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룡빌딩과 후보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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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수봉
작품등록일 :
2024.07.03 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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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28 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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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군사훈련(2)

DUMMY

***


빰빠~ 빠빠빠~ 빠빠라빠빠 빠빠빠


H-1년 12월 28일 06:30

모든 군필자에게 물었을때 가장 돌아가기 싫은 하루 1위, 훈련소 이틀 차 아침.


“으어어어···”


“하아······”


“씨발···”


생활관 여기저기서 탄식과 좀비소리, 심지어 욕지거리까지 새어나오며 아침이 시작되었다. 물론 후보생들의 가슴 속 짜증과 막막함을 미쳐 다 쏟아낼때까지 기다려줄 육군학생군사학교가 아니었다.


“후보생들! 당장 기상!! 기상해서 모포 및 침구류 정비하고 06:45분까지 사열대 앞으로 집합할 수 있도록!”


미리 복도 앞에서 대기하던 기훈감독 후보생, 통칭 빨간 모자가 생활관 문을 강하게 열고 들어와 윽박을 질렀다.


기상 팡파레 후 훈육관의 신경질적인 점호 알림, 빨간 모자의 닦달, 그리고 그런 후보생들을 놀리는 듯한 육군 아미 뭐시기 군가 삼 박자로 인해 준영은 21년 인생 중 최고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주섬주섬 아직 길들여지지 않아 뻣뻣한 방상외피를 걸치고 아직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준호를 챙겨 사열대로 향했다.


“후보생들 빨리 빨리 안 뛰어?!!”


06:42


사열대에 올라선 훈육관의 윽박에 한 두 명이 뛰기 시작했고 이에 다른 후보생들도 눈치껏 달리기 시작했다.

먼저 나와있던 후보생들은 추위에 몸을 떨고 있었다. 뒤늦게 온 후보생들도 실내의 온기를 점차 뺏기자 동동 발을 구르기 시작했다. 12월 괴산의 날씨는 추워도 너무 추웠다. 뼈가 시린 추위란 게 이런걸까. 준영을 포함 대부분의 후보생들이 추위에 점차 자세가 흐트러지자 이를 그냥 넘길 빨간 모자들이 아니었다.


“후보생들 움직이지 않습니다! 차렷은 부동자세입니다!”


야 이씨 니들은 플리스에, 귀돌이에 아주 사제 방한복으로 무장을 해놓고는! 우리는 이딴 방한도 안되고 무겁기만 한 거 입혀놓고 너무한 거 아니냐.


‘이럴 줄 알았으면 보급장갑이라도 챙겨올걸···’


준영은 착용하기도 귀찮아 두고 온 가죽장갑과 귀돌이를 생각했다. 하지만 후회해도 늦었다. 이미 다시 들어와서 챙겨올 수 있는 분위기는 아니었기에.


***


첫 아침점호의 소감은 짜증이었다. 무슨 쓸데없는 말이 저리 많고 도수체조랑 애국가는 왜 부르는지. 평소의 상태라면 모를까 낯선 환경, 낯선 시간, 척박하고 추운 환경에서 모르는 것들이 쏟아지니 익숙해지기는 커녕 그저 막막하고 집에 가고 싶어졌다.


‘근데 퇴소하면 이거 또 해야되나···’


아침식사가 끝나고 찾아온 15분 간의 개인정비 시간. 세면장은 만원이라 양치질도 못할 것 같다고 느낀 지훈은 침상에 누워 쉬며 현재의 감정을 곱씹었다.


힘들다. 본격적인 일정은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벌써 하기가 싫어진다. 애초에 자신이 왜 여기에 있는지도 모르겠는 지훈이다.


‘꼰대같은 집구석. 자기랑 형만 군인출신이면 됐지, 왜 나까지 장교로 가야하는 건데?’


지훈은 군인집안 출신으로 아버지는 육군 대령, 형은 중위로 복무 중이다. 지훈은 딱딱한 집안 분위기가 싫어 대학에 진학하자 마자 자취방으로 도망치는데 성공했다. 집안으로부터 해방된 지훈은 막힌 숨이 뚫린 것처럼 상쾌한 새내기 생활을 보냈다. 하지만 행복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지훈이 너도 이제 슬슬 군대 갈 때가 되었지? 딱히 생각한 게 없으면 너도 ROTC 지원해라.”


반찬으로 향하던 지훈의 젓가락이 멈칫했다.


“아빠··· 저 4급인데요?”


“어차피 눈 때문에 4급 아니냐? 이번 방학때 라식 수술 시켜줄테니까 지원해라. 하는 김에 살 좀 빼고, 밖에도 돌아다니고. 매일 방에만 틀어박혀 있으니까 눈이 그 모양인 거 아니냐?”


완강한 아버지의 태도에 지훈은 잠시 움찔거렸지만 워낙 중대한 문제이기에 지훈은 한 번 더 자신의 뜻을 내보였다.


“아···아버지 사실 굳이 안가도 되는데 왜 제가 가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국가에서 몸이 불편하다고 인정한 건데 이걸 억지로 가다가 제가 불구가 되서 오거나 다치면 어떻게 해요?”


탁.

지훈의 아버지가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그는 얼굴에 드러나는 불편함을 숨기지 않았다.


“해서, 계속 그렇게 나약하게 변명만 하면서 살거라는 뜻이냐? 군대가서 병신이 되서 돌아오는 게 걱정이냐? 그건 다 시키는 거 말고 딴 짓하다 벌어지는 거다. 군대에서는 시키는 것만 해, 그럼 아무 일 없어.”


지훈은 강압적인 아버지의 심기를 더 건드려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도 쉽게 물러설 수는 없었다. 그는 자신의 진로, 성향 등등 여러 이유를 들어 아버지를 설득하려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미 그들의 관계는 부자의 그것이 아닌 상급자와 하급자의 성격이 더 강했다.


“계속 그렇게 버팅길 거냐? 그래 그렇게 싫으면 하지 말아야지. 지금까지 네가 공짜로 받아갔던 모든 지원은 더 이상 기대하지 말아라. 아비가 목숨 건 대가로 받은 녹봉을 안보에 무임승차하려는 녀석에게 쓰고 싶지는 않다.”


그 말을 끝으로 지훈의 아버지는 밖으로 나가 담배를 태웠다. 그 후 지훈의 입단 결정은 3개월이 채 안되어 결정났다. 처음 지훈은 아버지의 불호령에 맞서 스스로 독립을 하려 아르바이트를 구했다.


최저시급 패스트푸드점.

지훈은 그곳에서 현실의 냉혹함을 느껴버렸다. 마감, 폐기름 처리, 음식물쓰레기 처리 등 궂은 일을 모조리 지훈에게 떠넘기는 점장. 고작 몇개월 빨리 온 주제에 손 하나 까딱 안하는 여 선배. 소스 짜는 모양까지 일일이 지적하며 여직원과 점장 앞에서 자신을 혼내 우위를 증명하고 싶어하는 고졸 남자 선배까지 모두 지훈을 미치게 했지만 그는 자신의 생활을 위해 꾹 참았다.


그렇게 받은 지훈의 첫 월급 749,000원.


지훈은 깨달았다. 이 돈으로는 월세 내기도 빠듯하다는 걸. 현재의 자신은 아버지의 도움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그렇게 1년이 지나 현재.


“후보생 누가 누워있습니까! 지금은 개인정비 시간이지 취침시간이 아닙니다!”


후보생들이 개인정비를 잘 하고 있는지 생활관 순찰을 돌던 빨간 모자에게 딱 걸렸다. 지훈은 반사적으로 일어나 의미없이 관물대 윗칸을 열었다. 그리고는 개인정비하는 척, 분주한 척하며 빨간 모자가 나갈 때까지 기다렸다.


“지훈! 벌써 다 씻었어?! 빠르네!”


빨간 모자가 나가고 바로 큰 체구의 남자가 들어왔다. 같은 대학 강민호였다.


“아니, 사람 많을거 같아서 그냥 나중에 씻으려고. 어차피 오늘 야외에서 하루종일 구를거 아니야?”


“오! 생각해보니 그러네! 되게 효율적이다 너. 그래도 모닝똥은 싸두는게 좋아! 오늘 내가 구렁이 세 마리를 그냥!···.”


악의없는 민호의 웃음에 이유 모를 내면의 짜증이 올라왔다. 저 녀석은 뭐가 좋다고 웃어댈까. 마음 같아서는 온갖 신경질을 부리고 싶었지만 참았다. 강민호의 피지컬, 동기들 사이에서의 은근한 서열, 사람 좋은 이미지까지 지금의 지훈이 그에게 시비를 걸기에는 당위성도 이길 자신도 없었기 때문이다.


“얘들아! 이제 그만 떠들고 빨리 준비해서 나오자! 5분전까지는 집합해야 돼!”


민호가 한창 신나게 떠들어 슬슬 지훈이 한계에 다다랐을때 이미 전투복에 베레모까지 완벽하게 차려입은 후보생이 생활관으로 들어왔다.


“어, 빨리 갈게~”


“근데 왜 네가 돌면서 방송이야? 훈육관님들 있잖아.”


지훈은 순수 궁금증으로 석훈에게 물었다. 사실 솔직히 말하자면 석훈의 목소리에 묻은 미묘한 권위적임이 그의 예민한 강압센스를 건드렸기 때문에 불쾌함 마저 느껴졌다.


“어? 몰랐어? 오늘부터 내가 2대대 대대장인 거?”


그러고보니 어제 방송했었다.

자치근무 후보생 지원하고 싶은 인원은 소강당으로 오라고. 물론 지훈은 이곳에 들어온 후로 만사가 귀찮았기에 가지 않았다. 아니 시켜줘도 안한다.


씨익


‘우연이 아니네, 저 녀석.’


방금 전 지훈이 느꼈던 쎄한 감은 기우가 아니었던 것 같다. 석훈이 잠시간 승자의 미소를 짓는 것을 빠르게 캐치했다. 물론 그 미소가 자신이 아닌 민호를 향하고 있다는 것도.


“어? 너 대대장이야? 잘됐네! 우리 학교 출신이니까 잘 좀 해줘!”


그가 자신에게 기싸움을 걸어왔다는 것을 모른채 여전히 사람 좋은 웃음을 날리며 좋아하는 민호.


‘아버지··· 군대에는 정말 별의별 놈들이 많은 것 같네요. 꼭······저를 여기 보내셨어야 했나요?’


작은 한숨을 내쉬고 문득 시계를 바라보니 이제 정말 나갈 때가 되었다.


***


12월의 연병장, 특히 인조잔디 따위는 전혀 기대할 수도 없는 생 흙 연병장은 8월과 더불어 군인들이 가장 진입하기 싫은 장소 중 하나다. 새벽의 칼바람을 맞아 차게 얼어붙은 흙바닥이 날이 밝은 후 남중고도가 가장 높아지는 12시 정도되면 서서히 녹기 시작한다. 이윽고 하루 중 가장 온도가 높아지는 14시 무렵에는 연병장이 완전히 진흙탕이 된다. 그 느낌은 직관적으로 표현하면 이렇다.


“꼭 똥 밟는 기분이다.”


2대대 후보생들은 넓은 육군학생군사학교 연병장에서 제식훈련 중이다. 훈련은 오전 개인제식을 마치고 점심식사 후 분대제식으로 접어들었다.


질퍽


“야! 김준영! 튀었잖아!”

“아니 그럼 앞으로 가다가 ‘뒤로 돌아’ 하는데 안 튈 수가 있냐? 그리고 너는 아까 '좌향 앞으로 가’ 때 로우킥을 날리시던데 이 얼룩은 빨아주실 건가?”


준영과 지민이 신경질적으로 대화하는 건 지난 반년 간 한 손에 꼽았다. 그만큼 지금 훈련이 정신적으로 타격이 있다는 것이다. 뭐 제식훈련이 어려울게 따로 뭐가 있겠냐만은 중요한 건 타이밍이었다.

우선 모든 군필자에게 가장 집에가고 싶은 순간을 고르라면 대답하는 부동의 1위, 훈련소 2일차를 그들이 겪고 있었다. 또한 이 제식이라는 것이 똑같은 동작을 각이 나올때까지 무한 반복하는 훈련이다보니 그들은 마치 시간과 정신의 방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었다.


“싸우지 마라 얘들아.”


준호는 전투화에 깊게 박힌 흙덩이를 빼기 위해 배수로 위에서 박박 땅을 구르며 말했다.


“우리 싸우는 거 아닌데!”

“우리 싸우는 거 아니야!”


이럴때는 서로 죽이 잘 맞는다.


“후~ 그나저나 아직 이틀 차인데 벌써 왜 집가고 싶냐?”


“나도, 그냥 콱 퇴소해버리고 싶다.”


준영, 준호가 낄낄대며 시답지 않은 소리를 해대며 애써 무료한 시간을 달랬다. 지민은 말할 기운도 없어 그들의 얘기를 들으며 연병장을 훑었다.

그런 지민의 눈에 걸리는 인물이 있었는데 다은이었다. 같은 학교 단 둘뿐인 여 후보생이었지만 아직까지 제대로 말도 해보지 못했다. 지민과 다은이 간발의 차로 여군 생활관에서도 찢어진 탓이 컸다. 안 그래도 소심해보이는 그녀는 역시 분대원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겉도는 듯 했다.


“다은아.”


다은은 고개를 돌려 지민을 멀뚱히 쳐다보았다.


“분대장 됐던데 축하해! 지원한거야?”


다은이 2소대 2분대 분대장이 되었다는 것은 금일 학과출장 집합 때 알게되었다.


“아··· 어··· 어쩌다보니 그렇게 됐어. 애들이 추천해줘서···”


다은은 슬쩍 자기 분대원들의 눈치를 봤다. 지민은 다은이 속한 2분대 인원들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아무래도 얘한테 짬때린거 같은데.’


분대장이란 직책은 다른 직책에 비해 권한 대비 잡일만 많은 지라 지민이 속한 1분대도 지원자가 없어 가위바위보로 정했다. 추천이 말이 추천이지 사실상 정치에서 밀려났다는 것을 의미했다. 하필이면 그녀 혼자 다른 분대에 고립되었기에 직접적으로 도와줄 방법이 없다는 게 아쉬웠다.


“야! 김준영 잠깐 와봐!”


지민은 어젯밤 가위바위보에서 1/8 확률을 뚫고 분대장이 된 준영을 불렀다. 세트 메뉴로 준호도 같이 불려왔다.


“우리 학교인데 서로 얘기하는 건 처음이지? 여기 준영이도 1분대 분대장이니까 뭐 많이 물어봐.”


“우리학교 맞지? 다은이? 오케이 다은이 같이 한 주간 분대장 신세니까 서로 도와주자고.”


“나도 황무대. 오준호야. 반가워.”


준영 트리오의 친화적인 태도에 내성적인 다은은 처음은 어색하게 인사했지만 같은 소속감이 주는 편안함 덕인가 점차 경계를 풀고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야! 분대장!”


한창 부드럽게 인사를 나누던 다은의 태도가 한순간 다시 놀란 고양이 마냥 굳었다. 네 사람이 고개를 돌려 보니 분대원 중 4명이 다소 언짢은 표정으로 그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나머지 세 명은 별 생각이 없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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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기초군사훈련(6) 24.08.09 5 0 13쪽
10 기초군사훈련(5) 24.07.30 4 0 9쪽
9 기초군사훈련(4) 24.07.28 6 0 16쪽
8 기초군사훈련(3) 24.07.28 6 0 7쪽
» 기초군사훈련(2) 24.07.28 6 0 13쪽
6 기초군사훈련(1) 24.07.28 2 0 13쪽
5 면접준비 (2) 그리고 시간은 빠르게 흘러 24.07.10 4 0 8쪽
4 면접준비 (1) 24.07.10 2 0 8쪽
3 체력검정 24.07.10 6 0 12쪽
2 모집 24.07.05 8 0 10쪽
1 위기의 학군단 24.07.03 20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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