 사소한 불씨가 폐쇄사회라는 환경에서 사람들의 구유(口油)에 닿았을때 어떤 화마가 닥치는지 오직 유정만이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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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기초군사훈련(10) 24.08.22 4 0 12쪽
14 기초군사훈련(9) 24.08.22 3 0 9쪽
13 기초군사훈련(8) 24.08.13 3 0 12쪽
12 기초군사훈련(7) 24.08.09 5 0 18쪽
11 기초군사훈련(6) 24.08.09 5 0 13쪽
» 기초군사훈련(5) 24.07.30 4 0 9쪽
9 기초군사훈련(4) 24.07.28 6 0 16쪽
8 기초군사훈련(3) 24.07.28 6 0 7쪽
7 기초군사훈련(2) 24.07.28 6 0 13쪽
6 기초군사훈련(1) 24.07.28 2 0 13쪽
5 면접준비 (2) 그리고 시간은 빠르게 흘러 24.07.10 4 0 8쪽
4 면접준비 (1) 24.07.10 2 0 8쪽
3 체력검정 24.07.10 6 0 12쪽
2 모집 24.07.05 8 0 10쪽
1 위기의 학군단 24.07.03 20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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