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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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초리初理
그림/삽화
퐌베어
작품등록일 :
2024.07.08 11:48
최근연재일 :
2024.09.04 14:00
연재수 :
51 회
조회수 :
4,302
추천수 :
150
글자수 :
175,431

작성
24.07.08 14:17
조회
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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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글자
10쪽

프롤로그

DUMMY

이 작품은 역사적 사실에 기반을 둔 창작된 이야기이며 일부 가상의 단체와 인물을 다루었음을 알려드립니다.






‘최우, 위 사람을 국사학과 정교수로 임명합니다.’


나의 가장 영광스러운 순간은 삼 년도 넘게 서랍 속에 고이 잠들어 있다.

나의 최고의 자랑거리이자 세상의 누구보다 정의로운 할아버지의 일기를 처음 발견한 것도 내 인생의 가장 화려했던 그 무렵이었다.

대한민국의 최고의 대학에서 30대 초반의 나이에 정교수로 임명이 된다는 것은 흔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일이 나에게는 가장 부끄러운 일이 되어 버렸다.



* * *



할아버지는 누구에게나 엄한 사람이었고 특히 아버지에게 아주 엄격하였다고 한다. 그 때문인지 아버지는 어렸을 때부터 할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못하였고 내가 태어나자마자 할아버지를 떠나 캐나다에 자리를 잡았다.

갓난아기 시절부터 캐나다에서 자랐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상하게도 아버지의 나라인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 관심이 많았다.

특히 그 나라의 장구한 역사에 대한 책을 볼 때마다 내 심장은 떨리고 전율마저 느껴졌다. 아버지는 아버지의 모국에 대한 문화와 언어를 나에게 강요하지도 가르쳐 주지도 않았지만 내 목마름을 해결하기 위하여 난 내 스스로 길을 찾았었다.

인터넷이 없던 시절 한국어를 배우기 위하여 초등학교 시절부터 한인 타운에 자주 놀러 다녔고 그런 나를 기특하게 여기던 아버지 또래의 어른들이 내 스승이자 친구가 되어 주었다.

단지 언어뿐이 아닌 그들이 살던 환경, 그 나라의 문화에 대해서 자연스럽게 배우게 되었고 고등학교를 마칠 무렵 난 큰 결심을 하였다.


한국으로 떠났다.

고등학교 졸업을 하고 한국에서 대학을 다니기 시작했다. 태어난 이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한국에서의 나의 유일한 혈육인 할아버지와 함께 살게 되었다.

할아버지는 장성한 날 처음 보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한눈에 날 알아보았다.

나중에 옛 사진을 보니 19살의 할아버지와 나는 너무도 닮아 있었다.

그리고 그날 처음으로 할아버지의 눈물을 보았다.


할아버지도 아버지도 늦은 나이에 자식을 낳아서 내가 태어났을 때 할아버지는 이미 70세가 넘었다.

가까이하기에는 너무 많은 나이 차이가 나기도 하였고 아버지가 느꼈던 거부감에 대한 영향 때문이었는지는 몰라도 난 할아버지가 어려운 사람일 거라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사람이었다. 엄격해 보이지만 옳고 그름이 분명하였고 잘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따듯함이 느껴지는 사람이었다.

할아버지는 젊은 시절 무기 연구를 통하여 군수 산업 분야에서 활약하였고 그로 인해 큰 부와 명예를 얻었다.

나와 재회한 시절 할아버지는 대외 활동을 거의 하지 않았지만 예전에는 대기업 총수와 유명한 정치인 같은 사람들도 할아버지에게 부탁을 하러 오곤 했다 들었다.

그런 위치에도 불구하고 어려운 사람을 돕는 일에 솔선수범하였으며 잘못된 일은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봐주는 법이 없었다.

나에게 할아버지는 성공한 인생이자 올바른 인생의 모범이었다.


할아버지는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이미 은퇴를 하고 취미 삼아 우리나라 역사에 대한 관심을 가졌다고 했다.

대수롭지 않게 얘기를 하였지만 오랫동안 마음속에 품어왔던 일처럼 느껴졌다.

취미 삼아 보인 관심이었지만 대단한 결과물들을 이뤄낸 것으로 보였다.

물론 할아버지의 재산과 배경이 있었기에 가능했었지만.

임진왜란, 병자호란 같은 조선 시대의 외세 침입부터 일제 시대와 한국 전쟁을 겪고 오직 먹고사는 것을 해결하는 것만이 우리의 관심사였던 근대사를 지나고 난 대한민국은 역사적 자료를 많이 보유하고 있지 못하였고 그로 인하여 우리 자신의 역사에 대해서도 제대로 된 연구조차 하기 어려운 환경이었다.

이제는 잘 사는 선진국이란 타이틀이 붙을 정도로 발전하였지만 아직까지 국내의 저명한 사학자들조차 식민 사관에서 크게 벗어나고 있지 못하였다.

이런 배경에는 식민지 시절부터 왜곡한 역사를 바로잡기 위한 객관적 자료의 부족이란 이유가 있었다.

할아버지는 주요한 역사적 사료와 문화재를 수집하여 젊은 청년들의 연구에 활용이 되도록 기부하였을 뿐 아니라 연구 비용을 후원하는 등 대한민국의 사학계의 발전을 위한 노력을 하였다.

이를 통하여 많은 청년들은 훌륭한 학자로 거듭날 수 있었고 그들은 할아버지에게 감사함을 표현하고자 하였지만 할아버지는 본인의 이름이 역사적 연구에 드러내는 것을 극도로 꺼려하였다.

하지만 덕분에 난 그들과 친해질 수 있었고 그들의 식견과 통찰을 자연스럽게 습득할 수 있는 큰 행운을 누릴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런 상황이 다른 사람들보다 내 연구가 빠른 성취를 이룰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가 아니었나 싶다.


국사학과에 입학한 나는 그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하였다.

오랜 수험 생활에서 해방된 내 동기들은 대학생이라는 새로운 신분을 자축하며 음주 가무를 즐겼지만 난 그토록 내가 원하는 공부를 본격적으로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즐겼다.

정말 열정적으로 공부하였고 항상 최고의 성과를 보였지만 할아버지는 이상하게도 그런 내 모습을 탐탁지 않아 하였다.

90의 나이에도 정정한 모습으로 날 설득하던 할아버지를 난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하지만 최씨 고집에 내가 하고 싶은 것은 꼭 해야만 하는 성격의 나도 쉽게 물러서지는 않았다.

결국 난 할아버지와 일제 강점기에 대한 연구를 하지 않는다는 다소 특이한 약속을 하고 역사학자의 길을 계속 갈 수가 있었다.

왜 그런 이상한 조건을 걸었는지는 몰랐지만 고조선과 삼국 시대 같은 상고 시대를 좋아했던 나에겐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그냥 할아버지의 단순한 고집이라 여기며 그 약속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면서 살았다.

사실 다른 걸 신경 쓰기에는 너무도 바쁘고 열정적으로 연구하였던 시절이었기에 고령의 할아버지의 당부를 챙기지 못했다.

세월은 빨리 흘렀고 할아버지의 배경을 바탕으로 한 번의 실패 없이 그 누구보다 빨리 박사 학위까지 무난히 마친 날 사람들은 부러워하기도 질투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반대하였던 할아버지도 그런 날 대견해하는 것처럼 보였다.


인생은 예측하지 못한 일들의 연속이라 하였는가.

성공 가도를 달리기만 하던 내게도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했다.

꽤 이른 나이에 박사 학위를 취득했음에도 불구하고 난 거의 바로 조교수에 임용이 되었고 그 기세를 이어 부교수까지 진급하는데 그리 오래 걸리진 않았다.

물론 할아버지의 도움을 받은 많은 교수들이 내 임용과 진급을 심사하는 사람들이었다는 사실이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은 건 아니겠지만 누구보다 열정적이고 직관적인 내 연구 결과에 난 자부심을 가지고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일제 시대에 대한 자료를 발견하였고 여태까지 연구와는 다른 분야에 대한 신선함에 할아버지와의 약속도 잊고 밤낮없이 빠져 살았다.

그렇게 탄생한 내 논문은 꽤나 인정을 받았고 그 논문을 기반으로 일 년 후 난 정교수에 임명되었다.


너무 앞만 보고 달려온 탓이었을까 막상 돌아보니 100세가 넘은 할아버지는 내게 특이한 약속을 조건으로 내걸 때와는 다른 모습이 되어있었다.

걱정과 환희에 들떠 있던 밀레니엄이란 새 시대가 도래하고 있을 때 지난 십 년이 넘게 나의 유일한 혈육이자 인생의 스승인 할아버지는 임종을 앞두고 있었다.

돌아가시기 전에 꼭 정교수가 되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다. 모든 축하를 뒤로 한 채 난 임명장을 들고 할아버지의 병상 앞으로 달려갔다.

내 손에 들려진 임명장을 보며 할아버지는 마지막 당부를 하였다.


“우야, 난 네 애비도 너도 너무나 사랑한단다. 하지만 난 평생 행복하면 안 되는 잘못을 저질렀구나. 그래서 한 번도 네 애비에게 따뜻하게 대하지 못하였지. 우리 부자 사이는 돌이킬 수 없이 멀어졌고 네 애비도 나도 서로에게 단 한 번의 부탁조차 하지 못하였단다. 그런 니 애비가 딱 한 번 내 부탁을 들어준 적이 있었지. 그건 바로 니 이름이다. 벗 우 자를 쓴 너의 이름은 이 할애비의 평생의 은인을 가리키는 글자란다. 난 그분께 용서를 빌 수조차 없는 큰 잘못을 저질러서 아무도 몰래 너의 이름으로 그분께 사죄를 하고 싶었던 거란다. 그러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일 년 전 니가 일제 시대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너의 열정적인 모습을 보고 난 모른 척할 수밖에 없었단다. 하지만 이제 너도 모든 걸 다 알아야 할 것 같구나. 내가 행복하면 안 되는 이유 그리고 니가 일제 강점기에 대해 그 어떠한 영향을 끼쳐도 안 되는 이유가 다 내 잘못 때문이란다. 내 장례가 끝나거든 서재를 찾아보거라. 네 아비에게도 너에게도 미안하구나. 너무나 미안하구나”



* * *



할아버지는 본인의 얘기를 절대 하지 않았다.

부러워할 만큼의 큰 부와 명예 그리고 거기에 어울리지 않은 겸손과 배려는 할아버지가 어떤 인생을 살았는지 항상 내게 궁금증을 유발하였지만 너무도 단호한 할아버지의 반응에 난 두 번 다시 물어볼 수 없었다.

장례를 마치고 서재에서 아주 오래된 책자를 찾았다.

내가 너무도 존경하던 할아버지, 그의 인생이 담겨져 있는 일기가 내 손에 들려져 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 작성자
    Lv.5 k7******..
    작성일
    24.07.18 22:26
    No. 1

    평생 행복하면 안되는다는이유!! 그렇게 생각하는 할아버지가 더 존경스럽군요.

    이제부터 긴장되고 감동적인 이야기를 될것같아요.. 기대됩니다!!!
    기대하며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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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제8 장 유럽(4) - 개인의 삶 24.08.16 34 2 8쪽
37 제8 장 유럽(3) - 새로운 시작 24.08.14 39 1 8쪽
36 제8 장 유럽(2) - 사격의 본질 24.08.13 42 1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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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제7 장 의열(7) - 역사의 죄인이 되어서라도··· 24.08.09 41 2 9쪽
33 제7 장 의열(6) - 침략에 굴하지 않는 민족의 경고 24.08.08 32 2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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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제7 장 의열(3) - 의열단의 거사 24.08.05 40 2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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