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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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초리初理
그림/삽화
퐌베어
작품등록일 :
2024.07.08 11:48
최근연재일 :
2024.09.04 14:00
연재수 :
51 회
조회수 :
4,291
추천수 :
150
글자수 :
175,431

작성
24.07.29 14:00
조회
52
추천
2
글자
7쪽

제6 장 학살(3) - 믿을 수 없는 잔인함

DUMMY

시연이를 돌봐야 한다는 생각에 아주 조금 이성의 끈이 돌아오는 것 같았으나 시체 같은 그녀의 모습을 본 후 난 다시금 분노에 정신이 지배당하여 버렸다.

아무런 표정 변화도 없었다.

그 어떤 동요 또한 없었다.

마치 물건을 대하듯이 때리고 또 때렸다.

젊은 장교는 고통에 비명을 지르고 몸부림을 쳤지만 난 아무런 망설임 없이 죽은 병사가 매고 있던 소총을 집어 들어 내리치고 또 내리쳤다.

한쪽 안구가 터져 나가고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었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그는 죽은 듯 반응이 없었지만 난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그를 때렸다.


"우우우우우."


알 수 없는 소리가 시연이의 입에서 나오고 나서야 난 멈출 수 있었다.

시연이는 무언가 말하려 하였지만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런 그녀를 안고서 한참을 있었다.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움직였다.

날이 더 이상 어두워지기 전에 그녀를 데리고 동민 형의 비밀 장소에 도착하였다.

시연이가 살아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반가웠지만 지금 겪고 있는 이 모든 일들이 너무나 버거웠다.

아무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시연이를 꼭 끌어안은 채 잠에 들었다.

잠이 들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았지만 의외로 푹 잠들었다.

지난 일주일 만에 처음이었다.

시연이도 나와 같은 상황인 것 같았다.


다음 날 눈을 뜨고 현실을 마주했다.

동민 형의 군영은 나지막한 절벽 아래 비스듬히 놓인 바위가 만들어 주는 움푹 파인 자연적인 공간에 흙과 돌을 쌓아 벽을 만들어 집의 구실을 하고 있는 야생적인 모습이었다.

바닥에는 지푸라기가 깔려 있어서 추위를 막고 있었지만 오래 방치된 탓에 제대로 된 구실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시연이는 아직 자고 있었다.

지난밤에야 서로의 온기로 추위를 버텼지만 이제 시작되고 있는 만주의 겨울은 햇살이 내리쬐고 있음에도 제법 매서웠다.

가장 먼저 근처에서 장작을 모아 와 모닥불을 피웠다.

계곡이 바로 근처에 있었지만 매번 왔다 갔다 할 수는 없기에 동민 형이 쓰던 가재도구를 이용해 물을 길어 왔다.

오랜 세월 관리가 되고 있지 않았기에 대부분 쓸 수 없었지만 그래도 아직 사용할 수 있는 도구가 남아있긴 하였다.

시연이는 겉으로 봤을 때 심각한 외상은 없는 듯하였다.

근처 산속을 돌아다니며 마음을 안정시켜 주는 약초 위주로 채집을 해왔다.

가끔 동민 형을 따라서 신 선생에게 배운 탓에 아주 기본적인 약초는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저런 일을 하다 보니 어느새 해가 중천에 떴다.

시연이는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

걱정이 되어서 살펴봤지만 마치 아기처럼 새근새근 잘 자고 있었다.

최근에 겪었던 모든 일들을 다 씻어 내려는 듯 아주 깊고 고요하게 자신만의 세계에 머물러 있는 것 같았다.

혼자 놔두는 것이 조금은 불안했지만 그녀가 금방 일어날 것 같지 않았다.

이곳에 머물기 위해서 필요한 것들을 구해야 했기에 어제 그 마을로 다시 내려갔다.

물론 다른 더 중요한 이유도 있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어제 그 젊은 장교는 아직 숨이 붙어 있었다.

시체가 된 나머지 일본군들을 폐허가 된 집 안 구석에 숨겨 두고 소총을 비롯한 물품들을 챙겼다.

마을 곳곳을 뒤져 필요한 가재도구와 침구류를 챙기고 나서야 두근거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그 장교에게 다가갔다.


“왜 그랬느냐?”

“하찮은 조센징 주제에 대일본 제국의 황군의 몸에 감히 손을 대고도 무사할 것 같으냐?”


총을 맞은 손목과 발목은 너덜거려 더 이상 그 기능을 하지 못해 보였고 상처에서 나온 피는 밤새 철철 흘러서 땅을 적셨다.

얻어맞아 터져 버린 눈에서 흐른 피로 얼굴이 온통 붉게 물들어 있는 처참한 모습이었지만 남은 한쪽 눈에는 아직 독기가 서려 있었다.

마지막 남은 눈으로 날 노려보며 악을 쓰고 있었다.


“너희들이 죽인 그들은 민간인들이다. 노인과 어린아이 그리고 연약한 여자들까지 전쟁과는 상관없는 무고한 사람들이다. 그런 그들을 너희는 망설임 없이 다 죽였다. 어떻게 그렇게까지 할 수 있느냐?”

“그들은 독립군을 도와서 대일본 제국을 곤경에 빠뜨린 불령선인들이다. 그런 그들을 처형하는 건 군인으로서 당연한 일이다.”

“당연? 당연하다고? 아무 힘없는 여인들과 노인, 갓난아기까지 마치 놀이를 하듯이 죽이는 게 군인으로서 당연하다고?”

“너희 조센징들은 우리에겐 도구와 마찬가지다. 대일본 제국의 번영을 위하여 너희가 존재하는 것이다. 그런 존재들이 우리에게 반항을 하다니 죽어 마땅하다.”

“군인이기 전에 인간이다. 나라를 떠나서 인간이란 말이다. 너희들도 감정이란 걸 가지고 있지 않느냐? 고통에 몸부림치는 노인을 보면서 히죽거리며 비웃고 창끝에 꿰어진 갓난아기를 보면서 낄낄거리는 것이 어찌 인간으로 할 수 있단 말이냐!”

“열등한 조센징들에게 나눠줄 인정 따위는 없다.”


대화를 하면 할수록 어처구니가 없었다.

인간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말들이 쏟아졌다.


필요한 물품을 구하러 마을로 간다고 했지만 사실 그 젊은 장교를 다시 만나야만 한다는 생각이 내 마음속을 지배하고 있었다.

그 인간을 시연이 앞에 무릎 꿇리고 사과를 하게 하고 싶었는지 아님 가장 잔인한 복수를 하고 싶었는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그놈을 다시 만나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었다.

하지만 너무도 당당한 그 자식의 모습에 난 무엇을 어찌해야 할지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런 잔인한 행동을 하고도 자신조차 죽음을 목전에 앞둔 고통을 겪고도 저럴 수가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무엇이 그를 악귀와 같은 괴물로 만든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내가 이해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일단 간단하게나마 그의 상처를 치료하고 목숨을 유지할 수 있는 식량과 물을 놓고서 그를 마을에 내버려 둔 채 다시 거처로 돌아왔다.

지나가던 일본군에게 구원을 받던 만신창이가 된 몸을 이끌고 도망을 가던 신경 쓰지 않았다.


황혼이 깃들고 땅거미가 지고 있었다.

누군가에겐 새로운 희망이 되고 누군가에겐 절망의 연장일 뿐인 또 하나의 날이 저물어 가고 있었다.

세상에 한 번뿐인 이 날이 자기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듯 시연이는 여전히 잠에서 깨지 않았다.

걱정스러웠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옆에서 지켜보는 것뿐이었다.


다음 날 잠에서 깨어 보니 시연이가 날 쳐다보고 있었다.

기나긴 방황을 마치고 드디어 세상에 다시 나온 것일까?

그녀의 눈동자는 많은 말을 하고 있는 것 같기도 아무런 말을 하고 있지 않는 것 같기도 하였다.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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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제9 장 신념(1) - 신홍의 과거 +1 24.08.20 39 3 7쪽
39 제8 장 유럽(5) - 흔들리지 않는 신념 24.08.19 34 1 9쪽
38 제8 장 유럽(4) - 개인의 삶 24.08.16 34 2 8쪽
37 제8 장 유럽(3) - 새로운 시작 24.08.14 39 1 8쪽
36 제8 장 유럽(2) - 사격의 본질 24.08.13 42 1 8쪽
35 제8 장 유럽(1) - 신세계 24.08.12 35 1 8쪽
34 제7 장 의열(7) - 역사의 죄인이 되어서라도··· 24.08.09 40 2 9쪽
33 제7 장 의열(6) - 침략에 굴하지 않는 민족의 경고 24.08.08 31 2 8쪽
32 제7 장 의열(5) - 악귀 들린 제비 24.08.07 40 2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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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제7 장 의열(3) - 의열단의 거사 24.08.05 40 2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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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6 장 학살(3) - 믿을 수 없는 잔인함 24.07.29 52 2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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