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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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초리初理
그림/삽화
퐌베어
작품등록일 :
2024.07.08 11:48
최근연재일 :
2024.09.04 14:00
연재수 :
51 회
조회수 :
4,293
추천수 :
150
글자수 :
175,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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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2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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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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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자
7쪽

제7 장 의열(2) - 산속의 두 사내

DUMMY

그녀의 간곡한 부탁이 끝나기도 전에 그들은 아이를 그녀의 품에서 빼앗고 그 작은 가슴에 주저 없이 총구를 들이밀고 방아쇠를 당겼다.

죄책감 따위는 느끼지 않는 듯 아무런 망설임도 없는 행동이었다.

너무도 순식간에 일어난 비극이었다.

버틸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선 충격을 받은 그녀의 눈동자에는 초점이 점점 사라져 갔다.

더러운 짐승과도 같은 놈들이 그녀의 옷을 찢기 시작했지만 그녀는 반항조차 하지 않았다.


눈앞에서 할아버지의 죽음을 목격해야만 했던 시연이.

그리고 그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그들의 노리개가 되어야만 했던 슬픈 운명은 그녀의 죽음과 함께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그녀의 슬픈 운명과 함께 나에게 찾아온 지옥 또한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죽여야 했다.

이 지옥에서 벗어나려면 모조리 죽여야 했다.


그놈들을 다 죽였다.

그리고 옷이 찢긴 채 초점 없는 눈으로 숨을 거둔 자신의 아이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던 그 여인의 곁으로 갔다.

입고 있던 외투를 벗어 그녀에게 둘렀으나 시연이와 마찬가지로 그녀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난 그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나의 어떤 말도 그녀를 이 지옥에서 꺼내주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아이를 묻어주기 위해 군영에 들려 장비를 가져왔다.

돌아온 그곳에 그 여인은 죽어 있었다.


그때부터였다.

죽이고 또 죽였다.

하루종일 산속을 돌아다니며 일본군이 보이면 다 죽였다.

하지만 이 산을 벗어나지는 못하였다.

이 산을 벗어나는 것이 두려웠다.

또 어떤 슬픔이 다가올지 모르기에 두려웠다.

나에게 다가올 그 어떤 슬픔도 더는 감당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세상으로부터 잊혀 버리고 있었다.

단지 슬픔으로부터 이 산을 지키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그렇게 백두산의 악귀가 태어났다.

아무런 감정도 없는 살인귀가.


얼마나 지났을까?

시간은 하염없이 흘렀지만 그것은 나에게 중요치 않았다.

그저 일본군으로부터 이 산을 지키는 것만이 내 삶의 유일한 의미였다.

무리에서 이탈해서 길을 헤매는 놈들부터 민간인을 겁탈하기 위해 쫓아오는 놈들 그리고 독립군을 쫓아 산으로 들어온 소대 단위의 부대까지 모조리 죽였다.


그날도 평상시처럼 길을 나섰다.

길을 나선 지 얼마 되지 않아 저 멀리 한 무리의 일본군이 산으로 올라오는 것이 보였다.

이곳에서의 생활이 오래되다 보니 꽤 먼 거리에서도 인기척이 느껴졌다.

예전에는 가끔 열 명 정도 되는 소부대 단위의 일본군이 산에 올라오기도 하였다.

국경 근처의 기지를 습격하고 도망가는 게릴라 전술을 펼치는 독립군을 수색하고 추격하는 부대로써 험한 산속에 유연하게 대처하기 위하여 소규모 편성을 한 것 같았다.

이곳 지리에 익숙한 나에게 그런 소규모의 부대는 어렵지 않은 목표물이었다.

보이지 않는 상대에게 자꾸 죽임을 당하자 그들은 한번 들어가면 다시 나올 수 없는 귀신 들린 산이라 하며 이곳을 더 이상 찾지 않았다.

이후 한동안 부대 단위의 일본군은 보지 못했다.

실로 오랜만에 보는 규모의 일본군이었다.

그런데 이날의 분위기는 예전 내가 느끼던 것과는 조금 달랐다.

대부분 쫓기는 사람은 도망가기에 급급하였다.

하지만 이날 쫓기던 두 명의 사내는 달랐다.

그들은 쫓기는 입장임에도 상황을 재빨리 파악하고 그들이 해야 할 일을 찾았다.

그들은 무너지지 않는 거대한 장벽과 같았다.

무엇보다 그들 중 우두머리로 보이는 자의 기운이 심상치 않았다.

그리고 마치 나를 부르는 것 같았다.

아이를 잃은 여인을 만난 이후 그동안 한 번도 누군가에게 나타난 적이 없었지만 이번엔 일본군을 죽이고 그냥 사라질 수는 없었다.

심상치 않은 기운을 뿜는 그에게 저절로 이끌리듯이 다가갔다.

그러자 그가 손을 내밀며 말했다.


“밀양 사람 약산이라 하오.”


난 손을 내민 그 남자를 빤히 쳐다보았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저 멍하니 바라만 볼 뿐이었다.


“백두산의 악귀를 만날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하고 있었소. 반갑소이다.”


그는 인사도 받지 않고 멍하니 있는 나를 보면서도 아랑곳 않고 재차 말을 걸었다.


“그저 세상을 등진 야인일 뿐이외다. 이곳은 사람이 있을 곳이 못 되니 어서 돌아가시오.”


얼마 만에 사람에게 말을 거는지 모르겠다. 난 조금 긴장이 되었지만 최대한 단호하게 말했다.


“일본군들이 뭐라 하는지 아시오? 누군지 보이지도 않고 어디서 날아오는지도 모르는 총알에 자신도 모르는 채 목숨을 잃는 죽음의 땅이라 한다오. 악귀가 들린 죽음의 땅 말이오. 그들은 악귀가 자신들을 죽인다고 믿고 있소. 내가 보기엔 고도의 훈련을 받은 최고의 저격수의 원한이 만들어 낸 슬픈 결말이 아닐까 싶소만.”


먼 산을 바라보며 말하는 그의 눈에는 알 수 없는 슬픔이 가득 차 있었다.


“그렇게 완벽하게 저격을 할 수 있는 실력을 지닌 자는 흔치 않소. 그런 실력을 가진 자··· 내 한 사람을 떠올릴 수 있었소.”


그는 고개를 돌려 날 빤히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난 신흥 학교에서 훈련을 받았소. 그리고 동지들을 모아 의열단이라는 조직을 만들었소. 신흥 학교 출신 단원들이 꽤나 있었지. 그런 우리에게 자랑거리가 뭔지 아시오? 북간도 일대에서 정규 일본군에게 거둔 승전보였소. 승리를 이끈 독립군에는 신흥 학교 출신의 군인들이 다수 있었고 그들은 군인으로서 우리가 못다 한 사명을 이루어 주었던 것이오. 그중 특히 내가 흥미롭게 들은 이야기가 있다오. 봉오동 산속을 자유롭게 뛰어다니며 특수 정찰 임무를 맡은 어떤 저격수에 대한 얘기였소. 험한 산속을 어찌나 빨리 다니는지 일본군은 그 자의 위치를 파악하지도 못하고 쓰러졌다 들었소. 그런 자가 갑자기 자취를 감춰서 아무도 그의 소식을 모르오. 그자는 내가 입학하기 한 해 전 신흥 학교를 졸업했다던데···


어떻소 선배? 이제 얘기를 좀 나눌 수 있겠소?”


그는 나를 알고 있었다.


“내 한때 그런 적이 있었으나 지금은 세상을 등졌소. 잠시 얘기뿐이라면 내 거처로 옮겨서 하겠소?”


확신에 가득 찬 눈으로 나를 보며 말하는 그자의 눈빛을 더 이상 피할 순 없었다.



* * *



그 누구에게도 나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었다.

하지만 이 사내들을 나의 근거지인 군영으로 데리고 왔다.

마치 어떤 새로운 운명을 맞이하듯이 이 상황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군영에 도착하자 약산이라는 사내는 얘기를 시작했다.

그는 평화적인 방법으로는 독립을 이루어 낼 수 없다 생각하였다.

오직 무력에 의한 투쟁만이 우리에게 독립을 안겨줄 거라 믿었다.

그래서 동지들과 의열단이라는 단체를 조직하였다.

의열단은 일본 제국주의의 주요 시설을 파괴하고 우리 민족의 독립을 방해하는 주요 인물을 암살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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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제8 장 유럽(5) - 흔들리지 않는 신념 24.08.19 34 1 9쪽
38 제8 장 유럽(4) - 개인의 삶 24.08.16 34 2 8쪽
37 제8 장 유럽(3) - 새로운 시작 24.08.14 39 1 8쪽
36 제8 장 유럽(2) - 사격의 본질 24.08.13 42 1 8쪽
35 제8 장 유럽(1) - 신세계 24.08.12 35 1 8쪽
34 제7 장 의열(7) - 역사의 죄인이 되어서라도··· 24.08.09 40 2 9쪽
33 제7 장 의열(6) - 침략에 굴하지 않는 민족의 경고 24.08.08 31 2 8쪽
32 제7 장 의열(5) - 악귀 들린 제비 24.08.07 40 2 7쪽
31 제7 장 의열(4) - 경성 피스톨 24.08.06 33 2 7쪽
30 제7 장 의열(3) - 의열단의 거사 24.08.05 40 2 8쪽
» 제7 장 의열(2) - 산속의 두 사내 24.08.02 38 2 7쪽
28 제7 장 의열(1) - 백두산의 악귀 24.08.01 46 2 8쪽
27 제6 장 학살(5) - 용서받지 못한 자 24.07.31 47 2 8쪽
26 제6 장 학살(4) - 그들은 밤하늘의 별을 빼앗아 갔다. 24.07.30 45 2 7쪽
25 제6 장 학살(3) - 믿을 수 없는 잔인함 24.07.29 53 2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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