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룡빌딩과 후보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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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수봉
작품등록일 :
2024.07.03 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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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3 0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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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05 0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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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MMY

“여기 지금 누가있어? 너지? 그럼 여기 누구 책임이야?”


서울의 한 호텔 퇴식구 안

사람들이 분주하게 가림막 사이를 오고 가는 그 좁은 공간 속에서 매니저로 보이는 한 남성이 이제 갓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준영을 혼내고 있었다.


“야,야 담배나 한 대 피러가자. 어 거기 알바분은 식기정리 말고 쓰레기 정리도 부탁해요.”


방금까지 준영에게 억지부리던 매니저를 그의 동료가 데리고 나갔다.


‘씨발’


복학까지 남은 기간이 애매했던 준영은 마침 호텔에서 단기알바를 구한다기에 지원했다.

그가 지원한 파트는 분명 주차였는데 당일이 되어서 담당자가 그를 서빙으로 차출해갔다.

그러나 왠 걸 일이 편하면 사람이 뭐 같다고

같이 단기알바로 들어온 사람은 2시간이 채 안되서 못하겠다고 도망쳤으며 사이코같은 매니저는 되도 않는 훈수를 두며 준영을 못살게 굴었다. 이유는 퇴식구 정리 속도가 늦어진다는 건데 당연히 원래 4명이 배치되어야 하는 곳에 한 사람은 도망쳤고, 한 사람은 뒤에서 휴대폰 하면서 훈수만 두니 제대로 돌아갈리가 있나.


‘하··· 저 양아치 새끼 저거 몇 살이지?’


몇 살이나 먹었길래 하는짓이 초등학생 수준을 못 넘는 걸까.

준영은 경련이 오는 안면근육을 애써 진정시키며 식기를 정리했다.


[SSB 은행]

입금 80,000원

루마디 호텔 -> 김준영 0103796****


짜증이 몰려오는 8시간이 끝나고 준영은 지하철 역을 향해 걸었다.


2월의 서울은 추웠다.


회색 롱패딩에 양손을 꽂아넣고 입김을 불어 추위를 그려보던 준영은 문득 자신이 19시가 될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함을 깨닫자 공복감이 밀려왔다.


5천원에 5개인 고기왕만두를 먹는 것이 당초의 계획이었지만 힘든 노동을 한 것에 대한 보상심리인 것인지 오늘은 조금 사치를 부리고 싶어졌다.


덜컹 덜컹


아수라장이나 다름없는 2호선은 퇴근시간이 지나자 꽤 한적했다. 오늘은 운이 좋게 지하철 가장자리가 비어있어 피곤에 젖은 몸을 기댈 수 있었다.


‘오늘은 스시에 맥주다.’


개찰구를 지나 밖을 나오며 준영은 메뉴를 정했다.


기숙사로 돌아가는 길, 준영은 스시집에 들러 모듬초밥을 주문하고 포장되기 전 편의점에 들러 발포 맥주 한 페트를 사왔다.


몸은 피곤했지만 정신은 다시 살아나는 기분이었다.

맛있는 음식과 맥주 한 잔을 하고 일찍 잠이 들자 그러면 오늘의 힘들었던 하루가 잊혀지고 내일이 오리다.


“안녕하세요.”


기숙사 입구를 지나 당직을 서고 있던 사감에게 인사를 하고 들어가는 준영을 사감이 멈춰세웠다.


“어, 준영아 잠깐 여기 와볼래?”


혹시 몰래 들고가던 맥주를 지적하려는 건가 하고 뜨끔한 준영은 벌점을 각오하고 사감실로 따라갔다.


‘아직 벌점 여유는 있지만 잘못 걸렸네.’


그러나 사감실 의자에 걸터앉는 사감은 준영의 예상과는 다르게 그가 들고 있는 음식에는 안중에도 없는 듯 책상에서 종이 한 장을 찾아 건넸다.


“준영이가 이번 학기에 2학년 1학기인가? 이게 조금 안타까운데 내일 쯤 홈페이지에 올라갈거야.”


사감이 건넨 안내문의 제목만 보고도 준영의 식욕은 뚝 떨어졌다.


[화령 기숙사 30주년 맞이 리모델링 공사 계획]


“우리도 이렇게 언질도 없이 갑작스레 공사를 한다고 하니까 당황스럽더라, 근데 시에서는 꼭 해야한다고 해서 애들이 조금이라도 일찍 준비할 수 있도록 알려주는 거야.”


큰일났다. 그야 말로 사고였다.

준영이 살고 있는 기숙사는 그의 본가가 위치한 시도에서 대학생 시민을 위해 제공한 기숙사다.

보증금도 없고 대학가 근처 월세 반값에 매 끼니까지 제공하는 곳으로, 목돈이라고 불릴 돈이 없는 준영같은 학생에게는 그야말로 지출을 막는 댐과 같은 곳이었다.


“이거··· 공사가 밀리거나 취소될 가능성은 아예없는 거죠?”


“아마 없을 거 같아···”


“공사는 얼마나 걸리는 거에요?”


“말이 리모델링이지 다 갈아엎는다고 봐야해서, 못해도 2년은 필요할 거야.”


패닉에 빠진 준영을 보고 사감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개학까지 앞으로 한 달, 집이 사라져 버렸다.


***


3월의 꽃샘추위가 물러가고 벚꽃이 봉오리를 올리는 4월

학생들은 개강할 때의 열정이 사그라든 듯 본인들의 스케줄에 적응하며 일상을 보낸다.

새내기들은 아직 학교에 익숙하지 않은 듯 몰려 다니며 이야기 꽃을 피웠고, 2학년들은 동아리 및 학회 활동을 하거나 자기계발에 힘을 쏟는 등 각자의 페이스를 만들어 가기 시작했으며, 3~4학년들은 잘 보이지 않는다.


“생각보다 민망하네.”


“그냥 허공을 응시해. 그게 멘탈에 좋다.”


일상적인 대학가 풍경에 어색한 남색점 두 개를 찍어 놓은 것 마냥 남색 단복을 입은 두 명이 황무대 중앙도서관 앞에 앉아있었다.

이 꿔다놓은 보릿자루 같은 두 사람은 검정 베레모에 가슴 팍에는 작대기 세 개가 세로로 모여있는 철제 계급장을 달고 있었다.


“운도 없지, 자연대 같은데 배치됐으면 사람도 없겠다, 폰이나 하다 오면 됐는데.”


“사다리 잘못 탄 죄지 뭐. 근데 예상은 했지만 무관심 생각보다 참기 힘드네.”


복화술에 가까운 방식으로 이야기를 주고 받던 두 사람은 벌써 2시간이 넘도록 자리에 앉아있었지만 대부분이 그들을 투명인간 취급하며 도서관 안으로 들어갔다.

간혹 미필인 새내기 몇명만 힐끔 관심을 가졌지만 대개는 관심에서 그칠 뿐이었다.


[얘들아 다시 한번 말하지만 최우선으로 강조해야 할 건 바로 기숙사야! 기숙사! 알았지? ]


그들의 훈육관이 보낸 가장 최신 메시지에는 기숙사를 특히나 강조하는 텍스트가 있었다.

그의 간절함과 열정이 텍스트 너머로도 전달되었기에 일단 뭐라도 하는게 맞는 거 같은데···


문제는 그들에게 질문하는 사람이 없다는 거다.


“야, 야 쟤 올거 같지 않냐?”


가만보니 중앙도서관 근처를 서성거리는 학생이 한 명 보였다.

익숙한 옷차림 분명 30분전에도 이 근처를 서성거리던 학생이었다.


궁금한 게 있나? 근데 왜 안 오지?

혹시 이렇게 탁 트인 데서 먼저 말걸기 부담스럽나? 그런 소심한 성격?


그렇게 고민하고 있던 순간, 둥근 안경을 낀 후보생이 먼저 말을 건넸다.


“ROTC 설명 한 번 들어보실래요?”


“···네.”


“저희는 ROTC라고 하고 흔히 학군단이라고 해요. ROTC를 하시면 3학년부터 주 2회 군사학 수업과 방학 때 12주의 입영훈련을 거쳐 임관하게 돼요. 그리고 또 학군단 입단 시 혜택으로는···”


안경 후보생은 특유의 말솜씨로 홍보내용을 이야기하지만 정작 학생은 시종일관 같은 표정으로 고개만 끄덕이고 있다.


이대로 가면 그냥 가버릴 것 같다.


“기숙사! 기숙사를 제공해줘요! 학교에서 5분 거리이고 매끼 식사도 포함해서 무료로!”


“무료로요? 식사까지?”


여지껏 반응이 없던 학생은 솔깃한 듯 눈을 빛냈다.

디테일한 부분에 있어 조금 해석의 여지가 있지만 거짓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때다 싶었던 스포츠 머리 후보생은 쐐기를 박아야 했다.


“저기 경영대 쪽으로 쭉 가면 그 옆에 우리학교 마크가 있는 건물이 하나 있을거에요.”


스포츠 머리 후보생은 책상 위 팜플렛과 기념수첩 등을 바리바리 챙겨 학생에게 쥐어주고는 강조하듯 말했다.


“그 건물을 보고 결정해봐요. 우리 학군단의 전용 시설이니까. [황룡빌딩] 이라는 이름의 건물이에요.”

***


“너네는 군대 어디로 갈거냐?”


“일단 그래도 기회 있을때 카투사 한 번 넣어봐야 되지 않냐?”


“난 공군. 요즘 공군 인기 좋다는데.”


“응 난 소셜 에이전트~”


“넌 나중에 군필이라고 하지 마라.”


“부럽냐? 흐흐”


“부러운 것도 있지만 넌 체대가 공익인 건 좀 그렇지 않냐? 새끼야?”


태양이 내리쬐는 테니스 코트.

그을린 피부와 건장한 몸을 가진 장정들이 차양막 아래에서 삼삼오오 시시덕대고 있었다.


“민호 넌 어디로 갈거냐?”


“난 알티.”


“ROTC? 그거 복무기간만 길고 병사랑 월급차이도 얼마 안나지 않아? 굳이 거길 왜 가?”


“남자로 태어났으면 한 번뿐인 군생활, 특전사 한 번 해봐야 되지 않겠냐?


차양막에서 일어나 다시 코트 위로 향하는 생활체육과 2학년 강민호는 카트에서 공 두 개를 쥐었다.

멋들어진 자세로 반대 코트에 서비스를 넣는 그의 실루엣은 보는 이로 하여금 힘을 느끼게 할 만큼 강렬한 인상을 준다.


“그리고 그거 하면 2년 동안 집이랑 밥 공짜래. 나쁘지 않잖아?”


“그래, 네 식비는 감당안될 것 같기는 하다.”


그렇게 누군가는 자신의 신념에 따라.


***

“군필 여성? 취업시장에서 꽤 차별적인 스토리를 만들 수 있을 거 같은데?”


“저거 되게 힘들지 않을까? 괜찮겠어?”


“힘들어야 스토리가 더 진정성이 생기는 거야. 딱 기다려 여성리더로서의 초석을 세워주고 올게.”


누군가는 야망을 위해.


***


“···어···어! 이거다!!”


“뭔데? 응... 학군단? 준영이 너 알티하게?”


“야 요즘 알티를 누가 하냐? 준영이 너도 그냥 우리랑 공군 쓰자니까.”


“이런! 부족한 거 없이 자란 유복한 자식들! 마! 나한테 이건 생존이야, 생존!”


흥분한 준영은 휴대폰 카메라를 켜 포스터가 잘 나오게 찍었다. 혹시 잘못 나올까 두 번 찍었다.


“기숙사 무료에 식사까지 제공이라잖아! 저거면 알바로 번 돈을 온전히 나한테 투자할 수 있어! 다시 돌아오지 않는 청춘을 즐길 수 있는거라고! 으하하하!”


평소답지 않게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준영을 보고 이상하게 생각하는 친구들, 준호만이 유일하게 준영을 이해해주었다.


“얘들아 이해해, 얘가 통학만 왕복 7시간하더니 좀 미친듯.”


준호는 난리치는 준영을 옆으로 밀어내고 포스터를 훑었다.


“흠, 어차피 가야할 군대라면 나도 장교나 해볼까?”


그렇게 누군가는 친구를 따라

각자 다양한 이유를 품에 앉고 황룡빌딩으로 모여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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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기초군사훈련(6) 24.08.09 5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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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기초군사훈련(4) 24.07.28 6 0 16쪽
8 기초군사훈련(3) 24.07.28 6 0 7쪽
7 기초군사훈련(2) 24.07.28 6 0 13쪽
6 기초군사훈련(1) 24.07.28 2 0 13쪽
5 면접준비 (2) 그리고 시간은 빠르게 흘러 24.07.10 4 0 8쪽
4 면접준비 (1) 24.07.10 3 0 8쪽
3 체력검정 24.07.10 6 0 12쪽
» 모집 24.07.05 9 0 10쪽
1 위기의 학군단 24.07.03 20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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