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룡빌딩과 후보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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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3 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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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10 0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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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력검정

DUMMY

5월 이제는 제법 햇살이 따갑게 느껴지는 시간이다.

따가운 햇살의 영향인지 인조잔디가 깔린 운동장 위마저 아지랑이가 일렁이고 있었다.


건한대학교


서울에서 부지 넓은 것으로는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명문대학교로 오늘 학군단 입단 체력검정이 치뤄지는 곳이다.


“5월인데 벌써 덥네.”


“그래도 아직 습기는 없어서 다행이야.”


준영과 준호는 운동용 더플백을 메고 운동장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그들이 향하는 단상 위에는 그들과 비슷한 형형색색의 바람막이와 운동화, 반바지를 입은 청년들이 몸을 풀고 있었다. 준영과 준호도 집합시간보다 30분이나 일찍 온 편이지만 그들보다 부지런한 사람들이 꽤 되었다.


권역에 속한 타 대학교 지원자들이 전부 모이니 그 수가 꽤 많다. 준영과 준호는 그 틈바구니 사이에서 자신들이 가야할 장소를 본능적으로 탐색했다. 단상 왼쪽 부근에 낯익은 얼굴들이 몇몇 보였다.


“쟤네 황무대 같은데?”


준호의 말에 유심히 얼굴들을 살펴보니 필기평가 때 보았던 얼굴들이 몇몇 보였다. 그들은 자연스레 익숙한 얼굴들이 위치한 곳으로 자리잡았다. 상대들도 그들의 얼굴을 아는지 힐끗 쳐다보다 이내 다시 자기 할 일을 했다. 아직 인사를 하기에는 서로 어색했다.


“지원자들 준비 됐으면 단상아래로 집합하시기 바랍니다.”


통제관의 지시에 지원자들은 일제히 단상 아래로 내려갔다.


“학교별로 정렬해서 서겠습니다.”


통제관은 왼쪽부터 권역 내 학교 이름을 나열하기 시작했고


“황무대”


황무대는 가장 마지막에 불렸다.

황무대 라인에 선 인원은 총 10명으로 그 중 두 명은 여자였다.


‘필기평가 때에 비해서는 좀 줄었네.’


필기평가 당시 20명 가까이 되던 인원이 절반으로 줄었다. 아마 선배 부탁으로 시험만 봐봤거나 했던 인원이겠지. 설마 필기에서 떨어지는 인원이 있었을 리는 없을테고.


“자, 지원자분들 주목!”


통제관은 지원자들의 주의집중을 위해 호각을 불었다.


“오늘 체력검정은 팔굽혀펴기/ 윗몸 일으키기 를 우선 실시하고 마지막 지원자까지 평가가 종료되면 20분간 휴식을 갖을 겁니다. 휴식이 끝난 후 지원자 전원 여기 연병장 3바퀴를 돌면 모든 평가가 종료됩니다. 질문 있는 사람 있습니까?”


질문을 하는 이는 없었다.


“그럼 현재시간 08시 40분, 20분 후에 팔굽/윗몸 평가부터 실시하겠습니다. 화장실 다녀올 사람은 다녀오고 5분전에는 현재 위치로 정위치하기 바랍니다.”


준영을 포함한 대부분의 남학생들은 화장실로 몰려갔다. 그리 급하지는 않았지만 혹시 평가 도중 신호가 오면 곤란할 것 같아서였다.

볼일을 본 후 준영은 준호가 있는 단상에 올라갔다. 준호는 자기 더플백을 뒤적거리더니 에너지 드링크 하나를 꺼내서 준영에게 건넸다.


“하기 전에 도핑 한 번 해야지.”


도핑을 하려면 좀 더 일찍했어야 효과를 볼 수 있었겠지만 위약효과는 정도는 볼 수 있겠지.


“다 마시진 마. 너 달리기 할때 신호온다?”


“그럼 부스터지 그게.”


준영과 준호는 약간의 농담을 주고 받고는 함께 피식 웃으며 에너지 드링크를 입에 털어넣는다.


“저······ 미안한데 나 그거 한 입만 줄 수 있어?”


고개를 돌리니 낯익은 얼굴의 여학생이 서 있었다.

그러니까 이름이···


“난 영문과 한지민이야.”


자신을 영어영문과라고 소개한 그녀는 160 후반의 큰 키에 잦은 탈색으로 조금 상한 듯한 긴 생머리를 야무지게 묶고 있었다. 그 밖에 요란한 색깔의 운동복을 챙겨 입은 학생들과 다르게 검은 티와 바지, 무채색 운동화를 신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운동을 취미로 할 것 같은 이미지는 아니었다.


“운이 좋았네, 마침 몇 개 더 사놨거든. 받아.”


준호는 더플백에서 에너지 드링크 하나를 꺼내 그녀에게 던졌다.


“난 경영학과 오준호”


“경영학과 김준영이야, 잘 부탁해”


서로 자기소개를 끝낸 세 사람의 분위기는 제법 화기애애해졌다.

큰 키와 강한 눈매에서 나오는 카리스마와 다르게 지민은 꽤나 수더분한 쾌녀의 느낌이 강했다.

“원래 나도 에너지 드링크를 사오려고 했는데 늦잠을 자서 겨우 지각은 안할 수 있었지 뭐야.”


에너지 드링크를 마신 세 사람은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며 이야기를 나눴다. 세 사람은 이제 곧 서로 2년간 함께할 동기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급속도로 친해졌다.


“연습은 좀 했어?”


학창시절부터 풋살로 다져진 준영도 새내기시절 소주로 근육을 적셔버린 후 체력이 많이 안좋아졌다.

테스트 겸 일주일 전 달려봤다가 1km도 채 안되서 헉헉거리던 스스로를 보고 새삼 심각성을 깨달았다.


“팔굽혀펴기가 좀 자신 없는데··· 그래서 도핑이 필요한 거고.”


“여군 기준은 좀 낮지 않나?


“하하······”


“앞에 봐. 이제 곧 우리야.”


준호가 턱을 앞으로 까딱였다.

어느덧 타 대학들이 모두 평가를 마치고 황무대학교 1번이 윗몸일으키기 대로 향했다.


“와··· 쟤는 키가 엄청 크네.”


“그러게. 체대인가?”


190은 되어 보이는 큰 키에 티셔츠를 뚫고 나오는 펌핑된 삼두근, 치켜올라간 눈썹 그리고 구릿빛 피부의 남성은 그야말로 무골 그 자체였다. 항우나 여포가 현신하면 저런 느낌이지 않을까 하는 인상이었다.

그는 모두의 기대에 부응하듯 1분이 채 넘지 않았을 때 팔굽 72개를 모두 채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먼저 갈게.”


2분이 지나 다음 차례가 왔다.

지민은 긴장이 되는지 흡 하고 숨을 들이마신 다음에 비장한 발걸음으로 팔굽혀펴기 대로 걸어갔다.

우드득 목과 어깨를 푼 지민은 [시작] 이라고 외친 통제관의 신호에 맞춰 팔을 내렸고


“1번 20개입니다.”


멋있게 불합했다.


“윗몸 일으키기 개수 5개만 팔굽에 못 주나······”


팔굽 / 윗몸 평가가 끝나고 20분간의 휴식시간

팔굽혀펴기에서 저질스러운 기록을 보여준 지민은 윗몸 일으키기에서 94개를 달성하며 권역 최고기록을 달성했다. 준영과 준호는 60개 언저리에서 허리가 아파 그만했다.


“하나 불합이어도 가장 중요한 건 달리기라 아마 별 타격 없을거야.”


“그래, 그리고 말마따나 지금 사람이 없어 죽겠는데 하나 불합했다고 탈락시키지는 않을거야.”


준영과 준호는 내심 불안해하는 지민을 위로했다.


“근데 넌 이거 왜 지원했어? 우리처럼 의무복무가 있는 것도 아니잖아?”


“특별한 경험.”

지민은 기지개를 쭉 피며 말했다.


“난 사람의 인생은 하나의 스토리라고 생각해. 그 사람이 어떤 인생을 살았느냐에 따라 주제와 플롯이 달라지잖아. 그리고 그 스토리에 깊이감과 신빙성을 가져다주려면 결국 남들은 해보지 못한 특별한 경험이 필요한거지. 물론 우리나라에서는 국민의 절반 이상이 군필이지만 외국계나 이런데서는 이게 꽤 귀한 스펙이 되거든?”


지민은 야망이 큰 아이다.

그녀는 누군가 자신의 이야기를 찾아 읽고 자신을 멘토로 여기는 그런 삶을 동경해왔다.


“이거 너희한테는 기만인가?”


“딱히. 이유가 뭐가 됐든 가뜩이나 사람 부족한 곳에, 굳이 할 필요도 없는데 가시밭길을 자처하는 건 긍정해.”


“그리고 여기 집 없어서 신청한 아주 속물적인 사람도 있는데”


준호는 준영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 거 홈리스라 죄송합니다 그려!”


준영은 자포자기한 듯 두손을 들었다.


“지는 입대신청 어떻게 하는지 검색하기 귀찮다고 나 따라 지원했으면서.”


한바탕 투닥거리는 준영과 준호 그리고 그 사이에서 지민은 재밌다는 듯 웃었다.


“얘들아 너희 황무대 학생이지?”

한창 이야기를 이어가던 세 사람에게 ROTC 체육복을 입은 남자가 말을 걸었다. 자세히 보아하니 아까 윗몸 일으키기 검사관으로 있던 사람이다.


“난 황무대 3학년 후보생인데 권정혁 훈육관님이 잠깐 얼굴 좀 보자고 하셔.”


세 사람은 잠시간 서로를 바라본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


권 대위는 밀려오는 잠을 억지로 깨우며 차양막 아래 앉았다.

최근 후보생 군수품 정리, 후보생 필기평가 그리고 여러 잡다한 업무까지 쳐내느라 몸이 열 개라도 모자른 판국이다.

그런 그가 주말 아침 후보생 지원 체력검정에 까지 모습을 드러낸 것은 학군단장 임 중령의 입김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권 대위! 무조건 10명이야! 그 아래로 떨어지면 절대 안돼!”


필기평가를 치룬 19명 중 6명은 중도하차의 의사를 표했고 3명은 필기평가에서 낙제했다.

아니 도대체 뭘 어떻게 하면 필기평가에서 떨어지는지 의아했지만 결국 체력검정에 참가한 것은 임 중령이 정해준 마지노선 10명이었다.

임 중령 입장에서는 한 자리수를 입단시키느냐 두 자리수를 입단시키느냐로 실적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그의 그런 성화도 어느정도 이해가 됐다.


‘문제는 이 10명을 끝까지 끌고가야하는 건데.’


시간이 흘러 권 대위 앞으로 10명의 입단 후보생들이 위치했다.

귄 대위는 그들을 가로로 쓱 훑어 보았다.


중간이 없었다.


어떤 학생은 천생 군인인 것처럼 이미 모든 신체조건을 갖춘 반면, 다른 학생은 평생 운동 한 번 제대로 해본 적 없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거기 키 큰 학생 이름이 뭐죠?”


“강민호 입니다!”


“여러분······ 아니 얘들아, 어차피 같이 생활할거니까 말 편하게 할게.”


권 대위는 자리에서 일어나 말을 이어갔다.


“민호야, 혹시 너 기록 많이 중요하니?”


“어······ 그렇진 않습니다.”


“그래, 어차피 결국 붙느냐 아니냐가 중요한 거지 여기서 몇 등하는게 중요한 게 아니거든? 여기서 혹시 난 완주할 자신이 없고 중간에 걸을 것 같다, 손.”


권 대위는 그렇게 말하며 손을 들어올렸다.


“뭐라고 하려는게 아니니까 손!”


권 대위가 재차 강조하자 10명의 학생 중 3명이 쭈뼛거리며 손을 들었다.


“이름이 어떻게 되지?”


“윤지훈입니다.”


“이성민입니다.”


“김다은입니다.”


준호와 준영은 슬쩍 지민을 쳐다봤지만 지민은 [뭘 봐] 라는 표정으로 정색했다. 달리기는 자신 있는 모양이다.


“그래 시간이 없어서 짧게 설명할 건데 너희는 좀 있다 달리기에서 내가 알려준 포메이션에 따라 한 팀으로 움직인다. 알겠나?”


권 대위의 다짜고짜 제안에 모두가 벙쪄서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대답은 예, 알겠습니다로 통일한다, 알겠나?”


“예···예! 알겠습니다.”


‘가르칠게 많겠어. 앞으로.’


***


아지랑이가 올라오는 고무트랙

오전 10시가 조금 넘어 슬슬 강해지는 태양볕 아래로 50여명 가까이의 장정들이 트랙을 돌고 있었다.


개인의 능력 차가 가장 잘 드러나는 종목인 것을 여실히 증명하듯 선두 그룹은 낙오된 그룹의 뒤를 바짝 쫓아왔고 낙오 그룹 중 몇은 포기한 듯 달리지 않고 터덜터덜 걸어갔다.

그리고 정확히 중간 대열

다소 특이항 대형을 만들어 뛰고 있는 자들이 있었는데


“못해! 못해!! 헉······나······헉··· 잠깐만 빠질게.”


“막아! 내가 밀어줄테니까 옆에서 받쳐줘!”


“아니, 씨! 좀! 헉······헉······ 내가 좀 쉬겠다는데!”


“Language!”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 했던가.

얼굴 가득 침과 땀으로 범벅이 된 지훈이 대열을 이탈하려고 하자 맨 후미에 전체를 이끌던 민호가 힘으로 그를 막고 등을 떠밀어 주었다. 출렁이는 그의 뱃살 옆으로 준영과 준호가 각각 어깨 동무를 해주며 무게가 분산될 수 있게 도와주었다.


지훈 앞에서 뛰고 있던 성민과 다은은 이미 한 차례 탈출을 시도했지만 7명이 둘러싼 대형을 이탈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오히려 탈출하려고 힘쓰다가 다시 복귀하면 그게 더욱 힘들다는 것을 몸소 느꼈기에 군말 없이 뛰는 것이다.


[프리즌 포메이션]


정식 명칭이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는 권 대위가 후보생 시절 체력이 저조한 동기들을 운동시키기 위해 고안한 대열로 말 그대로 체력이 좋지 않은 인원을 대열의 가운데에 가둬두고 목표치가 채워지기 전에는 멈추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 당시 학군단장이 매주 10km를 뛰지 않으면 불이익을 준다고 할 정도로 체력에 미친 양반이었기에 탄생한 비극적인 포메이션이다.


‘이걸로 체력은 통과군.’


이제 반 바퀴도 남지 않은 그들을 보며 권 대위는 안심하며 자리를 떠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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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기초군사훈련(3) 24.07.28 6 0 7쪽
7 기초군사훈련(2) 24.07.28 5 0 13쪽
6 기초군사훈련(1) 24.07.28 2 0 13쪽
5 면접준비 (2) 그리고 시간은 빠르게 흘러 24.07.10 4 0 8쪽
4 면접준비 (1) 24.07.10 2 0 8쪽
» 체력검정 24.07.10 6 0 12쪽
2 모집 24.07.05 8 0 10쪽
1 위기의 학군단 24.07.03 19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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