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공가의 소드마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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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렛
작품등록일 :
2024.07.19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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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0 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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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7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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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하는 것, 변하지 않는 것 4

DUMMY

아침에 일어난 리안은 눈을 비비며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그러나 내려다본 손은 여기저기 휘고 굳은살이 배긴 못생긴 손이 아니라 한없이 작고 가느다란 하얀 손가락이었다.


고개를 갸웃하는것도 잠시, 리안은 문득 깨달았다.


아.


또 그 꿈이구나.


꿈속의 어린 나는 평소대로 밥을 먹었다. 평소대로 몸을 씻었다. 평소대로 옷을 갈아입고 저택을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그러다가 집사장에게 들켜 한바탕 잔소리를 듣고 지루하기 짝이 없는 후계자 수업을 들었다.


그래도 오늘은 특별히 수업이 일찍 끝났다. 호기심이 동한 나는 몰래 변장을 하고 시내로 내려갔다. 그런데 운이 나빴는지 가문의 기사들에게 걸려 잔뜩 혼이 났다. 끌려가듯 도착한 저택의 현관 앞에서 못말리겠다는듯 자신을 쳐다보는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어리광 아닌 어리광을 부리자 하루가 끝이 난다.


다음 날도, 다다음 날도.


시간이 흐른다. 풍경이 뒤바뀐다. 나이를 먹은 리안은 전보다 더 의젓해졌다. 그래봐야 키가 조금 더 크고 말을 똑바로 할 수 있게 된 것뿐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가문의 사람들은 경사라도 난것처럼 호들갑을 떨었다.


무엇보다 처음으로 아버지가 검을 가르쳐줬다. 나는 기쁜 마음에 폴짝거리며 제자리에서 뛴다. 아버지가 쓰게 웃으며 내 머리를 헝클인다. 손에 쥔 목검은 비록 진검이 아니었지만 들고 있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쿵쿵 뛰었다.


빨리 어른이 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항상 놀기만 하던 내게 꿈이 생겼다. 그즈음 제국이 전쟁을 천명했다. 내가 5살이 되는 해에 선전포고를 한 제국군은 동쪽을 향해 물밀듯이 밀려 들어왔다. 공국의 사람들은 필사적으로 항전했으나 제국에게는 역부족이었다.


매일 수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리며 죽어간다. 이름도 남기지 못한 시체가 쉴새없이 타오른다. 수도인 그레이스터까지 제국이 당도하는 건 순식간이었다. 평소와 전혀 다른 얼굴을 한 아버지가 결연한 눈빛으로 가문의 기사들을 이끌고 저택을 나갔다.


가지마.


나는 애원하듯 울먹인다. 그러나 내 목소리는 닿지 않는다. 죽음을 각오한 기사들이 서서히 사라져간다. 그들은 자신의 목숨을 장작삼아 남은 사람들의 시간을 벌었다.


의미 있는 죽음인가. 모르겠다. 나는 귀를 막았다. 눈을 꾹 감았다. 끔찍한 현실을 외면했다.


살아라.


마지막 한마디를 남기고 떠난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았다.


거짓말쟁이.


차라리 꿈이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리안.”


현실을 부정하던 나는 가까스로 눈을 뜬다. 보이는 건 불길에 휩싸인 도시의 정경과 끔찍한 사람들의 비명 소리다. 나는 다시 현실에서 도망친다. 도망치려 했다.


“리안, 내 아가.”


익숙한 목소리가 다시금 귓가에 울린다. 따스한 손가락이 내 뺨을 감싼다. 천천히 시선을 들어올리자 나와 같은 보랏빛 눈동자가 있다. 그토록 사랑해 마지않던, 어머니의 그 눈동자다.


“사랑해, 사랑해 리안. 죽을만큼 사랑해. 같이 가주지 못해 미안해.”


시야가 뿌옇게 변한다. 눈가에 방울진 눈물이 뚝뚝 떨어져내린다. 살갗을 타고 흐르는 감촉이 에일만큼 아팠다. 마지막 포옹마저 끔찍하리만큼 고통스러웠다.


“펠릭스.”


결심한 어머니가 내 뒤의 누군가에게 말한다.


“부디, 저를 용서하십시오.”


도망쳤다.


가문의 사람들을 버리고.


타오르는 도시를 뒤로하고 무작정 달린다. 어린 나를 업은 펠릭스가 평소에 입에 담지도 않는 욕설을 마구잡이로 내뱉는다.


망할, 망할, 망할!


나는 그저 숨죽인 채 울었다. 흔들리는 어깨에 얼굴을 묻고 흐느꼈다.


죄송합니다, 각하. 정말 죄송합니다. 혼자 살아남은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도망친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도시가 함락당한다. 에스테반 공국의 수도인 그레이스터가 무너지자 중부 지역에 제국에게 점령당하는 건 순식간이었다. 그러나 나와 펠릭스는 순순히 도망칠 수 없었다. 그림자처럼 뒤따르는 불멸기사단 앞에 결국 덜미를 잡혔다.


의미가 있었나. 그들의 죽음은 의미가 있었나. 애초에 나는 왜 아직도 죽지 않았나. 나는 수없이 자문했고, 또 좌절했다. 체념하던 내게 펠릭스가 말했다.


“공자님.”


그리고 보았다.


“그동안 함께할 수 있어서 영광이었습니다.”


또 그 눈빛이다.


“에스테반의 늑대는 쓰러지지 않으니.”


죽음을 각오한 눈빛.


“반드시 살아남으십시오.”


왜.


대체 왜.


나는 울었다. 울면서 도망쳤다. 떨리는 두 다리를 부여잡고, 개처럼 땅을 기며 필사적으로 도망쳤다.


왜 나만 살아야 하나. 왜 당신들이 죽어야 하나. 어째서 내가 이렇게 아파야 하나. 어깨를 짓누르는 당신들의 목숨이 너무나 무거운데, 왜 나는 아직도 죽을 수가 없나.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시간이 흐른다. 풍경이 뒤바뀐다. 아이는 그 전쟁에서 살아남아 8살이 되었다. 그리고 또다시 소중한 사람을 잃었다. 검은 머리칼에 단발이 인상적인 마리는 제 손으로 자신의 배를 찔렀다. 리안의 마음이 약해질까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역시.”


또.


“리안은 웃는 게 더 예쁘네....”


또 한명의 사람이 죽어간다.


“아, 아아....”


그 속에서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아무것도.


아이는 자란다. 살기 위해 사람을 죽인다. 첫 살인의 감촉처럼. 누군가의 생명을 빼앗는 것은 지독하게 끔찍한 일이지만 살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정말로?


모르겠다. 이젠 나 스스로도 뭘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사람을 죽이고, 대륙을 방랑하고. 또다시 살기위해 누군가를 죽이고, 홀로 버려진 들개처럼 대륙을 방황하고.


어느덧 12살이 되었다. 그 겨울날의 풍경은 평소보다 더 희었다. 유령처럼 다가온 순백의 죽음 속에서 나는 체념했다. 더 이상 살고싶지 않았다.


죽음이라는 영원한 안식 속에서 그저 편해지기를 바랐다. 그러니 죽자. 죽어버리자. 이 순간만큼은 아무런 고뇌도 하지 않은 채, 그저 몰려오는 수마에 몸을 맡기자.


그렇다면 소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편해질 수 있다. 이 영겁과도 같은 지옥에서 빠져나갈 수 있다. 꿈도, 희망도, 절망도, 고뇌도. 죽어간 사람들의 숨막힐 듯한 목숨의 무게도. 전부 다 내려놓고. 훨훨 날아올라서. 그래서....


문득 나는 고개를 들어올린다. 올려다본 하늘은 검은 도화지에 별빛을 수놓은 것처럼 지극히 아름답다. 나는 눈물을 흘린다. 그렇게 소리없이 울면서 한동안 광활한 은하수를 응시한다.


마지막으로 하늘을 올려다본 게 언제인지 기억이 나질 않았다. 위를 보는 순간 마음이 약해질 것 같아서. 그러나 죽음의 문턱에서 바라본 별빛은 기억 속 풍경과 다르지 않았다. 찬란하게 빛나던 그 시절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했다.


아, 그랬지. 저런 풍경이었지.


내가 잃어버린 것은....


나는 손을 뻗는다. 뻗은 손으로 은하수를 움켜쥐려 한다. 그러나 흘러내리는 모래알처럼 그것들은 내게 잡히지 않는다. 허락되지 않는다. 그것이 나의 운명인 것처럼.


미약한 희망이 진창 속에 처박힌다. 타다 남은 재의 불씨가 서서히 꺼져간다. 불현듯 뺨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린다.


그리고.


흐릿해지는 의식 사이로 발소리가 들린다. 그곳에는 태양이 있었다. 붉은 머리카락을 휘날리는 그 태양은 내게 손을 뻗었다. 현실과 환상 그 사이에서 희미한 태양의 음성이 들렸다.


“꼬마야, 나랑 같이 갈 테냐?”


나는 대답하지 않는다. 대답할 수 없다. 다만 다시 한 번 손을 뻗었다. 필사적으로 뻗은 손으로 그 태양을 쥐었다.


그러자 긴장이 풀린다. 서서히 의식이 침잠한다. 태양의 온기는 강렬하면서도 따스하다. 내가 잃어버린 것들처럼, 앞으로 가질 수 없는 것처럼.


쉬어라.


꺼져가는 생각 사이로 그런 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대로 눈을 감았다.


***


“하아... 하아....”


눈을 뜬 리안은 반사적으로 자신의 가슴을 움켜쥐었다. 호흡이 거칠었다. 입고 있던 얇은 옷이 식은땀으로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달라붙은 천의 감촉이 몹시 불쾌했다.


제기랄.


속으로 작게 욕설을 내뱉은 리안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익숙한 자신의 방 풍경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제서야 미친듯이 뛰던 심장 박동이 천천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리안은 좌우를 두리번거리다 침대 옆 협탁에 놓인 물주전자와 컵으로 차가운 물을 단번에 들이켰다.


얼마만에 꾸는 악몽일까.


시원한 액체가 식도를 타고 흐르자 정신이 차츰 맑아졌다. 그렇게 몇분을 가만히 침대에 앉아 있자 젖어있던 옷도 점점 말라갔다. 예전에는 매일밤 꾸는 악몽이었지만 브레일 백작가에 들어오고 나서부터는 확연하게 그 횟수가 줄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편안하게 잠을 잘 수 있었다.


그래서일까.


리안은 일년도 더 되어 급작스레 찾아온 악몽이 당혹스러웠다. 악몽을 꾸는 건 제멋대로지만 그 내용만큼은 항상 같았다. 죽어가는 사람들, 홀로 살아남은 자신. 그리고 마지막에 내미는 케이드의 굳센 손.


꿈속의 내용을 되새기던 리안은 작게 머리를 흔들었다. 이제는 전부 과거의 환영일 뿐이다. 벌써 6년도 더 된 일에 얽매이고 싶지 않았다.


“리안 님. 들어가겠습니다.”


때마침 노크를 한 하녀가 타이밍 좋게 방으로 들어왔다. 집사장 한스가 자신의 편의를 위해 배정해준 중년의 여인이었다.


“어머. 혹시 악몽을 꾸셨나요?”


어두운 리안의 낯빛을 보고선 하녀가 걱정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아니요, 괜찮습니다. 잠을 좀 설쳐서 그래요.”


“아침이 준비되었는데. 어떻게, 식당에서 함께 하실 건지?”


“오늘은 거르겠습니다. 신경써주셔서 감사해요.”


“그럼 따듯한 코코아라도 한 잔 가져다 드릴까요?”


“예. 부탁합니다.”


“알겠습니다. 금방 다녀오겠습니다.”


하녀가 방을 나갔다. 잠시 뒤 그녀가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듯한 코코아 한잔을 가져왔다. 곁들일 약간의 과자와 함께.


감사 인사를 한 리안은 근처 테이블에 앉아 어젯밤 느닷없이 받은 편지 두장을 펼쳐 읽기 시작했다. 수신인만 적혀 있고 발신인은 적혀 있지 않은 밋밋한 편지지만 리안은 이 편지를 쓴 주인이 누구인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하나는 12살때 그린힐에서 자신에게 검을 선물해주었던 대장장이 제프였고, 다른 하나는 여러가지 편의를 봐준 여관주인 잭이었다. 코코아를 홀짝거린 리안이 느긋하게 글자를 읽어내려갔다.


[애송아. 잘 지내고 있냐?


벌써 11월이구나. 네가 그린힐을 떠난 것도 6년 전 이맘때였는데....]


편지의 첫 줄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아까의 어두운 기분도 잠시 리안은 반사적으로 피식 웃었다.


[올해는 꽤 괜찮은 한해였다. 내 실력도 녹이 슬기는 커녕 나날이 발전하는 모양인지, 이제는 그린힐 대대가 아니라 저기 옆 동네에서 따로 주문 제작이 들어왔거든.


(중략)


가끔 흘러간 세월이 야속할 때도 있지만, 이제는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다. 지나간 시간을 원망해봐야 헛되이 보낸 세월이 돌아오는 것도 아니고, 중요한 건 앞으로의 미래니까.


그러니 너도 지금 이 순간을 최선을 다해 보내라. 후회는 언제나 늦은 법이니.]


제프의 편지를 다 읽은 리안이 종이를 곱게 접어 옆으로 치웠다. 그리고 남은 잭의 편지를 읽기 시작했다.


[리안, 잘 지내고 있냐?


나는 그럭저럭 평소와 같은 하루를 보내고 있다. 올해도 특별히 좋은 일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특별히 나쁜 일도 없었어.


(중략)


그것보다 기사 서임은 언제 받을 예정이야? 네가 새로 사귀었다는 그 친구들도 정식 기사가 되었다며. 나중에 서임을 받아서 진짜 기사가 된다면 그린힐에 한 번 놀러와라. 서비스로 아끼는 술을 대접해줄 테니까.


여관주인 잭이, 미래의 기사 리안 경에게.]


“둘 다 변한게 없네....”


희미하게 중얼거린 리안의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가 떠올랐다 사라졌다. 6년이란 시간동안 제프도, 잭도, 리안도 많은 것이 변해 있었다.


그럼에도 변하지 않은 것은 있다. 제프와 잭과 같은 인연 자체가 바로 그것이었다. 작은 계기로 시작된 인연이었지만 13살의 가을축제 이후로 리안은 그 모든 것들을 소중하게 여기기로 마음먹었다. 편지를 주고받기 시작한 것도 그때 이후였다.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


방 한구석에 걸려있는 자신의 검 겨울을 힐끗한 리안은 자리에서 일어나 편지 두개를 협탁 밑의 서랍에 집어넣었다. 안에는 안에는 매년 두 사람과 주고받은 편지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리안은 펜과 종이를 찾아 다시 테이블에 앉았다. 답장을 쓰는 것은 어느새 꽤 익숙해져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편지를 쓰고, 편지지를 밀랍으로 봉인하고.


창가로 다가간 리안이 창을 활짝 열어젖혔다.


“첫 눈이 언제 내릴까.....”


차가운 초겨울의 바람이 밀려 들어왔다. 리안은 한동안 월동 준비를 하는 백작가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


겨울이 되면 저택의 사용인들은 할 일이 많아진다.


브레일 백작가의 주인이자 가주인 에릭 브레일도 예외는 아니었다.


“부르셨습니까, 브레일 백작 각하?”


한껏 능청을 떤 케이드가 노크도 없이 집무실에 들이닥쳤다. 서류를 처리하던 브레일 백작이 따가운 눈총을 보내도 붉은 머리의 기사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역시 내년에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결혼을 시켜야겠군.”


“에이, 농담은 그쯤 하시지요. 대체 어느 집안의 여식을 개고생 시키려고.”


실없는 농담이 오갔다. 이걸로 몇번째인지 모를 대화를 나눈 브레일 백작이 곧장 본론으로 들어갔다.


“시킨 일은 전부 끝냈느냐?”


“어. 그 정도야 일도 아니지. 기사들 휴가 챙기고, 성과급 좀 넉넉히 쥐여주고.”


“.......”


“아직 11월 중순인데 벌써 입성 허가를 신청한 제국행 상단만 일흔 다섯 곳이야. 작년보다 열두곳 늘었지. 다행이 별다른 사고는 없었고, 이 추세라면 이번달 말 백곳을 넘을 것 같은데....”


케이드가 말끝을 흐렸다. 경청하던 브레일 백작이 먼저 입을 떼는 것으로 대답을 재촉했다.


“검문은?”


“당연히 문제 없게 해야지요.”


“매해 갈수록 제국과 브라알라스를 오가는 상행이 늘어나는군.”


“덕분에 우리야 통행료를 두둑히 받을 수 있으니 좋지. 이번 여름에는 한달에 삼백 곳이 넘었으니까.”


제국과 브라알라스는 종전 상태가 아니다. 일시적인 휴전이었지만 그 휴전도 10년이 넘어간 지금, 대륙은 전쟁 이전과 마찬가지로 국경이 다시금 느슨해지고 있었다.


“그럼 다음 안건으로 넘어가 볼까.”


쥐고있던 서류를 오른쪽으로 밀어낸 백작이 말했다.


“다음 안건?”


“요즘 그 아이는 어떻게 지내느냐?”


“아.”


케이드가 무의식적으로 탄식했다.


“그냥 뭐, 잘 지내고 있지. 실력도 처음 우리 가문에 왔을때랑 비교하면 상당히 늘었고. 아직 2위계긴 하지만.”


에스테반의 유일한 후계자인 아이. 리안에 관한 일이라면 충분히 안건이라고 할 만했다. 케이드는 벌써 성인이 되어버린 한 보랏빛 눈동자의 소년을 떠올렸다. 자신의 어깨에 닿을락 말락하던 꼬맹이가 이제는 엇비슷할 정도로 키가 커 있었다.


“3위계는?”


여전히 서류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브레일 백작이 대뜸 주어를 생략하고 물었다.


“갑지기 3위계라니. 뭔 소리야?”


“시치미 떼지 마라, 케이드. 그 아이의 검술 교습은 네가 직접 맡고 있는데 그럼 누구한테 물어보겠느냐.”


“그거라면 내 대답은 아직이요. 이것밖에 할 수가 없는데. 마나를 처음 각성하고 2위계에 오르는 것보다, 2위계에서 3위계의 벽을 넘는 게 훨씬 어려우니까.”


케이드의 말이 맞았다. 3위계의 경지는 천부적인 재능과 노력이 둘다 뒷받침되어야 겨우 닿을 수 있는 경지였다. 브라알라스에 마나를 다루는 마법사들은 만명이 넘지만, 3위계의 경지에 오른 마법사는 오십을 넘지 않았다.


시선을 들어올려 케이드를 한번 쳐다본 백작이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가.”


그 담담한 태도에 케이드가 쓴웃음을 지었다.


5년 전, 엘리시온 대연회에서 결국 브레일 백작은 카를린, 케이드의 의견과 마찬가지로 리안을 비호하기로 결정했다. 소드마스터가 될 때까지 브레일 가문이 아이의 그늘이자 보금자리가 되어주었다고.


아직까지는 아무런 일도 없었지만 세상 일이라는게 꼭 예상한대로만 흘러가는건 아니었다. 리안이 소드마스터의 경지에 오른다면 에스테반의 후계자라는 걸 들켜도 오히려 그 점을 무기로 삼을 수 있었다.


에스테반 대공이 죽고 대륙에 단 둘밖에 남지 않은 소드마스터란 존재는 그 정도의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명단 작성은 벌써 다 끝냈느냐?”


브레일 백작이 남은 문서를 전부 정리했다. 오늘은 평소보다 일이 일찍 끝난 모양이었다.


“아직.”


“마침 시기가 딱 좋구나. 에반, 핀, 덩크 그 아이들도 서임을 받았으니. 올해는 다같이 실전 경험을 경험하기 괜찮겠어.”


자리에서 일어난 백작이 집무실 한쪽에 놓인 책장으로 다가갔다.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해도 됩니까?”


케이드가 등에 대고 허락을 구했다. 책을 몇권 꺼낸 브레일 백작이 고개만 돌려 입꼬리를 미미하게 올렸다.


“언제는 안 그랬느냐?”


“예의상 물어본 거였습니다.”


“엘도르 기사단장인 네 마음대로 하거라.”


백작이 덧붙였다.


“6년 전의 뼈아픈 경험도 있으니, 올해도 실패는 없을 거라 믿는다.”


***


“그렇게 되었으니, 2주동안 마음 단단히 먹고 출정 준비나 해라.”


“예?”


케이드의 집무실.


느닷없이 호출을 받은 네명의 소년은 영문을 몰라 서로의 얼굴만 멀뚱멀뚱 쳐다보았다. 그런 리안과 에반, 핀, 덩크의 반응이 못마땅했는지 케이드가 약간은 높아진 음성으로 외쳤다.


“못 들었어? 니들 실전 경험 쌓아야 되니까 준비 단단히 하라고.”


“준비요?”


네 소년이 다시금 서로를 돌아보았다. 갑자기 불러서 점심도 거르고 왔는데, 웬 개소리를 하는 건지.


“그러니까, 그 실전 경험이라는게....”


보다못한 리안이 소년들의 대표로 물었다. 사실 케이드가 말하는 출정이 무엇인지 대충 감이 왔으나 혹시나 아닐 수도 있으니 재차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뭐긴 뭐야.”


그런 네 소년의 의문에 케이드가 시원하게 답했다.


“겨울 사냥이지. 엘도르 기사단의 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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