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룡빌딩과 후보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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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수봉
작품등록일 :
2024.07.03 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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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3 0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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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2 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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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군사훈련(9)

DUMMY

***

“충성! 후보생 오준호, 행정반에 용무있어 왔습니다.”


“어, 그래 준호야.”


18:50

저녁 개인정비 시간. 생활복으로 환복한 준호는 권 대위가 시킨 조사결과를 보고하러 행정반을 찾았다.


“아까 말씀하신 저희 학교 애들 사격결과 보고드리겠습니다.”


준호는 주머니에서 수첩을 꺼내 사격 결과를 나열했다.


“강민호 19발, 윤지훈 11발, 이성민 15발, 최성현 15발, 정석훈 14발, 박민수 16발, 김준영 14발, 오준호 18발, 한지민 20발, 김다은 5발. 이상입니다.”


“응? 김다은 몇 발?”


“5발입니다.”


“15발이 아니라?”


“예, 5발입니다.”


“허허 참.”


듣도보도 못한 신기록에 권 대위는 관자놀이를 짚었다.

잠시 후 권 대위는 “뭐해, 빨리 14발 미만은 총 갖고 행정반으로 튀어오라고 해.” 라며 웃으며 말했다.


그의 웃음이 절대 기쁨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기에 준호는 빠릿하게 움직였다.


얼마 뒤 생활복 차림의 두 남녀가 헐레벌떡 행정반에 들어섰다.

권 대위는 두 사람을 데리고 복도로 향했다.


“추가사격자 두 명이구나.”


권 대위는 우선 두 사람에게 이유를 물었다.


“저는 시력 때문인 것 같습니다. 제가 원래 시력으로 4급인데 아직 라식수술을 받지 못해서 안경쓰고 사격했다가 안경에 김이 서려서···”


지훈은 추운 겨울 날씨에 안경에 서린 김 때문에 시야 확보가 되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그러면서 마침 오늘 택배로 렌즈가 도착했다며 토요일 사격 때에는 무리없이 통과할 수 있다는 포부를 보였다. 그래도 이쪽은 완벽히 자신의 패인을 알고 있으니 점차 좋아질 거 같았다.


반면에 다은은 특별한 이유가 없었다.


“제가 실력이 부족한 거 같습니다. 더 연습하겠습니다.”


“다은이 분명 영점사격 때는 탄착군 형성도 잘됐고 자세도 완벽했는데?”


권 대위가 지켜본 다은은 배운 것 이상을 해내지는 못해도 배운 것은 착실하게 해내는 아이였다.

아무래도 너무 긴장했거나 심리적인 문제인 것 같은데 이렇게 이론과 실재가 다른 경우는 처음이었다.


“흠 아무튼 내가 너희를 부른 이유는 토요일에 있을 추가사격 때 합격을 위해 조언 및 지도를 해주기 위해서야.”


권 대위는 그러면서 어째서 사격이 중요한지, 정확히는 토요일 추가사격이 중요한지에 대해 설명했다.


“교육여단장님이 토요일 사격 때 전원 합격될 때까지 사격한다고 하셨단다. 즉, 합격을 못하면 야간에도 그것조차 실패하면 일요일도 사격할 수도 있다는 소리지.”


교육여단장이 어지간히 사격을 중요시 여기는지 아무리 기초군사훈련 후보생이라고 할지라도 봐주지 않겠다고 공언했다고 한다.


“근데 그건 우리 훈육관들도 힘들어.”


후보생들이 고생하는만큼 훈육관들도 워라밸을 포기하고 같이 입영생활 중이다.

그런 그들에게 주말까지 반납하는 것은 꽤 달갑지 않은 것이었다.


“그러니 너희가 전력으로 합격해야겠지?”


권 대위는 싱긋 웃어 보였다. 그 웃는 얼굴 그대로 두 사람을 1시간 동안 굴렸다.


***


“어, 김다은 왔다.”


한 시간 가량의 특훈을 받고 돌아온 다은은 총기를 끌다시피 가지고 생활관 구석에 쭈구려 앉았다.


“김다은, 너 5발 쐈다며? 풋, 넌 총쏘지말고 전쟁나면 칼들고 돌진해라.”


“야~ 5발이면 세금이 아깝다, 세금이.”


다은은 굳이 대꾸하지 않았다.

처음 일주일 간은 어떻게든 2소대 2분대 구성원으로 인정받기 위해 어색하게나마 반응하려 노력했으나 이제 그마저도 지쳤다.

다은은 슬쩍 옆을 바라봤다.

생활관 옆 CBT 실에는 기훈감독 후보생이 스마트폰을 보며 낄낄대고 있었다.

저 빨간모자는 처음부터 저랬다. 유림대학교 출신인 저 작자는 유정과 같은 과 선후배라는 이유로 그녀에게 대부분의 귀찮은 일들을 위임하고 저렇게 시간만 보내고 있었다.


“다은아.”


어느새 그녀 옆에 유정이 다가와 쭈그렸다.

차이점은 평소와 같은 가식적인 웃음이 한꺼풀 벗겨진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같은 학교라고 너무 봐준거 아니야?”


그렇지 않았다.

그녀는 좌우 클리크가 더 이상 돌아가지 않을 정도로 끝까지 돌려놨다.

석훈이 14발을 맞출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그의 실력이었다.


다은은 그가 14발을 맞추었다는 소식을 듣고 놀라는 한편 내심 안도했다.

그의 총에 해선 안될 짓을 저질러 놓고 혼자만 합격한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가슴이 답답했다.

해서 그녀는 100m 표적 5개를 제외하고는 전부 엉뚱한 곳을 쏴버렸다.


조금이라도 양심의 가책을 덜기 위한 합리화였지만 그게 그녀가 할 수 있었던 최선이었다.


‘야! 그냥 장난이잖아! 저 싸가지 없는 새끼한테 골탕 한 번 먹이자고!’

‘진짜 아무도 몰라. 이런 재미라도 있어야 군생활 할 거 아니야?’

‘당연히 다은이가 해야지. 결자해지, 연좌제. 같은 학교사람의 죄는 같은 학교사람이 벌해야지~’


무수한 궤변, 그러나 압도적인 쪽수의 차이.

이상한 사람들의 마을에서는 정상인이 이상한 사람이 된다.


‘싫다.’


이것은 자신이 생각한 군인의 모습이 아니었다.

어릴적 자신이 동경해왔고 왜소한 체격임에도 군인으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던 TV 속 간호장교처럼 되고 싶었다.

그러나 이제는 놓고 싶다.


“다은아, 대답.”


다은의 썩어가는 속은 알바가 아닌 듯 유정은 표정을 굳히고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대답하라고.”


그녀의 모습 뒤로 일제히 집중된 2소대 2분대 후보생들의 시선이 보인다.

그들의 모습은 더 이상 사람의 형상으로 보이지 않았다.

20세기 초반 영화에서 어설픈 짐승의 분장을 뒤집어쓴 배우들이 주는 기괴한 느낌.

조금 있으면 그들의 사람 가죽 속에서 무언가 역겹고 더러운 무언가가 지퍼를 열고 나올 것 같은 느낌에 다은은 구역질이 났다.


“나··· 잠깐 화장실 좀···!”


다은은 목구멍을 타고 올라오는 무언가를 필사적으로 참으며 행정반으로 향했다.

목까지 차오른 그것은 토사물이 아닌 다른 무언가, 형태없는 한이었을까.

잰 걸음으로 복도를 걸어가는 그녀의 모습은 뒤뚱뒤뚱 볼품없었고 시야는 뿌옇게 흐려졌다.


탈단을 해야한다.

이곳에서 아무리 자신의 상황을 이야기해봤자 다른 이에게는

[무리에 적응하지 못하고 도태된 사람], [동기들에게 먹힌 낙오자]

라는 인식으로 밖에 여겨지지 않을 것이다.


조용히 탈단하자.

나는 처음부터 이곳에 없었던 거고 그저 체력이 부족해서, 훈련이 힘들어서 그만둔 것으로 처리되는 것이다.

황무대 동기들에게도 “아, 그 조용하던 애.” 정도로 희미하게 인식되다가 잊혀지면 되는 거다.

다만 석훈이에게만은 입영훈련이 끝나고 사과하자. 그리고 나는 그렇게 학교로 돌아가면 되는 것이다.


마음을 굳히고 앞으로 걸으며 이제 행정반까지 얼마 남지 않은 그때,

누군가 다은의 팔을 붙잡고 빈 생활관 안으로 끌고 들어왔다.


“쉿.”


그 남자는 다은을 생활관 깊숙한 곳으로 인도한 후 그녀의 팔을 놔주었다.

다은이 정신을 차리고 자신을 끌고 온 남자와 생활관 안에 있는 인원들을 훑어보고는 어안이 벙벙했다.


준영이, 민호, 석훈이, 준호, 민수, 그리고 지민이까지.


“손 내밀어봐.”


준영은 장난끼 가득한 얼굴로 계속해서 손을 강조했다.

그가 원하는 대로 다은이 순순히 손을 내밀자 그는 그녀의 손에 차가운 쇳조각 하나를 얹어주었다.


“그거 없으면 총은 젓가락으로 닦으시려고?”


다은의 손에 들린 것은 꽂을대였다.

그녀가 잃어버렸던, 그렇지만 찾고 싶지 않았던 그녀의 과오.

다은의 눈은 자연스레 석훈에게 향했고 이미 그녀를 향하고 있던 눈빛과 마주쳤다.


석훈은 침대에서 일어나 그녀에게 향했다.

그녀는 그의 눈을 똑바로 마주치지 못한 채 그가 다가오자 움찔했다.

그는 손을 높이 들어올렸다.


‘맞는다···’


눈을 질끈 감은 그녀는 잠시 후 머리에서 보내온 감각이 통각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인지하고 한쪽 눈을 작게 떴다.

석훈은 그녀의 작은 머리를 두어번 토닥인 후 손을 내렸다.


“고생했어. 지금까지.”


무뚝뚝하지만 올곧은 그 한마디에 다은의 울음보가 터져버렸다.

그들이 왜 그녀를 여기에 데려온지 모른다. 그녀가 한 짓을 추궁하려는지, 아니면 용서하려는지.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건 그들 앞에서는 울어도 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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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기초군사훈련(13) 24.09.02 3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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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기초군사훈련(10) 24.08.22 4 0 12쪽
» 기초군사훈련(9) 24.08.22 3 0 9쪽
13 기초군사훈련(8) 24.08.13 3 0 12쪽
12 기초군사훈련(7) 24.08.09 5 0 18쪽
11 기초군사훈련(6) 24.08.09 5 0 13쪽
10 기초군사훈련(5) 24.07.30 4 0 9쪽
9 기초군사훈련(4) 24.07.28 5 0 16쪽
8 기초군사훈련(3) 24.07.28 6 0 7쪽
7 기초군사훈련(2) 24.07.28 5 0 13쪽
6 기초군사훈련(1) 24.07.28 2 0 13쪽
5 면접준비 (2) 그리고 시간은 빠르게 흘러 24.07.10 4 0 8쪽
4 면접준비 (1) 24.07.10 2 0 8쪽
3 체력검정 24.07.10 5 0 12쪽
2 모집 24.07.05 8 0 10쪽
1 위기의 학군단 24.07.03 19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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