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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초리初理
그림/삽화
퐌베어
작품등록일 :
2024.07.08 11:48
최근연재일 :
2024.09.04 14:00
연재수 :
5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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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90
추천수 :
150
글자수 :
175,431

작성
24.07.31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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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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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8쪽

제6 장 학살(5) - 용서받지 못한 자

DUMMY

“네가 그렇게 도구처럼 강간하고 마음을 죽여 버린 그 여인은 너와 같은 일본인이란 말이다.”


난 그 자식을 묶어 논 채 억지로 최소한의 물과 음식만 먹였다.


사과를 하기 전까지, 잘못을 뉘우치기 전까지 죽어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쉽게 죽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고통에서 자유로워서도 안 되었기에 매일 손가락 하나씩 부러트렸다.

한 손뿐인 그에게 이제 더 이상 부러뜨릴 손가락이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런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한 번도 굽히지 않았다.

그런 그가 시연이가 일본인이란 사실에 당황하는 듯하였다.


“네가 지금까지 말한 모든 것, 네가 믿고 있는 모든 사실은 일본 제국주의자들의 궤변일 뿐이다. 그들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궤변이다. 넌 단지 그들의 욕심을 채우는데 쓰이는 도구일 뿐이다. 그들은 같은 일본인조차 도구로 밖에 생각하지 않는다. 넌 바보같이 그런 이들의 말을 믿고 인간으로 해서는 안될 일들을 아무렇지 않게 하고 있었던 거다. 너희들은 한인들과 중국인은 물론이고 같은 일본인들에게도 사죄해야 한다.”

“아무리 그녀가 일본인이라 해도 난 잘못하지 않았다. 대일본 제국의 황군은 천황 폐하의 명을 받드는 신성한 존재이자 그 존재 자체가 정의다. 우리는 그 누구에게도 사과하지 않는다.”


그는 목소리가 한풀 꺾였지만 끝까지 사과를 하지 않았다.

평생을 믿어온 잘못된 신념을 바로 잡을 수 있을 만큼 강한 존재가 되지는 못하였다.

하지만 여태까지와는 다르게 많이 당황을 하였다.


더 이상 그와 나눌 얘기가 없었기에 난 바로 군영으로 올라왔다.

시연이는 언제나 항상 앉아 있던 바위에 앉아 있었다.

하지만 난 바로 느낄 수 있었다.

그녀가 달라져 있다는 것을.

그녀는 그녀에게 다가가던 나를 정확히 보고 있었다.

그녀와 조금 떨어진 곳에 멈춰 선 나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동안 마음속에 슬픔을 달래기 위해 아무리 흘려 보려고 노력해도 나오지 않던 그 눈물이 그칠 줄 모르고 나오고 있었다.


“오빠 부탁이 있어.”


조금 진정이 된 나에게 시연이가 말을 했다.

나를 똑바로 보고 말을 했다.

다시 세상으로 돌아온 것일까?

너무나도 반가운 시연이의 목소리였지만 왠지 슬픈 느낌이 들었다.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던 나를 보며 시연이가 말을 이었다.


“엄마 아빠가 보고 싶어.”


뜬금없이 돌아가신 부모님이 보고 싶다는 시연이의 말에 나의 슬픈 예감은 점점 커졌지만 그녀의 부탁을 거절할 수는 없었다.


“오늘 하루만 나하고 있어 줄래? 내일 아침 일어나는 대로 부모님께 데려다줄게.”


나의 부탁에 그녀는 너무도 따듯한 눈빛으로 화답했다.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그녀와의 시간에 아주 오랜만에 편안함을 느꼈다.

우리는 그 바위 위에 나란히 앉아 밤을 맞이했다.


“별들이 너무 아름답다. 마치 저번에 오빠와 같이 바라보던 그 평화롭던 밤이 다시 온 것 같아.”


나에게 기대어 하늘을 바라보며 말하는 시연이는 아주 평온해 보였다.


한동안 보이지 않던 별들이 너무나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그 밤하늘은 너무나 평화롭고 아름다웠다.

밤늦도록 별을 보다 아주 늦게 잠자리에 들었다.


‘오늘 밤이 마지막일까? 지금은 슬픈 생각을 하지 말자. 아무 생각도 하지 말자. 그저 이 아이와 함께 있는 지금 이 순간만 생각하자.’


그녀를 더는 볼 수 없을 것만 같은 불안감에 쉽게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우린 자기 위해 나란히 누웠고 전날처럼 그녀를 꼭 껴안았다.

그녀 또한 처음으로 나를 안아 주었다.

숨소리, 심장 박동, 작은 떨림까지도 모두 느껴졌다.

따듯한 그녀의 체온이 나를 불안감에서 해방시켜 주었다.


아주 달고 긴 잠이었다.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아주 행복한 꿈을 꾼 것 같았다.

평소보다 훨씬 빨리 눈이 떠졌다.

그렇지만 그 어느 때보다 길게 자고 일어난 것 같다.

시연이를 부모님께 데려다 주기로 한 날이었다.

이상하게도 슬픈 예감이 들어 아침에 눈을 뜨는 것이 너무도 싫을 것만 같았던 전날의 생각과는 다르게 아주 상쾌했다.

그녀에게 좋은 기억만을 남겨주고 싶어서일까?

밝은 모습으로 새로운 아침과 그녀를 맞이했다.


“잘 잤어?”

“어 오빠가 옆에 있어 줘서 너무도 편안했어. 그 어떤 것으로부터도 날 지켜줄 수 있을 것 같아서. 날 구해주고 지켜주는 오빠란 사람을 만나서 너무나 행복했어.”


최대한 밝은 모습으로 아침 인사를 하는 내게 그녀 역시 밝은 모습으로 대답했다.

하지만 그 인사는 작별 인사에 가까웠다.

마치 서로 이별을 알고 있다는 식으로 우리는 자연스럽게 그런 인사를 나누고 길을 떠났다.


그녀를 처음 본 장소인 그녀의 부모님의 산소까지는 아주 멀지 않았다.

아직 기력이 다 회복되지 않은 그녀를 업고 나는 천천히 그 길을 걸었다.

처음 만난 그날처럼.

천천히 쉬엄쉬엄 소풍을 하듯 걸어갔으나 어느새 거의 다 왔다.


“오빠 그 사람이 사과를 안 한다고 해서 그의 잘못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야. 이제 더는 그 사람을 찾아가지 마. 오빠 괴롭잖아.”


목적지에 거의 다 왔다는 것을 아는 것인지 그녀가 말문을 열었다.


“알겠어.”


시연이가 그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이 매우 놀라웠으나 난 그저 담담하게 대답했다.


“난 그의 사과를 받지 않을 거야. 그가 아무리 원한다고 해도 그의 사과를 받지 않을 거야. 그의 죄를 용서하고 싶지 않아. 그래서 그는 꼭 벌 받을 거야. 언제든 누구에게든 꼭 벌을 받을 거야.”

“그래. 그런 자식은 아주 불행해질 거야. 평생을 두려움에 떨며 불안하게 살 거야.”


아주 단호하지만 침착한 그녀의 말에 난 확신을 가지고 대답했다.


“그리고 오빠는··· 편안하게 살아줘. 복수, 사명감, 나라와 민족 그 모든 걸 떠나 오빠 자신이 가장 편안하고 행복한 그런 삶을 살아줘.”


시연이는 그 말을 끝으로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래 꼭 그리하도록 약속할게.”


더 이상 그녀가 들을 수 없었지만 나는 그녀에게 대답했다.

내가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마지막 바람을 남긴 채 그녀는 세상을 떠났다.

힘든 삶에서 어쩌면 그녀에게 유일한 안식처가 되었던 나의 등에서 그렇게 떠났다.


그녀의 부모님의 산소에 도착해 그녀를 내려놓았다.

마지막 그녀의 모습은 아주 평온했다.


‘마지막 길이나마 편안하게 가서 고마워. 그리고 너를 지키지 못해 너무 미안해.’


그렇게 난 그녀를 떠나보냈다. 이미 백골이 되어버린 그녀의 부모님에게로 그녀를 보냈다.


‘부디 그곳에서는 셋이 함께 행복하게 지내길···’ 하는 바람과 함께.


난 어쩌면 그녀를 여자로서 좋아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여자였던 동생이었던 나에게 아주 소중하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지만.

소중한 가족이자 사랑스러운 여인, 내가 살아가는 큰 이유였던 그녀를 보냈다.


안녕 나의 동생. 안녕 나의 첫사랑.



* * *



그녀를 보내고 가장 먼저 한 일은 그녀를 그렇게 만든 그놈을 찾아간 것이었다.

며칠째 매달려 있었지만 그 끈질긴 목숨은 끊어지지 않았다.


“이제 그 아이는 이 세상에 없다. 이제 넌 사과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을 것이다. 용서를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기회를 너 자신이 날려 버린 거다. 가거라. 이게 내가 너에게, 아니 그녀가 너에게 주는 마지막 형벌이다.”


난 그를 풀어 주며 말했다.


그는 그의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굴레에서 벗어났을지언정 자신의 죄에 대한 마음의 굴레에서는 평생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너도 나만큼 지옥에서 살게 될 것이다.”


그 말을 마지막으로 난 다시는 그 마을을 찾지 않았다.

그 자식이 무사히 구출이 됐는지 거기서 죽었는지 모른다.

어느 쪽이든 그는 벌을 받고 있을 것이다.



* * *



그렇게 난 백두산의 악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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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제9 장 신념(1) - 신홍의 과거 +1 24.08.20 39 3 7쪽
39 제8 장 유럽(5) - 흔들리지 않는 신념 24.08.19 34 1 9쪽
38 제8 장 유럽(4) - 개인의 삶 24.08.16 34 2 8쪽
37 제8 장 유럽(3) - 새로운 시작 24.08.14 39 1 8쪽
36 제8 장 유럽(2) - 사격의 본질 24.08.13 42 1 8쪽
35 제8 장 유럽(1) - 신세계 24.08.12 35 1 8쪽
34 제7 장 의열(7) - 역사의 죄인이 되어서라도··· 24.08.09 40 2 9쪽
33 제7 장 의열(6) - 침략에 굴하지 않는 민족의 경고 24.08.08 31 2 8쪽
32 제7 장 의열(5) - 악귀 들린 제비 24.08.07 40 2 7쪽
31 제7 장 의열(4) - 경성 피스톨 24.08.06 33 2 7쪽
30 제7 장 의열(3) - 의열단의 거사 24.08.05 40 2 8쪽
29 제7 장 의열(2) - 산속의 두 사내 24.08.02 37 2 7쪽
28 제7 장 의열(1) - 백두산의 악귀 24.08.01 46 2 8쪽
» 제6 장 학살(5) - 용서받지 못한 자 24.07.31 47 2 8쪽
26 제6 장 학살(4) - 그들은 밤하늘의 별을 빼앗아 갔다. 24.07.30 45 2 7쪽
25 제6 장 학살(3) - 믿을 수 없는 잔인함 24.07.29 52 2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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