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 프롤로그
「본 작품에 등장하는 모든 단체, 기업, 조직 및 기관명은 순수한 창작물이며, 실제 존재하는 어떠한 단체나 조직과도 관련이 없습니다.
이들과의 유사성은 우연의 일치일 뿐입니다.」
<Prologue>
빈말로도 좋다고 하기 어려운 날씨였다.
잿빛으로 가득한 하늘.
아침부터 컨디션이 좋지 않아, 찌뿌둥한 목을 주무르며 나선 걸음이었다.
짬을 내어 방문한 곳은 허름한 병원.
그래도 있을 건 다 있었다.
“흐음.”
머리가 반쯤 벗겨진 의사가 모니터를 보더니 이맛살을 찌푸렸다.
“환자분 성함이··· 심장생씨?”
“네.”
“나이는 스물 아홉.”
“맞습니다.”
“얼마 벌어놨어요?”
처음엔 무슨 소리인지 이해 못했다.
“혹시, 큰 병이라도.”
“아니. 아니.”
의사가 손을 내저었다.
그 퉁명스런 태도에 불만을 가질 겨를도 없이, 이어서 듣게 된 말에 멍해졌다.
“죽는다고요?”
“대충 두 달 정도 남았겠어.”
시한부 판정.
보통 그럴 때 남은 기간을 어떤 식으로 판단하는 건지는 모르겠다.
종종 ‘시한부 판정을 받았지만 그것보다 훨씬 오래 살았다’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걸 보면 정확한 기준 같은 건 없는 것 같기도 하지만.
“······.”
이어서 의사가 보여준 화면.
사진 속 그의 머리 안에, 분명 거기 있으면 안 될 것 같은 덩어리가 보이는 건 확실했다.
“종양입니까?”
“그렇지 뭐.”
“수술은···.”
“크기도 크고, 위치도 안 좋고.”
송과체 근처가 어쩌구.
이해 못할 말을 떠들던 의사는 이어서 처음으로 모니터가 아니라 환자를 보았다.
“대신관급 각성자라도 알고 있으면 모를까, 일반인 수준의 의술로는 답 없어요.”
“각성자···.”
대신관급은커녕 동네 개척목사급 각성자도 구경하기 힘들다.
전투 계열이라면 상대적으로 흔한 편이라고 하지만, 지금 그가 있는 빈민가 쪽이라면 어느 쪽이든 보기 힘든 건 마찬가지였다.
“진통제 처방이라면 해줄 수 있는데.”
의사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병원에 가봐도 된다고 했지만, 왠지 그럴 필요 없을 것 같았다.
‘컨디션 난조가 아니었던 거겠지.’
언젠가부터 느껴졌던 손발의 경련.
저혈당을 의심했던 현기증과 기절.
애초에 그래서 병원에 방문한 거였다.
다른 병원에 가본다고 달라질 게 있나.
“그래도 가봐요.”
의사가 말했다.
그런 건 여러 병원에 가보는 게 좋다고.
그래야 받아들이기도 편해진다고.
오진의 가능성은 전혀 없는 것처럼.
“······.”
독한 마약성 진통제를 처방받고.
진료비를 내고.
정신을 차려보니 거리로 나와있었다.
‘혹시, 관값을 이야기했던 건가.’
얼마 벌어놨냐던 질문.
남은 시간에 쓸 생활비 따위를 말한 거겠지만, 문득 그런 식으로도 이해되었다.
-맞네요. 말기 뇌종양입니다.
-위치가 안 좋군요.
-수술이 어려울 것 같습니다.
다른 병원을 더 가보았다.
역시, 결과가 달라지진 않았다.
번화가 쪽에 가까운, 나름 큰 병원을 가보기도 했지만 태도가 좀 더 정중했을 뿐 죽음을 선고하는 건 같았다.
-일단 심호흡부터 하세요. 당장 죽는 거 아닙니다.
그리고 지금, 등 뒤에 있는 병원.
그곳의 의사가 해준 말이다.
별로 위로가 되진 않았다.
‘심호흡이라.’
고개를 들었다.
며칠 전 처음 죽음을 선고받았던 그날보다 더 짙은 잿빛으로 물든 하늘.
그 한쪽으로는 붉은 기운이 자리했다.
근방에서 균열이 열려 토벌중이라던 뉴스를 얼핏 본 것 같은데.
‘식물 계열이었던가.’
보통 그런 종류는 불로 태우니까.
그래서 붉은 기운이 보이는 건지도.
‘이런 공기를 심호흡하면 오히려 몸에 나쁘지 않을까.’
그래도 막상 해보니 나름 좋았다.
꾸욱 눌린 듯 답답하던 가슴이 조금은 뚫린 것 같기도 하고.
‘용한 점쟁이셨나보네.’
이어서 생각했다.
심장생.
자신의 이름.
어디서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
단명할 팔자라며, 그렇게 이름을 지어야 오래 산다고 할아버지께서 강권하셨다던.
‘부적이라도 써보시지.’
이름만으로는 소용이 없었나봅니다.
이미 돌아가신 지 오래일 할아버지를 떠올리며 뇌까렸다. 이제 얼추 두 달 정도면 만나뵐 수 있는 걸까.
‘정신 차리자.’
의사 말대로, 당장 죽는 건 아니다.
만약 그렇다고 해도 지금처럼 우중충한 얼굴로 죽고 싶진 않았다.
후우, 후우우.
다시금 심호흡을 이어갔다.
좀 더 크게. 좀 더 깊이.
그러다 문득 컥, 하고 멈추었다.
“어우.”
콧속으로 뭔가가 들어갔다.
하루살이보단 클 것 같은데, 어쩌면 파리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코를 풀어보고, 목에서 가래를 끓게 해보아도 나오는 게 없었다.
뭔가 들어가는 걸 느꼈을 뿐, 안이 막히거나 고여있는 것 같지도 않았다.
“······.”
등 뒤의 병원을 돌아보았다.
다시 들어가서 검사를 받아야 하나?
‘이제 와서 무슨.’
어차피 죽는다.
조금씩 저물어가는 하늘처럼.
그의 삶도 저무는 것이다.
‘내 하루는 해가 너무 짧은 것 같은데.’
그리고 한달 쯤 후.
문제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Comment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