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공가의 소드마스터

무료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퓨전

시가렛
작품등록일 :
2024.07.19 13:39
최근연재일 :
2024.09.10 06:26
연재수 :
48 회
조회수 :
419,385
추천수 :
8,100
글자수 :
357,504

작성
24.09.10 06:26
조회
2,775
추천
55
글자
19쪽

겨울 사냥 2

DUMMY

다음 날 아침.


동이 틀 무렵 리안은 출정 준비를 위한 채비를 했다. 빠르게 옷을 갈아입고 검을 챙겼다. 승마를 위해 식량을 포함한 짐은 최소한으로 꾸렸다. 미리 싸두었기에 준비를 끝마치고 방을 나오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저택을 나오자 멀지 않은 곳에서 다가오는 세 소년이 있었다. 리안과 마찬가지로 겨울날의 실전을 위해 단단히 무장한 에반, 핀, 덩크였다. 세 사람은 나란히 걸으며 백작가의 마구간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여느 때와 같이 이른 아침부터 부지런히 일하는 휴고가 있었다.


“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리안 님, 에반 님, 핀 님, 덩크 님.”


“휴고.”


“오늘이 출정 날이지요? 어젯밤 준비는 전부 끝내두었습니다. 바로 데려가시면 됩니다.”


언제나 사람 좋은 얼굴로 리안을 맞아주던 휴고가 네 소년을 마구간 안으로 안내했다.


“휴고 아저씨도 고생하시네요. 겨울 사냥 당일이라서 더 바쁘실 텐데.”


주위를 둘러본 핀이 말했다. 그 말대로 마구간에는 평소와 다르게 여기저기 빈 우리가 많았다. 겨울 사냥에 나가는 엘도르 기사단원들이 저마다 자기 말을 이끌고 집결 장소인 정문으로 향한 것이다.


“아닙니다. 이게 제 할일인걸요.”


휴고가 시원한 미소를 지었다.


“케이드가 따로 고생했다고 챙겨주지 않았나요? 특별 수당이라던가.”


듣고있던 리안이 물었다.


“하하, 케이드 단장님이라면 항상 제게 과분할 정도로 챙겨주고 계십니다.”


“단장님이 술이랑 여자를 좋아하긴 해도 이런 쪽으로 섭섭하게 할 사람은 아니야.”


“맞다. 단장님이 이런 쪽으로 성실하다. 돈을 빼먹을 사람은 아니다.”


“에반님과 덩크님의 말이 맞습니다. 그러니 신경쓰지 마십시오, 리안 님.”


휴고가 정중한 어조로 리안의 걱정을 매듭지었다.


“그래도 부족한 게 있으면 말씀해 줘요. 혹시 모르니까.”


“부족한 거 말입니까? 여기서 더 욕심냈다가는 주인님께 한소리를 듣고 잘릴 텐데요.”


의문을 표하는 그에게 리안이 선뜻 제안했다.


“그럼 그때는 제가 휴고를 고용할게요.”


“리안 님께서 저를요? 그게 가능합니까?”


“카를린님께 받는 용돈이 꽤 되거든요.”


“허허, 이것 참. 아주 든든한데요. 잘릴 일 없는 평생 직업이라니.”


“휴고가 아니면 아무도 지크를 관리할 수 없을 걸요. 그나마 저 말고 말을 듣는 시늉이라도 하는 건 휴고가 유일하니까. 아가씨를 빼면.”


“그건....”


소리내어 웃던 휴고가 이번엔 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말끝을 흐렸다.


“맞는 말이군요.”


“그렇죠?”


시답잖은 농담을 주고받은 사이 네 소년이 각자의 말을 향해 다가갔다. 리안의 흑마는 멀리서도 단연코 눈에 띄었다.


지크는 웬일로 건초더미 위에 누워있지 않고 서 있었는데, 바로 데려가면 된다는 휴고의 말대로 부담스러울 만큼 맑은 눈으로 리안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리안은 울타리를 반쯤 연 뒤 지크의 매끄러운 갈기를 부드럽게 쓸어주었다.


“지크.”


푸르륵.


“잠은 제대로 잤지?”


푸륵, 푸륵.


“배고프다고?”


푸르륵.


“어제 실컷 먹은 거 아니었어? 집결 시간이 곧이라 바로 출발할 텐데....”


대답 없이 고개만 돌린 지크가 어느 한 곳을 지그시 노려보았다. 지크의 시선이 머무른 방향에서 열심히 움직이는 휴고를 발견한 리안이 쓴웃음을 지었다.


“어제 잔뜩 먹고 또 배가 고픈 거냐. 그럼 그렇지....”


“리안 님! 먹이라면 그 왼쪽에 특식으로 남겨둔 당근이 조금 있습니다!”


눈치 빠른 휴고가 리안이 있는 쪽을 힐끗하고는 소리쳤다.


“예! 고마워요, 휴고!”


감사 인사를 한 리안이 왼쪽 바구니에 쌓여있는 당근을 손에 쥐었다. 코를 킁킁거린 것도 잠시, 지크가 입을 쩍 벌렸다.


쩝쩝쩝쩝.


“천천히 먹어. 체할라.”


쩝쩝쩝쩝.


“내 말 들리지도 않지?”


푸르륵.


한입에 한개씩 당근을 해치우는 묘기 아닌 묘기에 리안이 내심 혀를 내둘렀다. 흡사 신기한 마법을 보는 것만 같았다.


게다가 다른 말이었다면 벌써 체해서 이리저리 굴러다녔을 텐데 이놈의 흑마는 그런 일이 없었다. 그래도 먹이를 먹는 양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승마할때 속도를 내주니 리안은 다른 건 몰라도 지크의 먹이만큼은 꼬박꼬박 성실하게 챙겼다.


“리안! 아직이야?”


“먼저 나가서 기다려! 금방 갈 테니까.”


울타리를 열어 말을 끌고 나온 에반이 리안을 재촉했다. 당근을 마저 먹인 리안이 휴고가 미리 준비해둔 안장을 올리고 고삐를 잡아끌었다.


밖으로 나오자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세 소년이 있었다. 빠르게 합류한 리안은 제각기 자신의 말을 끌고 있는 소년들과 집결 장소인 백작가의 정문을 향해 부지런히 발을 놀렸다.


그리고.


“아가씨...?”


“아, 리안.”


정원 구석에서 낯익은 백금발의 소녀를 발견하는 건 찰나였다. 평소라면 잠이 많아 늦잠을 자는 일이 빈번한 세레나가 어쩐 일인지 이른 아침부터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뭐? 사랑하는 피앙세랑 잘 되어가? 사고치지 말라고?”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은 에반이 리안의 어깨를 두드렸다. 리안은 차마 대답하지 못하고 입술만 달싹였다. 여름날의 서임식때 한번 놀린 것을 아직까지 마음에 담아두고 있을 줄이야.


“적당히 하고 와. 단장님한테는 내가 말해둘 테니까.”


“리안. 사고치지 마라. 배신자에 변절자인것은 용서할 수 있지만, 작전에 해를 끼치는 건 용서할 수 없다....”


“에반, 덩크! 하하... 미안해, 리안. 금방 갈 테니까.”


핀이 두 소년의 등을 떠밀었다. 에반과 덩크가 궁시렁거렸다. 세 소년의 뒷모습이 작은 점이 될 때까지 바라보던 리안이 몸을 돌려 세레나에게 다가갔다.


“언제부터 기다린 거예요? 지금 시간이 몇 시인데.”


“방금 나왔어. 나름 30분 일찍 일어난다고 일어난 건데....”


방금 나왔다는 말이 거짓말은 아닌지 세레나는 얇은 잠옷에 두꺼운 외투를 걸치고 있었다. 전속 시녀인 릴리가 보면 아주 기겁을 하고도 남을 옷차림이었다. 심지어 장갑도 없어 붉게 달아오른 손에 후후 입김을 불고 있었는데, 리안은 절로 나오는 한숨을 가까스로 삼켰다.


“장갑이라고 끼고 오던가.”


“읏...! 멋대로 만지지 마. 깜짝 놀라잖아....”


“조용히 하세요. 릴리한테 고자질하기 전에.”


리안이 가느다란 세레나의 양손을 감싸쥐었다. 맞닿은 살갗의 감촉이 시렸다. 반대로 세레나의 뺨에는 옅은 홍조가 떠올라 있었다. 맨날 통속 소설을 읽으며 연애에 통달한 척 하는 주제에 왜 이럴 때는 요조숙녀 흉내인지.


“그래서. 아침부터 왜 나왔어요? 평소에는 릴리가 그렇게 깨워도 맨날 늦잠을 자면서.”


“그냥. 배웅이나 해줄까 해서.”


“아가씨가요?”


리안이 눈이 크게 뜨였다. 세레나의 눈초리가 가늘어졌다.


“나도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일찍 일어날 수 있어.”


“.......”


“진짜야! 나도 한다면 하는 사람이라구.”


“아, 네.”


“그리고 겨울 사냥은 기니까. 삼촌이 엘도르 기사단장이 된 이후로 사망자는 나온 적 없지만, 그 이전에는 몇명 있었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아가씨께선 제가 어디가서 객사할 사람으로 보이십니까?”


리안이 피식 웃었다. 잠시간 그런 리안을 진중한 표정으로 노려보던 세레나가 못 말겠다는듯 웃음기 섞인 탄식을 내쉬었다.


“그러네. 리안 네가 어디가서 죽을 사람은 아니지.”


세레나는 리안이 용병 출신이라는 것 말고도 여러 이야기를 알고 있었다. 대부분 세레나의 호기심에 못이겨 리안이 직접 들려준 이야기였다. 개중에는 리안이 변종 다이어울프를 어떻게 잡았는지 그 내용도 세세하게 포함되어 있었다.


하물며 그때보다 훨씬 강해진 지금이라면.


“아가씨도 수업 빼먹지 마세요.”


리안이 충고아닌 충고를 건넸다.


“말 안해도 잘 하고 있으니까 걱정 마. 아, 지크.”


지크가 세레나의 코앞으로 다가왔다. 리안의 따가운 눈총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흑마는 세레나가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눈을 감고 그 손길을 즐겼다.


“역시 지크는 얌전하네.”


“.......”


“주인이랑은 완전 딴판이야. 리안도 이렇게 순했으면 좋겠는데.”


리안이 가볍게 고삐를 잡아당겼다. 눈을 치켜뜬 지크가 고개도 돌리지 않고 리안을 째려보았다.


“아, 맞다.”


세레나가 두꺼운 외투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자.”


“...이게 뭡니까?”


“손수건. 내가 주는 거니까 가져가.”


세레나가 내민 손수건은 화려한 자수가 새겨져 있었다. 평소에 아끼며 사용하던 바로 그 손수건이었다.


“이걸 왜....”


“하나쯤 있어서 나쁠 거 없으니까. 나중에 분명 쓸곳이 있을 거야.”


리안은 조심스럽게 손수건을 건네받았다. 부드러운 천의 감촉과 함께 세레나의 온기가 느껴졌다.


“쓸 곳이라고 해봐야 땀이나 피를 닦을 때밖에 없을 텐데요.”


“그러니까 주는 거야. 마음대로 써도 돼.”


“아끼면서 쓰던 거잖아요. 정말 괜찮아요?”


“정 그러면 품속에 고이 접어둬. 부적으로도 효험이 있을 걸.”


세레나가 배시시 웃었다. 리안이 뭐라 대답할지 몰라 멍하니 있는 사이 그녀가 덧붙였다.


“어머니가 그러는데, 원래 레이디의 손수건은 누군가의 안녕을 기원할 때 부적으로도 효과가 있대.”


“카를린님이 그랬다고요?”


의아해진 리안이 되물었다.


“저번에 읽던 연애 소설이 아니고?”


“으... 이럴 땐 눈치있게 그렇다고 하는 거야! 빨리 가!”


잔뜩 인상을 쓴 세레나가 리안의 등을 연달아 두드렸다. 아프긴 커녕 간지럽기만한 세레나의 반격에 리안은 실없이 웃으며 지크를 이끌고 빠른 걸음으로 정문에 도착했다.


“염장질은 다 끝났냐?”


미리 도착한 서른 두명의 엘도르 기사단원들이 리안을 쳐다보고 있었다. 케이드의 물음에 리안이 떨떠름하게 대꾸했다.


“염장질이라니... 대체 누가요?”


“시치미 떼지 마라. 딴놈들은 몰라도 내눈에는 다 보이거든. 다들 준비해! 차례대로 줄 서서 바로 나간다!”


케이드의 외침에 기사들이 일사불란하게 말 위로 올라탔다. 리안 역시 한박자 늦게 지크의 위로 올라갔다. 백작가를 나오자 아직 잠에 빠진 도시의 풍경이 있었다. 그럼에도 곳곳에 겨울 사냥을 마중나온 소수의 시민들이 있었다.


몇몇 기사들이 그들에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한 아이의 눈이 동그랗게 커지더니 신이 나 폴짝폴짝 뜀박질을 하며 손을 쭉 뻗었다. 귀엽네. 작게 중얼거린 기사 한명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케이드 대장님!”


“준비 끝났습니다!”


서문이 코앞까지 다가왔다. 성벽 위의 경비들이 손을 모아 나갈 준비를 하는 기사들에게 소리쳤다.


“다들 들었지?”


뒤를 돌아본 케이드가 씩 웃었다.


“개문!”


“개문! 문을 열어라!”


끼릭거리는 불협화음 사이로 육중한 성문이 서서히 열렸다. 그 너머로 보이는 탁 트인 설원에 리안의 가슴이 빠르게 뛰었다.


“못 따라오는 놈들은 그대로 낙오다. 알아서 잘 쫓아와!”


이윽고 문이 완전히 열렸다.


히힝거리는 말들의 울음소리와 함께 리안은 거세게 고삐를 당겼다.


***


한때 푸르른 들판이었던 새햐안 설원을 거침없이 내달린다.


안면을 쓸어내리는 겨울날의 칼바람이 생동감 있게 다가왔다.


32명으로 이루어진 엘도르 기사단은 케이드의 지휘 하에 페리아의 서쪽에 위치한 가장 가까운 산맥의 어귀에 접어들었다. 칼로스 왕국의 수도인 엘리시온이 위치한 최동단은 넓은 평야지대가 펼쳐져 있었지만 서쪽 국경을 수호하는 브레일 백작령은 험한 산지가 대부분이었다.


브레일 백작가가 대대로 방패 역할을 수행할 수 있던 것도 그 점이 컸다. 브라알라스 한복판에 위치한 칼로스 왕국에서 이동하기 좋은 교역로들은 한정되어 있었다. 덕분에 페리아는 왕국에서 외적을 막아내는 가장 큰 관문이자 대도시가 될 수 있었다. 침략하는 적들의 입장에선 대군을 한꺼번에 움직이기 위해서 페리아를 함락시켜야 하는데, 단 한번도 뚫린 적이 없었다.


“정지!”


“모두 정지!”


선두에서 달리던 케이드가 정지하며 말머리를 돌렸다. 뒤따르던 다른 기사들도 고삐를 잡아당겨 멈춰섰다.


“낙오자는?”


“없습니다!”


“좋아.”


기사들을 둘러본 케이드가 목을 가다듬었다.


“예정대로 여기서 갈라진다. 1조, 2조, 3조, 4조는 북서쪽으로. 5조, 6조, 7조, 8조는 남서쪽으로. 그 뒤 신호탄을 확인할 수 있는 일정 거리를 유지하며 조별로 따로 사냥한다.”


케이드가 간단한 설명을 시작했다. 10년 넘게 겨울 사냥에 참가하고 있는 기사들에게는 다소 따분할 정도의 의례적인 과정이었다.


8조에 속한 리안은 남서쪽이었다. 케이드는 의외로 1조가 아닌 7조였는데, 단순히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숫자가 7이라는 황당한 이유였다.


말을 끝마친 케이드가 다시금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질문있나?”


“있습니다!”


에반이 손을 들었다. 케이드가 턱짓하자 에반이 입을 열었다.


“다 같이 움직이는 거 아닙니까? 왜 조별로 따로 움직이는지 모르겠습니다. 예상치 못한 사고가 발생하려면 어쩌려고.”


호기롭기 짝이 없는 에반의 질문에 리안과 핀을 포함한 기사들이 이마를 짚었다.


“그걸 지금 질문이라고 하냐!”


“넌 정식 기사란 놈이 아직도 그걸 몰라?”


“공부좀 해 새끼야! 대체 평소에 뭘 하고 다니는 거야?”


사방에서 질타가 날아왔다. 눈치를 보던 에반이 억울하다는 눈빛을 했다.


“그만, 그만.”


보다못한 엘리엇이 앞으로 나와 기사들과 에반을 중재했다.


“하아... 에반 저놈이 첫 겨울 사냥이라는 걸 간과하고 있었군.”


“괜찮아요, 단장님. 그럴 수도 있죠. 내가 설명할게요.”


한숨 쉬는 케이드 대신 엘리엇이 대신 대답했다.


“리안은 그렇다 쳐도 에반, 핀, 덩크. 너희들은 이번이 첫 겨울 사냥이지?”


“네.”


“그럼 간단하게 설명해줄게. 우선 조별로 따로 사냥을 하는 이유. 가장 큰 이유는 효율성 때문이야.”


브레일 백작령은 거대하다.


애초에 칼로스 왕국 자체가 브라알라스 한복판에 위치한 제일 영토가 크고 세력이 강한 왕국이었다. 개중에서도 브라알라스 최고의 명문가이자 소드마스터 라이넬 시니스터가 가주를 맡고 있는 시니스터 가문과 함께 17가문의 일각인 브레일 백작가.


당연히 백작령도 거대할 수밖에 없었다. 단순한 크기로 따지면 칼로스 왕국의 방패이자 서쪽을 수호하는 브레일 백작령이 시니스터 공작령보다 더 컸다. 물론 시니스터 공작령은 엘리시온 바로 앞에 붙어있는 만큼 산세가 험한 브레일 백작령과는 땅의 가치가 달랐지만, 그럼에도 브레일 백작가는 17가문에서도 상위권인 명문가였다. 7왕가를 제외한 어지간한 17가문보다 훨씬 위에 있었다.


“당연히 한번에 움직이면 좋겠지만, 그러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거든. 거기다 엘도르 기사단원 넷이면 어지간한 연방군 중대를 상대할 수 있으니까. 이것만으로 이미 과잉 전력이지. 6년 전의 일은... 겨울사냥 뿐만 아니라 대륙에서도 유래를 찾기 힘든 예외였으니 논외로 하고.”


“아하.”


“무엇보다 조별로 따로 사냥하기는 하지만 북서쪽, 남서쪽으로 나눈 4개의 조와 일정 간격을 유지하고 있으니 무슨 일이 생겨도 빠르게 합류할 수 있어. 신호탄을 쏘면 볼 수 있는 거리, 그러니까 아무리 길어도 한나절이 넘지 않는 거리야. 그 거리를 넘으면 바로 알 수 있게 따로 마도구도 있고.”


또 다른 궁금한 거 있어?


엘리엇이 친절한 목소리로 물었다.


“보급은 어떻게 해요? 겨울이라 말에게 먹일 먹이도 없는데. 귀리나 보리를 한무더기 들고 다닐 수도 없고.”


이번에도 에반이었다. 기사들이 따가운 눈길이 한층 강해지는 가운데 쓰게 웃은 엘리엇이 덧붙였다.


“보급은 중간중간 들리는 도시나 마을에서 할 수 있어. 겨울 사냥은 따로 몬스터를 토벌할 여유가 없는 소도시나 마을, 혹은 연방군이 주둔하지 않는 지역을 중심으로 돌거든. 그쪽 사람들도 우리같이 몸값 비싼 기사가 손수 몬스터를 잡아주니, 공짜로 식량이나 잠자리를 나눠주기도 하고.”


“.......”


“더 묻고 싶은 게 있으면 지금 물어봐. 나중에 따로 흩어지면 하고 싶어도 못하니까.”


“아니요, 괜찮아요. 다 이해했어요.”


“정말 이해한 거 맞아?”


케이드가 퉁명스럽게 내뱉었다.


에반이 고개를 끄덕였다. 케이드가 손짓하자 기사 한명이 신호탄과 두가지 색의 작은 보석 하나를 조장들에게 나눠주었다.


“꼬맹아. 신호탄은 쓸 줄 알지? 한번 경험이 있으니까.”


케이드가 리안에게 물었다.


“네.”


“그 보석같은 마도구는 마나를 불어넣으면 같은 색의 마도구를 가진 이들의 거리에 비례해 빛을 낸다. 태양 아래에서는 희미할 정도로, 밤에서는 주위를 은은하게 밝힐 정도의 빛이 최소치야. 밝기가 그 아래로 떨어지면 즉시 이동해라. 이틀 간격으로 네개의 조끼리 모일 테니 방향은 어딘지 대강 알 테고.”


보석을 만지작거린 리안이 신호탄과 함께 품안에 넣었다.


“단장! 올해의 일등 상금은 얼맙니까!”


누군가가 외쳤다. 겨울 사냥에는 가장 강한 몬스터를 잡은 조에 특별한 상금이나 상품을 주는 전통이 있었다.


“올해는....”


케이드가 말끝을 흐렸다. 모두의 이목이 붉은 머리 기사의 입으로 집중됐다.


“금화 100개.”


“오오오오!”


“그리고 케프리 80년산 포도주다.”


“80년산 케프리 포도주?”


“설마 단장님이 아끼던 와인을 상품으로 내건 겁니까?”


“그것보다 훨씬 좋은 거다. 무려 브레일 백작 각하께서 애지중지하는 술이니까. 그것도 두 병이나!”


기사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열기가 달아올랐다. 한겨울인데 공기가 후끈해지는 착각이 들었다.


“토벌 지역은 전날에 미리 고지한대로다. 경로 역시 순차적으로 돈다. 알았으면 빨리빨리 움직여!”


케이드의 일갈에 기사들이 저마다 조장을 따라 흩어졌다. 삼십이 넘는 기사들이 대부분 사라지고 남은 건 리안과 케이드의 조인 7조와 8조뿐이었다.


“제일 늦게 출발하는 걸 보니 어지간히 자신있는 모양이지.”


케이드가 리안을 쳐다보며 말했다.


“가장 강한 몬스터를 잡는 조가 이긴다고 했는데.”


“응?”


“그럼 너무 운에 맡기는 거 아니에요? 토벌 지역은 정해져 있는데. 무슨 몬스터가 나올 줄 알고.”


어차피 엘도르 기사단의 실력이면 실패는 없다. 리안의 물음에 케이드는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운도 실력이지. 맨날 이기는 놈만 이기면 재미없지 않겠냐?”


“그건... 그렇네.”


“또 궁금한 건?”


“심장에서 뽑은 마석의 크기로 결정한다. 맞죠?”


“그래. 왜, 집에 가고 싶어졌냐?”


“아니요.”


여유롭게 미소지은 리안이 말머리를 돌렸다.


“그 80년산이라는 포도주. 두 병 다 나중에 케이드한테 팔게요.”


“뭐?”


“금화 100개에. 그럼 딱 금화 200개네.”


히히히힝!


리안의 검은 말이 눈발을 튀기며 빠르게 달려나갔다. 당황하던 것도 잠시, 세 명의 소년이 리안의 뒤를 따랐다.


“그렇다는데요, 단장님?”


“망할 꼬맹이가. 누굴 벗겨먹으려고.”


엘리엇이 실실거리며 중얼거렸다. 가볍게 웃은 케이드는 남은 조원들을 이끌고 리안과 다른 방향으로 이동했다. 말발굽 자국이 잔상처럼 새하얀 눈 위로 늘어지고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5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대공가의 소드마스터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제목바꿉니다-대공가의 소드마스터 24.09.01 528 0 -
공지 매일 저녁 10시 20분 연재입니다. +1 24.08.10 6,124 0 -
» 겨울 사냥 2 +15 24.09.10 2,776 55 19쪽
47 겨울 사냥 1 +12 24.09.08 2,980 78 18쪽
46 변하는 것, 변하지 않는 것 4 +10 24.09.07 3,052 84 18쪽
45 변하는 것, 변하지 않는 것 3 +10 24.09.06 3,271 85 17쪽
44 변하는 것, 변하지 않는 것 2 +11 24.09.05 3,448 108 18쪽
43 변하는 것, 변하지 않는 것 1 +7 24.09.04 3,771 98 15쪽
42 가을날의 축제 3 +12 24.09.03 4,170 89 22쪽
41 가을날의 축제 2 +15 24.09.02 4,656 113 21쪽
40 가을날의 축제 1 +11 24.09.01 5,666 124 19쪽
39 엘리시온 9 +14 24.08.31 5,928 142 16쪽
38 엘리시온 8 +10 24.08.30 6,033 155 17쪽
37 엘리시온 7 +17 24.08.29 6,418 157 15쪽
36 엘리시온 6 +16 24.08.28 6,968 148 15쪽
35 엘리시온 5 +14 24.08.27 7,267 213 15쪽
34 엘리시온 4 +23 24.08.26 7,388 228 19쪽
33 엘리시온 3 +11 24.08.25 7,462 197 16쪽
32 엘리시온 2 +12 24.08.24 7,624 169 14쪽
31 엘리시온 1 +13 24.08.23 8,004 156 14쪽
30 두 번째 보금자리 10 +10 24.08.22 8,066 169 16쪽
29 두 번째 보금자리 9 +12 24.08.19 8,058 168 16쪽
28 두 번째 보금자리 8 +13 24.08.17 8,249 167 17쪽
27 두 번째 보금자리 7 +8 24.08.16 8,379 181 21쪽
26 두 번째 보금자리 6 +9 24.08.15 8,615 162 21쪽
25 두 번째 보금자리 5 +12 24.08.12 8,868 179 21쪽
24 두 번째 보금자리 4 +13 24.08.10 8,924 171 16쪽
23 두 번째 보금자리 3 +11 24.08.09 8,821 183 17쪽
22 두 번째 보금자리 2 +12 24.08.07 8,993 175 16쪽
21 두 번째 보금자리 1 +11 24.08.06 9,384 172 15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